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미러 속 인연들

71회차) 운둔자 제로

우마리의 일상은 고요한 휴양지 바다 한가운데 섬처럼 평화롭다. 길가의 돌멩이나 잡초 심지어 벌레까지 보석처럼 빛난다. 바다는 잠잠하고 모든 것이 풍부하면서 조화롭지만 그녀는 숨이 막힌다.

'온전하고 완벽한 그대로여서 틈이 없어. 스며드는 것은 불길하고 두렵다 못해 공포를 느끼지. 단절과 고립 그리고······'

우웅웅 우웅웅

(우마리) : 지지직··· 여보세요.

(래리엘슨): 자··· 잠을 깨웠지. 비서한테 부탁하려다가 직접 걸었네.

고민을 밀어내며 정신이 번쩍 드는 우마리.

(우마리) : 래리 회장님! 지지··· 직

(래리엘슨): 내, 내가 자네에게 빚이 있··· 잖아.

(우마리) : 무슨 말이 신지? 윙 윙윙

(래리엘슨):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서 말이야. 유일한 핏줄 하나를 없는 자식으로 치려고 했는데 사람을 만들었더군. 크리스가 나보다 수완도 좋고 사업에 대한 감각이 있는 줄 몰랐어. 게임기를 감출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다 우마리 덕분이야.

래리의 목소리가 유난히 또렷하다.

(우마리) : 누구보다 크리스에 대해 잘 아셨으면서 지직···지직

(래리엘슨): 사람은 가까운 사람과 교감하면서··· 닮아가.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처럼 자네가 크리스에게··· 그랬고 베제로가 곁에서.

(우마리): 래리! 지 지직 ··· 과한 칭찬 뒤에 무슨 말이 나올지 준비되었으니 말하세요. 한국시간 새벽 2시 30분입니다.

(래리엘슨): 좋아, 리타 가문에서 진행 중인 지··· 지직··· 대륙 사업과 연관된 5대 프로젝트는 중단될 거야. 그리고 선한 후원자들이 밀물처럼 빠질···

침대 옆 미니 탁자를 그녀가 터치하자 스탠드 무드 등 보름달이 켜진다. 앞 머리를 쓸어 올리며 눈이 커진다.

(우마리) : ··· 혹시 붉은 뱀입니까? 위 이윙···

(래리엘슨): 기껏 붉은 뱀이면 이 시간에 연락을 왜 했겠나.

(우마리) : 그럼 세계정세를 어지럽힌 아람파세드 가문은 올해 리타 가문 아래로 자진해 들어왔습니다.

(래리엘슨): 전혀 모르는군. 놀라지 말고 ‘운둔자 제로 등불’이 켜졌어. 빛이 가리키는 곳이 리타앨리스퀀텀이야.

(우마리) : 제로라면? 소셜미디어 업계 실세이며 조력자라는 제로를 말하시는 건가요.

(래리엘슨): 바로 알아듣는 군. 사이버 공격과 사이버 불링 등으로 세계는 제로와 매일 전쟁 중이지.

(우마리) : 리타를 가리키는 이유가? 지지 지··· 직

(래리엘슨): 가상세계가 아니라 현실로 나오려는 것인지 그건 잘 몰라. 다만 지금 당장 모든 주식과 지분, 자본 현황에 대해 알아봐야 할 거야. 한국시간 오전 9시 1분 전에 수습하도록 최대 1분은 버텨 줄 수 있어.

(우마리) : 래리, 이 통화로 정체가 드러나면 위험해질 텐데.

(래리엘슨): 구식 버전 전파로 위성 전화가 아니야. 리타 가문 멤버십 긴급 개인 회선이야. 년 1회, 통화는 2분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빠···알리 지지···직··· 뚜뚜뚜

통화가 끊어지고 프로젝트 멤버와 이스타의 고유 번호를 입력해 리타 가문 라디오 주파수를 켠다.

- Sangrafu. Na wan ray

모두가 무진의 제주도 카페로 모였다. 여유로운 무진과 달리 대충 걸친 잠옷 차림에 크리스, 하품을 연신 하는 베제로, 헝클어진 머리에 범수, 단정한 지황과 눈이 퀭한 이스타가 의자에 앉아 우마리를 본다.

“무음 폰인데 라디오 주파수가 잡혀 노래와 나와 얼나마 놀랐는지 끄는 순간 이곳으로 왔다니까요.”

크리스가 호들갑을 떨자 우마리가 노트 탭을 스피커에 올려놓는다

: 지지직······ 놀라지 말고 운둔자 제로 등불이 켜졌어······ 리타 가문 멤버십 긴급 개인 회선이야. 통화는 2분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빠···알리 지지···직··· 뚜뚜뚜.

녹음 내용이 끝나자마자 크리스가 스피커 앞으로 나오고.

“아버지?”

우마리가 수긍하며.

"자 모두 탭을 열고 점검해 주세요."

각자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에 노트 탭을 열고 빈 테이블에서 그들은 화면을 10G로 켜 입체적으로 본다. 이스타는 심각하게 앉아 있다가 중앙 탭을 오픈하며 손으로 사인을 준다.

“지금이야, 크리스.”

중앙 탭을 열리자, 크리스가 오차 없이 연결을 시도한다.

“양자 컴, 베라 켭니다. 데이터 다 올리세요. 시스템 3. 2. 1. 0”

크리스의 엄격한 신호에 프로젝트 멤버들이 엔터를 눌렀다.

- 옴!

“oh, my God!”

모두가 이스타가 켠 베라가 계산해 낸 수치와 입체 차트를 보려 테이블로 다가온다. 테이터를 확인하고 두 눈을 의심하는 그들 중 범수가 믿을 수 없다며 숫자와 그래프를 계속 손가락질한다.

“이거, 버그 아니지.”

베제로와 크리스 그리고 지황이 손바닥으로 입을 가린다.

“이걸 믿으라고.”

우마리 역시 양자 컴 베라가 계산을 끝낸 100%를 보며 목소리가 갈라진다.

“서··· 설명이 필요해요? 이걸 어떻게 우리가 모르고 있었죠.”

이스타가 윗니로 입술을 씹으며.

“미안해, 우마리.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요즘 개인적인 일에 신경 쓰느라 놓치고 있었어. 돌아버리겠군.”

주먹 쥔 손에서 물 같은 땀이 흐르고 이스타가 우마리를 힐끗 보고 큰 보폭으로 문을 열고 나간다.

“이스타!”

따라 나가려는 우마리를 무진이 잡는다.

“모두가 놀랐고 이스타는 책임자야. 잠시만 기다려 주자고.”

카페 문에 달린 종이 요란한 종소리를 내며 흔들리자 크리스가.

“아무리 당분간이지만 이스타는 우마리에게 일임할 때 중앙 키를 내주지 않았어요. 그게 실수예요. 딱 4일 공백이었는데 4일 만에 이런 일이···”

무진이 차분하게 나선다.

“이런저런 일로 힘들어하는 우마리에게 일을 전가하는 것 같다며 이스타가 고민했어. 어차피 외부에 보여주기 위한 페널티 액션이라는 거 알고 있었잖아. 문제가 생겼다고 이제 와서 지난 일을 들추면 내부 혼란만 커져."

"무진의 말이 맞아, 우선 현실을 보고 방안을 모색하자고 크리스, 범수!”

베제로의 말에 끄덕이며 범수가 그래프를 지적한다.

“4일 공백이 너무 치명적이지만 도대체 ‘운둔자 제로 등불’이 뭐길래. 리앨퀀이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당할 수 있지.”

“제로는 지하 소셜미디어 업계 실세이며 조력자예요."

우마리의 말이 끝나자 크리스가 숫자 0을 보여준다.

"제로를 부를 때 구 버전 AI가 반응해서 바이러스나 해킹을 유도했어. 게다가 사이버 공격의 구호가 되었다고요. 일찍부터 리타 가문은 제로를 옴이라고 불렀고."

우마리가 크리스에게 묻는다.

"래리는 분명히 제로를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대화 중 게임기를 갑자기 언급했어요. 크리스, 뭐 기억나는 것 없어요."

"게임기, 아하! 어릴 적 아버지와 바하마 제도 어디 같은데 모임 같았어. 모두 떠들다가 제로라는 말에 조심스러웠지. 난 식물원에서 놀았고 참석한 서너 명이 하나씩 불이 훤히 켜진 곳에 들어갔다가 나왔지.”

크리스가 베제로에게 다가간다.

“아버지는 뭔가를 알아냈고 그걸 우마리에게 알려줬는데?”

그녀가 크리스의 말에 탭을 열어 게임 화면을 보여준다.

“초창기 게임 그린메이정원을 만든 한국인."

범수가 그 말을 듣고 베제로에게 하이파이브를 한다.

"마스 김! 그린메이정원, 오픈하자마자 깬 당사자가 베제로라고 광대한 가상 세계가 열릴 때마다 베제로가 도장깨기를 했잖아."

"한창 어릴 때였지만 제로의 독특한 감각이 있거든 조사해볼게."

"베제로보다 유일하게 먼저 깬 거울 세계 윈은 나 범수라고 베제로를 도울게."

크리스가 베제로의 손을 잡아 올리며.

"그린메이정원은 잘 모르지만 형님들이 조사한 것을 바로바로 올려주면 업그레이드해서 수치 계산해 알려드릴게요. 나 빼면 안 됩니다."

애교 섞인 크리스의 투정에 우마리가 웃음을 삼킨다.

범수가 지황을 보며.

“리타 가문도 연관되어 있다면 혹시 제로도 선택받아 내려온···”

“문턱 값으로 별들의 위치를 계산했는데 현재 별들의 에너지는 한국에 전부 모여있어.”

베제로가 값을 지적하며 지황에게 묻는다.

“완벽하게 떨어지는 수인가.”

“아니, 99%로 1%가 부족해.”

지황의 대답에 모두가 한숨을 쉬고 베제로가 지적한다.

“그럼, 완벽한 오류 값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오류 값은 아니에요!”

우마리가 중앙 테이블에 켜진 데이터를 하단을 확대하자 지황이 거든다.

“다들 여길 보고 우마리 말을 곱씹어 보라고.”

크리스가 지황의 말을 듣고 작은 테이블들을 돌아다니며 혼잣말을 한다.

“인연을 관장하고 선택받은 별들의 에너지 대신 인간으로 내려오고··· 지황은 인연을 연결할 때 공식 값을 어떻게 설정해요?”

“여러 가지 특성이 있지만 무엇보다 감정 값이 제일 크지.”

범수가 핑거 스냅으로 소리를 내고.

“기가 막힌 값이야. 감정 값이라면 불안정한 값이잖아.”

베제로가 무진에게 얼굴을 돌린다.

“그러게, 똑 떨어지는 100%는 도리어 오류라고.”

무진이 차분하게.

“선조들이 완벽만 요구하다가 사멸했는지 마음에 새겨야해.”

“모두 대단해요. 그럼, 운둔자 제로 등불에 대해 취합해 알려 주세요. 그리고··· 이스타를 부탁해요.”

“우마리, 걱정하지 말라고. 형님들이 이스타 정체를 알고 팬이 되었다니까.”

그녀가 의심스럽게 모두를 둘러본다.

“팬! 다들···”

그녀의 소프라노 급 목소리에

“어, 우리는 이스타를 찾아보자고······”

카페 문을 열고 우르르 밖으로 달아난다.

빈 카페에 혼자에서 데이터를 가까이 보며 옅은 미소가 번지는 우마리.

“혹시! 1%가··· 찾은 것 같은데!”

천장에서 작은 곡식 주머니 하나가 떨어진다.

톡!

‘이건 내게 주는 선물! 가져가야겠다.’

우마리가 카페 문을 열고 외친다.

“누가 나 좀 데려다주세요.”

거북처럼 느릿한 행동으로 돌아서는 그들 중에 무진이 나온다.

“따로 챙겨둔 풋귤 청이 있는데.”

***

부회장 실에서 내려온 우마리가 1층 로비 라운지에 앉아 있는 수지와 마순을 발견한다.

“올라오라니까. 꼭 1층에서 봐야 하는 이유가 뭐야."

작가의말

“따로 챙겨둔 풋귤 청이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