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회차) 거울장사 뮤라뉴
그가 재희를 돌려세워 어깨를 잡자 그녀가 얼굴을 돌린다.
“정말이에요. 당신을 힘들게 하려고 온 게 아니에요. 보기 좋고 축하해요.”
“뭐가 보기 좋고 축하한다는 거지.”
“행복해 보여서···”
흐르는 물소리가 둘 사이에 흐른다.
“나, 예전에 뮤라뉴가 아니야. 성질이 아주 고약해졌어. 내 앞에서 더군다나 당신 입에서 행복이라 말 들으니 화가 나는군.”
“결혼 축하한다는 말이에요.”
“당신, 감각이 많이 떨어졌군. 쓸데없는 오해나 하고 말이야.”
“······?”
“조카와 나를 돌봐준 보모야. 지금은 집안일을 도맡고 있지.”
“그럼, 허니는···”
“엠마는 모두를 허니라고 불러.”
재희가 여전히 범수를 바라보지 못한다.
“그랬군요.”
“그랬군요. 그게 다인가.”
“목소리만 들어도 좋아요.”
범수가 못 믿겠다는 반응에 목소리가 커진다.
“당신, 괜찮아, 어디 아픈 건 아니지.”
“가족들이랑 모두가 당신을 걱정하고 있어요. 그러니 연락······”
“아무래도 이상해,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얼굴 좀 들어봐.”
재희가 돌렸던 얼굴을 더 숙이며 돌아서려 한다. 범수가 그녀의 어깨를 한 손으로 잡고 한 손으로는 재희의 얼굴을 돌린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범수가 중심을 살짝 잃는다.
‘다시는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미안해요. 범수 씨.”
그의 이름을 그녀가 부르자 범수는 몹시 어지럽다.
“마사! 너···”
“믿어줘요. 당신을 힘들게 하려고 온 게 아니에요.”
“왜, 나는 너를.”
“목소리도 듣고 얼굴 봤으니까 갈게요. 버스 시간 다 되었어요.”
“내가 너를.”
재희가 발을 옮기려 할 때, 범수가 강하게 그녀를 안는다.
“누구 마음대로, 떠날 때고 당신을 죽기 살기로 붙잡았어. 더구나 나를 찾아왔다면 더욱 놓아줄 수 없어. 이젠 아무 데도 못가.”
“날 용서하고 행복하게 살아요.”
“다시, 다시 너를 섬길게. 가지 마, 제발!”
범수의 말에 재희가 주저앉으며 울먹거린다.
“싫어요. 이제 나를 섬기지 말아요. 응답하게 해 줘요."
반곱슬 검은 머리에 부리부리한 눈과 두툼한 입술에 각진 턱 그리고 넓은 어깨의 뮤라뉴가 그녀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늘씬한 바디를 훑으며 재희의 입술을 만진다.
“······ 응답할 게 재희야! 내 옆에 있어 줘.”
“범수 씨는 마치 어제 헤어지고 만난 것처럼 그대로예요.”
“그거 알아. 나는 오로지 너만 보면 내 심장이 뛰도록 만들어졌어.”
“범수 씨처럼 나도 똑같이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동시에 그녀와 그가 같은 말을 했고, 그의 흥분하는 모습에 그녀가 범수 손을 잡아끈다.
“우리 걸어요. 이제부터 모든 날은 당신과 함께 할 거니까.”
그가 그녀의 말을 듣고 등을 젖히며 크게 웃는다.
“나, 좀 막 때려 봐. 이거 꿈이면 눈알을 빼 버리고 영원히 눈뜨지 않을 거야.”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재희 맞지. 왜 이렇게 낯설지.”
그녀가 까치발을 들어 범수에게 키스한다. 한 번도 잊을 수 없었던 그녀의 입김과 혀의 감촉에 범수의 눈이 커진다.
‘범수 씨, 응답하는 방법을 익히느라 늦었어요.’
‘순간순간을 기다렸어. 재희야!’
세상에 둘만 존재하듯 범수와 재희는 집 안에서 원시인처럼 지낸다.
“당신하고 있으면 물만 먹어도 행복해.”
재희는 밖에 나가자고 졸랐지만 범수는 꼭꼭 닫은 문을 열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또 떠나면 내가 어떻게 변할지 이젠 나도 몰라. 먹거리는 떨어지지 않을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내가 준 불신 때문에 당신이 이렇게 불안해하다니.”
“엠마가 부탁한 빵과 고기랑 야채를 배달해 줄 거야.”
그녀는 그에게 진심이었고 방학이 끝나면 돌아가야 할 MIT 교수직을 고민한다.
“MIT,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요.”
“여태 그걸 고민하고 있었던 거야.”
“그것보다 교수직··· 당신 생각을 듣고 싶어요.”
“진짜, 나 때문에 고민했다고?”
“당신을 이제 혼자 두고 싶지 않서요.”
걱정이 담긴 재희의 말에 그가 집에서 처음으로 속옷을 찾는다
“우리 외출할까?”
재희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가만히 그를 응시한다.
“······!”
“당신이 떠나 버릴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네. 당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어.”
“우선 이사할 저택을 보여줄게.”
“이사?”
“헛된 기대를 안고 당신과 살 집을 사서 수리하고 있었어. 그조차 없다면 살아갈 자신이 없었거든. 올해 초에 완공되었고 전 달에 가구 들였지.”
“내가 올 줄 알고 있었어요.”
“아니, 전혀! 그냥 내 희망 사항 같은 거였지. 그런데 마법처럼 당신이 이렇게 날 구원하러 왔잖아.”
재희가 범수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으며 얼굴을 만져 준다.
“당신이 날 구원했잖아요. 참, MIT 이야기하다가 저택으로 이야기로 흘렀어요”
“아, 차원에 대해 알면 MIT는 해결될 거야. 당신에게 보여줄 게 있어. 우선 옷 입어 차에 타면···”
재희는 속 옷을 입으려다 범수의 표정을 보았고, 그는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서 있다.
“왜, 당신은 늘 이렇게 예쁘지.”
“범수 씨, 뭐예요. 나가자고 해놓고··· 달리려면 충전부터 해야지.”
침대가 젖을 정도로 한 몸으로 뒹굴던 둘이 가운만 걸친 범수가 작은 손거울을 들어 얼굴을 확인한다.
"세수는 안 해도 되겠어. "
그가 작은 거울로 재희를 비춘다.
"흐트러진 모습도 여전히 눈부셔."
그녀가 속옷을 챙겨 입으려 하자 가운을 걸쳐 주며 손 거울을 호주머니에 넣는다.
"주차장에 있는 차에 가보면 알게 될 거야."
둘은 차에 앉았고 그가 헛기침을 하며 룸미러를 조정한다.
“자 봐!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차원이 켜진 것을 당신 온 날 알게 됐어.”
“거울에 뭘 붙인 거예요?”
“잘 보라고.”
“큰 저택 같은데··· 영상 같기도 하고 뜸 들이지 말고 알려줘요.”
“우리 집이야. 영상은 아니고 내가 생각한 것을 룸미러가 연결해 주는 거야.”
“난 비과학을 믿지 않아요. 장난치지 말아요.”
범수가 재희의 귀여운 투정에 입을 맞추자 큰 저택 테이블에 둘이 걸터앉아 있다. 재희가 자동차 안이 아닌 커다란 테이블에 앉아 있는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어멋! 믿을 수 없어요. 어떻게 한 거예요. 순간이동은 아닐 테고···”
“순간이동 맞는데, 설명이 조금 필요하긴 하지만.”
재희가 벌떡 일어나 테이블 주변을 돈다.
“세상에! 테이블 크기도 크기지만 여기에 놓인 많은 거울들은 뭐예요.”
“크기가 침대 킹사이즈라 크기로 물푸레나무로 만든 거야. 그리고 거울들은 우선 내 추억이라고만 해두지.”
재희가 장난 같은 말에 그의 귀를 가볍게 당긴다.
“지금 나, 엄청 지금 혼란스럽다고요. 근데 저택이 높은 지대에 있는 것 같아요.”
“재희! 숨을 깊게 마시고 천천히 숨을 쉬어봐. 어떻게 말해야 당신이 진정될지. 으음! 당신에겐 아마 일반적이지 않은 일들이 있었을 텐데.”
“있어요. 생각해 보니 이런 비슷한 경험들을 그들을 위해 유도한 적이 있어요.”
“비슷한 경험?”
그녀의 말에 호기심이 생긴 범수를 보며 재희가 우마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과연 그랬군. 당신 아버지 지황 그리고 조카 우마리, 가만있자! 우마리 별이 첫 시작이었다는 것은 모두 알았고, 아마 그녀와 그 파트너가 연결되면서 룸미러가 열린 것 같은데.”
“그럼 우마리도 당신과 같은 별이에요.”
“어쩐지, 어린 조카였지만 평범하지 않았어요.”
“인간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특별한 힘을 가졌거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다만 예언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실마리를 연결할 무엇이 성립되면 쉽게 말하면 어떤 매개체로 공유하면서 힘을 보탤 수 있지.”
“그럼 다른 이동이 가능한 매개체가 있는지 더 확인해 봐야 하지 않아요.”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거울 앞으로 간다.
“재희, 실리는 우리에게 인간의 역할을 주었기 때문에 힘을 남용하지 않도록 해 조율해. 각자 역할이 있을 테고··· 내가 파악한 바로는 정확히 자동차 안 룸미러였어. 현실의 거리와 상관없이 이동은 가능했고 비춰 볼 수도 있었지.”
“그걸, 어떻게.”
“알잖아, 궁금한 건 못 참는 거. 혹시나 해서 당신이 잠든 밤마다 시험을 해보고 얻은 데이터야. 과거와 미래는 갈 수 없었어. 그러다 완공된 저택을 떠올렸는데 이곳으로 이동을 하더라고.”
범수가 고풍스러운 갈색 테이블을 쓰다듬고 거울들을 쳐다본다.
“확실한 건 룸미러가 별들을 잇는 연결고리라는 거야.”
“지금 연결고리라고 했어요.”
“?”
“서울대 김무진 교수도 당신하고 똑같은 말을 했어요.”
“재희! 당신이 어떻게 무진이를 알지.”
“범수 씨는 어떻게 김 교수를 알아요.”
“그거야, 무진이가 내 조카니까.”
“어쩜, 이런 인연이! 총장님 뵈러 갔다가 젊은 김 교수 소개받고 됨됨이와 능력에 반해 내가 멘토를 자처한 후배예요.”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거울들을 만지며 재희가 신기함을 주체하지 못한다.
“세상에 김무진 교수가 당신의 조카라니. 우리, 김 교수 만나러 가요······”
“뭐 당신이 원한다면 가야지. 그런데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신기해요. 외계인이 있다는 거잖아요.”
“재희, 외계인이 아니라··· 내가 외계인이 아닌 것처럼 인간은 모두 별이지만 특별한 별 나프타들이 있는데 그들이 선택받아 내려온 거라니까.”
“그들은 지구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려는 거죠.”
“별들이 내려올 때는 하나지. 예언의 실현.”
“예언?”
“예언도 여러 급이 있는데 이번 예언은 지구에 큰 도움이 되는 예언인 것이 확실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당신이 보기에 나 어때?”
“범수 씨는 흠잡을 곳이 없이 좋은···”
“당신이 그렇게 느꼈다면 그런 성향의 별들이 내려왔다는 거야.”
“지구에 해를 끼칠 것 같지 않아 안심이에요. 그런데 이 저택 너무 큰 거 아니에요. 게다가 이 엄청난 거울······ 아악!”
범수가 눈을 가리고 서있는 재희를 황급히 끌어안는다.
“괜찮아! 놀란 것 같은데 쉬이이~, 진정해. 내가 준비도 없이 당신을 놀라게 한 것 같군.”
"범수 씨! 저택 안에 우리 말고 누군가 있어요."
"······!"
- 작가의말
“당신이 보기에 나 어때?”
가끔은 타인이 보는 나에 대해 궁금하지 않나요?
MBTI에 연연해하지 말고 주변에서 나를 보는 시선들을 체크해 보세요.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이 생각하는 차이를 안다는 것이 조망능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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