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회차) 신은 없다
재희의 눈꺼풀이 떨렸고 부옇고 희미한 방이 통째로 움직인다. 서서히 멈추며 하얀 방에 창문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커튼처럼 드리워져있다.
“이제야 눈을 떴구나.”
“여기는, 어디······”
“병원이야, 깨어나서 다행이구나.”
재희가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지더니 웃는다.
“드디어 유산되었어. 그렇죠!”
“어떻게 된 거니.”
“드디어 싹 지워진 거야. 됐어!”
“아이 아빠는.”
“······ 몰라요. 성폭행당했어요.”
“왜,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어.”
재희는 못마땅한 듯 툴툴거린다.
“임신될 줄 몰랐어요. 그다음엔 유산시키려 했는데 얼마나 끈질긴지.”
“그랬구나. 마리아.”
재희가 몸을 틀며 돌변한다.
“나를 마리아라고 부르지 말라고. 마사예요.”
“마사? 네 세례명은 마리아인데.”
“마리아는 개뿔 신은 없어요. 신이 있다면 날 그렇게 내버려 둘 수는 없죠. 수녀님도 헛짓거리하고 있는 거예요. ”
수산나 원장 수녀가 손을 떨며 기도를 하고 재희 손을 잡는다.
“그래, 마리아 네 고통이 얼마나 크고 힘들었을지······”
“마리아, 아니라고 했잖아! 띨빵 한 신은 반응하지 않았지만 도리어 마귀와 사탄은 나를 도와주던데. 난, 일등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했고 수석을 했어. 이제부터 거지 같은 신 따위 믿지 않아. 그러니까 마리아니 어쩌니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냅두라고.”
원장 수녀에게 달려드는 재희.
“세상에, 성모님. 마리아를 구원하소서.”
베개로 얼굴을 가격하고 넘어진 수산나 수녀 옷을 갈기갈기 찢는다.
“나가, 개 같은 소리 떠들지 말고 이 늙다리 미친년아! 뭐야, 물고기나 그리고······”
"아,아악!"
병실 소리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자 병실 문이 열리고 재희 부모가.
“깨어났구나. 널 잃어버리는 줄 알았··· 원장 수녀님! 괜찮으세요. 재희야, 이게 무슨 짓이야.”
“꼴 보기 싫으니까. 다, 나가라고, 나가! 이것들아.”
부모를 보자 더 흥분해서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는 재희가 기절하고, 옷이 찢긴 원장 수녀가 재희 상태를 확인한다.
“시간이 걸리겠어요. 기다려야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런 험한 꼴까지 당하시고. 저희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기다리세요. 지금은 기다려 주는 것이 마리아를 돕는 것입니다.”
아버지 유교수가 공손하게 수산나 수녀에게 머리를 숙인다.
“네, 수산나 수녀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
계속되는 재희의 분노와 흥분에 신경안정제를 투여하고 있는 상황. 조바심에 부모는 기다리지 못한다.
“남편 몰래 왔습니다. 여전히 깼다가 다시 정신을 잃는다면서요.”
“삼 일이 지나면서는 기절은 하지 않고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차도가 있는 거네요. 원장 수녀님께서 밤낮으로 돌봐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재희가 막 깨어나 움직이자 수산나 수녀가 조용히 일어난다.
“재희는 살려는 의지가 강합니다.”
수산나가 나가려 문을 열자 재희가 째려보며 으르렁거린다.
“재희야, 버릇없이. 노암 신부님까지 너를 위해 매일 기도하시고, 수산나 원장 수녀님은 밤을 지새우며 얼마나 보살펴 주시는지 알아.”
재희가 덮고 있던 이불을 입으로 가져가 이빨로 찢으며 성질을 낸다.
“노암, 수산나 둘이 붙어먹었데! 당신은 누구랑 붙어 있느라 여태 어디서 뭐 했어. 난 더럽혀졌고 이제 와서 뭘 어쩌겠다고 이 지랄이야. 엄마! 엄마면 뭐해, 딸 고통도 모르고 죽도록 힘들어하는 것도 몰랐으면서 어찌 보면 네가 제일 싫어 나가!”
“재희야! 너, 왜 이러니. 정신 차려.”
“정신 차려? 너나 정신 차려 이년아!”
눈이 돌아가며 미친 듯이 발광하는 모습에 재희 엄마가 놀란다.
“어떻게!”
“왜, 그렇게 봐. 꼴 보기 싫지 그럼, 꺼져!”
원장 수녀가 돌아와 재희 엄마를 잡고 나간다.
“가시지요. 추스를 시간이 아직은 더 필요합니다.”
“수녀님, 마리아를 어떻게 하면 좋아요.”
울먹거리며 나가는 어머니를 보고 재희는 더욱더 성질을 내며 벽을 발로 차고 울부짖는다.
“왜, 나만! 다들 고고한 척 깨끗한 척은 다하면서, 니들이 더 역겹고 더러워. 내가 뭘 잘못했는데 뭘 어쨌다고, 내가 이런 일을 당하냐고 왜, 다들 이렇게 날 그냥 냅 뒀어. 왜!”
딸의 울분을 문 밖에서 듣고 서 있는 재희 어머니는 문을 잡고 주저앉아 흐느낀다.
'미안해, 재희야. 엄마가 잘못했어. 얼마나 힘들고 아팠니.'
정적이 흐르는 병실 안.
재희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발가락을 만지며 멍하니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재희의 등을 비춘다.
‘따뜻··· 해.’
한참 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재희가 창문 밖 하늘을 보고.
‘가만! 여기가 서울대 병원이면 소문나는 건 시간문제잖아.’
잔잔한 바다와 같은 병실에 수간호사가 들어오고.
“재희 씨, 일어났네요.”
"넌, 이름이 뭐야."
수 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열 체크와 수액 주머니를 갈며 침대 머리맡에 벨을 보여준다.
“급할 때는 이걸 누르면 수산나 원장 수녀님 오실 거야. 내 이름은 도미니카.”
“으응 응! 뭐라고. 수산나가 도중에 미쳤어.”
실실거리며 웃는 재희에게
“알아 네 고통이 얼마나 클지. 얼마나 힘드니.”
그녀가 벨을 유심히 바라보며.
“잠깐만, 벨을 누르면 수녀가 온다고 그럼 여기 서울대 병원 아니야.”
“여긴 가톨릭 성가 병원 1층 특실 병동 137실이야.”
“가톨릭··· 특실 병동?”
“잘 모르겠지만 추기경님을 비롯해 천주교 VIP 특수 병동이라고만 들었아 난 파견 나왔고.”
“근데 왜 내가 여기 있어?”
재희의 까칠한 목소리와 살기가 어린 눈빛에 수 간호사가 말을 더듬는다.
“성모병원에서 급하게 배정받아 이곳으로 와서 모르지······”
재희가 재빨리 도미니카 간호사 손을 비틀어 잡고 눈을 부라린다.
“세상엔 비밀이 많아.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너 아무것도 모르고 있구나? 누군지 알면 넌, 이 방이 무서워서 들어 올 엄두가 나지 않을 텐데.”
하하하
간담이 서늘한 재희 말에 도미니카가 손을 뿌리치고 뛰쳐나와 수산나를 찾아간다.
“원장 수녀님, 아무래도 재희 환자, 정신병동에서 치료받아야 할 것 같습니다.”
“도미니카, 내일모레면 토마스 신부님께서 오실 테니 두고 봅시다.”
“그분이라면? 맞아요. 그러니 마리아가 안정을 취하도록 도와줘야 해요. 내가 도미니카를 추전 한 이유는 고통 다룰 줄 아는 마음 때문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원장 수녀는 바티칸에서 파견 나와 있는 노암 신부에게 수시로 보고한다.
“노암 신부님, 마리아가 히스테릭한 반응과 망상 그리고 환각이 심각한 상태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대한민국 유일한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께 부탁했습니다. 오늘 자정부터 새벽 5시까지 9층을 폐쇄 시 킬 겁니다.”
원장 수녀가 두 손을 모은다.
“알겠습니다. 노암 신부님이 와 계셔서 다행 중에 다행이에요.”
“수산나 수녀님, 내일 저녁 7시에 바티칸에서 자스링 신부도 서울에 도착합니다.”
“그래요, 잘됐어요. 든든합니다.”
VIP 병동 9층이 두 시간 빠르게 일찍 폐쇄되고 퇴마의식에 필요한 장치들이 설치가 끝냈다. 토마스 신부와 두 명의 사제가 자정과 동시에 의식을 시작한다.
“토마스 신부 어떻습니까?”
“마리아는 악령과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럼 왜, 저렇게?”
“마리아는 지나친 방어기제로 자신을 지키려 하고 있어요.”
“우리가 마리아를 어떻게 도와주어야 합니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원장 수녀님도 있고······”
“아니오, 타이밍처럼 결정적으로 마리아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난감하군요.”
“혹시 마리아를 처음 발견한 사람이 누군지?”
재희 발악이 극에 달하자 병실은 수산나와 도미니카만 출입이 가능해 진다.
수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키가 크고 눈빛이 맑으며 귀티가 흐르는 남자가 원장 수녀에게 다가온다. 그가 깍듯히 인사를 하자 수녀도 인사하며 손으로 안내한다.
"반갑습니다. 신부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따라오세요."
병원이지만 분위기는 밝았고 엄숙함을 따라 복도 끝에 표지판도 없는 금빛 문 앞에 수녀가 섰다.
똑똑똑
"내, 들어오세요."
원장 수녀가 문을 열어주며 고개를 끄덕인다.
"들어가세요."
그가 들어오자 신부가 일어나 다가온다.
“안녕하세요! 뮤라뉴입니다.”
“오! 도서관에서 마리아를 이곳으로 보낸 학생이군요!”
“네, 연락받고 바로 왔습니다. 사실 찾아오고 싶었는데 먼저 연락 주셔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학생은 어떤가요. 걱정도 되고 궁금했거든요.”
노암 신부가 뮤라뉴와 악수하고 의자를 가리키며 앉는다.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맙네요. 정말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
“제가 뭘요.”
“마리아는 깨어났지만 너무 힘들어하고 괴로워해서 걱정입니다.”
“아마도 지금 자신과 격렬하게 싸우고 있겠죠.”
“심리학 전공인가··· 그런데 혹시 우리 구면인가. 학생이 왠지 낯이 익은데.”
서글서글한 뮤라뉴가 두 손을 모으며 성령 기도를 한다.
“신부님! 서운합니다. 특강 수업을 듣던 뮤라뉴 입니다. 리포트 보시고 상으로 신부님께서 매고 계셨던 묵주를 주셨던······”
“가만! 그럼 자네가 자퇴하고 서울대로 갔다던 그?”
“네, 맞습니다.”
“그렇다면 맨 처음 1기 결성할 때, 안드레아 신부님 희년 기도회 마치고 학부생 모임에 있었겠군.”
“네, 사제 수업 중 유일하게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들었던 현상을 보아서 주저하지 않고 서울 본당 교구로 긴급 전화를 걸었습니다.”
노암은 손뼉을 치며 뭉클해한다.
“맞아, 기가 막히게도 내가 그날 전화를 받았어. 처음 방문한 성가 병원은 수상할 정도로 바빴지. 원래 거기 있던 자리도 아니고 마치 기다렸던 것처럼 말이야.”
“제가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도움 정도가 아니라 그 이상이네. 그래서 말인데 염치없지만 뮤라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겠나?”
“부탁이요. 제가 도움을 드릴 일이 있을까요.”
“마리아를 한 번 만나 줬으면 해서.”
뮤라뉴는 신부의 말을 듣고 기다렸다는 듯 반가워한다.
“인사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될까요.”
“당연하지. 그런데 마리아가 지금 아주 예민해서 혹시 나가라고 소리치면 그냥 나오게.”
“네, 그러겠습니다. 혹시 세례명 말고 이름이?”
“유 재희!”
9층 병동에 여자 비명이 짧게 울린다.
"아악!"
“나가, 나가라고!”
산발이 된 머리에 한쪽 팔 부분 옷이 뜯긴 천을 들고 도미니카가 병실을 나온다.
- 작가의말
··· 발가락을 만지며 멍하니 벽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빛이 재희의 등을 비춘다.
‘따뜻해.’
: 내일은 없을 것처럼 캄캄한 어둠을 지나고 있다면 이제 당신에게 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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