18회차) 소원을 말해봐.
“나의 두 공주는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하지?”
황후 모리야가 일란성쌍둥이를 불러 놓고 티타임을 갖고 있다. 첫째 타마라 공주는 조숙하며 도도하다.
“난 예쁘게 옷을 입고 보석으로 치장해 사람들 앞에 섰을 때가 가장 좋아요. 사람들이 나만 바라보거든요.”
둘째 우마리 공주는 명랑하고 순박하다.
“저 밖의 세상이 궁금해요. 새로운 걸 배우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둘은 바라는 것과 원하는 면이 달랐지만 잘 자랐고 열여덟 살이 되었다. 황제와 황후는 타마라와 우마리 공주의 생일을 맞아 특별하게 잔치를 준비한다.
“그런 것들이 너희들을 행복하게 하는구나. 자, 이번 생일에 받고 싶은 것은 무엇이 있는지 말해보렴.”
타마라는 신이 난다.
“어머니, 저는 생일 선물로 희귀한 보석을 주세요.”
“저는··· 좀 더 생각하고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래, 너희는 공작 왕조 공주잖니. 조급할 필요가 없어요. 원하는 것은 다 너희들 것이 될 테니까.”
하늘에 날씨와 가뭄 그리고 홍수를 대비해 씨 뿌리는 시기까지 예측하는 첨성관이 삼라트를 다급히 뵙기를 요청한다.
“무슨 변고라도 예측된 것인가?”
“아닙니다. 아주 크게 경축할 일이 옵니다.”
“굼뜨긴 그럼 어서 말해야지.”
“삼라트시여, 황궁에 음기가 강한 것을 제가 염려해 늘 아뢰었습니다.”
“그랬지.”
“음기를 중화시킬 양기를 가득 품은 태양이 이틀 동안 왕성하니 반드시 양기를 받으셔야 합니다.”
“양기를 받으라··· 그걸 받으면 내게 무슨 이득이 있지?”
“음기는 땅속의 생기로 탄생을 주관하고 양기는 땅 위로 흘러 성장과 결실을 주관합니다.”
“성장과 결실이라면 좋은 거군.”
“하필, 그날이 두 공주님의 생일이니 복중에도 이런 복도 없습니다. 잔치를 크게 열어 하늘의 복을 받으소서.”
“그렇게 좋다면 잔치를 열어야지.”
황제는 첨성관 말에 따라 쌍둥이 공주의 생일 축하를 위해 황금 열 수레를 꺼냈다.
“생일잔치를 성대하게 열어라.”
중요 신하들을 초대하는데 그중 왕조의 영토 확장과 건실한 재정을 만드는데 일등 공신인 재상 진준 가족을 초대한다.
“이번에 재상을 반드시 끌어들여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삼라트는 재상이 군사력까지 장악하고 있고 그 힘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 견제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삼라트여, 정략결혼이 제일 확실한 포섭입니다.”
“황후의 말이 맞소.”
“뜸 들이지 말고 서두르세요.”
황제는 재상과 독대하며 막힘없이 여러 정치에 관한 일을 의논하다가 슬그머니 운을 뗀다.
“자, 정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내가 요즘 이런 생각해 봤어.”
“고민이 있으신지요.”
‘아, 저 하이에나 같은 재상! 눈치 하고는.’
“재상과 내가 사돈이 된다면 어떠할까 말이야.”
“······”
이해관계가 통하는 말에 재상 진준이 선뜻 낚아 채지 않는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저 궁리하는 것 봐. 승낙하지 않으면 넌, 죽음만 있을 뿐이다.’
“재상?”
그가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승낙하는 것인가?”
그가 다시 고개를 깊이 숙인다.
'점잖을 빼기는'
“재상은 뭐가 그렇게 조심스러운가. 그냥 시원하게 대답하면 될 것을.”
***
쌍둥이 공주 생일 잔칫날.
이른 아침부터 타마라는 파우더 룸에서 시녀들에게 둘러싸여 몸 단장에 신경 쓰느라 딴생각할 겨를이 없다.
“이게, 아니잖아, 어머니께 주신 이 보랏빛 드레스엔 진주가 어울린 다고.”
“공주님, 황후님께서 우마리 공주님과 다르게 특별히 금사를 넣어 만들어주신 드레스입니다.”
“금사든 은사든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단 말이야.”
“어찌, 선물로 내리신 것인데.”
“당장 치워. 난 삼라트께서 주신 사파이어를 할 거야. 목걸이에 걸맞은 드레스를 가져와.”
“공주님!”
타마라는 황후의 파우더 룸으로 향한다.
“나, 이거.”
“공주님 이건 황후님의 여벌 드레스입니다.”
“이 몇 벌 중에 한 벌 빼는 건데 아시겠어.”
“그럼, 황후님께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시간이 없다고, 게다가 오늘은 내 생일이야. 누가 뭐라고 하겠어.”
타마라를 시중드는 시녀들은 늘 있는 일이지만 오늘을 더 진땀을 뺀다.
“마음에 쏙 들어. 내 스타일이야.”
공주는 황후의 허락도 없이 이미 옷을 입고 있다.
“보라고, 어깨가 이렇게 훅 파져··· 눈에 띈다고.”
“하지만 공주님 가슴골이 너무 많이 파여서.”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라고 몇 번을 말해줘야지. 내가 좋다고 누가 뭐래.”
“네. 그거야 맞지만.”
우마리는 황후가 보낸 드레스를 아직 입지 않고 정원에서 유모를 도와 홍자귀 꽃을 다듬고 있다. 유모의 날랜 손놀림을 보며 오른 손등 파란 점에서 냄새가 난다.
‘이상하게 비릿한 소금 냄새가 나네.’
“공주님, 제가 할 테니 이제 들어가서 준비하셔야죠.”
“이것만 끝내고······”
“식물 진액이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아요. 어여쁜 손에 얼룩이 생깁니다.”
“그게 뭐 어때서?”
“오늘은 특별한 날이잖아요.”
“아, 생일.”
“이렇게 딴전 피우시다간 황후님께 불호령을 듣습니다.”
“유모 잔소리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손등과 손바닥을 뒤집으며 미소 짓는 우마리에게서 꽃향기가 난다.
“꽃들은 참, 신기해.”
“신기하죠.”
“향기가 다 제각각인지. 어떻게 향기를 만드는 걸까?”
“글쎄요. 그러고 보니. 향기가 다 달라요.”
“정원에 핀 꽃을 봐 같은 땅에 공기 햇빛까지 그런데 다르잖아.”
“꽃마다 다른 뭔가 있겠죠.”
“으음, 씨앗에서부터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네, 네! 우마리 공주님, 이러시다 늦습니다. 손님들을 기다리게 하실 거예요?”
유모는 슬쩍 우마리를 밀며 눈짓한다.
“어서요!”
공주는 마지못해 파우더룸 쪽으로 걷는다.
흠흠 으음?
우마리가 음식 냄새가 진동하는 주방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넓은 황실 주방에 요리사들이 음식을 만드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주방 보조들은 만든 음식을 나르고 장식하느라 수선스럽다.
“엄청나다, 저 많은 음식들을 오늘 다 먹을 수 있을까.”
“넌 여기서 어떤 일을 하는 아이지.”
“······”
“옷차림을 보니 허드레 일을 하는 시녀 같지는 않고?”
우마리가 두리번거리며 남자를 보고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킨다.
“나를···?”
“그래 너 말이다.”
황궁에서 처음 보는 듬직한 남자가 서 있다.
“무슨 일이시죠.”
‘키도 크고 꽉 다문 입술이 고집스러워 보이지만, 큰 귀가 당나귀를 닮아 재미있는 사람 같아.’
“내가 이곳이 처음이라···”
그가 우마리를 아래에서 위를 훑고 있다.
‘왜 이렇게 가슴이 뛰지.”
“혹시, 쌍둥이 공주님 생일잔치를 축하하기 위해 오셨나요.”
“뭐,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꿀꺽!
늠름한 모습과 예절이 몸에 밴 남자의 침 삼키는 소리가 크다. 어색한 소리 때문인지 손으로 허벅지를 꼬집는다.
“처음 와본 황궁이라 잠시 돌아보고 있었지.”
“그러시군요. 둘러보니 어떠세요.”
“걷다가 이곳에 왔는데··· 궁은 늘 이렇게 분주하지 않겠지.”
“그럼요. 아주 조용하고 지루할 때가 많지요.”
“황궁 안에 아주 신기한 연못이 있다고 들었는데.”
우마리가 연못이라는 말에 남자의 눈을 본다.
“내실 안쪽이라 아무나 들어갈 수 없어요. 특히 외간 남자일 경우엔 더욱.”
“그렇군.”
“왜 그곳이 궁금하세요.”
“그냥······ 내가 너의 묻는 말에 다 대답해야 하는 건가.”
"그건 아니지만 황후님과 공주님들의 정원이라 예민한 곳이잖아요."
"소문에 신기하다는 말을 듣고 알고 싶었을 뿐······ "
"그럴 수 있지요. 개인적으로 황궁 밖 시장은 활기차고 매력적이에요.”
“시장은 대단한 곳이지. 난 그곳을 매일 다니거든.”
“너무 부러워요. 주로 어디를 가세요.”
“난 곡물 가게와 대장간··· 그것보다 시간이 된다면 나를 위해 궁을 잠시 안내해 줄 수 있겠니.”
우마리가 그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요. 따라오세요. 혹시 시장에서 만나면 그땐 나를 안내해 주세요.”
“약속하지.”
“좋아요.”
“어디부터 갈 건지?”
“그냥 나를 따라오면 돼요.”
공주는 망설임 없이 남자 손을 덥석 잡고 정원 쪽으로 달린다.
“먼저 소개해 줄··· 가 있어요. 재주가 아주 많아요.”
“저기! 손을."
“코르사주를 다 만들었을지도 몰라요.”
“그 사람이 누구지.”
“다 왔어요.”
손을 잡힌 권은 우마리 손에 붉게 물든 꽃 물이 전해져서 일까. 얼굴이 붉어져 말을 더듬는다.
“이러다 넘어지겠어 천천히 가야지.”
“힘드세요.”
“아니, 네가 넘어질 것 같아서. 난 권이야, 이름이?”
“내 이름은······”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는 우마리.
“없네?”
그녀가 권의 손을 놓고 구석에 떨어진 홍자귀 코르사주가 발견한다.
“하나가 떨어져 있어.”
코르사주를 줍기 위해 우마리가 몸을 숙이자 권이 코르사주를 주워 건넨다.
“여기.”
“내 것이 아니에요. 손님들을 위한 것이니 권이 당신이 가져요.”
우마리는 코르사주를 받지 않는다.
“어떻게 내 이름을?”
“방금 내게 알려줬잖아요.”
“아, 그랬지.”
“손님들을 위해 코르사주를 많이 만들었는데 없는 걸 보니. 아무래도 이제 곧 생일 잔치가 시작될 것 같아요.”
“난 참석하지 않고 황궁을 안내···”
“궁 안내는 나중에 하고 연회 장에 가야 해요. 얼른 요.”
공주는 멀뚱히 서 있는 권의 손을 다시 잡고 연회 장으로 달린다.
“왜, 걷지 않고 자꾸 달리지.”
“늦었으니까.”
“뭐가 늦었지.”
“아까는 서둘러야 할 것 같았고.”
“같았고!”
“지금은 진짜 서둘러야 해요.”
“알았으니. 조심해서 달려야지.”
“불안하시면 제가 손을 놓을게요.”
우마리가 손을 놓자마자 권이 다시 잡는다.
“궁을 잘 몰라서.”
키가 크고 멋진 청년이 여인에 이끌려 어정쩡하게 뛰는 모습은 멀리서 봐도 흥미롭다.
“저기 좀 봐요.”
“보기 좋은 한 쌍이군.”
“그러게, 근데! 저분은?”
타마라 공주는 이미 상석에 앉아 있고 우마리 공주였다.
"우마리 공주님이세요."
다들 즐거워하면서 황제와 황후 눈치를 본다. 크게 웃지도 못하고 손으로 연신 부채질만 한다.
“생일날이라 특별한 일이 생길 거라 여겼는데 정말 생겨버렸어.”
- 작가의말
당신은 어떤 것을 할 때 행복하세요?
:
알려주시면, 재미와 즐거움을 보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추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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