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불편한 진실. (1)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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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아샤르 관료들은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어어, 현기증이... 내 약이 어디 있더라...”
“애들을 좀 보고 싶어요...!”
“추가 수당도 좋지만, 그보다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아우성이 터지는 조정의 분위기에, 요즘 흰머리가 부쩍 생기기 시작한 총재가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기존의 관료는 약 5천. 충원했다고 해도 채 1만도 안 되는 관료로, 그것도 8개국 전부를 통치한다는 것은 쉽지 않군요. 안정된 사회도 아니고 변혁에 변혁이 이어지니...”
황제가 갸웃거렸다.
“더 붙여주겠다고 해도 다들 거절하잖아?”
“아무래도 지상인 출신자들을 신뢰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모양입니다. 구 지상인 관료들에 대한 기초 교육도 어느 정도 끝나 있지만, 좀체 쓸 생각을 하지 않네요.”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의 심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원숭이가 총을 들고 말을 한대도, 전우로 신뢰하여 등을 맡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관료는, 직업군이 다양하지 못한 아샤르 안에서도 상위직업이다. 함부로 남의 손을 빌렸다가 자기 일을 망치는 자존심 꺾이는 사태를 용납할 이 역시 많지 않았다.
아샤르 관료들도, 앞으로 무대가 될 지상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인 것이, 아무래도 나쁜 의미로 감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따위 정치로도 나라가 다들 돌아갔단 말입니까?”
“그들에겐 로사가 없었으니까...”
황제의 변호에도 다들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시설물 하나 갈아달라는 요구가 1년씩 책상에서 썩고 있었는데도 내버려뒀답니까? 다들 마음들도 좋네요, 참...”
반면, 신영토의 국민들이 감탄하는 부분이 이런 부분이었다. 일례로, 비를 막고자 설치한 가림막이 떨어질 듯 위태해서 진정을 넣었지만, 결국 사람이 하나 죽고 난 뒤에야 부랴부랴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라는 것도, 책상머리를 지키고 있던 시장이 활동복을 입고 하루 언론에 노출된 것이 끝이었다.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마련이다.
그리고 보통은, 누가 죽어도 안 바뀐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진정을 넣으면 당일로 사람이 나오고, 로사에 접수되면 바로 수리로봇이 출동하거나 정부에서 위탁한 업자가 나온다. 늦었다가는 위탁 자체가 취소되니 그들도 신속하게 움직였다. 로사는 사소한 것도 빼먹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로사가 있어도 사람의 손을 타야 하는 부분은 있기 마련. 고양이 손도 아쉬움에도 그들은 지상인 관료들과 같이 일하기를 싫어해, 오히려 과로 쪽을 택하곤 했다.
“지상인들이 싫거나 혐오대상이라 그런 것보다도, 바보들과 같이 일하기 싫다는 일종의 자존심이죠.”
“나랏일에 대한 열정은 좋지만 과하면 곤란해. 물론 우리 관료제에 비하면 매우 미개한 수준이었지만, 현지 사정을 잘 아니 자문정도는 해도 좋지 않을까?”
“당장 어제만 해도 동일본국 미야기 현의 사례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보다 더한 사례도 얼마든지 있고요.”
사건의 발단은 미야기 현의 센다이에 파견된 한 여성 관료에게서 시작되었다. 사전 조사를 마친 후 정부업무 위탁을 위해 업자를 수소문했는데, 현지 관료 출신에게 자문하여 추천을 받아 들여놓은 업자가 알고 보니 그 관료의 친인척에 납품 비리 전적까지 있었다.
당장 위탁을 취소한 그 관료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 미쳤어? 이걸 중앙에서 알면 아예 관직이 막혀버린다는 사실을 몰랐어?”
고의적인 부패가 적발되면, 해당 관료는 바로 재임용 가능성이 없는 축출을 당한다. 다시는 관직을 맡을 수 없다는 것은, 국정에 참여하고자 어려서부터 꿈을 키운 이에게는 치명적이었다.
하물며 그녀는 간부학교 출신이었다.
“바로 보고하겠다. 또한 그대는 파면이야.”
그런 식으로, 근 한 달 사이에 보고된 비리 시도는 무려 700여 건, 그것도 전국에 걸쳐 있었다. 특히 뇌물이 활성화되었던 북한 지역은 가장 심각했다.
권력자에게 뭔가를 바치지 않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았던 지역이라, 황제가 부총재인 케르트 아멜라인을 총독으로 보낼 정도로 신경을 써야 했다.
“차츰 나아지겠지. 예전처럼 약은 수가 통하지 않음에 정신 차리는 녀석들이 아예 없지는 않을 거고... 앞으로 그런 사회 분위기를 보며 자라나는 아이들이라면...”
“과한 기대는 하지 않으심이 좋을 수도 있습니다.”
총재는 낮은 한숨으로 황제의 기대를 부정했다.
“당장 우리 식의 교육제도를 적용한 탓에 시험이 대폭 줄어든 일은...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목표를 잃었다고 울상인 아이들도 있거든요.”
동경대와 와세다대, SKY를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들은 순식간에 절망했다.
인천에 사는 아이들은 인천에 소재하는 대학에 가야 했고 삿포로에 살던 아이들은 동경대를 갈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껏 공부한 것은 뭐가 되나요?”
한 남학생이 아샤르 인터넷, 지드팃에 올린 영상에서 외쳤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기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이 아니라 전공에 따라 학교를 가야 한답니다... 그동안 제가 들인 노력은 어디서 보상받아야 하나요?”
자문위원회에서도 이의는 당연히 제기했다.
“대체 왜, 지금껏 공부한 아이들의 노력을 허사로 만드시겠다는 겁니까?”
“그 공부가 사회 발전과 안정, 궁극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시민으로 성장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과감하게 뜯어 고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물론 우리도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면 좋아. 하지만 그걸 못 따라간다고 핍박하는 통에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친구보다 적을 만들고, 막상 일정 기준을 통과하면 이제 끝났다 하며 안주해버리지 않는가?”
“...하지만 부모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왜 그렇게 자식에 목을 매는, 아니, 자식의 공부에 목을 매는가 하면, 자기들이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자기가 못나기 때문이다. 내세울 것이 없으니까 자식의 꿈이 뭔지도 모르면서, 우리 애는 무슨 대학에 무슨 회사니 자랑하고픈,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기가 질린 건지 어이가 없는 것인지,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배운 이가 사회에서 성공하느냐 아니냐는, 학교에서 배운 것과 스스로 깨달은 것을 가지고 사회에서 얼마만큼 활용했는가로 갈라지게 할 것이다. 많이 배운 자보다, 배운 것을 잘 써먹는 자가 더 대접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우리는 그런 이를 인재라 한다네.”
그렇게 되어 결국 교육 개혁도 진행 중이었다. 총재가 말했다.
“수레바퀴가 가는데 개미를 밟고 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밟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렇다고 수레를 업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지 않아도 바퀴 축들이 끙끙대는데...”
황제는 실소했다.
“장래의 인재가 성장하는 것을 기다릴 틈은 없지. 큰 틀은 우리가 잡아주고... 차츰 그 틀에 순응하는 자들을 끌어내야 해. 반드시 어디인가에 있을 것이다.”
인재는 난세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독 난세에만 맞추어 많이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고착화된 사회에서는 눌려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예를 들어 성은희... 아니, 이제 성남작이 된 그녀가 능력적으로 받쳐준다면 좋은 사례가 될 거다. 술집 여자도 자기 의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사례가 되지. 우리 관료 중에서 지상인 불신이 적은 자를 골라서, 그 밑에 사람을 붙여주고 신뢰관계를 쌓는다면 그런 불신도 차츰 사라질 수 있겠지.”
처음에는 루이코를 그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자신이 취하는 바람에 그건 물 건너갔다. 이제는 통합의 상징, 그 가치가 더 크니 그것도 좋은 결과지만...
“도시 기반 공사는 어떻게 되어 가지?”
“진행은 순조롭습니다. 다만 이만한 규모의 중력 제어는 시간이 걸릴 일이라... 다음 달이면 완료될 겁니다.”
아무리 작은 공중도시라도 수십조 톤. 지상에 그대로 눌러앉으면 지반침하는 필연이라, 기반부 공사가 끝나도 중력제어를 통해서 아주 살짝 허공에 부유시키는 형식을 취하게 된다.
자원의 원활한 수송을 위해 대마도와 북만주에 지상 고착식 우주항 공사가 시작되었다. 또한 종전 조약에 따라 지구측에도 하나 만들어주도록 되어 있다.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우주항 관리 자체는 무려 지구 측에 맡기는 데다, 관광용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는지라 유치전에 불이 붙고 있었다. 덕분에 외무성도 묘한 아부에 시달리고 있었다.
신설된 아샤르 상업성에는 서일본 출신인 이시하라 겐지가, 외무성에는 미국 출신인 알론 테일러가 등용되었다. 이시하라는 일본 경련단 자문 경력이, 알론 테일러는 로비스트 출신 경력이 인정되어 뽑혔다. 다만 차관급에 해당하는 승(承)에는 아샤르 관료가 붙어 이들을 보좌하도록 했다.
정식 통치부터 불과 3개월. 하지만 이런 저런 변혁은 무척 빠르고 거리의 모습도 바뀌어가고 있다.
공중부양바이크인 사이터가 일반 바이크를 대체하고 버스가 아샤르 버스인 에포로 바뀌고 있으며, 휴대전화가 사라지고 정보팔찌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더불어 이달 말에는 전국요리대전 예선이 각 공중도시에 펼쳐지고 본선은 내궁에서 직접 주관하여 치를 예정이다.
온 나라가 정신없이 바쁜, 하지만 모든 것이 새로운 축제였다.
물론 잘 돌아가는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얻는 자가 있으면 빼앗긴 자도 있는 법. 그리고 어떤 이는 그 모든 영역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이영이 그러했다.
분명 내 집인데 왜 이렇게 어색하냐.
이영은 대문 앞에서 잠시 서성였다.
비천한 너희와 나는 다르다. 그리 선언하듯 무척 높은 담장의 집. 마치 성채 같다.
하지만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이런 게 어쩐지 싫었다. 소위 돈 많은 도련님 코스는 다 밟아왔음에도 그런 것은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날, 반복된 꿈에서 깨달은 과거의 기억은 그의 본질을 단번에 일깨웠다.
상상하기도 힘든 머나먼 과거, 자신은 흙과 풀로 지은 움집에서 태어났고...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 어미의 젖이 나오지 않아 울며 보챈 것 같긴 하다.
배고프고 아픈 마음에 무척이나 울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어머니의 힘없는 포옹 이외에는 없었다.
깡마르고 초췌한 어머니의 검붉은 얼굴이 슬픔에 물들었고, 마지막 순간 고통을 덜어주려 안아준 그 팔의 감촉과 안타까움의 기억은, 이 부유함과의 괴리를 크게 느끼게 했었다.
물론 지금의 부모는 풍요를 준 사람. 또한, 아버지와는 기질이 맞지 않아도 어머니와 누이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죽어버린 또 하나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대로 나 혼자 복락을 누려도 되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니다. 이제는 아닌가...
그 때에는 전생이나 후생, 이승과 저승 개념도 부족했을 것이지만, 그래도 그 때의 내 어머니는 내가 좀 더 행복하게, 즐겁게, 편하게 살기를 원했을 것이다.
우주의 먼지 입자로 변해 지금도 태양계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가난하고 초라하면서도 사랑하고팠던 내 옛 어머니는, 분명 그렇게 원했을 것이다.
벨을 누르고 개 짖는 소리가 들리자 이영은 조금 울컥했다. 혈통 있는 핏불 테리어라더니, 잠시 자리를 비운 주인도 몰라보고 함부로 짖어 족보를 드러내다니...
콱 팔아버릴까 보다.
“누구세요?”
“접니다. ...아들.”
꽤 무거운 나무문이 열렸다. 벨이 울리기 전 조금 소란스러웠던 것 같지만 그럴 법도 할 것이다.
어쨌든 손 귀한 집의 외아들 아닙니까.
“영아...!”
정원을 구부러지는 중간 계단. 아들은 뛰쳐나온 팔을 벌려 모친을 맞았다.
“안 죽고 살아왔어요. ...혹시 우시는 겁니까?”
보자마자 두들겨 맞지 않음을 다행으로 생각하자.
한참 포옹한 모친에게 끌려 집안으로 들어가니 제길, 그러니까 이 졸부 분위기는 아무래도 나와 안 맞다.
“처음에 TV를 보고 기겁해서...”
“알 만 합니다.”
“그리고, 다쳤다고도 해서 얼마나 기겁했던지...!”
그의 어머니, 유소미 씨는 끌어 앉힌 아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괜찮니?”
“네. ...아버지는요?”
“잠시 나가셨단다. 술 한 잔 드시는 모양이지.”
낮부터? 하기야 최근은 성질이 나실 만도 할까.
“지금 어디에 살고 있니?”
그의 거처는 황궁에서 멀지 않은 독신관료를 위한 관사다. 방 두 개와 작은 거실, 욕실 겸 화장실과 주방이 갖춰진 곳으로, 불편하게 지낼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번 와볼 생각도 하지 않았니?
모친의 원망에 그는 뒤통수를 긁었다.
“그렇게 됐어요. 하지만, 두 분도 절 찾으실 생각은 하지 않으셨나요?”
“네가 그... 황제 옆에 붙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하지만... 아시지?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셨지.”
“...역시... 땅 문제가 컸나보죠.”
“그래.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갖은 수를 써서 모으신 건데... 차라리 김일성 밑이 낫겠다고...”
“집이나 현금 자산은 건드리지 않았잖아요?”
“그럼 뭘 해. 거의 사용할 수가 없잖니. 게다가... 네게 상속도 불가능하고...”
현금부자들의 분노는 격렬했고 무엇보다 박탈감이 굉장히 컸다.
구 남한의 빈부격차는, 선진국 대열에 오른 국가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지난 세월, 중산층의 꾸준한 붕괴가 가져온 결과다.
돈이 없으면 사람대접을 받기 힘들다는 인식은 온 나라에 깔려 있었다. 아이들의 육아도 포기하고 일에 매달렸지만 나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신분제는 폐지된 지 오래였지만 돈으로 새로운 신분이 생겼다.
개천에는 이제 미꾸라지밖에 살지 못했고, 선점한 자들은 그렇지 못한 이들을 비웃고 우월감을 만끽했다.
그 꼭대기에서 억지로 끌어내려져 남과 같아진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견디기 쉽지 않겠지.
그저 돈만 많았던 부모는 경제계급이 그리 높지 않을 터. 생활이 팍팍해졌다는 느낌을 아니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느닷없이 TV에 두 번이나 나오지 않나... 게다가 집을 이렇게 만든 사람 옆에 있지를 않나...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고...”
“그러니 저라도 일을 해야죠.”
어깨를 으쓱한 아들에게 어머니가 조심스레 물었다.
“너, 무슨 직책인데...?”
“황제 비서관 3급요. 아직 말단이에요. 그래도... 황제 집무실 바로 밖이라고요. ...나름 출세한 셈이겠죠.”
“...그래?”
“네. 좋은 차도 타 봤으니까요. 재벌 회장님들이 한 번씩은 다 타봤다는, 그런 고급입니다.”
말하자면 휠체어죠, 그 말은 꿀꺽 삼켰다.
사실 이건, 첫 월급을 탄 자신에게 황제가 한 말이다.
“좋은 차 태워줬잖아. 그 사람들이 꼬박꼬박 타고 나오기에 좋은 것 같았는데... 아닌가?”
지나가듯 말했지만 그 말에 담긴, 지상에 펼쳐졌던 부조리에 대한 황제의 짙은 혐오를 엿볼 수 있었다. 툭하면 쉽게 책임을 회피하려는 자들은 세상에 넘쳐난다.
어머니는 조금 못 미더운 듯 반문했다.
“하지만 그들이 널 필요로 할 일이 있겠니?”
“...뭐, 그런 것보다... 나중에 한 사람 정도는 데리고 올지 모릅니다. 집에 대접할 것은 없어도 구경 정도는 시켜주고 싶어서... 아버지가 괜찮으실지는 모르지만...”
생각 이상 집의 분위기는 엉망이다. 조락했다는 느낌은 이런 것일까.
어쨌든 아버지가 올 때까지는 기다릴 거고, 자고 갈 건지 아닐지는 그 때 결정하자.
이영과 그의 집안이 조락해버렸다면, 반대로 수직상승 천정돌파 엘리베이터의 대표라 할 만한 부부도 있었다.
“...이거, 정말 받아도 되는 건가?”
거실에 앉은 아사카와 노부유키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안 어울리는 옷을 입는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관광업에 종사하던 그는 벌이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또한 25년 기간의 주택할부를 갚기 일보 직전인 그의 집은, 흔히 볼 수 있는 낡고 평범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사시지요. 따님과의 거리도 가깝고...’ 라며 황제가 내준 이곳은, 예전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었다. 베라 시내 외곽에 있는 주택가의 한 저택으로, 원래는 출궁한 자식 없는 후궁들을 위한 구역이었다. 선황의 차비와 세 후비들의 거처도 멀지 않았다.
황족이었던 이들을 위해 준비한 만큼 그 격식 자체는 상당해, 소시민 부부는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더불어 노부유키는 황제의 장인에게 주어지는 국구(國舅) 칭호에, 일대지만 후작위을 받아 각하의 호칭이 붙었고 히토미는 대부인이 되었다. 또한 3체의 론비샤가 따라 붙었다.
루이코가 르아냐, 그리고 황궁에서 느꼈던 모든 것을 그들도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예전처럼 돌아가기 어렵겠지?”
남편의 묘한 한탄에 아내는 동조했다.
“...그렇겠지요. 그래도... 루이코를 보기 어렵다면 그것도 슬플 거에요. 다만...”
“다만...?”
“다만 제 친구들이 참...”
“아, 나도 그랬지.”
아버지는 다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직장 동료들도 딸을 아는 사람은 있었다. 갑자기 서로 대하기 어려워진 것은 당연한 현상일지도 몰랐다.
“저기... 사표 쓰실 건가요?‘
평소 친분이 있었고 몇 번이나 술도 같이 먹었던, 자신의 사장이 그 땐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물어왔었지.
“...나가야 합니까?”
“귀족을 부리고 있다면 광고가 될 테지만, 아무래도 어렵겠지요? 게다가 모두가 불편해할 테니까요.”
결국 사표를 던진 후, 모처럼 울적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술 한 잔을 제의하며 전화한, 기존의 친구들과도 급격히 서먹해졌다. 이는 히토미도 마찬가지, 동네에서 마주치던 사람들은 그들을 몹시 어려워했다.
물론 딸 팔아서 신세 고쳤다는 말을 감히 하는 이는 없었지만, 그렇게 말하는 듯 허리를 숙이는 시선을 부부 쪽이 더 견디지 못했다.
호사는 더해졌지만 주변인을 잃어버린 아픔은 크다. 역시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옷이 있는가 생각했지만, 막상 그들의 딸은 정말 무겁고 큰 옷을 입고 있는 셈이었다.
남들은 팔자를 고쳤다고 부러워도 하고 아마 욕도 할 것이지만, 그들 부부에게 있어 사실과 다르다, 우리도 어렵고 불편하다 말할 정도의 용기는 또한 없었다.
똑같은 입장인 에노모토 일가와, 황제가 몰래 지원해줄 미야시타 일가도 별 수 없이 이리로 이사온댄다.
이웃이 생기는 그때까지는, 이 어색함과 외로움을 부부 둘이서 견뎌야 할 판이었다.
“...내일, 루이코나 만나러 갈까?”
“좋죠.”
그나마 외동딸이 큰 위안이었다.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다음 장에서는 이영은 황제로부터 매우 황당한 제안을 받습니다. 과연 또 어떻게 되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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