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차) 감정 노동자들
“아··· 그러셨군요.”
“왜요. 실망했어요.”
“아니요. 전혀 아닙니다.”
여자도 매니저를 따라 손을 앞으로 모은다.
“노력했는데 안 되는 뭔가가 가 있더라고요.”
매니저가 여자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한다.
“맞아요.”
“하지만 인정하면 달라져요.”
“인정하면요.”
“시기하고 질투하면서 부러워하지 마세요.”
“그게 생각처럼 되질 않아요.”
“매니저님도 나도 나름대로 꽤 괜찮아요.”
매니저가 말없이 바닥을 본다.
“평범함이 세상에 널렸어도 개성이 가치를 만들어요.”
“가치요!”
“난 개성은 없지만 만들고 있어요.”
"만든다고요."
"알아내려는 힘, 눈치요."
매니저의 눈에 힘이 들어간다.
"저분은 우리의 차원이 다른 눈치를 절대 따라올 수 없어요."
“그건 맞아요."
"그러니, 기죽지 말아요."
"듣고 보니 뭔가 색다른 강점을 만들 수 있겠어요."
앞으로 오시면 제가 리드해 드리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친구처럼 봐요. 그럼 목걸이 볼까요”
“진짜, 신상으로 보여드릴게요.”
여자는 우마리의 채취를 감지하듯 코를 씰룩거리며 돌아선다.
“어서, 보여주세요!”
***
우마리는 익숙한 무스카리와 바이올렛이 섞인 향기를 맡는다.
“좋은데.”
향수 시향 지를 받아보려 할 때 누군가 그녀를 강하게 밀쳤다.
퍽!
넘어지고 데굴데굴 굴러가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섞인다.
‘아, 아파.’
여학생이 우마리를 밀쳤지만 사과도 없이 사라진다.
“괜찮아요!”
인간다움, 걱정해주는 따스한 소리다.
"괜찮습니다. 발을 헛디뎌서······"
우마리가 순간적인 스피드로 내 달린다.
‘뛰어야 해. 가볍게 힘을 빼고···’
망신살이 뻗친 구역을 벗어나자 따라오던 남자 목소리가 끊겼다.
“저기, 저기여 어~"
주얼리 코너에 한쪽 귀가 보랏빛인 검은 고양이 인형과 눈이 마주친다.
“아! 아아, 놀래라.”
‘날카로운 눈매가 꼭 살아 있는 고양이 같네.’
그녀가 숨을 고르며 에스컬레이터를 탄다.
지하 푸드코트.
음식 냄새가 조화롭게 어울려 침샘을 자극하고 팝업매장 마농 하우스 마카롱에 시선이 간다.
'바닐라 트림 브륄레, 딸기요거트, 초코, 순수우유, 캔디바······'
“잠시만 기다려. 쫀득한 동그리들.”
어버이날을 맞아 팬시점에서 카드 걸이 대를 돌린다.
빙그르르 툭!
바닥으로 떨어진 카드를 주워 생화처럼 핀 제비꽃을 보고 계산한다.
“이왕 나왔으니 꽃바구니도 예약해야지.”
꽃집 앞. 오십대로 보이는 여자 표정이 언짢다.
‘뭔가 많이 억울한 표정인데.’
여자를 지나쳐 꽃집에 들어온 우마리.
“꽃바구니 주문을···”
뒤 돌아보는 여자 얼굴에 각종 심리가 섞인다.
“어떻게, 죄송해요.”
“?”
“어버이날이라 넉넉히 준비했는데 마감됐습니다.”
“아직 시간이 이른데.”
“저기.”
중년 부부의 뒷모습을 여자가 가리킨다.
“저분들께서 다.”
부부 손에 들린 꽃바구니, 직원 둘이 카트를 끌고 따라간다.
“이러면 곤란한데 몽땅 가져가셨어요.”
여자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흐른다.
“땀도 닦고 좀 쉬셔야겠어요.”
우마리가 꽃집을 나온다.
그때, 투명 비닐봉지에 담긴 카드가 떨어진다.
사그락!
꽃집 여자가 카드를 줍는다.
"제비꽃이네요. 어릴 적 뒷동산에 많았는데.”
우마리가 손을 내민다.
눈을 뗄 수 없다는 듯 여자가 끄덕인다.
“잠깐, 이리 들어오세요.”
“카드를?”
“카드는 받으시고 봉투는 제가.”
“리스 만들려고 남겨둔 스타티스가 있어요.”
“······!”
“제비꽃 카드와 잘 어울릴 거예요.”
“괜찮습니다.”
여자가 빠른 손놀림으로 꽃을 만진다.
“정말 괜··· ”
여자 손등에 파란 점에서 뭔가가 풍긴다.
‘바다 냄새 그리고 이 향기?'
***
아련하게 시야가 흐려지며 붉은 꽃이 눈에 띈다.
“귀한 것이 여기에 아앗!”
“조심하세요.”
“죄송해요. 만지려 했던 건 아니었는데.”
“인도산 다이아몬드 장미예요.”
우마리는 따끔함에 외친다.
“앗, 샤악 티~”
“어머니 꽃 목화랍니다.”
현기증을 느끼며 우마리가 정신이 든다.
“방금 인도산 장미라고!”
“아 아닙니다. 제가 착각을 했네요.”
여자가 스타티스를 카드 봉투에 대본다.
“음, 요렇게 하면.”
가위를 들어 스타티스 꽃대를 싹둑 잘라 봉투에 꽃을 붙인다.
“어때요. 꽃바구니보다 근사하지요.”
“플로리스트 솜씨가 바로 이런 거군요.”
남은 꽃으로 다발을 만들며 콧노래를 부른다.
루~룰 룰룰
쟈가드 망사에 흰 레이스로 묶은 꽃다발.
“받으세요.”
“이건, 정말 그냥 받을 수 없습니다.”
우마리가 블랙카드를 내민다.
“감정노동자는 말 한마디에 그날이 지옥이 되고 천국이 돼요.”
“말 한마디는 바질 잎 한 장이죠.”
“네? 바질 잎······"
"아니에요. 그런 게 있어요."
"쉬라는 말이 얼마나 따뜻하게 들리던지요.”
꽃집 여자가 눈을 깜빡거리며 그녀의 손을 잡는다.
“정말 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고맙습니다.”
여자는 어지럽게 널린 꽃대를 정리한다.
우우웅우우웅
: 미안, 이제 도착했어. 1층 반클리프 매장인데 어디야?
수지 1:43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바로 문자를 보낸다.
: 거기 있어! 올라갈게.
우마리 1:44
우마리는 걸으며 조끼 호주머니를 만진다.
“응, 없네.”
호주머니에 얼룩이 복사꽃처럼 활짝 펴 놀랄 때.
와락.
“쏘리, 또리”
수지의 포옹, 우마리의 웃음에서 향기가 난다.
“너 어.”
“쥔 짜아~ 미안!”
수지가 이산가족처럼 그녀를 안고 방방 뛴다.
“금쪽같은 시간 기다리게 했으니 오늘은 내가 쏜다 잉.”
“바빴구나.”
“네가 좋아하는 마카롱은 후식이고 밥부터 먹자.”
“그래, 배고프다.”
“11층 르빠숑 예약했는데 프랑스 요리 어때.”
“bon!”
꽃다발을 수지에게 보인다.
“인정! 확실히 넌 달라··· 애비뉴엘 MVG(Most Valuable Guest) 고객이지. 라운지에 갈 필요도 없고 데스크에 맡기면 알아서 해 줘. 가자.”
우마리가 수지에게 히죽거리며 웃는다.
“수지야, 플라워 아뜰리에 꽃바구니 두 개 예약해 줄 수 있어. 너무 늦었나.”
“그게 뭐가 어려워. 근데 스타티스 꽃다발보다는 예쁘지 않을 것 같은데.”
“이건 따로 주고 싶은 언니가 있어서.”
“그 언니는 좋겠따. 그냥 나주면 안 돼.”
“수지야~”
“농담일세. 너, 마음이 쓰이는 언니 있구나. 자! 배고파요. 갑시다.”
“맨날 깨작거리더니 오늘은 잘 먹네.”
우마리가 포크를 살짝 흔든다.
“그래보이니, 수지야 제발, 천천히 먹자.”
“으음, 배고플 땐 물도 맛있지. 그치.”
긴 공복, 식욕의 텐션이 폭식을 부른다.
“어후, 음식으로 가득 채운 절구통이 됐어.”
우마리도 배를 튕기며 고양이 트림을 한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뚠뚠이는 덤.”
둘의 장운동은 이야기로 슬슬 시동을 건다.
“수지야, 린 미술관에서 ‘로렌스 알마 타테마 전시회’ 정말 잘했어.”
싱글벙글 웃는 수지.
“전시회 첫날 경황없는 것 같아서 얼굴도장만 찍고 혼자 둘러봤는데 굉장하더라. 이번 전시회도 네가 추진한 거 맞지.”
“우웅. 더 해봐.”
"암튼 넌 못 말려."
그녀가 눈을 맞추고 입꼬리가 올라가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수지가 감동한다.
“정말 한결같아.”
진심일 때만 보이는 친구의 비언어를 수지는 알고 있다.
“그러니까 다들 좋다고 우마리, 우마리하지.”
수지가 두 손으로 턱을 받친다.
“추진한다고 다 되는 일도 아니고 용수 오빠의 예술에 대한 애정이 동원된 거야.”
“오빠 누구?”
“아니 그니까···
수지가 말을 흐린다.
"너,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아(John Everett Millais, ophelia) 아직도 변함없지.”
우마리가 에이드 잔을 만진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오렌지 에이드를 간 보듯 홀짝거린다.
“하지만 보라색을 잘 다루는 화가를 찾는다면.”
보라색이라는 말에 수지가 혀를 찬다.
“헐! 천연기념물이 따로 없네.”
“무슨.”
“암요. 너처럼 지조 있는 존재가 세상에 필요하지.”
오물오물 음식을 씹던 수지가 등을 돌려 특유의 째려보는 눈빛으로 긴 통창 아래 테이블을 본다.
“오호라, 수빈 언니가 맞네.”
“언니, 어디에?”
“저 언니가 여기 쇼핑몰에 다니고 있었어.”
우마리가 수지 시선을 쫓다 길을 잃는다.
“사촌 용수 오빠 말이야.”
“사촌 오빠?”
“정확히 하자면 사촌은 아니고 일명 토론토 오빠.”
“뭐야 알아듣게 말해.”
수지가 입맛을 다신다.
“장황한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또 말장난한다.”
“아니 긴 말을 독자들이 싫어해요.”
“네 앞에 앉은 독자는 좋아해 어서 말해봐.”
“퀀텀의 저주 너도 알지. 딸이 없어요! 돌아가신 이현 회장님이 종친회에 갔다가 먼 친척 중 유일하게 띠동갑인 울 할머니를 보고 여동생으로 삼았잖아. 금동아 줄을 잡은 거지. 유언장에 할머니를 위해 퀀텀 지분도 남겨 주셨어. 외동딸인 우리 엄마가 지분을 물려받았고 내가 퀀텀이랑 가족 아닌 가족이 됐다 이거지.”
“흥미로운 인연이네.”
“그래서 나랑 용수 오빠랑 엮인 거고 저기 오빠 앞에 약혼녀가 다빈 언니야."
우마리가 수지의 시선을 테이블로 끌고 온다.
“너. 저 오빠 짝사랑하지. 그래서 여기 쇼핑몰에 가자고 조른 거지”
수지가 커피를 넘기다 흘리며 정색한다.
“대박, 아니거든. 정략결혼으로 둘은 이미 약속한 사이야.”
“정략결혼!”
“우마리, 너도 자유롭지 않잖아.”
“수지야, 리베라타 가문이야. 정략결혼이라니.”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
우마리가 테이블을 두드린다.
“그만 보고, 네 얼굴이나 신경 써.”
"왜."
"뭔가 생각이 많은 얼굴로 보여."
“그니까, 아무래도 얼굴을 갈아엎은 것 같아.”
“성형?”
“오빠는 심드렁한데 언니가 오빠한테 푹 빠져서 안달이 났거든.”
“안 그렇게 보이는데.”
“재계 6위 신미래 유통과 3위 퀀텀 이노텍이 합치면 시너지가 커지지.”
“우리 수지, 경제 기자 하면 딱이네.”
“예상했던 대로 여기서 근무하고 있었어.”
“너도 퀀텀 일원이니까 정략결혼 같은 뭐가 있는 거야.”
피식피식 수지가 헛웃음을 흘린다.
“오우, 난 그런 시너지 없다네.”
“왜, 너도 퀀텀이잖아.”
검지를 흔드는 수지가 단호하다.
“알다시피 나의 우상은 너희 회사 CEO 타스라고.”
“!”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맨날 미술관에 처박혀 있는 신세라. 이번 생은 글렀으니 다음 생을 기약하며 혼자 살란다.”
타스 이름을 듣고 우마리는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고 싶다.
‘아니야, 좋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내가 친구의 아까운 이번 생을 소생시켜 줄까.”
“정말.”
“로만 서울지점 프로젝트 잘 나갔잖아.”
“그렇지 완죤, 대성공이었잖아.”
“내일 그가 서울에 와. 이 언니가 연결해줘.”
“됐다! 농담이야. 똑똑한 사람은 너 빼고 다 무서워.”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매니저가 다가와 수지를 본다.
“손님, 소리를 낮춰 주시면···”
우마리가 대신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 작가의말
감정은 연결을 좋아합니다.
존중은 존중으로, 배려는 배려로 , 감사는 감사로······
분노는 분노로 화는 화로 짜증은 짜증으로······
오늘 하루, 당신은 어떤 감정으로 연결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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