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차) 우리 하와이 갈까?
따르릉 따르릉
(김진준) 아버지 지혜와 결혼 허락해 주세요.
(이현회장) 진준아, 아버지 소원이다.
(김진준) 제발요, 결혼은 당사자가 하는 겁니다.
(이현회장) 이건 어른들의 약속이다.
(김진준) 제게 희생을 강요하지 마세요.
(이현회장) 퀀텀을 위한 것이니 따라라.
(김진준) 저는 지혜랑 결혼할 겁니다.
(이현회장) 윤미랑 선을 넘었다며
(김진준) 그건······ 실수였다 고요.
(이현회장) 남자답게 책임져라.
(김진준) 아버지! 싫습니다.
반기를 들듯 진준은 지혜와 동거로 아이가 생겼다.
“지혜야, 결혼하자!”
“퀀텀에서 가만있지 않을 텐데.”
“사랑해서 결혼하겠다는데 누가 뭐래.”
“오빠,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나만 믿고 따라와.”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결혼식을 치렀다. 어머니 광자는 마지못해 인정하지만 회장 김이현은 인정할 수 없다.
"윤미는 어쩌고 그림쟁이 얘한테 빠져서는···"
한편 한성 포철은 갑작스러운 부도로 공중분해된다. 동아일보에 ‘한성 포철 김강식 회장 자살’ 소식이 떴다. 광자가 이현에게 차를 따른다.
“어쩌다가 잘 나가던 한성 포철이.”
“기업이라는 것이 다 그렇지.”
“당신 괜찮아요. 제일 친한 벗이 자살했는데···”
“조심하라고 했는데 쓸데없이 정이 많았어.”
“김 회장, 무슨 사정 있었어요.”
“있었지.”
“남은 가족들 당신이 좀 챙겨줘요.”
“그래야지. 그 친구 덕에 초창기 퀀텀이 위기를 벗어났잖아.”
지혜는 학업과 그림에서 손을 떼고 퀀텀 며느리로 분주하다. 광자의 마음이 움직인다.
“이 정도라면 퀀텀의 맏며느리로 손색없어요. 권이 저리 좋다는데 인정해줍시다.”
지혜는 이름에 걸맞게 총명했고 아들 권에 대한 입지도 확실해진다.
"지혜야, 권이도 세 살이고 이번 결혼기념일엔 하와이 여행 어때?"
“정말 가도 되는 거야. 아버님께서는 뭐라셔.”
“당연히 허락하셨지.”
“나, 아버님께 인정받은 거네.”
“확실하게 인정받았어.”
“그럼 다시 그림 그려도 돼.”
“그~ 그림!”
“응, 요즘 내 존재감을 모르겠어.”
“알았어.”
“거짓말 아니지, 진짜지.”
진준이 지혜를 안아준다.
“으음, 향 좋은데.”
“바이올렛 향이랑 장미향 믹스.”
“너랑 잘 어울린다.”
“창고에 몰래 그렸던 그림들부터 정리해야겠다.”
“정리는 하와이 다녀와서 해.”
“믿어지지 않아. 이런 날이 오다니.”
“이제 고생 다 끝났어.”
둘만의 시간을 위해 떠난 하와이 여행은 행복했다. 그러나 진준이 몰던 차를 음주운전 차량이 덮치는 바람에 지혜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만다.
"안돼, 이렇게 가면 나랑 권 이는 어떻게··· 지혜야!"
진준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 시도를 한다.
"나랑 결혼해서 그림도 포기하고······ 나 때문에 지혜가 죽은 거야."
진준을 흠모하던 여비서 경희가 권의 자살 시도를 막는다. 왕회장 이현이 진준을 살리고 보자는 마음에 경희와 재혼을 시켰는데 태어난 아이가 용수였다. 막 고등학생이 된 권은 늘 친어머니 지혜에 대한 부재를 느낀다.
"이젠 사진을 봐도 모르겠어. 너무 그리운 어머니··· "
권은 해가 갈수록 몸이 야위어 가더니 잦은 병치레로 쇠약해진다. 광자와 진준은 죽은 지혜의 친정집에 가서 권을 쉬도록 배려한다.
"권아, 외가댁에서 쉬고 싶은 만큼 쉬었다가 오너라."
신기하게도 외가댁에서 쉬었다 오면 건강을 되찾는 권을 광자가 수상히 여긴다.
광자는 남편 이현을 움직이기 위해 떼를 쓴다.
“도대체 뭘 망설이는 거예요.”
“그것이······”
“나도 죽어야 당신이 허락한다면.”
“무슨, 알았소. 그렇게 합시다.”
퀀텀 승계는 절대적으로 첫 자식 장남에게 물려준다는 계율을 따른다. 집안 어른 왕회장이 아들 진준을 조용히 불렀다.
“권을 존 홉킨스 원장. 닥터 케빈 장에게 보내기로 했다.”
진준 어머니 광자가 녹차를 우리고 내린 첫 물을 비운다. 빛깔이 고운 두 번째 물을 아들 진준에게 왕 위를 내주는 듯 비장하다.
"자, 받아."
낮게 고개를 떨구고 주전자를 절도 있게 내려놓은 손이 바닥을 짚는다.
“김 수혁 선대 회장님의 외도로 배다른 형제들이 생긴 것을 알고 있지. 명심해, 내 눈에 흙이 들어간들 안 되는 것은 안 돼. 반드시 너 다음은 권이다.”
한밤중, 앰뷸런스 소리가 퀀텀의 식솔들을 깨운다. 모두가 정신없는 사이 용수의 울음소리가 혼란을 부추긴다.
“권이 형······ 형!”
“여보, 나도 따라갈게요. 잠시만요.”
경희가 막무가내로 병원에 따라가겠다고 한다.
“용수가 많이 놀란 것 같으니 집에 있어요. 연락할 테니”
권이 급히 실려 나가고 진준이 올라타자 차가 떠난다.
경희가 예상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사태다.
"왜, 갑자기······ 부 집사."
권에 대한 일은 진준 다음으로 부 집사를 통해야 했다.
“요즘 괜찮았잖아. 그렇게 바라던 행사도 잘 치렀고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야. 뭐 짚이는 거 없어.”
그녀는 부 집사에게 책임을 물으려는 듯 날카롭다.
“그것이 어제 새벽에도 몸이 좋지 않아 주치의가 다녀갔습니다.”
"주치의가?"
"네."
"주치의는 아무말이 없었는데."
고민이 생길 때마다 경희는 습관처럼 손톱을 물어뜯는다.
“아니, 절대 그럴 리가 없어. 요즘 내가 얼마나 조심했는데.”
경희는 갑자기 말을 얼버무린다.
“보기에 상태는 어땠어.”
불안해진 경희가 부 집사 옆구리를 치른다.
“사모님,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왕회장님께서 함구령을 내리셔서요. 그리고 어젯밤
구 변과 장 변을 호출하셨어요.”
왕회장이 변호사를 호출했다는 말에 놀라 사레가 들린다.
케, 켁켁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야.’
“날 계모라고 우습게 여기지 마! 퀀텀 안주인은 나라고 알았어.”
간교하게 어르고 달래는 경희의 끈질긴 추궁.
“실려 나가실 때 옷이라도 챙겨 드리기 위해 가까이 갔는데 축 늘어져 계셨고.”
경희가 바짝 다가와 귀를 덴다.
“늘어졌고 뭐? 퀀텀에서 빌붙어 살고 싶으면 솔직해.”
“권 도련님께서 몸이 매우 차가우셨는데 숨을 쉬지 않으셨어요.”
그녀는 하마터면 기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늘이 용수를 돕는구나.’
부 집사를 풀어 주며 경희가 돌아선다.
“용수~야!”
경희가 아들 방을 촐랑거리며 연다.
용수가 침대에 앉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책을 끌어안고 있다.
"아들, 엄마 들어가도 될까?"
요즘 부쩍 짜증이 늘고 날카로워진 아들의 얼굴을 얼굴로 비빈다.
“무섭지, 엄마도 권이 걱정돼. 건강하게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경희의 과한 관심으로 용수는 늘 웅크린 저자세였는데 반항을 한다.
“엄마는 형 싫어했잖아.”
“어멋!”
용수의 반앙을 내심 반긴다. 하지만 아들의 심장 소리가 강렬하게 뛰는 것을 느끼고 감정을 누그러트린다.
"쉬이이, 그렇지 않아요.”
“내가 엄마를 모를 줄 알아. 나도 다 알아.”
“엄마가 권을 얼마나 사랑한다고 형은 맏이라서 조금 엄하게 대했을 뿐이야. 지금 마음이 어떤지 아니, 칼로 심장을 베인 듯이 아파.”
비위가 거슬리면 윽박지르던 경희가 온순하다.
“형 보러 갈 때 나도 병원에 데려가 줘.”
“당연하지.”
경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용수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너랑 권은 퀀텀에서 입지가 달라. 불쌍한 내 아들, 넌 가진 게 많다 여기지. 하지만 권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어.’
“약속한 거야.”
“그럼,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확인해야지.”
‘변호사를 둘씩이나 왕회장이 무슨 꿍꿍인지 알아내야 해.’
코마 상태에 빠진 권.
왕회장 이현은 손주를 살리기 위해 방법을 총동원하라 지시를 내렸고, 진준은 권을 존 홉킨스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진행하기로 한다.
***
퀀텀 비밀의 방.
우마리는 흐릿한 생각들이 마구 겹치며 혼자 힘들다.
'평정심, 정신 차려야 해.'
남자 셋의 얽히고설킨 말다툼을 그녀가 자른다.
“그만! 이런 말을 듣고 있는 내가 한심해요.”
재희가 그녀의 손을 잡는다.
"우마리 많이 혼란스럽겠지만 이건······"
"왜 나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지 무엇 때문에 다투고 있는지··· 다들 내가 알았던 사람들이 맞나 싶어요."
우마리는 세 남자가 일으킨 분쟁이 싫었고 눈물까지 쏟는다. 그녀의 눈물에 남자 셋은 속을 끓이다 그녀에게 향하려 한다.
"우마리, 미안해요!"
재희가 그들을 보며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려친다.
“다들, 멈춰요. 아무래도 우마리가 너무 혼란스러워하니까···”
그들이 발길은 멈췄지만 집중력이 약해지고 있다. 타스의 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간다.
"어떻게 좀 해봐요."
권이 리모컨을 만지작거린다.
"우마리가 힘들어하니. 추스르고 다시 시작하면 어때요?"
용수의 눈이 통창 밖을 향한다.
"답답하네."
재희가 불안을 느낀다.
'이 상황을 확실하게 해 줄 무엇이 필요해. 뭐가 있었더라.'
앞니로 입술을 깨문다.
'필요해, 늘 특별한 추억을 가졌다며 우마리의 인연이라고 큰소리쳤는데···'
귀가 간질거리며 웃는 재희.
'그래 그거야!’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싸늘해진 세 남자의 표정을 재희가 놓치지 않는다.
“어쩔 수 없군요! 다들 간직하고 있다던 증표를 가져와요. 특별한 것을 가졌다고 늘 자신했잖아요.”
재희는 갈증을 느끼며 침을 삼킨다.
'이 분위기를 빨리 바꿔야 해.'
- 작가의말
행동이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립니다.
수많은 난관과 가끔의 희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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