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회차) 네 남자가 모이면
멜리에는 피를 흘렸고 여자의 오른쪽 눈 밑에 튀었다.
“바닥이 지저분해졌어. 이게 뭐야.”
“미 미안.”
그의 입에서는 피가 계속 흘렀고 여자가 그 모습을 보고 걱정한다
“너, 많이 아프구나. 입에서 계속 지지가 나와.”
멜리에는 안간힘을 쓰며 볼펜을 쥐고 있는 손으로 입을 닦더니 피가 묻은 손으로 여자의 머리카락을 미세하게 스치며 내민다.
“이제 줄게. 너의 볼펜!”
“싫어, 지지가 묻어서 더러워졌잖아.”
여자는 토라져서 고개를 돌린다.
“투정 부리는 모습까지 엄마를 닮아서 아름답구나.”
“맞아, 난 엄마를 닮아서 아름답지. 게다가 마음씨도 착해.”
얼굴을 당당하게 들더니 여자가 일어난다. 멜리에는 바로 무릎을 세우며 두 손으로 볼펜을 내민다.
“받아 주십시오. 이건 빨간 꽃물 같은 거라서 물에 씻으면 지워지죠.”
“꽃물! 좋아. 네가 바치는 하찮은 선물을 받아 주지.”
“영광입니다.”
멜리에는 피를 흘리면서도 꼿꼿하게 무릎을 세워 흐트러지지 않으려 한다.
“이제 돌아가 해. 시누아타가 걱정하고 있을 거야.”
“제가 배웅해 드려도 될까요.”
여자가 뒷걸음질을 치며 손을 젓는다.
“배웅! 약한 이를 돌봐야 한다고 했어. 그런데 넌 나보다 약하잖아. 내가 너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싶지만 함부로 남을 따라가서는 안 돼. 나 혼자 갈 수 있어.”
멜리에가 고개를 떨군다.
“그럼, 이렇게 귀한 분을 배웅하지 못하는 것을 용서 하십시오.”
“이름이?”
“멜리에 라나입니다.”
“연못의 라나! 반가웠어.”
“개굴개굴, 저는 당신의 귀여운 라나입니다.”
“장난친 건데. 내 말을 알아듣네.”
멜리에가 비틀거리며 바닥을 짚는다.
“앞으로 저를 찾으시려면 라나를 두 번 불러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팔딱팔딱 뛰어 찾아가겠습니다.”
“정말! 그래 줄래. 그렇게 불러도 되지.”
여자는 몸을 흔들며 좋아하다가 이내 시무룩해진다.
“안 되겠어. 시누아타가 알면 가만있지 않을 거야. 요즘 들어 화를 많이 내 거든.”
“숨바꼭질 놀이처럼 시누아타 모르게 저를 부르세요. 라나는 재미있는 노래와 놀이를 잘하는 광대랍니다.”
여자가 두 팔을 벌리고 새처럼 지하 성당을 돌아다닌다.
“숨바꼭질 놀이! 게다가 광대 개구리라니.”
여자가 멈춰 서더니 목에 힘을 준다.
“좋아, 앞으로 넌 나의 광대야. 잘 들어. 라나, 라나 부르면 날 찾아와서 놀아줘. 그리고 볼펜을 딸깍딸깍 두 번 울리면 지금 같이 내가 밖에 있다는 거야. 더 빨리 오라는 신호지.”
“알겠습니다.”
“그럼, 안녕 라나!”
여자가 볼펜을 포트리(Potli) 가방에 넣는 순간 그녀가 사라진다.
크어억!
멜리에가 쓰러졌고 그는 미소를 지으며 바닥에 흥건한 피를 만진다.
“이제, 네가 어디에 있든 찾아갈 수 있게 되었어.”
후다닥 후다닥
발소리가 요란하더니 지하 성당 문이 열리며 노암이 외친다.
“자스링! 여기야. 멜리에 님께서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어. 빨리.”
***
베제로의 집 앞에 무진과 크리스가 서 있다. 양손 비닐봉지에 가득 담긴 막걸리와 소주 그리고 안줏거리들이 한가득이다.
“형님, 저희 왔어요.”
무진과 크리스가 회식 1차가 끝내고 온 것이지만 목소리가 얼큰하다. 크리스는 벨을 연신 눌러가면 재미있어한다.
“현니 임! an elder brother···”
슬리퍼를 질질 끌려 내는 엇박자 소리가 빠르게 들리고 한옥 나무 대문이 열린다.
“오늘은 쫌, 나도 쉬자.”
“현니임!”
싱글거리는 크리스와 무진이 양손에 들린 커다란 비닐봉지를 흔든다. 베제로가 방긋 웃으며 두 손들어 환영한다.
"오늘은 입만 달고 오지 않았구나."
“크리스, 저 무거운 것을 무진이 혼자 들게 했어. 함께 들어줘야지.”
“아니, 내가 가이 바이 보를 또 여겼어요.”
“요즘 웬일로 진짜냐, 무진아?”
“제가 두 판을 내리 졌어요.”
“크리스는 알려주면 하나를 정확히 알지. 들어와, 무거울 텐데 이리 줘.”
“아닙니다. 문 앞까지 왔는데 끝까지 완수해야죠. 이런 거 크리스가 보면 나름대로 해석해서 골치 아파집니다”
베제로가 무진의 말에 크리스를 보며 화들짝 놀란다.
“그럼, 절대로 안 되지.”
“막걸리 사 왔지?”
“암요, 형님 찾아오면서 막걸리를 빼면 팥빙수에 팥이 없는 거죠.”
“짜식, 많이 컸다. 농담도 이제 할 줄 알고 그렇게······”
크리스가 익숙하다는 듯 들어가 손을 씻고 거실 테이블에 잔 세 개를 놓는다.
“무지나, 치킨 반반 씻겨 주울게에.”
“시켜, 콜! ”
베제로가 막걸리를 꺼내며 말한다.
“크리스, 뼈 있는 거로 시켜라, 순살은 퍽퍽해서 싫다.”
“뼈어! OK.”
베제로가 무진이를 툭툭 친다.
“크리스, 한국말 많이 늘었어요. 스피킹이 부족해서 그렇지 이번에 작성한 리포트 보니까 국문학자 저리 가라던데요.”
“맞아, 이번 요하 문명과 고조선에 대해 쓴 자료도 크리스가 도와줬잖아. 전생에 한국 사람이었던 것 같다니까.”
“형님도 느끼셨구나. 먹성을 보면 영락없는 토종 한국 사람이더라고요.”
크리스가 오물 거리며 대접에 김치를 담아 젓가락을 들고 온다.
“무지니랑 현니임 내 말했지.”
“형님이 너 전생에 한국 사람이었던 것 같다고 하시네.”
그가 김치를 테이블에 놓고 젓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린다.
“래리도 그랬어요. 현니임.”
베제로가 막걸리를 흔들며 크리스를 보고 김치를 본다.
“뭐니 뭐니 해도 막걸리에 김치인 걸, 크리스가 그걸 알아요.”
“현니임, 마컬리도 그러치만 후라이드가 니글거려서 꼭 키임치가 있어야 해요.”
무진이 크리스의 말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배를 잡고 웃는다.
“후라이드가 니글거려 김치를 먹어야 한다고.”
“대박 사건! 우리 크리스는 외할머니 입맛을 가졌구나.”
베제로의 웃음까지 더해지자 크리스가 덩실덩실 춤을 춘다.
“좋쿠나!”
술 서너 잔이 오가고 무진이 접시를 챙기다 김치 냉장고 아래 과일 바구니를 만진다.
“형님, 오늘 손님 온다고 하시더니 진짜 왔었네요.”
“그럼 진짜지 가짜겠냐. 왔다 갔어!”
“포장도 그렇고 여자분 인 것 같은데?"
"여자다!"
크리스가 젓가락을 두드린다.
"현니임 나랑 살거라고 했자나요."
"그래서 내가 찾아 오지 말라고 했다. 쫑났지."
"현니임, 짱!"
"과일도 엄청 비싼 것 같은데, 여기 형님이 사랑하시는 버찌도 들어있어요.”
크리스가 끼어든다.
“무지니, 과일 좋아하잖아. 다 가져와.”
“그래, 먹고 싶은 거 다 먹어라. 그래야 큰다. 대신 버찌만 건들지 마라.”
“무지나, 난 샤인 머스켓!”
“그렇지 않아도 꺼냈다. 잘 먹겠습니다.”
과일 바구니에서 샤인 머스켓을 꺼낼 때, 베제로가 다가온다.
“냉장고에 넣어 둘 테니 꺼내 먹고, 버찌만 알지.”
“넵!”
베제로가 과일 바구니에서 과일을 꺼내 전용 냉장고에 넣는다. 그때, 현관 인터폰이 울린다.
삐리릭 삐리릭
인터폰에 치킨 배달부가 보였고 무진이 포도를 내려놓으며 오픈 버튼을 누른다.
딸깍!
일어나는 크리스를 보며 무진이 손바닥을 내린다.
“크리스 앉아 있어. 내가 나갈게.”
“땡큐.”
열린 대문을 열고 치킨 배달부가 들어온다. 무진이 그를 보고 급히 슬리퍼를 신었는데 한쪽 슬리퍼가 벗겨진다.
“아이고!···”
“암튼, 무진이 넌 여기만 오면 넘어지지 않으면 미끄러지고 바닥에 앉으면 발에 쥐가 나니 한옥 하고는 영, 안 맞다.”
베제로가 냉장고 문을 닫고 고무신을 신고 나가더니 그대로 멈춘다. 베제로와 치킨 배달부가 팽팽하게 대치하듯 서 있다. 베제로가 그를 보고 놀라 소리친다.
“너!”
범수가 베제로를 보고 더 놀란다.
“너?”
넘어진 무진이 범수를 보고 너무 놀란다.
“어!”
범수가 무진이를 보고 치킨과 콜라를 든 비밀 봉지를 흔든다.
“너?”
범수를 향해 베제로와 무진이 달려들어 끌어안는다.
“함께 있었구나. 다행이다.”
크리스가 세 남자가 서로 부둥켜안고 빙빙 도는 모습을 거실 마루에서 신기하게 바라본다.
“······?”
범수는 양반다리를 하고 마루 바닥에 앉아 세 남자의 시선을 독차지한다. 어색함으로 멀뚱하게 앉아 있는 그를 위해 크리스가 막걸리는 따라 건네며 아랫도리를 본다.
“어이쿠! 한쿡에도 이케 쿨하게 다니시는 분이 우리 현니임 친구분 이시라니 놀라워요. 한잔 제가 따라 드릴게요.”
우유빛깔 고운 색에 시큼하면서도 잘 삭은 향기를 맡는다. 범수가 두 손으로 막걸리를 받아 들이킨다.
“캬~아! 이게 얼마 만에 먹어보는 꿀맛인가.”
세 남자가 말없이 계속 그를 신기하고 별스럽게 쳐다본다.
“다들, 왜들 그래?”
무진이 눈을 아래로 내리는 사인을 보내며 미세하게 고개를 젓는다.
‘앗차!’
범수가 그제야 자신이 알몸에 가운만 걸친 것을 알았고 양반 다리를 하는 통에 물건이 드러나 있었다.
‘아··· 진짜 쪽팔렸다.’
“아아~ 다들, 남자들끼리 왜 그래, 요즘 갱년기라 좀 더워야지.”
베제로가 무거운 입을 열지 못하고 일어나더니 커다란 타월을 들고 와서 조용히 베제로의 거시기를 덮어준다.
"무진아, 삼촌한테 내 파자마라도 건네줘라."
무진이 냉큼 일어나 서랍에서 파자마를 꺼내 범수에게 차분하게 건넨다.
"삼촌······"
범수가 파자마를 받자마자 부리나케 입는다.
“너, 혹시 정신과 병동에서 탈출한 건 아니지.”
크리스가 다시 양반다리를 하며 앉는 범수의 가운을 슬쩍 만진다.
“현니임, 그냥 일반 가운인데요.”
“삼촌, 무슨 일 있었어. 괜찮은 거야?”
두 팔을 과장되게 저어가며 범수가 어이없어한다.
“무슨 일은! 재희 말대로 옷을 입고 나오는 건데.”
베제로가 입꼬리를 한 껏 올리며 테이블 친다.
“재희! 너 재희 씨 만났구나.”
“으음, 함께 살고 있어.”
범수가 베제로보다 더 입꼬리를 올리며 활짝 웃으며 빈 막걸리 잔을 흔든다. 크리스가 냉큼 막걸리를 따르며 그냥 따라 웃는다.
"재희?"
베제로는 부럽다는 표정으로 소주를 따른다.
"그럼, 그럴 수 있지. 멋지다 우리 범수!"
무진이 코를 킁킁거리며 크리스를 보고 베제로에게 눈빛을 보낸다. 베제로는 범수에게 묘한 신호를 보냈고 범수가 귀를 잡는다. 갑자기 베제로와 범수가 술을 따라 마시는 척하다가 무진이 등을 두르려 주며 속삭인다.
“삼촌!··· 누가 삼촌을 따라온 것 같은데?”
- 작가의말
좋다! 좋쿠나~
중간중간 추임새처럼 말해 보세요.
흐린 하늘이 맑아지듯 하루가 마법처럼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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