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회차) 강 기사와 미스 한
“아 아아악!”
무진의 비명 소리와 발버둥이 약해지는 가운데 우마리가 그냥 달려 거울을 집어 들며 소리쳤다.
“여기, 오빠 여기 거울, 거울을 보라고.”
거울이라는 소리에 무진과 이스타가 동시에 우마리를 쳐다본다.
“우마리 내가 경고했지.”
이스타가 무진을 호리병 분수 아래 물속에 무진의 얼굴을 처박고 괴성을 지른다. 엄청난 흔들림과 동시에 둥근달 모양 전구가 요동친다.
‘안돼!’
그대로 떨어지면 무진이 위험할 수 있는 상황. 그녀가 몸을 던져 전구를 간신히 받아 낸다. 깨지진 않았지만 그녀의 손에서 피가 난다.
‘다행히 받아 냈어.’
그녀의 손에서 떨어지는 피가 분수 물에 떨어지면서 무진의 목을 조르고 있던 이스타가 돌 석상처럼 멈췄다.
"제길, 우마리!"
그때 재빨리 얼굴을 들어 심하게 기침을 하던 무진이 거울을 통해 사라진다.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그걸 못 참고 나를 자극···”
우마리는 조금 전 자신처럼 이성을 잃은 이스타를 보며 안쓰러움에 목이 멘다.
‘내 마음이 너무 아파.’
“미안해요. 나도 힘들었지만 당신은 더 힘들고 괴롭군요.”
숨을 거칠게 몰아 쉬는 이스타를 그녀가 안아주려 다가가자 그가 음산하게 말한다.
“경고야,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 내가 어떻게 나올지 나도 모른다고 제발 나 좀!”
우마리가 멈칫하자 그가 성난 괴물처럼 신혼 방으로 달려 들어가 눈 깜빡할 사이에 다 때려 부수고 거실로 뛰쳐나온다.
"왜, 왜! 다를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넌 나한테 이러면 안 돼. 안 된다고!"
그리곤 순식간에 거실의 모든 기물들을 파손하고 박살 내 황금 물고기 동상도 나뒹군다.
씩씩··· 씩 씩.
그저 멀뚱히 서있는 우마리를 제외한 모든 것이 갈기갈기 찢기고 부서져 아수라장이다.
“이스타, 당신이 이렇게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여전히 성에 차지 않고 화가 난 그가 우마리에게 등을 보인다.
“내가 일일이 말해줘야 알아차리는 건가.”
그녀가 내려놓은 달 조명을 집어 들어 손으로 으깨며 그가 돌아서서.
“영원히 후회한다고 해도 이젠 되돌릴 수 없어.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떤 것을 포기했는 줄 알아. 이젠 다 소용없어졌지만 그러니까······”
이스타가 어두운 기운을 뿜으며 돌아서더니 그녀에게 다가간다. 그녀가 그의 모습을 통해 두려운 환영을 본다.
‘영원한 어둠의 지옥에서 울부짖는 그의 절규와 검은 모래 위를 끝없이 걷고 있는 모습.’
“오··· 오지 말아요. 지금 내게 오면 안 돼요. 제발!”
뒷걸음 치는 그녀.
"당신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어. 내가 그토록 부탁했는데 그대로 있으라고 말이야. 다시 마곡귀계로 돌아간다 해도 이젠 도저히······”
그녀가 애원하며 발을 동동 굴렀고 오열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순간 베제로와 크리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무진과 뮤라뉴가 나타났다. 베제로가 급하게 이스타 주변을 돌며 모래를 뿌리고 크리스가 자갈 하나를 놓는다.
"여긴 됐어."
무진을 들쳐 맨 뮤라뉴가 바로 이스타에게 거울을 비추자 그가 사라진다.
“인간들이 말하는 폐허가 따로 없군.”
우마리는 사라진 이스타를 보고 불안하다.
"그를 어디로 보낸 거죠."
뮤라뉴가 걱정하는 우마리를 보고 안심시킨다.
"걱정 말아요. 이스타는 사무실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테니."
크리스가 초토화된 방과 거실을 보고 혀를 내두르자 뮤라뉴가 무진에게 묻는다.
“무진, 거울이 있었다고 했지. 어디 있어.”
어딘가 많이 아파 보이는 무진이 말을 못 하고 손으로 조개 거울을 가리킨다.
“으음, 저기 있군. 다행히 멀쩡해. 그럼 슬슬 원상 복구라는 것을 해볼까.”
뮤라뉴가 조개로 만든 거울과 그의 거울을 마주 보게 한다. 신혼 방과 거실을 돌아다니자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그런데 어쩌지, 여기 정원에 흐르는 물은 안 되겠는데.”
베제로가 호리병 분수를 보다가 호리병을 빼 요리조리 살펴본다.
“형님, 뭐 하는 거예요.”
“이 호리병 대단한데, 우발적으로 정말 우연하게 신비함을 가지게 됐어. 인공 분수가 물은 계속 순환시키거든. 무진의 힘과 이스타의 에너지 우마리의 피가 고스란히 호리병에 스몄어.”
“그래, 호리병을 어떻게 쓰면 되는데?”
호리병을 든 베제로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무진에게 호리병을 건넨다. 얼떨결에 받아 든 무진이 호리병을 받았다. 온몸이 검게 그슬린 자국과 멍이 사라지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자 뮤라뉴가 무진에게.
“얼마나 걱정했다고 괜찮아.”
크리스가 무진의 어깨를 치며 좋아한다.
"정말 걱정했다고요."
입술을 떼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무진이다. 베제로와 크리스, 뮤라뉴가 걱정 어린 표정을 하며 그를 애워싼다.
“어떻게 된 거야. 무진이 말을 못 하잖아.”
베제로가 이해할 수 없다는 손짓.
“도대체 이스타 정체가 뭐야. 대단한 에너지를 가졌다고 들었지만 무진도 쉽게 당할 수 있는 힘이 아니잖아. 어떻게 이런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는 거지.”
크리스가 무진의 목을 만지며 고개를 숙인다.
“어느 곳에 가서든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군요.”
무진이 크리스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추자 크리스의 눈이 빛난다.
“내가 복수해 줄까요.”
무진이 크리스의 말에 웃으며 미안함에 아무 말도 못하는 우마리에게 다가간다. 그가 우마리의 어깨를 쓸어주며 안아주자 그녀가 소파에 앉아 잠이 든다. 뮤라뉴가 우마리가 잠든 모습을 보고 베제로와 크리스에게 눈치를 준다.
“이제 가자고, 복구는 되었고 무진이 힘드니 카페로 가세. 말은 못 해도 아까처럼 수화를 하거나 글을 통하면 되니까.”
크리스가 뭔가 생각이 난 듯 우마리를 재우고 온 무진의 손을 끌어당긴다.
“그보단 내가 무진을 데리고 앨리스 센터로 가서 진료를 받아 볼 테니 먼저들 가 있어요.”
뮤라뉴가 반색하며.
“아주 좋은 생각이야. 이렇게 혼란스러울 때 막내가 챙기네.”
“뮤라뉴, 이곳이 난리였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괜찮나.”
베제로와 뮤라뉴가 크리스의 말에 난감에 하자 무진이 수화를 한다.
'다들 조용히 잠을 재웠어. 그리고 목소리의 힘을 잠시 빼앗긴 거야. 침묵하라는 뜻이겠지.'
크리스가 자신의 목을 만지며.
"누구한테 목소리의 힘을 빼앗긴 거죠."
무진이 정원에 깔린 모래와 자갈을 손으로 가리키자 베제로의 눈이 커진다.
"이건, 자네 카페에 있던 것과 같은데."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살피자 모두가 주변을 둘러보는 가운데 크리스가 모래와 자갈을 뚫어져라 살피며 중얼거린다.
"루피 섬 모래와 자갈이라면 실리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게 확실한데."
무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뮤라뉴와 베제로도 모래와 자갈을 본다. 무진이 크리스에게 수화를.
'앨리스 병원에 가봐도 뾰족한 수는 없을 거고 당분간 이렇게 지내야 할 거야. 어서 돌아가자고.’
수화를 모르는 베제로와 뮤라뉴가 크리스.
“이곳 사람들은 걱정 안 해도 되겠어요. 무진이 잠재웠다고 하니까. 그리고 병원에 갈 일이 아니래요. 당분간 목소리는 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럼 가죠. 참! 형님, 저 호리병 가져갈까요.”
베제로가 호리병을 있던 자리에 끼워 넣는다.
“아니, 이곳에서 만들어졌어. 여기서 어떤 쓸모가 생길지도 모르니 그냥 두자고."
"넵!"
***
굉음과 함께 건물이 심하게 요동쳐 주차장 1층 사무실에서도 고스란히 느꼈다. 책상에 엎드린 채 잠시 정신을 잃은 김 실장이 깨어나 벌떡 일어난다.
“지진인가? 미스 한!”
그가 스마트 폰을 짚고 정신없이 나서다 슬리퍼 한 짝이 벗겨 진다.
“에잇, 지금 슬리퍼가 문제가 아니야.”
그가 한 짝을 끌다가 벗어 버리며 몇 걸음 뛰다가 다시 돌아와 본관과 연결된 내실 호출 전용 엘리베이터를 탄다.
“미스 한이 괜찮아야 할 텐데.”
1층 서재 옆에서 내린 김 실장이 발을 내 딛을 때 강 기사가 미스 한을 부축해 나간다. 열린 버튼을 누르고 가만히 지켜보던 김 실장.
‘강 기사 저 녀석 뭐지. 부축이 아니라 성희롱에 가까운 손이잖아.’
달려가 미스 한을 챙기려 했지만 김 실장은 뭔가 찝찝하다.
“따라가 보면 알게 되겠지.”
강 기사에게 안겨 부축을 받으며 별관 쪽으로 가던 그 둘이 등나무 아래로 방향으로.
'왜, 저곳으로 가는 거지.'
야외 식사는 등나무 아래에서 거의 이루어져 주방 뒷문과 연결되어 있다. 게다가 등나무 의자에 앉으면 주방이 가려지며 정원보다 높게 만들어져 확 트인 정원을 감상할 수 있는 구조다.
"이쪽 올라가야 빠르겠어."
김 실장이 맨발로 기어 올라가 사철나무로 가려진 곳에 숨는다. 강 기사와 미스 한이 앉은자리 뒤에서 둘의 소리를 엿듣는다.
“자기야, 요즘 많이 피곤하지. 주방에서 잠을 다 자고.”
“그저께 수술한 여파가 있나 봐.”
“셋이 모여서 무슨 작당을 하다가 잠을 잔 거야. 조 여사랑 혜리 씨도 자고 있던데."
미스 한이 강 기사 팔을 때리며 좋아한다.
"작당은 무슨, 조 여사님 요즘 무지 바빠 그리고 혜리는 임신했잖아.”
강 기사가 미스 한에게 맞은 팔을 만져가며 실실거린다.
“우리 자기 좀 쉬어야지. 유산도 아이 낳는 거랑 매 한 가지라고 하더라고.”
“그러게 내가 작작 들러붙으라고 했잖아. 하루 세 번이 말이 돼.”
“그럼 어떡해. 보고 싶은데 강제로 떨어져 있어야 하잖아. 김 실장이 꼭 붙어 있어서 질투도 나고 널 보면 불뚝불뚝 서는데 어쩌라고.”
강 기사가 미스 한을 안으려 하자 그녀가 애교를 떨면서 밀친다.
- 작가의말
글 쓰는 즐거움은 아름다운 글로...... 잭의 콩나무처럼 성장해 닿으려는 그곳 독자님들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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