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회차) 우마리 아니라 타마라였어
다음날. 삼라트와 모리야가 우마리를 가든 테이블로 불렀다.
“사랑스러운 공작 황조의 자랑 우마리 공주.”
살갑고 차가운 표정과 이중적인 말투가 교차하는 가운데 황제와 황후가 돌아가며 우마리를 안아준다.
“앉거라. 다 너를 걱정해서였단다.”
“아무렴 말 잘 듣는 우마리, 네가 그렇게 바다가 보고 싶다면 어쩌겠니. 마음껏 볼 수 있도록 보내 줘야지.”
“네가 바다를 볼 수 있도록 허락해 주마.”
“어제는······”
“어제 뭐? 말했잖니. 널 걱정한 것이지 절대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감사해요. 하지만 걱정을 끼치면서까지···”
“아니다, 너라면 걱정하지 않는다. 바다가 보고 싶으면 가봐야지.”
황제와 황후는 우마리의 여행에 최정예 호위 기사 다섯과 유모 그리고 시녀 둘에 흰 소가 끄는 마차를 준비시켰다. 허락이 떨어진 날 바로 선발대 호위 기사 열을 뽑아 다음날 보낸 상태다. 선발대는 이미 보름 전 남인도 고아로 떠났고 조용한 새벽 황궁에 숨겨진 뒷문이 열린다. 황제와 황후가 궁 밖까지 나와 우마리를 배웅한다.
“하필, 그 먼 고아(남인도 휴양지)로 가겠다고 하는 것인지. 원!”
“얌전하면 삶이 수월할 텐데.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것이 많은지.”
삼라트의 사마귀가 경련을 눈 밑 잔주름들이 간신히 붙잡고 있다.
‘때려서 잡아 둘 수도 없고.’
수레를 잡고 황제가 우마리를 놓아주질 않자 황후가 잡아끈다.
“무조건 약속한 날까지 꼭 돌아와야 한다. 약속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착한 우마리.”
“걱정하지 마세요.”
둘은 우마리에게 바라는 대답을 듣고서 놓아준다. 모리야가 땀으로 주름진 손수건을 흔들며 출발 신호를 보낸다.
“가려면 어서 가라!”
우마리는 용수가 말한 드넓은 바다를 향해 흰 소가 끄는 마차에 오른다. 황제가 다시 한번 당부한다.
“명심해라. 반드시 약속한 날에 온다는 걸.”
“네, 다녀오겠습니다.”
고래 상점을 나올 때 용수가 나직이 말한 것을 공주가 떠올린다.
‘바다로 향하게 되면 꼭 아라비아 해 고아로 가세요. 제가 꼭 안내하겠습니다!’
우마리는 고아를 향해 떠났다.
이미 선발대가 영주들을 만나 공주가 머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둬 순조롭게 고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고아에서 우마리 공주는 증발하듯 사라졌다.
“우마리 공주님!”
“공주님이 보이지 않는다. 어서 찾아라!”
조용하고 잠잠했던 남인도 고아에 공작 왕조 우마리 공주가 와 있었다는 사실과 실종 사건은 큰 소동을 부른다.
“고아에 삼라트의 공주가 와 있었다네?”
“우마리 공주가 사라졌데.”
“아니, 연약한 공주 혼자 여길 왜, 온 거야.”
“바다가 보고 싶다 해서 삼라트가 보내 줬다고 하던데.”
“그걸 우리 보고 믿으라고.”
“무시무시한 폭군 삼라트가 에이, 설마.”
“신도 벌벌 떠는 삼라트도 딸 앞에서는 아버지였어.”
“공주를 빨리 찾아야지. 이러다 삼라트가 욱하는 성질 못 참고 고아에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니까.”
고아를 샅샅이 뒤져 우마리를 찾았지만 공주는 원래 없었던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렇게 며칠을 찾던 유모는 극심한 공포를 느끼며 편지를 써 황제와 황후에게 비보를 전한다.
:우마리 공주님께서······ 사라지셨습니다. 샅샅이 찾고 있지만······
유모를 비롯한 일행들은 죽음만 기다리는 신세였지만 계속 고아 구석구석을 찾아다닌다. 유모는 탈진된 상태로 모래사장에 앉아 바다를 보며 울부짖는다.
“우마리 공주님 어디로 사라지셨어요. 제발 돌아오세요.”
수없이 쉬지 않고 주문을 외우듯 유모는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외쳤다. 울림이 닿은 것일까, 황궁으로 비보를 보내고 일주일 뒤에 우마리 공주의 행방을 알게 된다.
“우마리 공주님의 유모가 누구요.”
“접니다만, 누구신지?”
“타스 왕자님을 보좌하는 책사 호세요. 우마리 공주님께서 유모에게 전하라는 편지를 가져왔소···”
“세상에나! 우마리 공주님께서 살아계셨군요.”
:나를 믿고 고아까지 함께 온 유모와 일행들 모두를 걱정시켜서 미안해요. 정신을 잃고 발을 다쳐서 그만······ 호세를 믿고 모두 그를 따라오세요.
“공주님 필체가 맞아요. 다들 호세를 따라갑시다.”
공주 옆에 서 있던 타스 왕자가 유모와 일행들을 보고 앞으로 나온다.
“나는 굴라 왕국 타스 왕자요. 공주를 얼마나 걱정했을지 잘 알고 있습니다. 미안하오. 우마리 공주 말을 들어 보니 황제께서 약속한 날짜에 도착하기로 약속을 했다 들었소. 이틀 정도 이곳에서 쉬었다가 바로 떠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지원해 드리겠소.”
“우마리 공주님은······”
“유모!”
타스 뒤에서 나온 우마리를 보고 일행들과 유모가 무릎을 꿇는다.
“우마리 공주님, 살아계셨군요.”
“모두에게 미안해요······”
그동안 사정 이야기가 끝나고 유모와 일행들은 그제야 활짝 웃는다. 우두머리 기사가 공주 앞으로 나와 칼을 내려놓고 엎드린다.
“공주님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제가 이 모든 것을 책임이고 황궁에 돌아가면 목을 내놓을 것입니다.”
우마리는 우두머리 기사의 칼을 그의 손에 쥐어 준다.
“이 일의 책임은 내게 있습니다.”
“공주님!”
“이틀을 쉬고 황궁으로 가기 위한 강행군을 할 것이니 다들 쉬도록 하세요.”
황제와 황후가 걱정할 것을 우려해 타스 왕자는 지름길로 안내하며 서두른다. 타스가 공주와 삼라트 황국 일행들과 함께 고아를 벗어나 비자야푸라까지 배웅한다. 이를 모르는 황궁에서는 우마리가 고아에서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혼란에 휩싸인다.
:우마리 공주님께서 고아에서 도착하신 나흘째 되는 날, 사라지셨습니다. 샅샅이 찾고 있지만 흔적 하나 찾을 수 없습니다.
황제와 황후가 쪽지를 읽고 얼이 빠져 귀를 두 손으로 치며 격렬하게 거부한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걔가 우리한테 그럴 리가 없어.”
“삼라트, 그 얘가 없으면 그럼 공작 황조는 어떻게 되는 거죠.”
“어떻게 하지.”
“이럴 때··· 용수!”
“그 그렇지, 용··· 용수 님이 계셨지.”
황궁은 황제와 황후의 발작적 증상에 주치의와 시녀들이 급히 움직인다. 겉으로는 강건해 보였던 뿌리 깊은 공작 왕조는 한순간에 무너질 듯 위태롭다.
“당장 이것을 매를 조력하는 자에게 직접 주거라.”
고도 왕자가 황제의 침전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고 나온다.
“아버지께서 용수 님께 당장 보내라 하셨어.”
매를 조련해 전령으로 쓰는 조력관이 틱세 히말라야 곰파로 매를 보낸다.
:용수님! 우마리 공주가 바다를 보기 위해 고아로 향했다가 그곳에서 사라졌습니다. 제발, 우마리 공주를 찾아주십시오.
삼라트.
용수는 쪽지에 우마리가 사라졌다는 글을 보자마자 독화살을 맞은 것처럼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진다.
으으윽
뜨겁고 아찔한 통증과 분노에 돌의자에서 가쁜 숨을 쉰다.
“이런, 고아라니! 나와 함께 갈 그곳을 왜 공주 혼자 간 거야. 꿈을 통한 어떤 예지몽도 없었는데 분명 그곳에서 우마리가 인연을 만난 게 틀림없어.”
용수는 지체할 틈도 없이 독수리로 변해 고아로 날아간다.
“내가 내 꾀어 넘어갔어. 멍청하다고 여긴 황제가 흰 소로 장난을 쳤다니.”
용수는 우마리의 향기를 쫓아 비자야푸르에서 공주와 일행을 찾았다.
“저기, 있군.”
용수는 공주가 수상했지만 일행들을 무사히 삼라트 황궁까지 데려왔다.
“우마리 공주님께서 오셨다. 문을 열어라.”
소라 나팔과 뿔피리가 울리고 북이 울리며 남쪽 성문이 열린다.
“삼라트여, 용수가 우마리를 데리고 왔데요!”
황제와 황후가 가죽신을 벗어던지고 체통이고 뭐고 맨발로 뛰어나온다.
“고··· 공주, 우마리가 왔다고?”
"어서! 나가서 확인해 봐요."
우마리가 도착하고 보름이 막 지나지 않아 남인도 굴라 왕국에서 사신이 도착했다. 타스 왕자와 우마리 공주 결혼을 승낙해 달라는 청혼 서신이다. 서신을 받고 일주일 뒤 타스가 황제 삼라트를 찾아왔다.
"굴라 왕국 타스 왕자입니다. 이제야 공작 황조 삼라트 황제를 뵙습니다. 고귀하고 아름다우신 모리야 황후님을 뵈어 영광입니다."
우마리가 선택한 타스의 훌륭한 인품과 강인한 외모에 모리야는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른다.
"난 우마리를 믿었지. 어디서 저렇게 멋진 왕자를 찾아냈을까."
***
한편, 타마라 공주는 권과 별거 중으로 황궁에 들어와 있다. 우마리가 고아로 떠나고 서둘러 결혼식을 치른 권과 타마라는 신혼의 행복함과 거리가 멀었다. 신혼 초야를 치르고 권을 이상함을 감지한다.
"우마리, 잠깐 이었지만 처음 만났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이 이렇게 낯설다니."
"뭐가 낯설다는 거죠."
"모르겠소, 외모는 분명한데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오."
"하루 만나고 어떻게 나를 다 안다고 생각하죠."
"그게 설렘도······"
'우마리, 그때처럼 내 심장이 뛰질 않소.'
그러면서 그는 공주의 손을 자꾸만 잡아 본다.
"권! 부탁이에요. 이름 말고 그냥 공주라고 불러요."
"이름을 두고 왜?"
"궁에서는 공주라는 말을 하도 들어서 그런지 그게 더 좋아요."
타마라는 알몸으로 애교를 부리며 권의 품에 안긴다.
"안아주세요."
"우마리!"
"제발, 공주로 부르라니까요."
그녀는 우마리라는 이름을 부정하듯 더 적극적으로 권에게 아양을 떨며 애무했지만 권은 나무토막처럼 이내 멈춘다.
"미안하오. 피곤해서 그런지. 쉬어야겠소."
권이 등을 돌리며 일어나 옷을 입는다.
"권, 이렇게 나를 두고 나가면 삼라트께 다 일러바칠 거예요."
"당신 아무리 생각해도······"
우마리가 바다를 보러 갔다 고아에서 사라졌다는 소문은 모든 대신들과 더불어 성 밖 백성들에게까지 퍼졌다. 재상은 며느리인 우마리를 진작부터 의심하고 있었고, 권도 마찬가지였으나 심증만 있었을 뿐이었다.
"아버지, 소문이 사실입니까?"
"사실이다. 타마라 공주가 궁에 없는 것을 조사하다가 고아로 간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아로 간 공주는 타마라가 아니라 우마리 공주였어. 내 생각 또 너의 말대로 우리 가문에 들인 공주는 우마리가 아니었다."
"삼라트가 어떻게 우리 가문에게 이런 짓을."
"상심하지 마라. 내가 몇 배로 갚아줄 것이니. 정략결혼으로 없었던 일로 덮은 일로 영주들과 다시 회동을 가져야겠다."
'멍청한 삼라트에게 내가 속다니······'
- 작가의말
느낌이라는 감각!
오감 혹은 육감이라고 하지만 이면의 핵심은 마음입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고 잘 다루면 자신이 주는 귀한 선물, 그 느낌의 선물을 가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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