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회차) 상화, 화중지왕(花中之王)
큰 방문이 열리고 들어가자 황금빛 파티션 황마에 은실로 그려진 불로장생 그림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참숯을 활용해 양쪽에 세워진 등은 방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도록 지켜주는 경호원처럼 서서 품위와 안정감을 준다.
"야아~ 차분함과 경건함이 느껴지는 이 분위기."
“수지야, 방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침실 넘어 실루엣만 보이고 들어갈 수가 없어. 어떡해야 열릴까?”
수지가 마순이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파티션 병풍 벽을 이리저리 만져 본다.
"가만, 이것도 아니고 여긴가, 여기도 아닌데······ 비밀 금고도 아니고 이렇게 어렵게 들어가게 만들었데.
마순이 큰 참숯 등을 가리킨다.
“수지야, 이거 예전 왕의 침전 중문 역할 같아. 여기 세워진 대형 등 자리는 궁녀가 앉아서 문을 열어 주고 닫으며 지켰잖아.”
“그래, 그럼 등을 만지면 문이 열리나.”
"얘들아!"
우마리가 수지와 마순을 보며 나오라 손짓했고 그녀들이 나오자 대형 방문이 닫힌다.
“처음부터 다시 봐. 방문 앞 센서가 인식해서 문이 열리면 들어와서 여기 희미하게 물고기 문양의 빛이 보이지 여길 밟으면 중문이 열려.”
고급스러운 병풍 파티션 중문이 활짝 열리고 침실이 보인다. 마순과 수지가 순간 말을 잃고 넋을 놓는다.
“미쳤따! 여긴 너무 비현실적이야.”
우마리는 슬그머니 진주빛 실크 소재로 부부 소파에 앉는다.
“사모님들 어서 오세요.”
수지가 입을 헤벌쭉 벌리고 황홀한 침대로 향한다.
“침대 자체가 보름 같은 분위기라 누워있으면 둥둥 떠 있는 기분이 들겠다. 난 다음 생애에는 반드시 우마리로 태어나고 싶다.”
우마리가 수지의 말에 기가 막혀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댄다.
“그러지 마. 보이는 삶과 마주하는 삶을 달라. 하지만 네 생각처럼 둥둥 뜨는 느낌인지 침대에 누워봐.”
“싫다! 내가 왜 남의 침대에 벌러덩 눕냐. 아무리 호기심이 많아도 상식은 있다.”
마순은 권의 취미를 닮아가듯 조명을 유심히 관찰한다.
“앞에 참숯 등도 그렇고 조명들이 독특하고 멋스럽다. 따로 제작한 조명 같은데?”
“맞아, 양 대표와 문라이트가 2층 전체 조명은 물론 사무실까지 함께 인테리어에 참여했어.”
수지와 마순은 사건이 일어나 현장에서 형사처럼 이곳저곳을 열어보고 만지다 감탄한다. 그렇게 방을 둘러보던 마순이 핸드폰을 꺼내 본다.
“아무래도, 우리 내려가야겠는데.”
수지가 마순에게 다가간다.
“갑자기?”
“잠깐 둘러본다고 했는데 벌써 1시야.”
“벌써 그렇게 됐어?”
눈을 감고 앉아 있던 우마리가 마순의 말에 벽에 걸린 북두칠성 시계를 보며 일어난다.
“체감은 10분인데 1시간이 지났네. 내려가서 식사하고 천천히 수다도 떨고 놀다가 저녁 먹고 가야지.”
수지와 마순이 띵한 표정으로 우마리를 본다.
“무슨 소리야. 우린 뭐! 스케줄도 없는 줄 아냐.”
마순이 우마리의 말을 곱씹으며 다가와 우마리가 앉은 소파 등받이를 만진다.
“수지야 그게 아니라. 우리 일정이 이미 잡혀있다는 뉘앙스로 들리는데 우마리 어떻게 된 거야.”
우마리가 새침한 얼굴로 팔짱을 낀다.
“너희 못가! 회장님 뵙고 부회장인 큰 아주버님도 보고 또···”
“야, 나 기다리는 용용이랑 마순이 기다리는 권 아주버니는 어쩌고.”
“뭘 어째, 여기서 다 보면 되잖아.”
“어쭈, 얘 봐라. 우리랑 있으니 슬슬 말 문이 열리는데.”
“오늘 다 모이면 퀀텀 삼 형제 부부 모임이 되는 거잖아. 리타와 퀀텀이 이제는 한솥밥을 먹는 사이인데.”
“수지야, 듣고 보니 오늘이 딱 모이기 좋은 그런 날이기는 하다.”
우마리가 소파 등받이 뒤에 서있는 마순을 본다.
“그래서! 마순이 말처럼 연락해 두었어. 7시까지는 다들 도착할 거야. 마순이 역시 대단한데”
“생각도 못했는데 다들 모이면 좋지!”
마순이 놀랐고 수지는 더 놀라면서 엉덩이춤을 춘다.
“정말이야. 뻥이야.”
“너희 둘이랑 집들이 약속 잡고 다음 날 비서실을 통해 연락했는데 모두 흔쾌히 그러겠다고 연락이 왔어.”
“그럼 그렇다고 왜 용용이는 나한테 말 안 했지.”
“내가 너희한테 이야기했다고 했어. 괜히 모임이라고 격식 차린 답 시고 힘주고 올까 봐. 첫 부부 동반 모임이지만 수수하고 편안하게 모이고 싶었어. 그래야 앞으로 부담이 없이 자주 볼 거 아냐.”
마순이 수지에게 웃어 보이며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긴다.
“고마워, 그런 모임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너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수지두, 우마리 말 듣고 나 쫌, 놀라써!”
수지가 우마리를 소파에서 끌어내 블루스를 춘다.
“잘했쪄. 잘했쪄! 용용이가 우마리 신혼 방을 보고 안목을 갖춰야 해. 감각이 없다니까. 그리고 삼 형제가 부부가 이렇게 자주 모이면 진짜 재미있겠다.”
갑자기 마순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끊는다.
“혹시 몰라서 92년 산 타르트호크 카베르네 소비뇽 준비해 놓았는데 이럴 때 마셔야지. 가져오라고 연락했어.”
수지는 더 신나서 발을 동동 구른다.
“가만 나도 뭘 준비해야 하잖아. 뭐를 하지.”
“됐어, 마순이 준비한 와인만 있어도 벌써 분위기 업이다. 고마워 마순아! 그리고 아버지 앞에서는 서로 이름이 아니라 호칭으로 알지!”
수지가 어리바리한 표정을 짓자 마순이 수지의 어깨를 토닥인다.
“수지야 잘 들어, 우마리는 큰형님, 나는 작은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큰일이다. 그냥 웬만하면 조용히 있어야겠다.”
“자신 없으면 그렇게 하는 게 좋긴 하지. 저녁 시간이니까 금방 지나가.”
인터폰에서 나직하게 빗소리가 들린다.
“네.”
“미스 한입니다. 식사 준비가···”
“미안, 지금 내려갈게.”
수지와 마순은 벌써 중문을 지나고 있다.
“야, 너희들 같이 가야지. 눈치 대마왕들 같으니.”
“너 때문에 늦은 거다. 우리 먼저 내려갈게.”
마순과 수지가 오리처럼 엉덩이를 빼고 사라졌다.
“요즘 들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지루했는데 오늘은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다니.”
식사를 마치고 티 타임을 갖던 셋은 2층 달의 정원에 앉아 인테리어 이야기를 한 창하다가 수지가 벌떡 일어난다.
“아무래도 이대로는 안 되겠어!”
마순과 우마리가 수지를 올려다본다.
“뭐를 하려고 갑자기 또, 뜸을 들이는 거야.”
마순이 수지를 앉히려 하는데 고집을 부린다.
“우리 퀀텀 삼 형제 부부 모임이고 리타 가문 어르신들까지 계신데 우리도 뭐 좀 하자.”
“수지야, 오늘은 그냥 편안하게···”
마순이 수지의 말을 듣고 눈을 반짝거린다.
“플로리스트한테 전화해서······ 우리가 식탁 좀 꾸며보자.”
우마리가 마순과 수지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쁘지 않은데, 우리 셋 꽃꽂이하면 나름 기본 이상은 하잖아.”
“퀀텀 세 며느리가 꽃꽂이로 한마음을 보여주는 원팀 좋잖아. 하자하자.”
수지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마순을 보았고 우마리가 일어난다.
“차로 가면 15분 거리니까. 직접 가서 꽃도 골라보자? 상가를 옮기면서 매장을 확장해 꽃 종류도 아주 다양해.”
수지가 열심히 손을 비볐고 세 사람은 들뜬 여대생처럼 발랄한 걸음걸이로 움직인다.
“좋다, 소화도 시킬 겸. 이래 봐도 우리가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본다 아이가~”
우마리가 지갑을 챙기며 마순과 수지에게 손짓을 한다.
“가자.”
잔뜩 신난 수지가 마순과 우마리를 어깨동무한다.
“매일 오늘 같은 날이면 좋겠다. 퀀텀 세 여자가 나서면 못할 일이 뭐가 있어. 드디어 의기탱천해 납신다.”
차 안에서 우마리와 수지 그리고 마순은 잠깐의 궁리 끝에 궁중 채화를 변형시킨 가화(가짜 꽃:조화)에서 생화를 가지고 잔치상을 장식하는 상화를 만들기로 합의한다.
"오케바리!"
자동문이 열리자 꽃향기가 달려와 마중한다. 마순이 먼저 꽃집에 발을 딛고 향기를 맡는다.
“진짜 꽃 종류가 다양하다. 일반적인 꽃집과 다른데.”
“그러게 마순아, 꽃집이 얼마 만이냐. 확실히 천연향은 향수 향이랑 느낌이 달라.”
수지가 엉덩이를 빼고 코를 내민다. 종업원으로 보이는 두 명의 여성이 나와 인사하며 안내한다.
“어서 오십시오. 연락받았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안쪽에는 실습실로 보이는 넓은 곳에 대형 테이블이 놓여 있다. 기다렸다는 듯 신비 꽃집 사장이 다소곳이 인사하며 앞치마를 내려놓는다.
“꽃보다 아름다운 세 분이 오셨네요. 시작하기 전에 앞치마 입고 꽃을 고르는 것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퀀텀 세 며느리들이 앞치마를 입으며 차 안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냈고 우마리가 정리한다.
“신 선생님, 궁중 채화 변형으로 잔치상에 올리는 상화를 생화로 만들어 보려 합니다. 수파련(水波蓮)은 연꽃 여덟 송이로 구성되는데 연꽃 대신 모란으로 응용한 화중지왕(花中之王)으로 나비와 벌 모형을 앉히고 각자 하나 씩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신 선생이 우마리의 말에 놀라면서 좋아한다.
“하루 일찍 또는 하루만 늦었으면 모란 대신 작약으로 쓰셔야 했는데 운 좋게 모란이 있습니다. 웬만해서 모란은 꽃집에 들어오지 않는데 제가 궁중 행사 영상 강의를 촬영하기 위해 부탁한 모란이 오늘 새벽에 양평에서 들어왔거든요.”
“선생님 쓰실 재료를 써도 될까요.”
“대신 여러분들이 쓰시는 모란꽃과 어여쁜 손을 촬영해도 될까요. 얼굴과 목소리는 나가지 않습니다.”
“네, 좋습니다.”
“화중지왕에 잘 어울리는 항아리가 있어요. 잠시만요.”
그녀는 직원 둘에게 다정하게 말한다.
“화요일에 들어온 용문 항아리 세 개 가져다주세요.”
신 선생이 우마리와 마순 그리고 수지를 꽃 냉장 쇼케이스로 안내한다.
“컬러는 적 목단과 백 목단 그리고 노란 목단 세 종류입니다. 색상은 되도록 섞지 말고 단색으로 하시지요. 컬러를 정하시면 시작해 볼까요. 나비 벌 모형은 키드키즈 몰에서 30분 정도면 퀵배송으로 올 겁니다.”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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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음을 보여주는 원팀 좋잖아!”
나와 자기 그리고 자신, 당신은 원팀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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