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회차) 누가 지황인가?
문을 열고 등장한 남자의 눈과 재희의 눈이 순간적으로 충돌하자, 세 남자와 우마리가 재희를 번갈아 본다.
“원장님?”
우마리는 너무 놀라서 인지 잔류했던 알코올이 휘발되며 정신이 맑아진다.
“오셨으니 들어오세요.”
다들 말릴 겨를 도 없이 그가 우마리의 말 한마디에 발을 들여놓자 재희가 목걸이를 들고 불편해한다.
“이럴 시간이 없어요. 드디어 목걸이가 왕성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고요.”
“형, 문 닫지 않았어?”
“깜빡했어.”
“내보내야지.”
“문제는 저자가 여길 어떻게 들어왔냐는 거야. 기가 막히는군.”
“저 사람한테 초대장 보냈어?”
“내가 왜, 초대 명부는 내가 작성한 건데 미치겠네.”
권과 용수는 이스타 원장을 아는 눈치였고 권이 움직인다.
“도대체, 최 실장은 뭐 하고 있는 거야.”
권이 원장을 불편하게 쳐다보며 인상을 쓴다.
“잘 나가고 있었는데 계속 어긋나고 있어.”
이스타 원장을 음식물 쓰레기처럼 보며 권이 용수에게 눈짓을 한다.
“어떻게 해봐.”
용수가 머쓱하게 원장 어깨를 가볍게 밀친다.
“감히, 여길 들어오다니. 퀀텀 지분 좀 갖고 있다고 들어왔나 본데 알았으니 나가 봐요. 여긴 당신이 올 곳이 아니야.”
이스타 원장이 꿈쩍 하지 않자 용수가 거칠게 밖으로 떠민다.
“나가라고······”
원장을 무례하게 다루는 권과 용수의 행동에 우마리가 불편하다.
“제발, 그만! 재희 이모 이대로 둘 거야.”
힘없이 밀려 나가던 원장이 구두 뒤꿈치로 버티며, 용수의 팔을 풀고 재희 앞으로 걸어 나온다.
“최 재희, 당신은 마사!”
재희가 마사라는 이름을 듣고 기겁을 한다.
“다 당신, 정말!”
쓰러질 듯 힘없이 붉은 타래실을 대리석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나가줘요. 정중하게 부탁해요."
그렇게 말하고 재희는 다리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아 운다.
“나가줘요. 내가 끝내야 하는 일이고 얼마나 중요한 모르고 있다고. 거의 다 되어가고 있으니 제발 망치지 말고 나가요.”
타스가 재희의 반응이 무척 흥미롭다는 듯 원장을 가리킨다.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저자가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여기에 있어 줘야겠어."
"타스. 이렇게 나오다니."
"권! 하얗게 질린 재희를 보라고. 저 사람 여기 두는 게 좋겠어. 비즈니스 잘하잖아, 그래야 우리 모두가 이롭지 않겠어.”
권은 타스의 말이라면 진저리를 치더니 그 답지 않게 수긍한다.
“저기 구석에······”
권이 손짓하자 용수가 이스타를 책장 구석으로 밀어 버린다.
털썩!
이스타는 저항 없이 자빠지면 단정한 머리카락이 흐트러진다.
“거기 얌전히 있으라고.”
바닥에 앉은 이스타는 서러운 눈으로 재희를 쏘아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당신은 잊고 살았나. 나쁜 사람.”
재희는 눈물로 시야가 흐려진 상태였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좋아요, 세 사람이 동의한다면 할 수 없군요.”
재희는 두 팔에 힘을 주며 일어나 이스타에게 부탁한다.
“당신은 거기 가만히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 놓고 이야기해요.”
뭔가 결심한 그녀가 눈물을 닦는다. 우마리는 재희와 원장을 번갈아 보며 호기심이 생긴다.
‘놀라워, 거짓말처럼 엮이고 엮어 서로를 알고 있었다는 게.’
“그럼, 권과 용수 그리고 타스 여기 탁자 앞에 서요.”
한 남자의 등장으로 목소리까지 부드러워진 재희.
세 남자는 적응하기 어려웠지만 기분 좋게 중앙 탁자에 모인다. 탁자 한가운데 둥근 크리스털에 놓인 붉은 타래실이 점점 붉어진다.
“빛이 몸에 닿은 사람은 빛을 따라와 자리에 서요.
”타래실 빛이 비밀의 방을 붉게 물들이며 네 남자를 가리킨다.
‘빛이 왜, 저 사람을······ 아차! 아버지가 현실의 인연도 중요하다고 하셨어. 혹시 저자가 새로운 월하?’
재희는 난감했지만 이스타 원장을 부르고 싶지 않다.
‘제발 이 상황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뭘 주저하는 거요.”
타스가 비꼬는 투로 말한다.
“그, 그게···”
원장이 책장 구석에 있는 사다리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재희 눈을 쫓고 있던 권이 원장을 보고 냅다 소리친다.
“제기랄, 당신! 내 서재에서 뭘 염탐하는 거야.”
원장은 무엇에 홀린 듯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읽는다.
“아무도 앉을 수 없는 내 생각의 자리, 누구고 앉아서는 안 되는 불가침의 영역에 그녀가···”
“내놔. 당신 무례하게 선을 넘고 있어.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 차릴 건가.”
전공 서적이 아닌 유일한 책 하나를 원장이 꺼내 읽자 권의 귀가 빨개졌다. 원장 손에 들린 책을 권이 빼앗아 금고에 넣으려 하자 타스가 달려들어 책을 뺏는다.
“이리 줘.”
촤르르
정원이 아름다운 궁전
-리베라타 출판사-
“권, 자네 꽤 낭만적인 구석도 갖고 있었군.”
재희는 아픈 추억을 건드린 이스타 원장과 빈정거리는 타스가 꼴 보기 싫다는 듯 징그럽게 쳐다본다.
"자, 자, 자!"
권은 타스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 책장에 꽂으며 원장에게 충고한다.
"내 서재에 있는 책을 함부로 꺼내지 말라고. 마지막 경고야!”
“난 그저, 책을······”
재희가 굽이 낮은 미소페 양가죽 펌프스까지 벗고 맨발로 선다.
“다들 신경 쓰이게 하네. 거기! 장난치지 말고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재희 손짓에 원장은 특유의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엉거주춤 내려온다.
“오라면······ 가야지.”
타스와 권 그리고 용수는 붉은빛이 번쩍이는 테이블에 바짝 붙는다. 우마리도 마음에 동요가 일었는지 눈빛을 반짝이며 재희 옆에 있다.
“다들, 집중해요.”
재희가 목청껏 소리 질러 세 남자를 놀라게 한다.
“난 안내자로 볼 수 없지만 여러분 모두는 처음으로 돌아가 인연의 시작을 볼 겁니다. 그다음은 우마리의 몫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니까! 준비되었으니 갑시다.”
원형 크리스털이 빛을 내며 백스핀처럼 돌아간다. 붉은 블랙홀 안에 아름다운 제비꽃 별이 보이자 흥분된 소리로 남자 셋이 달려든다. 마치 스테인리스 프라이팬이 달궈지지 않은 상태에 섣부르게 달걀이 투하된 것처럼······
“실망이군.”
아쉬움이 먼지처럼 퍼지며 붉은 실타래가 하늘을 검보랏빛으로 물들인다.
기원전 317~ 기원전 180년경.
인도의 밤하늘이 검 보랏빛으로 물든 밤하늘이 어둡다. 삼라트 2세의 황위를 이어받은 삼라트 3세는 물려받은 영토에서 마이소르 지방까지 확장해 나아가려 한다. 공작 황조의 영토는 굴라 왕국과 타밀 지역 등 몇 개의 지역을 제외하고 모두 정복한 상태였다.
"배고파, 슬슬 먹어볼까?"
좀도둑 치고 아주 어린 소년이 재상 진준의 아들 첫돌 음식을 훔쳐 벵갈 고무나무 아래에서 먹으려 한다.
"용수야, 배고픈 나에게 먼저 양보해 줄 수 있겠니?"
좀도둑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혼자였고, 붉은 타래 실을 목에 두른 노인이 그를 불렀다.
“이봐, 영감탱이, 둘러봐도 나 혼자인데 용수가 누구요?”
노인이 영감탱이라는 말에 숨이 넘어갈 정도로 웃는다.
하하하하~
“듣던 대로 물건이구나. 너는 어려서 버림받아 떠돌며 살았지만 다 뜻이 있었지.”
“개뼈다귀 같은 소릴 지껄일 거면 집어 쳐요.”
“믿을 수 없겠지. 넌, 고귀한 뿌리를 가졌고 어떤 어려움도 견디기 위해 걸인이 되어야 했지. 분명하다 네 이름은 용수다.”
“음식 좀 얻어먹겠다고 멀쩡한 노인이 뻘짓을 다 하네.”
좀도둑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일어나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내가 영감탱이 노력이 가상해서 주는 거요. 먼저 드쇼. 그래도 조금은 남겨야 할 거요. 난 배고프면 내가 어떻게 나올지 나도 모르거든.”
노인은 자리에 앉아 블루베리 열세 개와 포도 네 알을 집어 먹는다.
“잘 먹었어.”
“애걔, 그걸 먹고 무슨 배부르다고 좀 더 먹어도 되니 드쇼.”
“좀 이따가 도시락을 먹어야 하거든. 배불러.”
“배부른 척 능청 떨지 말고 더 드쇼. 설마 내가 노인을 때릴까.”
“정말이야, 아주 귀한 도시락을 얻어먹을 거라서 어서 먹어.”
“싫으면 그만둬요. 나중에 배고프다고 징징거리기만 해 봐라.”
좀도둑이 게걸스럽게 음식을 해치운다.
"용수야, 천천히 먹거라! 내가 너에게 줄 선물도 있단다.
그의 눈이 반짝거린다.
“어디서 나를 등쳐먹으려고 선물 같은 것 필요 없으니 조용히 있다 가쇼.”
“말버릇 하고는 하나하나 다 가르쳐야겠군.”
좀도둑은 노인의 간지러운 말에 귀를 후빈다.
“선물 같은 소리, 먹을 것도 없어서 내가 훔친 음식을 빼앗아 먹는 주제에······”
“네가 그동안 상처를 많이 받았구나.”
“짐승처럼 살았소. 매일 빌어먹고 뒹굴다 누군가가 뭘 준다고 하니.”
“좋으냐?”
“선물이라는 걸 받아 본 적 없어서.”
“그럼, 네게 선물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좀도둑의 눈이 충혈되고 등을 돌리며 말이 없다.
“왜?”
“에이, 우라질 돌을 씹었네.”
“그래, 덧난 감정이 아물고 새 살처럼 부드러워지려면······”
노인이 일어나 용수의 등을 돌려 앉힌다. 그리곤 반얀트리 나뭇가지를 꺾어 용수에게 쥐여준다.
“용수야, 함부로 등을 보이지 말거라.”
“등이 왜요?”
“아직 어리니 하나를 알려주면 열은 알아서 할 수 있을 거다.”
“선물 준다더니······ 알아서 하라는 게 선물이요. 난 그럼 안 받아, 지금도 다 알아서 하는데 뭣하러.”
“지레 겁먹기는! 난, 이걸 잡기라 여기는데 사람들은 마법이라 부르더라. 네게 알려줄 테니 잘 쓰거라.”
용수가 막대기로 뒤통수를 긁는다.
"아우, 시원해."
- 작가의말
선물이란?
받는 입장과 주는 입장은 다르지만 선물에 담겼으면 하는 것은 있습니다.
하나만 콕, 집는다면 당신은 무엇인가요?
저는 ㄱㄷ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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