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회차) 라토스케에서 재회
우마리가 어깨를 으쓱하며 한숨을 쉬자 마순이 수지를 본다.
“수지야, 큰 아주버님이 전면으로 등장하면서 상속 관련부터 퀀텀이 얼마나 바빴는지 알잖아. 거기에 리타 그룹과 퀀텀 합병까지 매체들도 난리였고.”
“하기야, 우리 엄마가 김이스타 큰 아주버님의 활약상을 보고 그러더라. 6.25 난리는 난리도 아닐 거라고.”
우마리가 수지를 소파에 앉히며 고개를 끄덕인다.
“난리! 그래, 반박할 수 없네. 맞아.”
“그러게, 뭐가 그렇게 급해서! 신혼여행 다녀와서 진행해도 될 것을 큰아주버님은 지구가 내일 당장 멸망할 것처럼 그랬는지 모르겠어! 지금 대륙 프로젝트 사업도 급물살을 타서 눈 돌아가 가게 바쁘다고 용용이한테 들었어.”
“맞아요, 권 회장님도 아니 우리 꿩 서방님도 신혼여행 돌아오자마자 치열한 전쟁터라고 하더라고.”
우마리가 인정한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오므린다.
“그게 속도를 낼 때가 되었다고 여겼는데 타스는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결정을 내리고 진행한 거야.”
수지가 벌떡 일어난다.
“뭐 그럴 수 있다고 치자고 근데, 무엇보다 내가 가장 궁금한 건 말이야. 큰 아주버님께서 분가 안 하고 리타 가문으로 들어갔잖아. 그건 쉽지 않은 결정이라고, 게다가 능력 있는 남자라면 더욱 그렇잖아. 내가 남자를 잘 아는데 큰 아주버님은 정말 모르겠어.”
수지가 말해놓고 우마리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다.
“나도, 그건 수지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해요.”
“우마리, 내가 너를 신이라고 했는데 넌 그냥 현명한 거였어. 큰 아주버님이 진짜 신이더라. 용용이가 그러는데 두뇌가 슈퍼 양자 컴퓨터 급에 워커홀릭 거기에 오해하지 마라. 염라대왕이라고 하더라니까.”
마순이 쭈뼛거리며 우마리를 애처롭게 바라본다.
“꿩 서방님은 큰 아주버님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대요.”
수지가 우마리에게 다가와 몸을 더듬는다.
“너, 혹시 남몰래 막 맞고 그니까 학대받는 여자 아니지.”
우마리가 간지럼을 타며 수지 손을 잡는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하고 안에서 보는 모습은 달라. 잘 지내고 있어.”
“그래? 그럼, 신혼여행은 언제 갈 건데?”
“아직 일이······”
“그래, 그래서 없던 말들이 도는 거야!"
우마리가 수지 손을 놓으며 약지에 끼 반지를 만진다.
"워낙 이슈였잖아, 잠잠해질 거야."
"얘 봐라.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하네. 남 말하기 좋아하는 부류들은 매우 보수적이라 뭔가 순서나 속도가 다르면 가제 눈을 뜨고 가십거리를 만들어. 결혼은 급하게 하더니 신호 여행도 없이, 큰 아주버님은 일만 하고 일 스케일도 어마어마하잖아. 여자들이 모여서 잡다한 이야기 하길래. 내가 속상해서 뒤집어 주기는 했지만······"
수지가 대형궐반을 손바닥으로 치며 눈을 치켜뜬다.
"수지 너, 공항 VVIP 라운지에서 여사들에게 호통친 게 그 일이었구나."
"으음, 용용이한테 현장에서는 한 소리 들었지만 비행기 안에서 잘했다고 하더라. 진짜 속상해, 우마리 너 한 번도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았잖아."
우마리가 장식으로 놓인 하회탈을 보고 있다.
"수지야, 아닌 일은 언젠가 다 밝혀지더라. 그냥 흘러 보내. 난 괜찮으니까."
앉아 있던 마순의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사실, 나도 수지처럼 걱정돼요. 요즘 가십이나 잘 못 된 소문을 그냥 두면 SNS으로 삽시간에 퍼져요. 퍼 나르는 사람들은 사실이나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요. 순간적으로 만들어지는 왜곡된 이미지가 생기고 만들어지죠. 바로 대처하지 않으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요."
"얘기 들어보니 조심은 해야겠네요."
"이럴 때 비서실에서 커버하는 액션이 중요한데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말해요."
"요올! 마순이 멋있다. 사실 말들이 도는 이유는 큰 아주버님을 시샘하는 게 커서 그래"
수지가 오른손 검지를 들어 눈을 천장으로 향한다.
“큰 아주버님이 인물은 인물이잖아. 퀀텀 형제가 엄두도 못 내던 복잡한 일들을 다 처리하고 완벽하게 합병까지 했지. 무엇보다 만인의 여인 우마리를 쟁취하고 대단하잖아.”
마순도 고개를 끄덕이며 오른손 검지를 든다.
“인정!”
우마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손을 저으며 웃는다.
“저기요. 허기로 별의별 말을 다 하는 것 같은데 나가자. 제일 반가운 두 사람이 왔는데 점심 살게.”
수지가 배를 잡고 엄살을 부린다.
“저기요. 음식의 질도 좋지만 양이 많은 걸로.”
“우마리 씨, 난 질과 양이 충족되면 좋겠어요.”
“마순씨, 아니 마순아, 내가 먼저 말 놓을게 편하게 지내자 수지처럼···”
마순이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 그러자 이제부터 우리 여걸 쓰리다.”
수지가 우마리를 끌고 와 마순을 일으켜 손을 잡는다.
“여걸, 쓰리! 이 중 한 사람이라도 불행하면 힘을 합해서 구출해 주는 거야.”
우마리 눈빛이 반짝 거리며 목소리를 합친다.
“여걸, 쓰리! 아직 일정은 잡지 못했지만 신혼여행 갈 때 우리 함께 가자.”
수지가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놓는다.
“그걸······”
“왜, 둘은 싫어. 재미있을 것 같은데.”
마순이 실망스럽다는 듯 수지 등을 툭 친다.
“아니!”
“우린 왜 그런 생각을 못했지.”
마순과 수지가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
대한 항공 런던행 비행기 재희는 구름만 응시하고 있다.
“즐거운 여행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스트로베리 아사이 리프레셔 준비해 드릴까요.”
“어떻게 알고?”
“우마님과 재희 님은 제가 기억하고 모시는 고객님이십니다.”
“아! 네. 주세요.”
잠이 밀려오는 재희가 실버 버튼을 눌러 180도 풀 플랫 세팅해 담요를 덮고 눈을 감는다.
“내가 너무 늦지 않았으면 범수 씨, 조금만 기다려 줘.”
재희는 영국 코츠월드 베이커리에 들러 그가 좋아하는 스콘과 프레즐을 들고 범수 집 앞에 서 있다.
“휴우!”
그녀가 벨을 누를까 말까 연신 망설이고 있을 때였다.
“이봐요. 여기서 뭐 하는 거죠?”
금발의 백인 여성이 팔짱을 끼고 재희를 경계한다.
“안녕하세요. 뮤라뉴를 만나러 왔어요.”
뮤라뉴라는 말에 그녀가 재희에게 다가온다.
“혹시 한국 여동생인가요?”
‘강렬한 눈빛, 범수 씨 여자 친구일지도 모르는데 뭐라고 대답하지.’
“어, 난 뮤라뉴 친구 재희예요. 당신은?”
“난 엠마예요, 뮤라뉴 애인이죠. 친구? 기다려봐요.”
금발의 여인이 벨이 아닌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허니.”
꽝!
문이 요란하게 닫힌다.
“허니? 그럼 범수 씨가··· 그래, 시간이 많이 지났고 그럴 수 있지.”
삼십 분이 넘도록 안에서 여자의 목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어쩔 거냐고··· 당신이 말해야지······”
재희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범수 씨, 당신을 힘들게 하려고 온 게 아니야. 제발 용서라도 빌 수 있게.’
한 시간이 되어 갈 즈음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만나고 싶지 않다고 전해줘.”
‘범수 씨!’
부정할 수 없는 범수의 목소리다.
“당신이··· 불편하다면 목소리 들었으니까 갈게. 범수 씨.”
재희는 범수가 자신 때문에 조금이라도 힘들어하는 것이 이제는 싫다. 빵 봉지를 문 앞에 두고 걷는다. 시계를 보니 옥스퍼드 행 버스를 타기 전까지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그녀는 그와 걸었던 윈드러시 강이 흐르는 냇가 주변을 따라 걷다가 쪼그리고 앉는다.
“보기엔 변한 것 없어 보이지만 물이 계속 흐르듯··· 그런 거야.”
흐르는 물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범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논문을 쓰고 있다. 엠마가 빵 봉지를 무심하게 책상에 놓는다.
“허니, 그녀가 놓고 갔네. 당신의 그녀 맞지. 그렇게 기다려 놓고 웬 똥고집이야.”
“일해야 하니까. 나가 줘요.”
“암튼 남자들이란. 보아하니 빵도 버릴 것 같은데 아까우니 이건 내가 가져갈게.”
“엠마! 거기에 놓고 가요.”
“아름다운 여인이던데. 마음과 다르게 냉정하게 보내 놓고 저리 청승을 떨다니. 저녁거리 챙겨 놨으니 난 가요.”
그녀는 빵 봉지를 훔치듯 들고 잽싸게 나간다.
“놓고 가라니까. 저, 손버릇 하고···”
범수는 재희가 빵 봉지에서 느껴지는 재희의 향기를 맡고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미치겠군, 차라리 학교 사무실에 가서 없는 일이라도 만들어서 일해야겠어.”
그가 심하게 뛰는 가슴을 한 손으로 마구 치며 자동차에 앉아 룸미러를 본다.
‘아, 돌아버리겠군. 아직도 내가 이러고 있다니. 잠잠했는데 환영처럼 또 마사가 보이다니.’
현실을 부정하듯 발길질을 하며 차에서 버둥거렸는데 범수가 공원을 걷고 있다.
‘뭐지! 분명 차에 앉아 있었는데······ 마사?’
부드러운 바람, 새들의 지저귐이 흘러가는 곳에 재희가 앉아 있고 그 뒤에 범수가 멈춘다.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선명해, 정확하게 이건 꿈은 아니야. 내 눈앞에 마사가 진짜 마사가 있어.’
재희는 물가에 범수 모습이 어른거려 손으로 만져 본다.
'범수 씨, 나 슬퍼하지 않을 게. 당신이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거야. 이젠 라토스케도 안녕!'
촉촉이 젖은 눈과 미소를 머금은 얼굴을 들고 그녀가 일어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내가 더는 여기 있으면 안 돼.”
“뭐가, 안된다는 거지.”
등 뒤에서 범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아··· 앗!”
그녀는 뒤돌아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숙인다.
‘범수 씨! 어떻게 해야 하지. 뭐라고 말해야 어색하지 않을까.’
“쓰레기 버리 듯 그렇게 나를 버려 놓고 여긴 왜, 왔지.”
“거, 걱정했어요. 그리고 가족들이 당신을 애타게 찾아요. 그냥 온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재희의 대답에 범수는 등 뒤에서 사춘기 소년처럼 발악을 한다.
“차라리 오지 말던가. 이렇게 찾아와 조용한 내 일상을 뒤집어 놓고, 또다시 나를 미쳐버리게 할 작정이야. 신경 쓰지 말라고! 내가 죽어서도 당신 이름만 들어도 벌떡 일어날 지경인데 그게 내게 할 말이야.”
- 작가의말
“차라리 오지를 말던가······ 또다시 나를 돌아버리게 할 작정이야. 신경 쓰지 말라고!”
당신을 신경 쓰게 하는 누군가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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