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회차) 검은 고양이 정체
“자고 일어나면 어딜 헤매고 다녔던 것처럼 손과 발이 더러웠어. 하지만 옷은 깨끗하고 처음엔 몽유병인가 착각할 정도로 그래서 스마트 워치컴퍼 영상을 켜놓고 잤는데.”
혜리가 괴로운지 손등을 깨물며 불안해하자 우마리가 물을 건네준다.
“마셔, 힘들면 말하지 않아도 돼. 애쓰지 마.”
“아니야, 반드시 네가 들어야 해.”
“내가 들어야 한다고?”
테이블이 미세하게 떨린다.
“왜냐하면 영상 속에서 난 새벽에 리타 가문에서 믿을 수 없는 행동들을 했어. 몇 번을 그러다 이스타 회장님께 들키고 말았지. 회장님은 낮에 따로 나를 불렀고 난 영상을 보여줬어. 그랬더니 손을 써 놓을 테니 리타 가문으로 들어오라고 하셨지.”
우마리 눈썹이 올라가자 혜리는.
“난 그가 떠나고 임신한 상태에서 그런지 우울감이 심해서 고모 옆에 있고 싶었고 때마침 회장님 허락을 받자마다 그대로 짐을 싸들고 왔어.”
“임신하면 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고 하더라.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아, 리타 가문에서 네가 무엇을 했길래. 이스타는 나와 부모님께 의논조차 하지 않았어?”
혜리는 두 손을 모아 기도하듯 눈을 잠시 감았다가 손으로 우마리를 가리킨다.
“너! 우마리 너 때문이었어.”
당황한 우마리가 자신을 손으로 가리킨다.
“나라고, 나 때문에?”
“으응, 내가 너를 만지고 너와 관련된 모든 것을 모조리 냄새 맡고 마치 너를 탐닉하듯 그랬어.”
우마리는 두 팔로 가슴을 감싸고 손으로 팔을 비비며 섬뜩해한다. 혜리와 거리를 두려 옆으로 움직이려 하자 혜리가.
“너는 모를 거야. 난 이곳으로 와서 너무 피곤했어. 하필 새벽이면 이상한 행동을 하며 다녀서 그런지 잠을 잔 것 같지 않았지.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손발도 깨끗하고 잠도 잘 잤지. 내가 밤에 돌아다니지 않았던 거야.”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그냥 평온한 날이었어. 대신 다른 일이 생겼지.”
여전히 두 팔로 감싸 안고 있는 우마리.
“다른 일이라니. 내가 모르는 일들을 벌어지고 있었다는 게 너무 무서워.”
별관 쪽을 바라보는 혜리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맞아, 나도 그걸 알고 무서웠어. 미스 한이 나와는 다른 행동을 너한테 하기 시작했어.”
“미스 한이 다른 행동을, 다들 도대체 나를 두고 무엇을 한 거야.”
“그것보다 잘 생각해봐. 나와 미스 한의 공통점 말이야.”
“공통점? 그건··· 둘 다 임신했다는 거잖아.”
“맞아, 임신이야.”
“가만 전 달에 미스 한도 유산했다고 들었어.”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혜리.
“넌 모르겠지만 미스 한은 나보다 굉장히 심했어. 이스타 회장님이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오죽하면···”
“이스타가 오죽하면 뭘 어떻게 했는데.”
“대단히 노여워했지만 실행에는 옮기지는 않았어. 대신 김 실장이 다른 식으로 응징했지.”
“그럼 이 일을 김 실장도 알고 있어?”
펄쩍 뛰는 혜리와 그 반응에 놀라는 우마리.
“철저하게 비밀이었다니까, 알고 보니 미스 한이 임신한 아이가 김 실장님 아기가 아니었어. 강 기사랑 미스 한이 전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였지. 그래서 강 기사와 미스 한이 사표를 내고 나간 일이 그 일 때문이야."
“기가 막혀, 내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니.”
“그럴 수밖에 없었어. 이스타 회장님이 철저하게 감췄거든. 네가 혼란스러워할까 봐.”
우마리가 환기창을 열며 리모컨을 조절하자 공기의 흐름이 달라진다.
“감출게 따로 있지. 난 지금 바보가 된 느낌이야. 그리고 내가 보기엔 김 실장님, 요즘 행복해 보였는데! 배신을 당하면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없어."
가슴을 펴는 혜리가 우마리의 잔 머리카락이 흔들리는 것을 보며 머리를 카락을 쓸어 넘긴다.
“그게, 극적인 게 우마리 너로 인해 김 실장은 큐피드 화살을 제대로 맞았지.”
“갑자기 큐피드!”
"2층 달 정원을 꾸며주시는 꽃집 사장님 있잖아.”
“으응. ”
“그분이 김 실장님 첫사랑이었데. 고모 말로는 꽃집 여자가 김 실장님을 더 좋아했다는데 그건 모르겠고 그렇게 다시 만난 거지. 당시엔 김 실장님 옆에 임신한 미스 한이 있었잖아. 그런데 강 기사랑 미스 한이 감쪽같이 속였다고 한 일이 전부 들통이 난나 봐.”
가만히 고개를 떨구는 우마리.
테이블에 놓인 물병의 결로 현상으로 생긴 물을 만지며 젖은 손가락을 혜리에게 보여준다.
“미스 한도 너도 내게 왜 그런 거야?”
뜨끔한 혜리.
“이야기가 옆 길로 샜구나. 내가 너를 그리워하는 행동을 했다면, 미스 한은 아예 네가 되려 했어. 처음엔 나처럼 너의 물건들을 취했지만 미스 한은 널 데리고 밖으로 나가려 했어. 그런 행동을 이스타가 보고 손을 쓰려했지.”
“난, 작은 소리에도 놀라서 잠을 깨, 그건 너도 잘 알잖아.”
“알지, 그게 이상했어. 나도 예민한 편인데 벌어지는 일들을 전혀 모르겠더라고 다만 손이나 발에 어떤 흔적을 보고 의심을 했었지. 워치컴퍼 영상을 통해 알았다고 했잖아. 정말 아무 기억도 느낌도 없었다니까.”
우마리 뭔가 생각이 났는지 급히 일어나 보석함을 열어 반지들을 확인한다.
‘다른 건 멀쩡한데 반지들만 하나같이 변색됐어. 이건!’
방을 가로질러 그녀가 이번엔 속옷들을 꺼내 보자 혜리가 말한다.
"피곤함만 누적되어 잔뜩 물을 머금은 솜처럼 무겁기만 했어.”
다크서클이 거뭇하게 남아 있는 혜리에게.
“그럼, 혹시 이 일 때문에 미스 한도 너도 유산된 거니.”
“확신할 수 없지만 난 그렇다고 생각해. 그리고 유산 이후로 미스 한도 나도 밤마다 이상 행동은 감쪽같이 사라졌어.”
“유산은 정말 안타깝고 슬프지만, 둘에게 이상 행동이 사라졌다는 것은 잘된 일이네.”
손을 젓는 혜리의 어깨가 가볍게 움직인다.
“전혀! 안타깝고 슬프지 않아. 적어도 난 다시 제 자리를 찾은 해방감을 느꼈으니까.”
“네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미안함이 덜하네 고마워.”
혜리가 일어나 어두운 표정으로 우마리 침대를 이리저리 살핀다.
“검은 고양이! 대신 난데없이 고양이 한 마리가 리타 가문을 헤집고 다니고 있는 거 알고 있어.”
“검은 고양이?”
“리타 가문 식솔들은 네로라고 이름까지 붙여 줬지만 이스타는 고양이를 보고 많이 걱정했어. 나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는데 이곳을 나가기 전 미스 한도 그렇다고 했어. 김 실장님은 관리부서를 총출동시켜 잡으려 애썼지만 허탕이야. 고모도 네로를 유인하려고 온갖 고양이 먹이로 유인하는데 반응이 없데.”
“난 이야기를 들을수록 점점 화가 나. 너무 미심쩍어.”
뭔가를 망설이는 혜리.
“회장님은 이 일을 네가 몰랐으면 하는 눈치였어.”
“내가, 왜? 나와 관계된 일이잖아 내가 당연히 알아야 하는 거 아냐.”
“그렇지만 철저하게 숨기시려 했어. 내 생각인데 너를 지키려는 것 같았어.”
“나를 지키려 한다고? 그건 변명이야. 나와 관련해 생기는 일들이야. 내가 알아지, 그래야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뭐, 그렇기는 하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우마리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얼굴을 든다.
“조금 전 오늘 나간다는 말은 무슨 말이니? 내 주변이 너무 어수선해 절벽 위 안갯속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이야. 곁에 있어주면 안 될까?”
심각해지는 우마리의 표정에 혜리가 안절부절못하다가 약지 손가락에 낀 반지를 만지며.
“우마리, 이것 좀 봐줘.”
“반지네.”
옅은 미소와 함께 우마리가 혜리의 손을 들어 올린다.
“너! 혹시.”
“결혼을 앞두고 있어. 며칠 전에 그가 서울로 돌아왔거든.”
혜리의 손을 잡아주며 우마리가 기뻐해 준다.
“그가 유산한 걸 알고 온 거야.”
“아니, 유산하기 일주일 전 즈음 연락이 왔어. 그래서 솔직하게 임신했다고 말했지. 얼마나 좋아하던지.”
“잘 됐다. 정말, 정말 축하해!”
“그저께 학교 화장실에서 하혈하고 쓰러졌는데 그가 내 옆에 있더라고 근데 그것도 이상해. 그냥 어디선가 뿅 하고 나타났어. 마법을 부리듯···”
빙그레 웃던 우마리가 물을 마시며.
“혜리야 너 많이 힘들고 무서웠던 것 아는데··· 마법까지는?”
“그렇지,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그가 원하고 나도 그를 원해, 미안하지만 네 곁에 있는 건 힘들 것 같아.”
우마리가 결심한 듯 차분하게 묻는다.
“그럼, 이제 설명 좀 해줘. 네가 왜 내 방 내 침대에 있었지 말이야?”
억울한 눈빛의 혜리가 머리를 흔든다.
“진짜, 모르겠어. 짐은 다 싸놓고 저녁에 미스 한이랑 술 마시고 별관으로 가다가··· 아! 검은 고양이를 봤어. 그걸 따라 여길 올라왔고 요리조리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잡다가 그다음 엔··· 쓰러져 잠이 들었나 봐!”
골똘한 우마리가 일어나 방을 거닐다가.
“생각났어. 나도 며칠 전에 검은 고양이를 봤어.”
“너도 본 거야, 집에서?”
“아니, 리앨퀀 근처 디저트 가게에서 말이야. 신부님이 앉은 의자 아래서 디저트를 받아먹는 검은 고양이었어.”
“리앨퀀 근처면 꽤 고급진 디저트 가게잖아. 고양이 출입이 가능해?”
“아닐걸! 자주 가는 곳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아닐 거야. 그보다는 내가 아는 누군가와 닮은 신부님을 보고 거기에 신경 쓰느라.”
무엇이 생각난 듯 혜리가 일어나 방 여기저기 살피더니 침대 구석을 살핀다.
“여기야, 이리 와 봐. 이것 보라고.”
혜리가 손에 든 것은 사탕과 초콜릿 그리고 젤리였다.
“검은 고양이가 단것을 좋아해. 임신했을 때 나도 미스 한도 단것을 새벽에 숨어서 먹었다고 들었어. 고모가 혈관 터진다고 말렸데, 기억은 없지만 아침이면 주변에 단 것들이 널려 있었거든. 그리고 가끔 토하고 게워낸 음식들을 봤는데 그랬어.”
“혜리 넌 단것을 싫어했어. 고아원에서 안 좋은 기억으로 먹지 않는다고 했지.”
“지나가는 말로 흘리듯 말한 것을 기억하고 대단하다.”
“이제 보니 내가 침대 근처를 고양이 잡겠다고 경주를 한 것 같아. 그러다 여기서 잠이 들었나 봐.”
- 작가의말
배신을 당하면 그런 표정을 지을 수 없어!
: 거울을 보세요. 당신의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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