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차) 베제로와 두마리
“모르겠어. 여기로 이사 올까.”
우마리가 앉아 수지 어깨를 잡는다.
“그래 이사 오자.”
“집을 보러 오셨나요?”
반쯤 열린 대문에 부리부리한 얼굴이 나온다.
“네, 집 보러 왔어요.”
수지의 대답에 대문이 크게 열린다.
“들어오시죠.”
수지가 일어나 들어가고 우마리도 일어난다.
“일행이 아니신가요.”
“그게 아니라···”
남자가 소처럼 눈을 끔뻑인다.
“여기 처음 오신 거죠?”
“사실 집 보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럼.”
“거북이랑 토끼 목걸이 그러니까···”
“맞습니다. 여기가 토끼와 거북입니다.”
“정말로 여기가.”
“두마리 맞지?”
“······”
남자가 두 손을 흔들며 재롱을 떤다.
“많이 컸네.”
“··· 혹시, 베제로 선생님!”
“여전하군.”
우마리가 구십 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선생님.”
“인생이 또 바빠지게 생겼군.”
“여기가 사세요.”
“많은 일들이 있었지.”
“네, 저도 그렇습니다.”
“당장 들어와서 저 아가씨 좀 말려봐.”
수지가 제집처럼 돌아다닌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고 했는데 어쩌다.”
“저런 친구가 아닌데 오늘 좀.”
“쯧쯧, 누가 보면 내가 손님인 줄.”
“죄송해요. 저기, 수지야······”
차를 마시며 잠시 조용하다.
“아저씨!”
“수지야, 차 다 마시고 천천히.”
“그 그래.”
“······”
수지가 베제로의 눈치를 살핀다.
“베제로 쌤, 혹시 도굴꾼이세요.”
커어 억~어억!
베제로가 차를 마시다 심하게 사레가 들린다.
“아니, 여기 물건들.”
“수지야! 선생님, 괜찮으세요.”
그가 전기난로처럼 붉어져 기침한다.
“나 나~ 나가.”
“유물들 신고하셔야 해요.”
“제발, 수지야.”
“켕기는 게 있으니까 사레가 들렸지.”
“선생님 화나면 무서워.”
눈까지 시뻘건 베제로가 수지를 본다.
“아니! 난 무서우면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거든.”
"너 정말 오늘 왜 그래."
잔기침을 하면서 그가 수지에게 묻는다.
“어디, 계속해봐요.”
수지가 그의 반응에 손이 움직인다.
“사실 난 무서우면 입이 얼어붙어요. 죄송해요. 베제로 쌤!”
베제로가 이마를 치며 웃는다.
“솔직해서 좋군. 내 이름은 배재호.”
“베제로가 더 어울려요. 그렇게 부를래요.”
“내 이름을 정확히 알려줬는데 왜?”
“우마리가 그렇게 불렀잖아요.”
“수지야 그건 내가 예전에···”
“나도 그렇게 부를 거야.”
“이 친구 초면인데 선을 넘네.”
수지가 말이 없다.
“아가씨, 때 쓰는 이유가 뭐지.”
“얘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너 또 무슨 장난치려고.”
“신이에요. 신!”
“그럼, 아가씨는.”
“저는?”
고민하는 수지 대신 우마리가 나선다.
“얘도 신이에요.”
“야!”
“그래 맞아, 우리가 별에서 왔지.”
수지가 물개 박수를 친다.
“나 이런 분위가 넘 좋아.”
베제로가 빈 잔을 내려놓는다.
“정말 궁금해서 아가씨, 왜 내 대문 앞에서 울었지.”
“모르겠어요. 버찌를 보고.”
"쌤은 왜 집 앞에 버찌 가지를 걸어 놓으셨어요."
"인연을 기다리고 있었지."
"인연이요?"
우마리와 수지가 동시에 말한다.
"내 미래의 배우자 이름이 버찌거든."
수지가 그의 빈 찻잔을 가만히 본다.
***
아버지 병찬이 퇴근하고 돌아오는 길, 주유소에서 강도의 습격을 당해 깨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우울증에 무기력해진 모리는 다섯 살 딸이 보이지 않는다.
미국 남부 플로리다에 비바람이 치던 날.
쩌어억
“마미, 나무가 괴물처럼 변해.”
비바람에 나무가 가지를 분지르고 쓰러지는 모습이 수지는 무섭다
“맘, 풀들이 길을 막았어.”
풀들은 위협하듯 수지 키를 넘겼다.
“벌레들이 날 깨물고 점점 많아져.”
문과 창문 틈으로 들어온 벌레들이 늘어난다.
“또 나가는 거야.”
울면서 엄마 모리를 수지가 잡지만 뿌리치고 나간다.
“가지 마, 날 혼자 두지 마.”
울다 지친 수지는 벚나무 잎과 버찌를 가지고 논다.
모리의 외출이 잦더니 집에 낯선 남자들이 오고 수지가 입을 닫는다.
“너무 무서워.”
아이는 아빠가 녹음해준 동화와 노래를 듣는다.
말이 없는 아이.
“모리, 당신 아이 벙어리야.”
“응.”
모리는 수지를 다그치고 싶지 않다.
남자들이 못된 말을 한다.
“너 같은 계집애가 꺼져 줘야. 편한데.”
남자들이 오면 수지는 계단 비밀 창고에서 녹음기를 누른다.
“보기 힘든 미인이라 놀다··· 이쁜 얘들이 멍청하잖아.”
수지는 녹음한 것을 모리에게 틀어준다.
“이놈 저놈도 똑똑한 것들은 영악하다가 못해 사악해.”
담배를 피우는 모리가 수지를 안아준다.
“좋은 아빠 만들어주려고 골라봐도 없어.”
“엄마! 나 아빠 필요 없어.”
“힘들지. 조금만 참아.”
“참을 수 있어.”
“너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거 봤어.”
“봤어”
“애들이 놀리던데.”
수지가 가방을 보여준다.
“버찌 가지고 놀았더니 더럽다고”
“왜 그걸 가방에 넣었어.”
“이걸로 나 때리는 애들 옷이랑 가방 물들였어.”
“그랬구나.”
“날 때려 화가나서 버찌로 갚아줬어.”
“백인 마을이고 동양 아이는 너 혼자라. 더 심해질 거야.”
“이사 가면 안 돼.”
“서울로 갈 거야. 친할머니가 오라고 했어.”
“정말”
“네 덕분이야. 녹음기 듣고 여편네들한테 까발려줬지.”
“할머니가 엄마 싫어하잖아.”
“너 빼고 여자들은 다 엄마 싫어해.”
모리는 여자들이 시기할 만큼 아름답고 화려하다.
“엄마는 남자들이 다 아빠 같은 줄 알았어.”
모리가 수지를 안고 운다.
“다행한 건 지조 있는 여자라고 소문이 서울에 들어간 거야.”
“지조가 뭐야.”
“변하지 않는 거. 아빠가 우리한테 했던 것처럼.”
“아빠처럼.”
“그래.”
“버찌 아빠 병찬 킴, 박사!”
“일 초마다 흔들렸지만 몸도 마음도 함부로 하지 않았어. 너랑 아빠 때문에.”
수지의 눈물이 빈 찻잔에 떨어지고 이야기를 멈췄다. 베제로는 미동이 없다.
“선생님!”
“뭐야, 감동적인 내 스토리에······ 베제로 쌤.”
그가 갑자기 전화를 건다.
“나요. 짜장면 하나 짬뽕 하나.”
“선생님 저희 밥 먹었어요.”
“내가 먹으려고. 갑자기 식욕이 돋네.”
“그러고 보니 많이 마르셨어요.”
“우울하면 먹는 것도 입맛도 사라져.”
“베제로 쌤, 실망이에요.”
수지가 벌떡 일어나 다시 돌아다닌다.
“저기, 버찌 씨.”
“수지야, 선생님 식사하시고.”
수지가 냉장고를 활짝 연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베제로가 등을 돌린다.
“우마리, 일어나! 입구에 마트 있던데 다녀오자.”
“마트?”
“냉장고에 소주 3병, 2L 물 두 개가 전부야.”
우마리가 주방으로 향한다.
“둘 다! 내 집에 갑자기 쳐들어와서는··· ”
수지가 달려가 베제로의 등짝을 때린다.
“자꾸 징징대면 나 여기 눌러앉을 거예요.”
베제로가 입을 다문다.
끙!
마트에서 장을 보고 배달시킨 후 둘이 걷고 있다.
“수지야, 선생님께 너무 함부로 하지 마.”
“내가 심했지. 쌤, 눈빛이 예전 우리 엄마와 닮아서 그랬어.”
“호칭도”
“근데 어쩌다 베제로가 된 거야.”
“유치원 원장님 조카분, 고등학생이었는데 동화구연해주셨어.”
“고등학생이 왜?”
“알고 보니까 울렁증이 심해서 봉사 겸, 극복 겸 그랬나 봐.”
“배 재호를 베제로라고 내가 불렀는데 모두가 그렇게 불렀어.”
“너야말로 장난 아니었구나.”
“그게 선생님께 자극이 되어서 결과는 해피엔딩이야.”
“정확히 뭐하는 분이야.”
“우리나라 최고 역사학자.”
“가만! 뉴스에도 몇 번 나왔던 혹시, 배 재호 교수가 저분이야.”
“응, 괴짜에다 역사 왜곡한다고 서울대에서 쫓겨났지.”
“괴짜 같긴 한데 거짓말쟁이 같지는 않던데.”
“들어 보면 알겠지. 밥까지 챙겨 드시는 것 보니까. 역사 강의 장난 아닐거야.”
“궁금하다. 입증되면 유물 전시는 우리 미술관에서 하기로."
베제로가 수지와 우마리를 부른다.
"내려와요. 지하에 연구실이 있으니."
엄청난 규모와 최첨단 유물 보관함이 즐비하다.
“세상에 말도 안 돼.”
“배 선생님?”
“여기 시설들···”
“쌤, 이렇게 준비하시느라 다 재산 탕진하신 거죠.”
“뭐,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지.”
“진짜 부자셨구나. 지금은 아니시겠고.”
“이쪽으로.”
“여기 유물들 혹시 홍산 문명?”
“우마리는 알아보네.”
“어디 어디, 나도요.”
“여기 유물들은 요하강 부근 고조선과 고구려 문화가 꽃피운 홍산문명 유물들이야.”
“이걸 어떻게?”
“오래전 중국하고 북한이 발굴하다가 중국이 뭔가를 직감하고 엎으려 할 때 발 빠르게 몇몇 학자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 냈어.”
“혼자는 어려웠을 텐데요.”
“다행히 영국 친구들이 도와줘서.”
“영국이라면 산둥반도가 요즘 이슈잖아요.”
“맞아, 그래서 영국 학계가 동이족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
“그럼 산둥반도에 있었던 제나라 시조 이정기 장군······”
“대단한데 두마리!”
“엥, 두 마리는 또 뭐예요.”
“베제로라고 이름을 바꾼 친구에게 하는 소심한 복수로 난 두마리라 불렀지.”
“선생님이 그러는 바람에 유치원 졸업 전까지 난 두마리였어.”
“둘 다 짓궂어.”
“자료는 영국과 긴밀히 모았고 연구해서 발표를 앞두고 있어.”
"베제로 쌤, 그래서 이정기 장군님이 어떻게?"
"이정기 장군이 고구려인이지. 당나라 때 그가 다스렸던 평로치청은 당 영토 내에 있었지만 실제로는 독립왕국이었고."
“산둥반도가 한국인과 관련성 깊은 사실은 중국 학자들도 아는 사실이겠네요.”
"그렇지."
“이거 잘 고증되면 대한민국 지도가 바뀌겠는데요.”
“대륙이 되는 거지.”
"이렇게 엄청난 일을 혼자서는 무리 실 텐데."
“혼자는 아니야.”
“그럼 후원자가 있어요.”
“영국이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있고 리베라타가문이 나서고 있어."
“아버지께서요?”
“지금 엄청난 계획을 하고 계시지. 퀀텀도 나섰어.”
“그렇다면······”
수지가 어리둥절하다가 퀀텀이란 말에 끼어든다.
“쌤! 저도 뭐 지분은 코딱지 만하지만 퀀텀 일원입니당.”
“조만간 발표할 거야.”
“UN도 한국행으로 선언했고 뭔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아주 중요한 하나가 빠졌지.”
“그게 뭐죠.”
“먼저 리베라타 가문에 자네가 없잖아. 밖으로만 돌고.”
우마리가 고개를 숙이며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게······”
“이제 도와 드려야지.”
“사표는 냈어요.”
“야! 진짜야. 근데 왜 이제 말해.”
수지가 우마리 얼굴을 든다.
“아직 수리가 안 됐어.”
“타스도 알아?”
“아니, 내가 모시던 어른께 보냈어.”
“혹시, 래리 엘슨? 진짜 넌 노는 물이 다르구나”
“저도 곧···”
- 작가의말
운과 기회는 순환버스 같아서 한 대를 놓쳐도 다음 버스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노선들 연결의 변화를 읽지 못하면 준비 없이 탈 수 없습니다.
탑승할 ‘멀티버스’ 새로운 배움과 상상의 이야기를 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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