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회차) 무진이 우마리를 초대한 곳
우마리는 김 무진과 제주 사계 해변을 걷고 있다. 하늘거리는 블루톤 시스루 원피스 시선을 끄는 외모에 풍경을 찍던 남자 셋이 슬쩍 사진을 찍는다.
“얼굴 텐텐 플러스, 몸매 텐텐 플러스 완죤 쥑 이네. 모델인가? 야, 저 여자 어디선 본 것 같지 않냐.”
“우선 얼굴 찍어봐. 얼굴만 확대해서 올리면 인물 찾아주는 앱 있잖아.”
“그렇지, 잠깐···”
한 사내가 스마트 폰 잡은 손이 빠르게 움직이다 두 눈을 끔뻑거린다.
“헐, 대박. 이것 좀 봐.”
“누군데 리베라타 가문 현 리앨퀀 넘버3 우마리야!”
“미친놈, 얼굴 똑바로 올려봐. 다른 건 몰라도 리베라타 가문 인물들은 매체에서도 보기 힘들어 새끼야. 천상계 몰라, 경호원도 없이 저렇게 평범하게 다닌다면 너무 영화 같잖아.”
사내가 신경질 적으로 스마트 폰을 흔들며.
“미친놈이라고 했냐. 킹 받네. 여기 사진이랑 리타 가문 영상 봐봐. 똑같아 새끼야.”
“뭐냐, 진짜 미쳤네. 그럼 옆에 있는 남자는 요즘 난리 난 이스타 부회장이야.”
우마리 옆 무진을 빠른 동작으로 앱에 올려 확인한다.
“대박 특종이다. 서울대 생명공학 김 무진 교수로 뜨는데.”
“하늘이 주는 기회다. 지금 맞바람 피우는 현장을 우리가 잡은 거라고. 이거 방송사와 딜하면 용돈 좀 벌겠는데.”
남자 셋이 머리를 맞대고 모여 수군거리고.
“이게, 웬 횡재냐.”
“너 아는 기자 형 있지. 스브스브 형.”
스마트폰을 잡고 얼떨떨 가만히 서 있는 사내를 남자 둘이 등짝이 친다.
“뭐하냐, 빨리 연락해 봐라. 이럴 때는 속도가 돈이다.”
“야, 새끼야 재촉 좀 하지 마. 손 떨려 죽겠네. 이 앱 믿어도 되겠지.”
“연락처, 어디, 어디 보자. 여기 있네.”
우마리와 무진은 한적한 바닷가를 오붓하게 거닐고 있다.
“김 실장님을 통해 오빠, 처음 본 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그래, 그날 표정 보니까. 꽤나 놀란 눈치던데."
“어릴 적 무척 힘들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견뎠어요.”
그녀가 맨발로 바다에 발을 담그며 걷다가 조개껍데기를 밟고 잠깐 휘청거리자.
“괜찮아. 조심해야지.”
“조개가 딱딱해서··· 바닷물에 얼마나 씻겼는지 밟으니 부스러지네요.”
“부스러졌으니 무엇이 되겠네."
우마리가 부스러진 조개를 만지다 바다를 본다. 맨발의 무진도 바닷물에 발을 담그며 걷는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바다에 발을 담근 게 처음이라서.”
“그럼 첫 바다나 다름없네요. 발에 닿은 느낌이 어떤지 소감이?”
“뭐랄까, 두렵군.”
그도 발을 멈추고 넓은 바다를 보자 우마리가 무진을 본다.
"오빠도 두려운 게 있어요. 회사에서 몇 번 보면서 초탈한 사람이구나 했는데."
“두렵고 궁금해. 난 무엇을 품을 수 있을지. 그리고 품는다면 그게 무엇일지 궁금하거든.”
우마리가 다시 허리를 숙여 바닷물을 만지며 바위 옆에 작은 거북과 눈이 마주친다.
"저기 거북이!"
"우마리, 뭐라고 했지."
"아니오, 궁금해요? 난 바다 밑 저 아래 숨겨진 비밀에 대해서 궁금하고 두려워요. 아무것도 모르고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알잖아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일도 두렵고 어려워요.”
무진이 바닷물을 만지는 우마리의 손을 잡는다.
“우리 좀 걸을까!
집착은 안 돼. 손 잡아주고 싶었는데 우마리가 싫다고 하면 놓을 게.”
“손! 잡아주세요. 견디기 위해 도움이 필요해요.”
그녀가 무진의 팔을 힘차게 흔든다.
“우마리는 어떤 일들을 맞닥뜨리면 견뎌야 한다고 생각해.”
“상황에 따라 달라요. 오빠 이야기를 김실장 님께 듣는 순간 오빠도 견뎠겠구나 생각했어요.”
무진이 장난을 치듯 발로 물을 튀긴다.
“편하게 말 놓아도 돼. 환경에 따라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진화를 하지. 난 견디지 않고 받아들였는데.”
“오빠, 그럼, 감정은 어땠어?”
“감정이라, 우마리는 어떻지.”
“난 지금 까다롭고 부정적인 감정과 마주하고 있어. 아주 힘들게 하고 있고 뭐랄까. 무지막지하게 계속 떼쓰는 아기를 안고 있다고 할까.”
“감정을 아기처럼 안고 있다면 존중하고 있구나.”
우마리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발걸음 보폭이 커지며.
“존중이라 하기엔 너무 거창하고 그냥 인정해 주고 있어.”
무진이 멈추고 우마리 손을 당긴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 훨씬 힘들었구나.”
그녀의 눈에서 또르르 눈물이 흘러 바닷물에 떨어지자, 작은 거북이 바다로 들어간다.
“으응, 누군가 이렇게 콕 집어서 말해주길 바랬는데 막상 듣고 보니 왜 이렇게 서럽지. 자유롭게 떠 돌던 내 뭉게구름이 가시나무에 걸려 엉켜버렸거든.”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닦던 우마리가 사진을 찍고 있는 남자 셋을 발견한다.
“오빠, 우리 어디 좀 들어가서 쉴까. 피곤하네.”
무진이 우마리 눈을 쫓다가 남자 셋을 보고 발에 힘이 들어간다.
“우마리, 곧 태풍이 올 거야.”
“하늘이 맑은데.”
둘의 발걸음이 빨라지며 주차장으로 향한다.
“아니, 네 삶의 조율을 위한 태풍을 말하는 거야.”
“오빠, 너무 하는 거 아냐.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태풍은 모든 것을 엎어 버릴 것 같지만 순기능도 있어. 바닷속 산소 공급과 열 순환이지. 생태계를 건강하게 해주는 균형 같은···”
“아무래도 안 되겠어. 사람들 시선을 끌고 말았어.”
“한 시간 넘는 거리지만 물영아리오름 초입 근처에 한적한 카페가 있거든.”
무진은 서둘러 자동차 시동을 건다.
"안전벨트는 맸고 출발한다."
"오빠, 저 사람들 우리 쫓아오는 것 같은데."
"걱정 말고 잠시 눈 좀 부쳐 눈 뜨면 도착해 있을 테니."
그의 말을 듣자마자 취면에 걸리듯 눈이 감기는 우마리.
무진이 사이드 미러를 통해 따라오는 차를 확인한다. 때마침 코너를 앞두고 룸미러를 본다.
"가자."
우슬초와 방울초가 핀 길을 따라 작은 주차장에 차가 세워진다.
"아슬아슬했어."
무진이 곤히 잠든 우마리를 보고 손목시계를 돌린다. 우마리가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켠다.
"벌써, 도착한 거야."
"피곤하지."
둘은 차에서 내렸고 제주도에서도 매우 이국적인 작은 카페다.
“차를 타고··· 막 코너를 돌았던 것 같은데 벌써 도착했네.”
무진이 피식 웃고 우마리가 카페 문을 잡는다.
그러다 무엇을 보았는지 카페 옆 밭으로 발걸음을 옮겨 식물 잎을 만진다.
“이거 최근 2층 화단에서 본 것 같은데 이름이 뭐였더라.”
“우슬초!”
“맞아, 신비 사장님이 한해살이 우슬초라고 했어.”
“한해살이 식물은 대부분이 풀이야. 풀들은 한 시절을 영원으로 알고 씨앗에서 싹으로 일과 줄기가 자라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시들어 죽지.”
“죽음은 제자리로 돌아가는 자유잖아.”
우마리는 말을 해놓고 뭔가 어안이 벙벙하다.
무진이 카페 물푸레나무문을 열자 문에 달린 종이 딸랑거린다.
“저기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녀가 사람이라는 말에 카페로 뛰어 들어간다.
“설마 여기까지 우리를 쫓아온 건 아니겠지?”
“안심해, 여기 카페 안은 사람들 시선 밖이야.”
“시선 밖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 혹시 이동이 가능해졌다는 거야.”
무진이 우마리의 말에 아리송한 얼굴이다.
“카페로 넘어오니 흐릿하지만 눈 열리고 있네. 여긴, 현실에 존재하는 제3 구역이지. 제 삼의 눈으로만 찾을 수 있는 공간이고 우린 이동도 가능해졌어.”
“대단하다. 그런데 이렇게 공간 이동하는 것을 금지했잖아."
“때에 따라 다르지만 과거와 미래는 갈 수 없고 현재 안에서 이동은 열렸어.”
“정말!”
“놀라긴 이동을 열어준 당사자가 우마리 너라고.”
“오빠, 내가 뭘 했는데?”
그가 의자를 빼주며 우마리를 앉힌다.
“기다림, 영원을 약속한 이를 알아보는 것이었잖아. 그리고 넌 그를 알아보고 시작을 열었지만 정작 너에겐 아무것도 열어주지 않았다니."
의자에 앉은 그녀가 턱을 괴며 창 밖을 본다.
"지금은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더 생각하려니까 모르겠네. 높은 벽 앞에 선 것처럼 왜 이러지."
무진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너그러운 미소를.
"억지로 생각하고 알아내려고 하지 마. 어차피 될 일은 되고 아닌 것은 다시 돌아갈 거니까."
"이 말! 내가 먼 곳 어디에서 자주 했던 말 같아."
카페 청년이 주문하지도 않은 유자차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바구니를 챙겨 나간다.
“여기, 조용해서 좋다.”
시원한 유자차를 마시며 우마리가 아담한 카페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곡식 주머니들을 익숙하게 바라본다.
“차 안에서 잘 자던데.”
“그러게, 잠깐이었는데 며칠 푹 잔 것처럼 개운하네. 모처럼의 여유라서 이래도 되나 을 정도야.”
“그거 알아 심각한 워커홀릭이라는 거.”
“내가 무슨 일 중독자라고, 아니야. 그냥 지금 상황이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서.”
“이럴 때일수록 머리를 식히고 마음이 고요해야 꼬인 것들도 잘 풀 수 있어.”
“맞는 말인데 생각처럼 그렇게 되지 않네. 꼭 내 머리에 한낮의 태양이 계속 있는 떠 있는 것 같아. 잠을 잘 수가 없어 그런데 차 안에서는 스르르 잠이 들었어.”
차를 마시던 무진이 천장 위에 곡식 주머니들을 본다.
“잘 잤다니 좋군.”
“이런 감정 얼마 만인지 몰라 마음이 편안해. 여긴 자주 오는 곳인가봐?”
"이곳에 내려온 존재들에게 아지트 하나씩 주어지잖아. 오늘 예외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청년이 작은 바구니에 방울초를 가득 담아왔다.
“여긴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곳이니 안심하세요. 이것 좀 보세요. 요전에 주신 방울초가 아주 많이 달렸습니다.”
“벌써 노랗게 익은 것이 많군.”
방울초를 만지며 우마리가 재미있어한다
“이게 방울초구나. 탁구공처럼 작고 말랑거리네.”
“수상한데 리베라타 가문 사람이 이걸 모를 리가 없는데.”
“그럼 혹시, 이거 리타 가문 휘장 깃대봉에 그려진 그 방울초.”
무진이 방울초 하나를 두 손으로 감싸고.
“의외인데?”
“그게 아니라. 사진으로 보고 말만 들었지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이라.”
“그럴 수 있지. 노랗게 익은 주머니를 열어봐.”
그녀가 조심스럽게 방울초를 잡아 손을 잡아 뜯는다.
“말도 안 돼. 진짜 이 안에 하트가 사랑이야.”
작은 씨앗에 그려진 하트를 보고 우마리가 눈물을 쏟는다.
- 작가의말
“······ 그를 알아보고 시작을 열었지만 정작 너에겐 아무것도 열어주지 않았다니."
시작은 빠를 수 있지만 시작되는 순간 느려집니다.
시작이 결과를 만나기 위한 여정은 과정이라는 연결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의 여정을 응원합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