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지룡 (127)
“ 뭐 어때요. 볼 사람도 없는데. 위지 어른을 비롯한 사람들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변경 근처까지 오셨다가 다시 나가시면서 연락을 보내오시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보기에도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마존방이 무너지고, 많은 이들이 새롭게 시작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뭔가 좋지 않은 기분이 들거든요. 들리는 이야기로는 군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고요. ”
용의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 마존방이 무너지고 나서 군대가 제자리로 돌아갔다고 들었는데? ”
그러자, 석지란이 답했다.
“ 맞아요. 자신의 주둔지역으로 돌아갔죠. 그런데, 훈련을 상당히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변경에서는 다시 토벌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어요. 많은 변경지역의 부족들이 더 멀리 떠나는 것이 자주 교역을 가는 상단의 눈에 보인다고 하더군요. ”
“ ? ”
“ 그런데, 제 생각은 달라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모를까? 지금 변경에는 중원을 넘볼 정도의 힘이 없어요. 굳이 다시 변경지역을 토벌할 이유가 없죠. 그것은 당신이 더 잘 알죠? ”
용은 고개를 끄덕였고, 석지란은 계속 이야기했다.
“ 따라서, 제가 보기에는 뭔가 조정에서 일을 꾸미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조정은 보수파에 의해 장악되어 있는데, 이들은 강호인들을 좋아하지 않죠. 그리고 이미 중원을 장악한 마존방을 괴멸시킨 이들이라 자신감에 충만해 있을 것이고요. 아마도 그들이 뭔가를 획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
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이야기에 동의를 표하고는 물었다.
“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야. 만약 그들이 뭔가를 획책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언제쯤 일이 벌어질까? ”
자신 없는 표정을 하며 석지란이 답했다.
“ 알 수가 없죠. 무슨 일을 꾸미는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다만 군대가 훈련하는 모습을 들어봐서는,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은데, 정확하게 언제라고 할 수는 없군요. ”
그러자, 용이 대답했다.
“ 하여간 당분간은 아니라고 봐도 되겠군. 그럼 나는 당분간 중원이나 둘러보겠소. 당신들 지내는 것에 부족한 것은 없소? ”
석지란이 낙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 당분간 그냥 계실 줄 알았는데, 또 가시는군요. 무슨 일이신지 모르겠지만, 저희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빨리 당신 일이 모두 끝났으면 좋겠군요. ”
용이 웃으면 이야기했다.
“ 하하, 내가 할 일은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으니, 곧 당신이 좋아할 것 같군. ”
그들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제갈혜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용이 보기에 그녀는 별로 변한 것이 없어 보였다.
아마도 아직 그에게 다소간의 감정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용은 그녀에게 독심술을 펼쳐 보았다.
‘ 그렇군, 아직 나에게 감정이 있군. 그래 이번에는 너하고 같이 돌아다녀 보도록 하지. 아마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야. ’
용이 제갈혜지를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석지란이 살짝 그의 옆구리를 꼬집으며, 전음을 보냈다.
‘ 흥, 혜지를 안고 싶은 모양이죠. 알았어요. 자리를 마련해 드릴게요. 그렇다고 그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보지는 마세요. 우리는 뭐 질투심이 없는 줄 아세요? ’
용은 기가 찬 얼굴로 석지란을 쳐다보았다.
별로 변명하고 싶은 생각이 없던 용은 석지란을 번쩍 안아 들더니, 침상으로 데리고 갔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은 모든 여인이 놀란 모습을 보였다.
석지란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고, 나머지 여인들은 웃으면서 자리를 피해 주었다.
용의 애무 솜씨는 변한 것이 없었고, 여인의 민감한 부분도 변하지 않았다.
석지란은 오랜만에 부군의 품속에서 자지러졌으며, 방안은 두 사람이 내뿜는 열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용은 오랜만에 자신의 여인 품속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
용은 며칠을 머물면서 여러 가지 일을 보았다.
여러 상단에 여러 가지를 주문해 두었고, 사천 전장을 통해 여러 개의 창고를 빌려, 주문한 것이 오면 보관하도록 했다.
하나의 상단에 주문하지 않은 것은 보안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석지란 등에게 물건을 어떻게 분류하고, 자신이 없는 동안에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간단한 것을 그녀들이 소일삼아 해 두기를 청한 것이다.
석지란 등은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동시에 상단을 통해 여러 정보를 알아보도록 했다.
상단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정보를 얻기에 유리했다.
그동안 용은 밤에 돌아가면서 여인들과 즐겁게 지냈는데, 제갈혜지와는 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다른 여인들이 의아스럽게 생각했는데, 용이 떠나면서 그 이유가 밝혀졌다.
“ 이번에 혜지를 데리고 떠날 생각이오. ”
당사자인 제갈혜지는 물론이고 다른 여인들도 놀란 모습을 하였다.
석지란 만이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물었다.
“ 무슨 이유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그래, 얼마나 오래 다니실 생각인가요? ”
용이 답했다.
“ 제법 걸릴 것 같소. 혹시 용병들에게서 연락이 오면, 내가 연락을 할 때까지는 계속 호상단을 하라고 해 주시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자신들의 본 실력은 절대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해 주시오. ”
석지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 걱정하지 마세요. 위지 어른이 어떤 분이신데요. 당신의 이야기는 그대로 전해드릴게요. 몸조심하시고요. ”
그러고 나서 제갈혜지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 잘 모셔라. ”
“ 네, 성심껏 모시겠어요. ”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제갈혜지는 석지란을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용은 궁금하였지만, 곧 알 수 있으리라 생각을 하고 다른 여인들에게도 인사한 다음, 제갈혜지를 동반하고 중원으로 여행을 떠났다.
*****
마존방이 군대에 의해 몰락을 당한 후, 정도 문파들은 자신들의 지역으로 움직여 재건의 움직임을 보였다.
구대문파 중 화산파와 무당파는 사실상 재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화산파는 아예 생존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무당파는 화를 피한 사람들조차 결국 마존방에게 모두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외의 문파들은 그나마 문파를 보존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지만, 역시 사정이 좋지는 않았다.
구대문파, 아니 이제 칠대문파가 된 대문파는 봉문한 상태에서 무공수련에 박차를 가했다.
이들이 봉문(封門)을 한 관계로 칠대문파의 속가제자들도 큰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속가제자 중에서도 고수들은 이미 죽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오히려 녹림도나 하류배들에게 고초를 당하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세가나 다른 정도 문파도 사정이 그리 다르지 않았다.
마존방과의 전투에서 타격을 받아, 고수들이 워낙 많이 죽었으므로 재건의 움직임이 쉽지는 않았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주로 아이들과 여인들이었고, 남자들은 주로 무공이 낮은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자신들을 지키기도 쉽지가 않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이 정도로 생존자가 있는 문파들은 다행이었다.
아예 멸문한 문파들도 상당했다.
반면에, 과거에 정도 문파들에 천대를 받던 녹림도나 시정잡배들이 마존방의 중원을 장악한 시절에 무공을 익혀, 어느 정도 수준의 무공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었다.
다만, 이들의 무공수준이 일류 이상인 예는 없었다.
마존방에서 배웠다고 하지만, 나이가 너무 많은 상태에서 배우는 등 여러 가지 제약으로 대성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마존방과 정도 문파들의 뛰어난 무공서를 가지고 간 자들도 있었으나, 스승 없이 그런 것들을 제대로 배울 수는 없었으므로 일류고수가 될 수가 없었다.
가끔 그들이 가져간 무공서들이 시중에 나타나, 피바람을 일으키는 예가 발생했지만, 그뿐이었다.
일류고수는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의 지역으로 돌아온 정도 문파의 사람들과 그 지역에 있는 녹림도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곤 했는데, 정도 문파의 사람들이 녹림도에게 당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심지어 녹림도에게 잡혀가 욕을 당하는 여인들도 많았고, 잡혀간 아이들이 다른 곳으로 인신매매 당하는 예도 있었다.
이런 이유로 자신들을 지키기 힘들다고 생각한 문파들은 자신들의 지역을 떠나 산간지역 등 녹림도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가는 경우도 제법 있었다.
중원의 각 지역은 과거 마존방에서 어느 정도의 수준을 익힌 녹림도들이 사실상 장악하고 있었다.
그나마 과거 세가 중에서 몇 곳이 어느 정도 힘을 잃지 않아, 위세를 부리고 있는 정도였다.
변경에 있던 모용세가 대표적인 예에 속했고, 서역으로 떠나는 임시 상단의 호상단으로 참가하였던 제갈세가의 경우에도 막심한 피해를 보지는 않았으므로 어느 정도의 위세를 부리고 있었다.
그래서 두 세가의 지역에는 녹림도가 거의 없었다.
이처럼 중원은 새로운 질서가 아직 잡히지 않아, 혼란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
용은 제갈혜지와 제갈세가가 있는 하남으로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하남으로 움직인 것은, 제갈세가가 하남에서 자신들의 지역을 잘 지키고 있다고 하여, 제갈혜지가 궁금해할 것 같아, 용이 제갈세가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그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 너는 왜, 힘이 있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긴다고 생각하느냐? ”
용과 같이 살아온 지도 제법 되었으므로 제갈혜지는 그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그의 생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과거 그녀가 가지고 있던 오만함이나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한 업신여김 등은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고아들을 훈육하면서, 가지고 있던 그런 감정들이 자신도 모르게 사라져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의 생각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용이 살아온 행적을 모르고 있었으므로 용의 행동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제갈혜지는 그의 물음에 답했다.
“ 글쎄요. 우월감 때문이 아닐까요? ”
그러자, 용이 웃으며 말했다.
“ 후후, 그럴지도 모르지. 태어나서 보니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었고, 하인들을 다스리는 어른들이 그들을 제대로 다루기 위한 한 방편으로 자식들에게 하인들은 미천한 존재이므로 아무렇게도 해도 된다고 가르치는 것이 대부분이니 우월감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 ”
“ ··· ”
제갈혜지도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교육을 받았던 적이 있으므로 용의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것보다는 말이야. 근본적으로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경험이 없으니, 그런 사람들의 삶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고, 그들은 당연히 나에게 당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게 된 것이지. 물론 이런 생각에는 앞에서 말한 교육의 위력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말인데, 힘 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경험해 본다면, 세상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갈혜지가 머리를 저으며 말했다.
“ 물론 생각이 바뀌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아마도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 같군요. 처음에는 충격을 받겠지만, 결국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지 않을까요? ”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용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수긍했다.
“ 그렇군,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없겠군, 그럼 아예 세상을 바꾸어 위치를 바꾸면 어떨까? ”
제갈혜지는 눈이 동그랗게 되어 그를 쳐다보았다.
가끔 용은 제갈혜지를 놀라게 했다.
제갈혜지가 특히 놀라는 것은, 용에게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할 힘이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이미 다른 여인들로부터 용의 능력을 들은 적이 있으므로 용이 말하는 것 자체가 바로 현 세계에 벌어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 정말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죠? 당신의 말은 역모를 저지르겠다는 이야기도 돼요. 가장 존귀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황제이니까요. ”
그 말에 용이 웃으며 답했다.
“ 하하하, 그럴 수도 있지. 황제라도 측간에 안 가나? ”
허탈한 음성으로 제갈혜지가 이야기했다.
“ 당신이야 뭔 짓 못 하겠어요? 자기 생각이 맞는다고 생각되면 비도덕적인 일도 하는 사람인데요. ”
그녀의 말에 용이 웃으며 말했다.
“ 하하하, 넌 아직도 내가 널 강압적으로 가졌던 것에 대해 불만이 많은가 보구나. 중원 천지를 둘러봐라. 나만 한 남자가 어디 있느냐? 넌 운이 좋은 거야. ”
제갈혜지는 얼굴을 찡그리며 이야기했다.
“ 운이 좋죠. 당신 덕분에 살아있으니까요. 그렇다고 당신이 잘한 것은 분명히 아니에요. 그 이야기는 그만 해요. 이야기한다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되었는데, 제가 불만을 품고 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지금의 저는 당신을 좋아해요. ”
마지막 말은 부끄러웠는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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