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회차) 매리골드와 가르바 춤
세종 포럼이 언급되자 해리와 브라이언 그리고 앨슨은 흔쾌히 수락한다.
“좋소!”
고령의 그들은 앨리스 재단에서 실시하는 영생 프로젝트에 참여해 건강 케어를 받고 있다. 평소 리타 가문과 관련된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던 그들이 한국을 수시로 드나들면서 이번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는 수습하려는 의지가 없다.
지황은 차분한 우마리를 지나쳐 홀로그램으로 참여한 고문 셋을 유심히 관찰한다.
‘이슈를 더 키우고 부추겨 이스타의 경영에 제동을 걸려는 의도가 다분하군.'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피력하고 일정 핑계를 대며 홀로그램을 끄고 나갔다. 크리스가 버튼을 눌러 제어하자 스크린에 띄워졌던 언론 영상도 함께 꺼졌다. 회의실은 침묵의 기류가 흐르는 가운데 베제로가 한숨을 쉰다.
“고문이라고 하지만 세 분의 프로젝트 후원 비중이 워낙 크다 보니 입김이 장난이 아니군.”
연신 자료 탭을 지황이 손으로 올리며 의아하다.
“올려준 자료와 개인적으로 준비한 것을 비교해 보니 사실 이스타가 오기 작년 초부터 내부 기밀 정보 유출 등 여러 문제가 산발적으로 있었습니다. 다행히 경영관리에 유능한 우마리가 투입되면서 보안시스템 강화와 업그레이드로 방어를 잘했고.”
크리스가 자료 화면을 크게 확대해 도표와 수치를 360도 입체인 시각으로 띄운다.
“분명 것은 내부 소행이 확실합니다. 최고 윗선에서 기밀 코드 5를 모두 열어 준 것이 잡혔습니다.”
이스타가 궁금해한다.
“크리스, 윗선이 있다는 것을 그동안 보고하지 않았지?”
베제로와 김 무진이 이스타를 보면서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내부망을 촘촘히 거르면서 최근에야 밝혀냈지만 정황상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속단하기 어려워 과정 도출을 역산으로 도출하고 있습니다.”
우마리가 베제로와 김 무진 그리고 크리스의 주저함을 감지한다.
“잠깐만요. 추적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데 아직 100%는 아닙니다. 섣불리 범인을 짐작하는 것은 리앨퀀 오너 넘버쓰리로서 용납할 수 없습니다.”
크리스가 우마리의 말에 동의한다.
“맞습니다. 저도 회장님의 추천으로 보안과 컴 사이언스 센터 본부장으로 AI 로봇 관련 사업 막판에 오스틴 쪽에서 튼 이유가 아무래도 찜찜해서 알아보았습니다. 기밀 정보 유출이 법무팀 총괄부서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크리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되었다는 건가? 왜, 말을 흐리지."
이스타가 크리스를 따지듯 추궁하며 묻자 우마리가 나선다.
“크리스 본부장이 조심스러운 이유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하시죠.”
크리스가 우마리 말에 곧바로 수긍한다.
“오너 넘버쓰리 의견에 동의합니다. 수렴해서 다음 회의에 보고서를 올리겠습니다.”
이스타가 크리스의 대답에 제동을 건다.
"추적해서 나온 유출자의 정확도가 몇 프로입니까?"
"99%입니다."
“온전하지 않더라도 보고서의 내용을 지금 오픈하세요.”
우마리가 이스타의 강경한 자세에 크리스에게 고개를 끄덕인다.
“윗선은 오너 넘버원이셨습니다. 또한 유출자를 색출하라고 하신 분도 회장님이셨습니다. 수상한 것은 문제를 따라가면 모든 물증이 짜 맞춘 듯 오너 넘버원을 향하고 있습니다. 너무 뻔하게 드러나는 정황이 수상합니다.”
유출자에 회장이 거론되고 회의장 분위가 어수선할 거라 여겼지만 의외로 차분하다. 권과 용수만 사색이 되어 권이 흥분한다.
“말이 안 되오. 모함이나 음해가 분명합니다. 아직 정확한 데이터가 아니므로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뜬금없이 회장님이 유출 대상자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권의 흥분에 용수가 일어난다.
“크리스! 당신은 회장님께서 추천한 인물이오. 정보 유출 당사자로 회장님을 저격하다니. 어떻게 회장님 스스로 당신 그룹 치부를 노출시켜 상처를 입힌다는 발상을 할 수 있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이스타는 권과 용수를 아무런 표정 없이 응시한다.
“자료상 수치와 코드 입력이 정확히 회장님을 가리키고 있었···”
베제로가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언성을 높인다.
“그럼, 오너 넘버투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겁니까.”
이스타가 얼버무리며 대답을 회피한다.
“오너 넘버원께서 요양차 여행 중이시니 이 사안에 대해 크리스가 더 정확하게 조사할 것입니다.”
크리스가 이스타에게 노골적으로 질문한다.
“추가로 오너 넘버투의 개인적인 일로 리앨퀀 모든 프로젝트가 보류 상태로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프로젝트 정보 유출보다 더 큰 파장을 줬고 그동안 호의적이던 고문들까지 돌아서고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 겁니까.”
이스타가 깍지를 낀 두 손을 턱에 괴며 눈을 감는다.
“지금부터 미니멈은 보름이고, 맥시멈은 한 달, 미니든 맥시든 시간을 주시오. 그때까지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겠습니다.”
우마리가 이스타에게 묻는다.
“오너 넘버투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세요. 다만 프로젝트의 정상적인 진행을 위해 문제 해결 전까지 모든 프로젝트에서 손을 떼셔야 합니다.”
전략 임원들은 물론 범수와 월하도 우마리의 단호함에 놀라 이스타를 곁눈질해 본다.
“우마리가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소.”
“S 회의 중입니다. 이름이 아닌 명칭으로 불러주십시오.”
“알겠소, 오너 넘버쓰리!”
이스타는 표정 하나 어떤 변화도 없이 냉정함을 유지하며 여태 아무 말도 없는 김 무진을 본다.
“그럼 지금부터 프로젝트 권한은 부총괄 오너 넘버쓰리와 김 무진 사외이사가 진행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사외 이사에게 권한을 부여하자 이의를 제기하려는 권을 급하게 용수가 말린다.
“형, 나서지 마. 프로젝트 잘못되면 다 뒤집어쓴다고. 큰형이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걸 거야. 지금 사안이 얼마나 막중한지 알잖아. 제발!”
***
혜리가 강의를 마치고 강의실을 나오며 카톡을 확인하다 고개를 젓는다.
“정말 자기만 아는 사람이야.”
운전하는 내내 혼자 중얼대던 혜리가 지나치는 리앨퀀 본사 건물을 보며 입꼬리가 올라간다.
"당신이 나와 우리 아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하지만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할게요. 너무 기다리게 하지 마세요. 주변 사람들이 모두 힘들어해요. 특히 우마리한테 미안하단 말이에요."
퇴근해서 돌아오자마자 고모 조 여사가 뒤를 이어 땀을 뻘뻘 흘리며 별관에 들어온다.
“혜리 왔니! 오늘은 일찍 왔네.”
“어, 약속이 취소됐어.”
“고모! 젓갈통에 빠졌다가 왔어. 이게 무슨 쿰쿰한 냄새야.”
조 여사가 옷을 벗으며 냄새를 맡는다.
“어 어엉? 노량진 수산시장에 다녀왔는데 아무래도 샤워해야겠다. 고모 씻는 동안 본관 2층 서재에 음료 냉장고 채워놓고 티 올려다 놓을래 일이 밀렸어.”
혜리는 망설이며 조 여사에게 고개를 젓는다.
“싫어. 또 괜한 오해받을 거야. 그렇지 않아도 메이드들이 곱지 않게 보는데.”
“메이드! 제까지 것들이 너를 곱지 않게 보면 어쩔 건데.”
“고모 알면서 왜 그래.”
“회장님부터 아가씨까지 리타 가문 어른들도 뭐라고 하지 못하는데 신경 쓰지 말고 올라가서 해놓고 와. 우마리 아가씨랑 이스타 님 오시기 전에 빨리···”
혜리는 조 여사에게 떠밀린다.
“아이 정말."
"오늘은 그 일만 도와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냄새난다면서 그동안 얼른 씻고 나올게."
"알았어. 서재만 챙기고 내려오면 되지.”
조 여사가 서둘러 샤워실로 들어간다.
"그래."
혜리가 2층 서재 방에 올라가 음료 냉장고 음료 재고와 종류별 티를 채워 넣는다. 그녀가 서재에서 나와 2층 달의 정원 거실에 매리골드와 양초를 보고 활짝 웃는다.
“누구 아이디어지! 게다가 매리골드 노란색 꽃과 오렌지색 꽃이 더없이 마음에 들어.”
혜리는 화단에 심어진 매리골드 꽃을 꺾어 호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는 거실을 돌며 가르바(Garba)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얼마나 춤을 췄을까 이마의 땀을 닦으며 우마리의 신혼 방 앞을 서성이던 그녀가 방으로 들어간다.
“아늑함과 편안함.”
혜리가 거침없이 신혼 방을 누비다 침대를 쓰다듬고 뒹군다.
“너무 좋아.”
중간 단발머리를 쓸어 올리며 혜리가 일어나 요염하게 걷는다.
“이 냄새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그녀가 우마리의 드레스 룸에 걸린 옷들을 손으로 훑고 묘한 쾌감을 느끼며 전율을 느낀다.
“다, 내 거야. 내게 다 줄 거라고 했어.”
다시 춤을 추며 드레스 룸을 나오면서 미니 탁자에 놓인 베르사체 상자를 건드려 떨어뜨린다.
툭!
상자가 열리면서 붉은색 섹시한 망사 레이스 속옷 세트와 잠옷이 바닥에 흩어졌다.
“아! 나를 위해서 너무 예쁘다.”
하늘거리는 천 조각 같은 팬티와 브라를 손에 들고 비춰본다. 드레스 룸 전신 거울을 보며 옷 위에 걸치며 황홀해한다.
“이런 것까지 준비해두다니. 너무 섬세해.”
목덜미 잔털이 일어나며 혜리가 성급하게 호주머니에 우마리 속옷을 욱여넣고 신혼 방을 막 빠져나와 거실에서 숨을 고른다. 미스 한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혜리를 보고 깜짝 놀란다.
“아니, 혜리 씨가 여기 왜!”
“미스 한!”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죠.”
“조 여사님이 부회장님 서재 음료수 냉장고 확인을 부탁해서 정리하고 내려가려 는 참이었어요.”
미스 한이 불현듯 시계를 본다.
‘7시가 훌쩍 넘었네.’
미스 한이 창가로 다가가 해가 넘어가 노을이 진 하늘을 바라본다.
“혜리 씨, 내려가는 게 좋겠어요. 아가씨 오실 때가 되었거든요.”
뭔가 어색해 보이는 혜리가 내려가자 미스 한이 단박에 우마리의 신혼 방을 들어가 이곳저곳을 살핀다.
“다행히 그대로 있어.”
마지막으로 드레스 룸을 나와 미니 탁자를 지나칠 때 고개를 까딱거리며 미스 한이 상자를 유심히 본다.
“위치가? 이렇게 두지 않았는데 뭔가 살짝 틀어졌어!”
혹시 몰라 미스 한이 상자 뚜껑을 열어 보고 안심하며 닫는다.
“으음.”
서너 걸음 걷다가 미스 한이 다시 돌아와 상자를 열어 잠옷을 꺼낸다.
“속옷! 팬티와 브라가 없어.”
상자를 닫고 미스 한이 2층 서재로 들어가 별관을 바라본다. 불이 켜졌고 열린 창문에 알몸으로 서 있던 혜리가 우마리의 섹시한 속옷을 입고 빙글빙글 돌고 있다.
“저, 미친년이! 아가씨 속옷까지······”
- 작가의말
가끔 아무것도 궁금할 것 없는 텅 빈 그릇처럼 생각도 마음도 비우는 것도 괜찮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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