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회차) 즐겁게 해주는 술
타마라는 재상과 권이 자신이 우마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론 속이 시원하다.
“뭐, 이제 와서 뒤집을 수도 없고 어쩌겠어. 결혼도 했고 첫날밤도 치렀잖아. 지긋지긋한 우마리 흉내 내는 것도 이젠 끝이야.”
권은 타마라 공주를 찾지 않는다. 타마라는 권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황후 모리야에게 부탁한 백마와 술 그리고 대검 등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공세를 펼친다.
'이 정도 선물이면 반응이 와야 하는데······'
타마라는 권이 머무는 곳에 막무가내로 찾아가 그에게 조른다.
"선물도 보냈는데 고맙다는 말도 없고 왜, 날 피하죠."
"선물? 가져가시오."
"얼마나 비싼 것들인지 알아요."
"내게 가장 비싼 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내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이오."
"그게 뭐죠. 내가 줄게요."
"우마리 공주요."
권의 입에서 우마리라는 이름을 듣고 타마라는 손톱을 세운다.
"······"
"이제 알았으면 나가주시오. 당신과 할 말 없으니."
타마라는 권 앞에서 빙그르르 돌며 허리에 손을 얹는다.
"자! 눈을 뜨고 제대로 봐요. 우마리랑 내가 뭐가 달라요. 똑같잖아요."
"제발, 혼자 있고 싶으니 나가주시오."
"싫어요."
“그럼 내가 나가겠소.”
타마라가 권의 옷자락을 잡는다.
“권,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죠.”
“다시 황궁으로 돌아가시오.”
“그럴 수 없어요. 우린 결혼했고 부부예요.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요.”
“이 결혼은 무효요. 가장 중요한 신뢰가 깨졌기 때문이오.”
창가로 향한 타마라가 창문 대나무 발에 달린 꽃장식을 뜯으며 괴성을 지른다.
아악악!
“무슨 신뢰가 깨졌죠. 우마리가 내 옷과 내 장신구를 하고 내 흉내를 냈어요. 난 이름만 빼고 당신을 속인 적이 없어요.”
“도대체 그게 무슨 억지요.”
“권, 여우 같은 우마리에게 홀리다 못해 미쳤군요. 당신이 우마리 이름을 찾을수록 그 애는 불행해져요. 내가 용서하지 않을 거니까.”
“타마라, 제정신이오.”
“이제야 내 이름을 부르며 용서를 구하고 싶겠지만 잠시 황궁에 가서 쉬어야겠어요. 내가 마음 추스르고 부르면 와요. 그럼 그때 당신의 착각을 용서해줄게요.”
권은 타마라의 소름 돋는 표정과 말투에 할 말을 잃는다.
'어떻게 같은 외모에 저렇게 다른······'
“무릎 꿇고 빌어도 소용없으니, 마차를 대기시켜요.”
타마라는 권을 보고 징그럽다는 듯 밀치며 나간다.
“감히 공주인 나를 화나게 만들어. 당신은 그저 재상의 아들일 뿐이고 난 삼라트의 딸 타마라 공주야. 마음에 들어 결혼해 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타마라는 결혼생활 파탄을 우마리 때문이라 여긴다.
'내 미모를 탐낸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 옷과 진주 목걸이를 하고 권을 유혹하다니. 이 모든 게 몹쓸 계집애 우마리 때문이야."
***
예를 알고 정중한 타스 왕자를 보고 황제는 흔쾌히 우마리와의 청혼을 수락한다.
“굴라 왕국 타스 왕자가 데릴사위가 된다는 조건으로 혼인 동맹을 선포한다."
황후 역시 처음 보는 훌륭한 타스 왕자의 품격 있는 아우라에 황제를 부추긴다.
“삼라트여, 타스 왕자를 보셨지요. 이제 범인인 용수와 거리를 두세요. 왜 그자를 의심하지 않고 전부 다 믿고 따르려 하세요.”
“용수는 신통한 도술을 부리는 마법사요.”
“그는 음흉한 짓을 저지르고 다녔던 범인이지요. 철저하게 이용하는 수단으로만 쓰세요.”
“그래서 혹시 몰라. 흰 소를 치우지 않고 사방에 두고 있잖소.”
“그렇긴 하지만 뭔가 꿍꿍이가 있으니 우릴 돕는 게 분명해요.”
“당신도 알면서 난 쓸모가 있는 것을 곁에 두고 이용할 뿐이지.”
지혜로운 타스 왕자를 사위로 얻는 삼라트와 모리야는 세상을 얻은 듯 우쭐하다.
“이제, 공작 왕조는 영원한 번영만 남았어요.”
이때, 타마라가 조용히 황궁에 들어와 곰팡이처럼 걱정과 근심을 퍼트린다.
“다들 접견실로 모여라.”
황제와 황후를 비롯해 타스 왕자와 권 그리고 타마라와 우마리, 고도 왕자가 한자리에 처음 모였다. 권이 우마리를 두 눈에 담으려 깜빡거림을 제외하고 바위처럼 앉아 우마리를 본다. 이것을 지켜보던 타마라의 눈에 칼처럼 핏발이 세워진다.
'우마리 저 년이 순진한 권에게 또 꼬리를 치고 있어.'
유쾌하지 못한 자리, 깨져버릴 것 같은 살얼음판 권은 자신이 속은 결혼을 했다며 울부짖는다.
“황제시여, 제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
“권! 재상과 그 일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하기로······”
권은 얼굴을 돌려 부럽다는 듯 타스를 쳐다본다.
“타스 왕자! 원통하오. 난 우마리와 결혼할 사이였고 그렇게 알고 결혼했는데 우마리 공주가 아니었소.”
황후는 짜증이 잔뜩 난 얼굴로 타스의 얼굴을 살피기 바쁘다.
“타스 왕자, 권이 낮술을 해서 그러니 너그럽게······ 으응!”
우마리는 그간의 일을 감찰 시녀와 유모의 입을 통해 권과 타마라 공주의 일을 알고 있었다.
‘당신이었군요! 아주 잠깐이었지만 늠름함을 보았는데 다 사라지고······'
권의 낯빛은 검게 변해 마음고생이 엄마나 심했는지 누가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첫날밤을 보내고 뭔가 이상하다 여겼다. 하지만 한눈에 반했던 우마리의 모습을 부정할 수 없었다. 권은 공주와 정원을 거닐며 꽃을 가꾸고 시를 읽으며 이야기를 나눴지만 통하지 않는다. 그녀는 오직 옷과 보석에만 관심을 보일 뿐이었다.
“새로운 보석이 황궁에 들어왔데요.”
권은 그녀를 위해 아름다운 보석을 사준다. 계속 옷과 보석을 요구하는 공주의 모습에 재상은 수상히 여긴다.
"내가 알고 있는 우마리 공주가 아니야. 요즘 타마라 공주가 보이지 않던데 알아봐야겠어."
그러다 우마리가 고아에서 사라졌다는 소문을 확인하고서야 재상과 권은 속은 결혼임을 알게 된다. 재상은 아들 권의 상심을 보며 다짐한다.
'멍청한 삼라트에게 내가 속다니. 그것도 정략결혼을 이용해 내 아들에게 상처를 주었어. 삼라트!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도록 갚아줄 것이다.'
타마라를 우마리로 둔갑시킨 결혼을 권이 황제에게 항의했으나 소용이 없다. 타마라와 황후와 속이지 않았다며 뻔뻔하게 나온다. 권은 우마리 공주에게 직접 듣겠다 우겼고 결국 황후가 우마리 앞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며 접견실에 모인 것이다.
"권! 자네는 발언권 없으니 공주의 질문에 대답만 하게. 타마라, 시작하거라."
황후를 보며 미소 짓는 타마라가 준비한 상자를 열어 참석한 모두에게 보인다.
“사랑하는 권, 당신이 그날 무엇을 보았는지 대답하세요. 이 드레스와 여기 진주 목걸이를 생일잔치에서 보았지요.”
발언권이 없다는 말에 권은 멘붕 상태다. 그가 진저리 치며 고개를 돌리자 황후가 급히 나서 우마리 공주에게 단호하게 묻는다.
“우마리 공주, 오해가 없도록 반드시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 이 드레스와 진주 목걸이는 누구의 것이냐."
우마리는 황후의 질문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지만 먼저 질문에 대답한다.
“드레스와 목걸이는 타마라 언니의 것입니다. 그러나······”
이어 제대로 된 사실을 말하려는 순간 권이 괴성을 지르며 뛰쳐나간다. 황후는 서둘러 일어나 마무리한다.
“이제 아무도 타마라 공주의 결혼에 대해 누구도 왈가왈부할 수 없다.
이튿날 권은 싸늘한 시체로 황궁 앞 벵갈 고무나무에 목을 맨 채 발견된다.
: 나는 속아서 결혼했다. 이 억울함을 풀어 달라.
재상은 외동아들 권의 죽음에 대해 세상이 알도록 들쑤셨고 입에서 입으로 말과 말이 보태져 인도 전역이 시끄럽다. 우마리 공주는 황궁에서 벌어진 불행한 일로 타스와 합방을 계속 미룬다. 황후 또한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여겼으나 황제는 더는 미루지 말라며 둘의 합방을 재촉한다.
“타스 왕자는 삼라트 왕조를 번영시키기 위한 가족이다. 그러니 미룰 일이 아니다. 불미스러웠던 일들을 잊고 합방 식을 당장 치르라.”
흉흉했던 황궁에 간만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시녀들이 신혼 방을 장식하고 합방 식 준비에 여념이 없다. 파우더 룸에 앉은 신부 치장을 타마라가 직접 챙기고 있다. 타마라는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몸치장과 화장을 해주겠다며 자진해서 나섰다.
“우마리, 타스가 너와 나를 구분할 줄 알까?”
붉은 입술연지 통을 열어 붓칠만 하고 있던 타마라가 손에 힘이 들어가 붓을 뭉갠다.
“글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아서 모르겠어.”
우마리가 타스 왕자를 생각하니 긴장된다. 곧 치러질 합방 식을 위해 진정하려 눈을 감는다.
“그래, 모르지, 그건 장담할 수 없는 것이지.”
긴장감을 줄이기 위해 우마리는 딴생각을 하려 타마라 말에 귀를 기울인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상대를 알아보는 것을 어떻게 의심해. 그는 황궁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첫눈에 알아봤어.”
타마라는 작은 도자기 뚜껑을 열어 입술에 바를 연지에 검은색을 묻힌다.
“솔직히 삼라트도 우리가 말없이 똑같은 옷을 입고 앉아 있으면 알아보지 못하시잖아. 다행스럽게도 어머니는 우리를 정확히 구분하시지만. 그래서 말인데······”
우마리는 감았던 눈을 뜨며 상처 입은 언니의 긴 머리카락을 만진다.
"타마라 언니!"
생글생글 웃는 타마라의 눈두덩이에 무엇이 꿈틀거린다. 유쾌하지 않은 대화 속에서 우마리의 몸치장은 계속된다. 황제는 우마리의 바람대로 합방 식 날 백성들에게 곡식과 고기를 골고루 내리라 명했다. 결혼식 규모는 작았지만 합방 식은 더 소담하다. 다만 아름다운 우마리 공주를 화려함으로 지나치게 가린다. 조촐한 연회가 끝나고 황제는 타스를 불렀다.
“우마리를 항상 행복하게 해 줘야 하네. 그리고 용수님이 마르파 브랜디(Marpha Brandy, 안나프르나 무스탕 지역)를 결혼 선물로 보내 주셨네."
"용수······?"
"껍질이 얇은 사과로 만든 술로 사람을 아주 즐겁게 해주는 마법이 있다고 하셨지. 황후가 받아서 보관했는데 마시게.”
작은 유리병에 담긴 술을 받아 들었는데 퀴퀴한 냄새가 역하다.
'안 되겠어. 이 술은 입에 대고 싶지 않은······'
- 작가의말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
어느 철학자는 바다를 알고 바닷물을 마시면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드넓은 생태계와 태풍을 만드는 자궁 그리고 짠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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