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회차) 태초의 곰팡이
그녀의 당돌한 말을 듣고 우마리가.
“재미있군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인 듯 커지는 눈.
“그게 다인가요? 뭐 닮기 위해선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그런 충고를 해주셔야 하지 않나요.”
“아가씨는 내 의견이 아니라 듣고 싶은 말이 따로 있군요.”
숨소리가 빨라지는 그녀.
사파이어가 촘촘히 박힌 지갑을 열어 손수건을 꺼낸다.
“그래요, 당신에게 꼭 듣고 싶은 말이 있긴 있어요. 하지만 이젠 듣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호기를 부리는 그녀를 보며 우마리가 일어나려 한다.
“잘됐군요. 그럼 난 볼 일이 있어서 이만 실례할게요.”
“어! 이게 아닌데 성격이 급하신 줄 몰랐어요. 제가 우마리 님을 좋아한다고 말했잖아요. 그런데도 왜 이렇게 불친절하시죠.”
“아가씨가 무례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나요?”
“전혀요, 무례하다는 생각 하지 않았는데요. 그보다는 너무 의외예요.”
“뭐가 의외죠.”
“우마리 님을 너무 좋아해서 똑같아지고 싶다는 팬을 보고 반가워하긴커녕 무례하다면서 도망치려 하시잖아요."
우마리는 화려하고 섹시한 그녀가 아니라, 손에 들고 있는 소창 순면 손수건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애착 물건처럼 들고 있는 저 손수건과 이 무슨···"
생각을 떨치듯 우마리가 고개를 저으며.
“나를 닮지 말고 더 새로운 당신이 되려고 하세요.”
미녀는 그 말에 싸늘한 미소를 짓는다.
“왜요, 당신과 똑같이 닮은 여자가 아니 거기에 더 예쁜 당신이 있다면 불쾌하다는 건가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끼는 감정인데 아가씨는 나와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화가 많이 나 있었어서 무조건 떼는 아이 같군요.”
“이제야, 말이 통하네요. 잘 봤어요. 난 당신 때문에 화가 아주 많이 나 있거든요.”
살짝 인상을 쓰던 우마리가 이내 얼굴을 피며.
“들어보죠, 무엇 때문에 내게 화가 났나요.”
“내게 이름도 물어보지도 않고 바쁜 척만 했잖아요.”
“그랬군요. 이름이?”
“우마리예요.”
탭을 소파에 내려놓는 우마리.
“실명이 우마리인가요.”
“네, 정말 닮고 싶어서 이름까지 똑같이 지었어요.”
“명단을 확인할 겁니다. 만약 거짓말이면 이곳에서 당장 쫓겨 날 각오하세요.”
손수건을 잡은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린다.
“나, 나를 쫓아낸다고요. 그럴 수는 없어요. 감히 나를.”
“하지만 신분 확인이 되었기에 3층까지 올라올 수 있었을 테지요. 충고하나 할까요. 가진 특권을 함부로 다루지 마세요. 천박해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내가 뭘 함부로 했다고 천박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죠.”
다리를 꼬면서 붉은 실크 드레스 자락이 피부처럼 숨을 쉬듯 가볍게 그녀의 피부를 스치며 닿는다.
'웬만한 실크를 옷을 모두 접해 봤지만 저런 천은 보기 드문 원단인데.'
가슴을 과도하게 내밀며 육감적인 모습을 봐달라는 듯 얼굴이 내미는 미녀를 보고.
“보자 보자 하니까. 왜 이런 경박한 행동으로 자신을 못나게 만드는 거죠.”
“나, 예쁘죠! 내가 예쁘니까 질투 나서 미치겠죠.”
실망스러운 탄식과 함께.
"미안해요. 번지수가 틀렸어요. 아가씨는 나를 찾아올게 아니라···"
"왜 말을 끊어요. 정신병원이라도 가보라고 하고 싶은 거 아니에요."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이 측은한 표정으로 바뀌는 우마리에게 그녀가
“자세히 당신을 보니 눈 밑에 주름도 보이고 가슴도 나보다 작고··· 하지만 너무 기죽지 마세요. 아직은 그래도 볼만해서 아름답다고 말해줄게요.”
상체를 과감하게 흔들자 간신히 가린 미녀의 젓가슴이 드러나려 한다. 그 모습에 남자들의 시선이 미녀에게 쏠린다.
“아가씨, 이런 식의 못된 장난은 여기까지··· 못 봐주겠으니 그만!”
“말했잖아요. 내 이름은 우마리라고요. 아가씨가 아니라 우마리라고 불러주면 그만할게요.”
눈까지 붉어지며 미녀가 떼를 쓰자.
'어떻게 이런 행동을 꼭 사춘기 아이처럼.'
코를 만지고 손깍지를 끼는 우마리 옆에 수지가 나타난다.
“우마리 회장님, 약속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려가시죠.”
혜리와 마순까지 세 사람이 우마리를 챙기자 미녀가 벙 찌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요. 가야겠어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수지야, 고마워. 때맞춰 와 줬어. 어떻게 알고?”
“너, 아주 곤란한 상황에는 코 만지고 손깍지 끼는 버릇 있잖아.”
“그걸 알고 있었어.”
“그런데 저 여자 알아. 너한테 되게 적극적으로 나오던데, 하기야 너한테 접근하려는 사람들이 뭐 한둘이 아니지만.”
“으음, 잘은 모르겠는데 나한테 서운함이 많아 보였어.”
마순이 고개를 돌리며.
“저 아가씨가 우마리한테 서운할 게 뭐가 있다고.”
“그러게 말이야, 그런데 내가 뭘 잘못한 사람처럼 자꾸만 주눅이 들더라고.”
혜리가 수지 뒤에서.
“요즘 우마리 많이 의기소침해졌어. 파이팅이 필요하다니까.”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온 네 여인이 수지를 따라 1층에 사무실로 향한다.
미녀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네 사람을 내려다보며 누군가에게 연락한다.
“어디 있어? 재미 하나도 없다고 당장 와!”
주변의 남자들이 술잔을 들고 미녀에게 모여든다.
***
간판이 없던 제주 카페에 작은 나무 간판이 걸렸다.
루피 카페.
무진(멜리아 라나)은 베제로와 범수의 열띤 논쟁을 뒤로하고 탭에 뜬 데이터를 보며 중얼거린다.
“앨리스에 의뢰할 때까지만 해도 그저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뭔가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뭐지.”
범수가 무진에게.
“크리스한테 통화면서 얼핏 들었는데 한껏 흥분되어 있으면서 불안해하던데. 하지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워낙 유난을 떠는 스타일 이잖아.”
베제로가 등을 돌려 범수의 상기된 표정을 보고 무진에게.
“유난을 떨기보다 크리스는 그냥 선천적으로 밝다니까. 그런데 무진은 그걸 어떻게 수집을 한 거야. 매우 희귀한 샘플이라고 하던데”
“검은 고양이가 내뿜는 분위기가 일반적이지 않아서 있던 자리를 확인하다가. 독특한 포자를 발견해서 혹시나 하고 크리스에게 건네줬는데 그런 게 나올 줄은 몰랐지.”
범수가 베제로를 보며.
"보면 알겠지. 오늘 보니까, 크리스가 늘 베제로를 졸졸 따라다니는 이유를 알겠어. 크리스를 살뜰하게 챙겨 주는 건 역시 자네야."
"내가 뭘 챙겨줬다고!"
카페 문을 열고 급하게 들어온 크리스가 연구소 탭을 중앙 테이블에 놓는다.
“헉, 헉. 다들~.”
무진이 크리스의 어깨를 토닥이며.
"모두 자네를 보고 있어 주인공이야. 차분하게."
“고마워, 여러분 모두 긴장하시고.”
잔뜩 신나서 탭을 연결하며 크리스가 베제로를 찾는다.
“내 사랑 베제로 형님. 오늘 칭찬해 많이 해주셔야 합니다.”
“또! 장난친다.”
“진짜, 형님은 내 마음을 너무 몰라 준다니깐. 형님 칭찬을 들어야 살맛이 난다니까요.”
범수가 재촉한다.
“그만 너스레 떨고 크리스! 고구마 열 개는 먹은 듯 답답해 죽겠으니, 그만하고 어서 열어 보여주기나 하라고.”
“알았어요. 형님이 그러라면 그러겠습니다."
무진이 크리스에게 엄지를 치켜세우고.
“다들 야박해도 확실히 무진만큼은 그 인품이 달라도 너무 달라. 무진 땡큐! 내가 최초로 밤을 꼬박 세서 발견한 것을 개봉합니다.”
베제로가 박수를 치면서.
“알았어. 고생한 크리스를 위해 저녁에 크리스가 좋아하는 잡채 해준다.”
범수도 거든다.
“치킨이랑 맥주는 내가 쏜다.“
"아싸, 치맥!”
오른손을 번쩍 들어 엔터키를 누르는 크리스.
“형님들 두 눈을 크게 뜨고 심호흡하세요.”
화면에 나타난 곰팡이 홀로그램으로 연결되고 크리스가 확대하자 무진이.
“이, 이것은? 패턴이 우주 자궁에서 별이 만들어지기 전 가스층 모양과 유사하게 보이는데.”
크리스가 범수에게 손짓하면서.
“이럴 때 쓰라고 있잖아요. 거울 좀.”
범수가 거울을 꺼내 더 미세하게 볼 수 있도록 연결한다.
“자, 원자 형태로까지···”
나타난 곰팡이 모습에 모두가 흥미를 보이며 다가와 확인하고 베제로가
“말도 안 돼. 이걸 믿으라고 믿을 수가 없어. 우리가 보고 있는 이것이 지구에 있었다니.”
크리스는 베제로의 팔을 건드리며.
“막 떠오르는 것 없어요. 나랑 생각이 같은지 듣고 싶어서요.”
“이건 내각 알기론 우주 태초··· 설화에 나오는 그···”
“빙고!”
“자 이제 다음 장면을 주목하세요.”
슬라이드를 연속해 돌리며 그 자리에서 입체적인 영상을 고화질로 만들어 크리스가 보여준다.
“디저트 카페에서 무진이 건네준 곰팡이를 추출했어요. 기가 막히죠. 이건 최근 남극과 북극 곡물창고 500미터 근방에서 발견한 원시 곰팡이로 제가 이것을 비교해서 연결해 보니 바로 이렇게.”
카페 문이 열리며 이스타와 지황이 등장한다.
“다들 여기 있었군. 멜리에 라나 아니지, 무진으로 불러 달라고 했지. 다들 모여보게 자네들에게···”
그가 무슨 말을 꺼내려다 모두가 보고 있는 홀로그램을 찬찬히 바라보며.
“···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 급한 불부터 꺼야··· 하는데 이건!”
이스타가 띄워진 영상을 보고 공포에 가까운 표정으로 어두워진다.
지황이 이스타에게.
“프로젝트 이야기는 조금 이따가 하는 게 좋겠어.”
머리를 박박 긁고는 이스타가 머리를 흔든다.
“뭐 하나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어 꼭 나를 시험하려고 하는 것 같아.”
모두가 쭈뼛거리며 망설일 때 베제로가 이스타에게 전한다.
“무진이 디저트 카페에서 가져온 곰팡이가 남극과 북극에 설치한 곡물창고 근방에서 동일한 것으로 나왔다고 하네.”
이스타가 테이블에 손을 짚고 소파에 쓰러지듯 앉는다.
“미치겠군, 잠깐만, 나 숨 좀 돌리고.”
- 작가의말
나를 닮지 말고 더 새로운 당신이 되려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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