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회차) 조 여사 이야기
사그락 사그락
새벽 3시 조용한 2층.
작지만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 몸을 뒤척이며 우마리가 깬다.
‘무슨 소리지.’
침대에 누워 어스름한 곳에서 들리는 소리를 눈동자가 따라가고.
‘발아래 침대 아래에 뭐가 있어.’
숨소리를 줄이며 천천히 일어나는 그녀.
야옹!
“앗, 깜짝이야.”
야옹!
검은 고양이가 꼬리를 높이 치켜 올리고 쳐다본다.
“헛것을 본 게 아니었어. 길고양이 같은데 어떻게 내 방까지 올라왔지. 이제 보니 제집처럼 심지어 여유롭기까지 해.”
고양이를 잡으려 하자. 펄쩍 뛰어 침대에 앉는다.
“으응! 붉은 드레스가 어째서 내 침대 위에···"
드레스 위에서 마구 뒹구는 고양이를 보며.
"야옹아, 이 드레스가 마음에 드는구나.”
야옹!
‘고양이가 이 드레스에 집착하고 있어?’
드레스를 잡아당기자 고양이가 냅다 창가로 이동한다. 그녀가 드레스를 들고 살랑살랑 흔들자 고양이가 관심을 보인다.
‘고양이를 잡아야겠어. 어떻게 해야··· 그래, 옷방이 좋겠어.’
드레스를 손에 쥐고 흔들며 드레스 룸을 열어 놓는다.
“어! 어디로 갔지.”
그때 방문이 열리고 고양이가 나간다.
날렵하게 그녀가 움직이고 2층 서재 앞 황금 물고기에 올라가 묘기를 하듯 서있는 고양이 모습이 아찔하다.
“위험해, 내려와. 야옹아. 너를 헤치려는 게 아냐.”
붉은 드레스를 쥔 손에 힘을 빼며 던진다.
딸랑딸랑
황금 물고기 입에 걸려있던 끈 끝에 달린 것이 부딪쳐 울려 퍼진다.
'소리가 이렇게 크다고!'
고양이는 온데간데없고 멍하니 끈을 만지고 있는 그녀.
“자세히 보니 거북이었네. 가만 머리가 움직이는데.”
그녀가 손을 흔들자 2층 달 정원 전등이 모두 켜진다.
“가만 이건 열쇠잖아.”
‘아버지는 출퇴근마다 기도하듯 늘 물고기 입을 만졌어. 그냥 의식 같은 거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녀가 어정쩡한 자세로 황금 물고기를 더듬는다.
‘아버지는 2층 달의 정원이 완성되고 애착했던 물고기 동상을 2층으로 올려놨어. 그리고 그 자리엔 거울을 놓았고.’
우마리는 차분하게 물고기 비늘을 하나하나 더듬어 홈이 파진 한 곳에서 멈춘다.
‘여기! 아가미, 오른쪽 아가미가 달라···’
거북 열쇠를 아가미에 넣을 때, 계단에서 인기척을 느낀다.
'이런!'
그녀가 바닥에 떨어진 붉은 드레스를 집어 들고 춤을 춘다.
“우마리 아가씨?”
“!”
조 여사가 난감한 얼굴로 우마리를 쳐다본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뻘쭘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한 우마리가.
“이 새벽에 부르지도 안았는데 어쩐 일로···”
“2층에 불이 켜졌는데 아가씨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무슨 일이 있나 싶어 달려왔습니다.”
시간을 확인하려 하자 조 여사는 대뜸.
“새벽 3시 저는 이때쯤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책을 읽습니다.”
“도미니크!”
조 여사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
“알고 계시는군요. 이제 저에 대해 모르시는게 없으세요.”
“아뇨, 몰라요. 내가 조 여사에 대해 뭘 알고 있다는 거죠.”
“제 아들의 세례명입니다.”
살짝 당황하는 우마리.
‘고해의 물고기··· 아들을 팔아먹었다고 했어.’
우마리가 모른 척 얼굴을 피하며.
“아들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요.”
조 여사가 소파에 앉는다.
“축시를 지나 하루를 시작하는 인시가 되었습니다.”
황금 물고기를 힐끔거리는 우마리에게.
“어질 인(仁)은 조건 없는 희생입니다. 아쉬워 찾아온 활동의 주체를 업고 가는 삶이죠.”
“처음 듣는 얘기지만 아주 흥미롭네요. 좀 쉽게 말해 보세요.”
“아가씨는 제게 원하시는 게 있으시죠.”
“그래요. 솔직함.”
조 여사 옆에 앉는 우마리가 차분하게.
“새벽은 시작을 위해 비밀을 털어놓기 좋은 시간이기도 하죠.”
조 여사가 희미하게 웃는다.
“전 애초에 비밀 같은 건 없는 몸뚱이 하나뿐인 사람입니다. 우연히 돈 때문에 도망치고 숨다 보니.”
“돈 때문보다 이전에 감정이 먼저 아니었을까요.”
“감정, 육신이 밑천인 제겐 감정은 돈보다 더한 사치죠.”
“사람은 감정 때문에 비밀이 생겨요. 살면서 느낀 감정들을 다 표현하면서 살 수 없잖아요. 말하지 못해 억눌러 놓은 것이 비밀이 되지요.”
조 여사가 우마리를 지긋이 바라보며.
“그렇다면 세상에서 비밀이 가장 많은 사람은 아가씨겠군요.”
다리를 꼬며 허리춤에서 손을 빼는 우마리가 여유롭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네요.”
조 여사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목소리가 잠긴다.
만석꾼 집에 시집와 아들만 넷인 어머니가 기다리던 딸을 낳았는데 일란성쌍둥이(미연, 수연)를 낳았습니다. 금이야 옥이야 키운 열두 달이었습니다.
크게 벌인 돌잔치가 끝나고 다음 날 새벽녘.
일곱 살 셋째와 다섯 살 넷째 아들이 먹은 것을 다 게워내고 죽은 채 발견됩니다. 흉흉한 소문이 마을에 떠돌아 서둘러 죽은 아들 둘을 화장합니다. 보름 뒤에는 아홉 살 둘째 아들이 떠돌이 개에게 물려 며칠을 앓다가 또 죽습니다.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는 조 여사.
어머니는 용한 무당을 찾아 굿을 하였는데 쌍둥이를 내다 버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절대 그럴 수 없다 하자 그럼 둘째(수연)라도 멀리 내보내라고 합니다. 내보내지 않으면 가세가 기울 것이라 악담을 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도리어 무당을 쫓으며 소금을 뿌렸지요. 이후로 죽어 나가는 이는 없었지만, 아버지가 도박에 빠지더니 금쪽같은 아들까지 도박에 손 데기 시작합니다. 이에 어머니는 무당의 말을 떠올리며 둘째(수연)인 저를 외가로 돈과 패물을 보내며 부탁합니다.
“오라버니, 사정이 있어 그럽니다. 수연이를 잘 키워 주십시오.”
외가에서도 이미 사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재수 없는 아이라서 어찌할까 고민 중일 때, 서울에서 간호사를 하던 조카분이 저를 데리고 갑니다. 외가에서는 재수 없는 돈과 패물이라며 손도 데지 않고 고스란히 건네주었답니다.
푸념 같은 한숨과 마름 침을 삼키며.
서울에 도착하자 조카분은 사라지고 기다렸다는 듯 늙은 여자가 저를 간호학 공부를 시키고 보살폈습니다.
“순수함은 조심스럽다 못해 불길하지. 하지만 물이 들면 순식간에 달라진다. 새겨들어.”
그 말과 함께 서울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씨받이로 들어갔습니다.
“씨받이라면”
“집안의 대를 이를 아이를 대신 낳는 것이죠.”
“하기 싫다고 도망치셨어야죠.”
“그게 이상하게도 나쁘지 않았어요. 숙명 같았거든요. 늙은 여자가 제게 그랬지요.”
“넌, 이렇게 쓰이기 위해 만들어진 포대기다. 순응하고 따라야 제명을 다한다고.”
합방을 하는데 처음엔 어려웠지만 사모님의 도움으로 합방이 끝나고 한 번에 임신을 했습니다. 열 달 동안 사모님과 늙은 여자의 수발은 여왕을 모시듯 저를 받들어 주었지요. 태어나 난생처음 존중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이를 낳자 바로 사모님과 늙은 여자는 빈 껍데기인 제게 아파트 열쇠와 통장을 주고 사라졌습니다.
마음을 잡을 수 없었고 허허로운 마음에 외가 갔다가 나를 닮은 여자 조카를 만났고 그 아이를 데려왔습니다.
“혹시, 혜리?”
“네, 가련한 그 아이죠.”
그러나 혜리를 데려오면서 예상하지 못한 혹이 따라붙었지요. 쌍둥이 언니 미연이었습니다. 미아리 텍사스에서 일하던 미연이 자신과 처지가 확연히 달라진 저를 보고 분풀이를 하듯 매달렸습니다.
"내가 이렇게 망가졌는데 너도 망가져야지. 우린 쌍둥이잖아."
악질인 것은 혜리 어머니가 큰아들 월사금을 미연에게 돈을 꿨고 그것이 끈질긴 악연이 되어 혜리 몸값으로 대신하겠다며 집요하게 저와 혜리를 괴롭혔으니까요.
어느 날 아파트가 제 명의라는 것을 알게 된 미연은 작정하고 집에 들어왔습니다. 병원 당직 근무를 마치고 집에 들어왔는데 미연이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술을 달라고 행패를 부렸고 술을 사러 나간 사이 사모님과 건장한 사내 둘이 들이닥친 겁니다. 미연을 강제로 끌고 차에 태워 떠나는 것을 술을 사 들고 오다 보았습니다.
“왜 끌고 간 거죠?”
“사모님은 언젠가부터 씨받이를 통해 낳은 아들의 비밀이 들통날까 불안해했어요. 비밀을 지키기 위해 저를 없애야 했겠죠.”
“그럼?”
“그 뒤로 미연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요."
"저도 그랬습니다."
거실에 앉아 넋 놓고 앉아 한동안 멍한 앉아 있는데 늙은 여자가 찾아왔습니다.
“일이 참 희한하게 돌아갔더구나. 불길함이 차라리 선명하게 물이 들었으니. 이제 봉사하는 인생을 살아야지.”
저는 성모 병원에서 성가병원 그리고 리타 가문에서 조 여사로 살게 되었습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산 저에게 이곳에서의 삶은 평화 그 자체입니다."
"정말 험난한 인생을 사셨네요. 리타 가문에서 평온을 얻고 그 많은 돈까지 챙겨 평화로운 것은 아닌가요?"
엉덩이를 크게 움직이는 조 여사.
"오해십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가씨만큼은 저를 믿어 주셔야 합니다."
"왜, 내가 그래야 하죠."
"아가씨와 저는 닮은 점이 많으니까요."
끌어당기는 듯한 조 여사의 눈 빛에 우마리는 소름이 돋는다.
"무엇이 닮았다는 거죠."
"순응이요. 주어진 것을 거부하지 못하는 마음, 제가 아들을 사랑하듯 아가씨는··· "
우마리는 말을 꺼내기 두렵지만 묻는다.
“아드님 이름이?”
- 작가의말
순수함은 조심스럽다 못해 불길하지. 하지만 물이 들면 순식간에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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