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날 수 없는 작은 새. (2)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Ⅱ
그녀의 아침은 단조롭고 또한 분주하다.
길어 놓은 물을 아궁이에 올리고 냄비가 끓는 동안 간단한 청소를 한다. 자는 이를 깨우지 않기 위해 낮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바깥부터, 그녀는 빗자루를 들고 천천히 쓸어 나갔다.
한참을 쓸어 땀이 흐를 때쯤이면 물이 끓을 것이다. 아주 약간 찻잎 가루를 물에 넣어 이제 일어날 이에게 갖다 주고, 남은 물로는 가루를 낸 보리를 넣어 죽을 만든다.
그 다음의 할 일을 열심히 생각하던 그녀의 귀에, 문득 목소리가 들렸다.
“열심이다...”
말을 걸어줄 이웃은 많지 않았었다. 그녀는 항상 조용했고, 사는 곳은 대로변에서 꽤 떨어진 외딴 곳이라 왕래는 많지 않다.
의아함에 비질을 멈춘 그녀가 고개를 드니 소년, 아니 이제는 청년에 가까워진 이의 웃는 표정이 보인다.
천으로 얼굴은 가렸지만 눈매만으로도 알 수 있다.
아아... 이게 꿈은 아니겠지...?
“프람...?!”
“오랜만이다...”
반가움에 성큼 뛰어들 뻔 했지만 그녀는 멈추었다. 서로의 처지, 그리고 그의 뒤에서 두리번거리는 또 다른 사람을 깨달은 탓이다.
그녀, 샹은 두 손을 모으고 공손히 절했다.
“오라버니...!”
유키나에게는 몇 번이고 들었고 세리사는 끝끝내 거부한 이 말. 하지만 그녀에게서 듣는 것은 또 색다르다.
칼스는 되도록 담담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안부를 묻는 목소리에는 어쩔 수 없는 반가움이 묻어났다.
“이 장군은...?”
“아직... 하지만 깨우겠습니다...!”
앞치마에 손을 털고 빗자루를 내던진 그녀는 대청으로 올라갔다. 어찌나 서둘렀던지 한번 넘어질 뻔 했다.
“부군(夫君)...! 손님이 오셨어요...!”
다급한 마음에 몇 번이고 부르자, 비로소 인기척과 함께 졸린 목소리가 대답한다.
“...누구기에 그렇게 소란이오...? 어떤 얼간이가 새벽 댓바람부터...”
벌써 대청까지 들어선 칼스는 샹의 어깨 너머로 조금 크게 말했다.
“얼간이는 맞지만 이미 새벽은 아닙니다.”
약간의 침묵이 있은 후, 요란스러운 소리로 방문이 벌컥 열렸다.
수염이 짙어지긴 했지만 항상 유들유들하고 여유로웠던, 하지만 지금은 급하고 놀란 표정이 역력한 그다.
“이게... 누군가...!”
눈을 비빈 이목은 손을 뻗어 칼스의 어깨를 잡았다.
“살아 있었구만!”
“뭡니까. 어디서 죽은 줄 알았나 보죠?”
“그 참, 말버릇은 여전하군 그래.”
이목이야 반가워서 그런다지만, 떨어져서 바라보는 세리사는 조금 마음이 편치 못했다.
칼스는 왕세자이자 황족인데, 그 옥체에 지상인이 함부로 손을 댄다. 그래도 칼스가 가만히 있어 굳이 나설 이유를 찾지 못했다.
주변을 돌아보며 손님이 물었다.
“어째 살림살이가 그대로입니다?”
“다들 어려운데 나만 변하면 좀 그렇겠지?”
그 청렴함이 오히려 그의 재산이다.
그래도 처음 방문했을 때처럼 궁색한 티는 나지 않는다. 낡은 집이지만 부지런히 닦고 쓴 흔적이 눈에 보인다. 누구 덕인지는 당연하다.
“차를... 끓이겠습니다.”
샹이 빠른 발걸음으로 부엌으로 사라지자, 칼스가 쿡쿡 웃으며 물었다.
“어느 정도 걸렸습니까?”
“...뭐, 오래 가진 않았다네.”
정리되지 않은 머리를 긁던 이목이 복면의 세리사에게 눈길을 주었다.
“별 일일세. 일행이라니...”
“그렇게 됐습니다.”
칼스도 머리를 긁었다.
구리로 만든 잔에 담아 샹이 가져온 가루차는, 쓴맛이 짙게 감도는 하급이지만 그래도 나름 먹을 만했다.
“그래, 이번에는 어쩐 일인가?”
“지나가다 들렸습니다. 오래 머무르진 못할 겁니다만, 그래도 꼭 들러보고 싶었지요.”
“그건 고맙지만, 좋지 않을 때 온 셈이군.”
“알고 있습니다. 이곳도 이미 전쟁터지요.”
칼스는 내심 걱정했다. 그러나 지상의 역사에 관여하는 것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할 일이다.
세리사는 차에 손을 대지 않았다. 맛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아직 천과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벗어도 돼.”
“괜찮아?”
칼스의 말에도 세리사는 망설였다. 정체 문제는 어떻게 하고?
반면 이목과 샹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옷차림은 남자의 것인데, 목소리는 아직 앳된 여자다.
“이 사람들은 괜찮아.”
완전히 안심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괜찮다니 그런 것이겠지. 그렇지 않아도 조금은 답답했다.
이목과 샹은 다시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천 사이로 눈만 내놓고 있어 미처 몰랐지만, 아직은 어린 티가 꽤 남았지만 지금의 소녀는 굉장히 예쁜 아이다.
프람도 굉장히 잘 생긴 소년이지만, 이 아이도 그에 못지않다.
쏟아지는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쓴 차를 입에 댄 세리사는 조금 얼굴을 찌푸렸다.
이 지상이란 곳은 하나같이 부실하다.
이목이 말했다.
“동행이라 해서 그냥 그런 줄만 알았는데...”
“사정이 있어요. 덕분에 좀 같이 다녀야 합니다.”
“자네 나라 사람인가?”
“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다음 왕이 될 분이죠.”
사례가 들린 듯 조금 헛기침을 한 이목이 반문했다.
“자네의 나라는... 여자도 왕이 되나?”
“네. 그러니 호위 삼아 제가 있는 것이죠.”
더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목은 참았다. 반면에 샹은 계속 묘한 표정이었다.
여자가 봐도 매우 아름답다. 프람과는 어떤 관계일까.
“뭐라고 부르면... 아니, 함부로 부를 수 없겠구만...”
“옌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그건 그렇고... 다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역시 지금 상황이 안 좋은 모양이죠.”
“상당히. 이러다가는 언제 위험해질지...”
“염파 장군은요?”
“열심히 막고 계시지만 역시 병력이...”
이목은 괴로운 듯 말끝을 흐렸다.
장평에서 입은 손실로 나라 안 장정의 씨가 말라, 거짓말을 좀 보태자면 어린애가 밭을 갈고 처녀가 집을 지을 지경이다. 실제로는 그리 거짓말도 아니다.
진군은 가깝게는 20리, 멀게는 50리 정도에 걸쳐 다수의 군영을 짜고 한단을 포위하고 있다. 그 숫자는 20만이 우습게 넘는 반면, 한단의 병력은 5만을 간신히 웃돌 정도였다.
공성전이란 것이 쉽지 않고 염파가 잘 막아, 아직까지는 괜찮지만 나중을 기약할 수 없다.
“자네라도 도와준다면 힘이 크게 되겠지만, 권하지는 못하겠네 그려.”
“저는... 옌이 아니더라도 싸움에 참가할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해할 일은 아니지.”
이목은 별다른 아쉬움을 표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듣던 세리사가 끼어들었다.
“저기 칼... 프람이 지금 가서 그 적장을 치면... 전쟁은 간단히 끝나지 않아?”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아가씨는...”
상대는 수십만의 군대다. 이목은 웃고 말았지만...
“왜? 내가 유키... 아무튼 전에 듣기로는... 무슨 왕도 노린 적이 있다며...?”
“어이...!”
유키나에게 어느 정도는 들었을까. 칼스는 제지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세리사는 계속 말했다.
“당신이라면 그 누가 상대라도 아무 문제가...”
“말한 것 잊었니...?”
그제야 아차 싶었지만, 뭐가 문제인지 그녀는 모른다.
“왕을 노렸다고...? 무슨 말인가.”
이목의 물음에 칼스는 잠시 망설였지만,
“사실은...”
2년 전의 장평대전 직후, 함양궁에 뛰어들어 진왕을 만난 이야기를 들은 이목은 입을 벌렸다.
“못해도 수만 군대가 있었을 텐데...?”
“옌이 말한 대로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닙니다. 지금 역시, 경계가 엄중한 한단에도 우습게 들어왔잖습니까?”
“참, 그것도 의문이었네. 어떻게 그런 게 가능한가?”
칼스는 문득 손가락을 뻗어 반쯤 마신 자신의 찻잔에 넣었다. 꽤 식은 차가 갑자기 끓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증발하며, 이어 손으로 쥐자 찻잔은 순식간에 손바닥 안에서 쭈그러들고 말았다.
이목은 다시 입을 벌렸다.
열기를 막기 위해 꽤나 두껍게 만든 구리 찻잔을 우그러뜨린 힘도 비상식적이지만, 그는 프람이 가진 무용과 힘을 어느 정도 견식 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물을 끓여 증발시키는 것은 무슨 재주일까?
“저는 힘이 보통 사람과는 전혀 다릅니다. 상대가 몇 만이라도 뚫고 들어가서 적장의 목을 취하는 것은 어렵지 않죠. 함양궁에도 쉽게 들어갔고요.”
“허어...”
“이리 보여드린 것은 당신을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뜻이 있음도 알아주실 거라 생각해섭니다.”
“...이런 힘으로도, 자네는 진왕을 죽이지 않았다?”
“네. 진왕은 말했어요. 의미 없는 난세를 종식시키기 위한 전쟁을... 그 유혈에는 찬동할 수 없지만 뜻 자체는 그리 틀리지 않았다 생각했었습니다.”
사정을 짧게 들은 이목이 탄식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길고 험난하며, 여전히 수많은 이들의 피를 요구하는 길이네...”
“냉정하게 말하자면, 저는 당신이 죽든 진왕이 죽든 관여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의 왕이 될 이 아이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는 모양이죠.”
칼스는 쓴 입맛을 다셨다. 세리사는 그저, 나와 친분이 있어 보이는 이 사람들을 위한답시고 그런 말을 한 것이겠지. 하지만 나도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목이 물었다.
“자네는, 그것이 진왕의 본심이라 생각하나?”
“쉬운 길을 내버려두고 어려운 길을 택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또한 죽을지도 모르는 급박한 마당에 정교한 거짓말을 순식간에 꾸며대긴 힘들죠. 더불어 천하를 다루는 지도를, 하필이면 애첩과 함께하는 은밀한 침실에 괜히 건 것은 아닐 테죠.”
“...으음...”
“송구합니다만, 남의 말만 믿고 자질이 모자란 사람을 가려내지 못하는, 그런 여기 왕보다는 좀 낫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그 일로 책임을 진 사람이 있었나요?”
“...없었지.”
왕은 약속한대로 조괄의 집에 책임을 묻지 않았다. 평원군과 곽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사세(事勢)가 그러했을 뿐이라는 이유였지만, 결과적으로 죽은 사람들만 억울하게 된 셈이었다.
또한 그렇게 홀대를 당한 염파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또다시 노구를 이끌고 전장에 나간 셈이었고.
“신하에게 함부로 과실을 덮어씌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는 기본은 된 왕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무능함까지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신랄하군. 평원군을 비난했을 때처럼...”
“그건 그렇고, 말씀드렸듯 전 돕지 않을 겁니다.”
“그럼 그냥 우리를 보고 싶어서 온 것이란 말인가?”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또한 이성은 이들에게 간섭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지만 감정은 그렇지 않다.
“일단은... 그리고 설령 참가를 한다 해도, 만약 진왕이 자신이 말한 것을 지키지 않고 의미 없는 학살이나 계속한다면 또 모를까... 당장은 좀 그렇군요.”
여관에서 들은 정보로는, 장평대전 학살의 원흉인 백기는 그 뒤로는 전장에 나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진왕이 경계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잘못 내보냈다가 같은 행위를 반복하게 하면 다시 자신이 위협받을 수 있다 생각한 것일까.
그렇다면, 함양궁에 뛰어든 것이 쓸모없진 않았을까.
“이제부터 무얼 할 생각인가.”
“그냥... 당신들도 보았으니, 며칠 머무르면서 한단 구경이나 하게요.”
“한가롭구만. 부러울 지경이야. 그런데, 머무를 곳은 있나? 없다면 여기도 방이 있으니...”
“일월루(日月樓)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목은 눈을 크게 떴다.
“거긴 기루 아닌가?”
“한단에서 가장 좋은 곳이니까요. 일단은...”
잠시 세리사를 곁눈질한 이목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어린 여자지만 왕이 될 사람이라니, 아무 곳에나 머무르게 할 수는 없었겠지.
“아쉽군. 밤에 내가 돌아오면, 좋은 술은 아니더라도 한 잔 나누고 싶었는데...”
“그럼 일월루로 오시죠? 술은 제법 쓸 만하던데.”
“그건 곤란하지.”
샹을 흘낏 바라본 이목이 웃었다. 칼스도 따라 웃었다. 유부남에게 기생집 출입을 권한 셈이니.
하지만 조금 얼굴을 붉힌 샹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다녀오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그래도 이 시국에 장군이 기생집 출입은 좀...”
“장군...?”
칼스의 의문에 이목이 배시시 웃었다.
“작년에 염파 장군의 천거로 장군부에 들어갔네.”
“그렇다면... 만인장?”
칼스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삼백장에서도 해임되었는데, 몇 단계를 뛰어넘어 이미 장군이라니...?
“아무래도 염파 장군의 천거이니 말일세. 주상께서도 전권을 위임하신 셈이라... 하지만 지휘할 군대도 없으니, 여전히 죽간이나 만지고 있는 거지.”
원래 보통 체구였음에도 더 마르긴 했다. 그동안의 고충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군영에 가야 하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늦었군. 자, 나는 나가볼 터이니, 샹이랑 남은 이야기도 좀 나누고 하게.”
아무리 그래도 남의 부인이다. 칼스가 손을 저었다.
“저희도 곧 나가겠습니다. 아침도 드셔야죠.”
“그럴 것 없네. 따지고 보면 자네가 중매인이자 처남인 턱이니 남도 아니고... 아침 전이면 먹고 가게. 없는 살림이지만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그는 말릴 사이도 없이 일어섰다.
“프람, 그리고 옌 아가씨. 편하게 있다 가기를...”
문 밖까지 이목을 배웅하고 돌아온 샹이 말했다.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별 것은 없지만...”
나가려는 그녀의 옷깃을 잡아 앉히며 칼스가 물었다.
“이 장군은... 잘해주니.”
눈을 내리까는 그녀의 뺨이 조금 물들었다.
“네. 자상하시고, 신경도 많이 써 주시고...”
“다행이네...”
역시 그에게 샹을 맡긴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칼스는 안도하면서도 조금은 놀렸다.
“이제 아이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살면 그만이겠구나.”
“그게... 아직 없어서요. 부군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차차 되겠지. 그리고... 뭔가 모자란 것이 있으면 내가 도와줄게.”
“어디요...! 저번에 주신 것도 갖고 있습니다. 다만... 부군께서 쓰기를 원하지 않으셔서... 제 것이라고...”
샹은 문득 눈을 빛냈다.
“조금 기다리시면 시장에 가서... 전쟁 중이라 그리 별 것은 없지만...”
“됐어. 대접받고자 온 것은 아냐. 그냥... 네가 주는 밥이라면 사양치 않고 먹을 생각이야.”
“그러면... 준비하겠습니다.”
샹이 나가고 난 후, 조금은 흐뭇해하던 칼스는 이어 세리사에게 눈길을 주었다. 책망까진 아니지만 엄하다.
“내가 입 다물고 있으라고 했지? 위험하잖아.”
“하지만... 어차피 여기 사람들은 이해도 못할 것을...”
“그 유목민들과는 달라. 샹은 몰라도, 저 사람은 꽤나 머리가 트인 사람이라고. 그러니 항상 조심하고...”
“체...”
세리사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면 굳이 날 데리고 올 이유는 없었잖아.”
그거야... 칼스는 잠시 생각했다.
이목을 만나면 세리사에게도 뭔가 긍정적인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말 한 마디까지 제어할 생각이라면 그녀의 불만도 틀린 것은 아니다.
돌아가면 사정 설명을 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세리사도 뭘 알게 된다면 오늘 같은 일은 없을 테니.
“...그리고, ...저 여자랑 무슨 관계야?”
“그건...”
그러고 보니 애매하다. 지금은 남의 부인이지만 알몸도 보았고...
나이는 자신이 더 어리지만 오라비 취급을 받으며, 샹도 남편인 이목과는 또 다른 특별한 감정을 때때로 보이고 있다. 은인을 대함과 동시에, 잘 설명할 수 없지만 서로 묘한 느낌이 있다.
“따지자면 친구라고 할 수 있는데...”
“...친하네.”
“그렇지. 모두 좋은 사람들이니...”
“그래도 난 좀 불편해.”
그렇지 않아도 세계가 좁았던 그녀다. 낯선 이는 경계부터 해야 했었다.
쿄우카가 사실은 엄마가 아니라 그저 돌봐주는 아랫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는 이는 없다는 것을 안 다음부터 그녀는 모든 이를 경계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샹이 가져온 밥은, 원래 먹기로 했던 보리죽과는 달리 제대로 찐 밀빵에, 뒷밭에서 갓 채취해 온 듯 몇몇 야채와 약간의 말린 고기를 물에 불려 찐 것이다. 여기서는 푸짐한 저녁에 해당되는 것이겠지.
“잘 먹을게.”
칼스는 즐겁게 달려들었다. 세리사도 조금 밀빵을 뜯어 베어 물었다.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불평할 생각을 하지도 못했다. 예의에 어긋나서일 뿐만 아니라, 여전히 경계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칼스는 자신 앞에서는 이렇게 웃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생판 모르는 곳으로 끌려오고, 그것도 모자라 계속 입을 다물게 하고 그 자신은 남과 떠든다.
무시당하고 있어 기분이 나쁜 거다. 그리고...
그를 만나서 지금껏 외롭지 않았지만, 반대로 이 사람이 다른 이와 이야기하는 것, 그것도 저렇게 즐겁게 자신이 공유하지 못하는 과거를 나누며 이야기하는 것은... 왠지 싫다.
그는 나를 돕고 지켜준다고 했지만, 그것은 내가 가진 입장과 지위 때문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나라는 사람, 그 자체를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지상인의 여자만큼도 웃고 떠들기 힘든, 그런 정도의 사람에 불과한 것일까.
그가 즐겁게 떠들며 웃고 샹도 약간의 웃음을 짓는 대화 속에서, 동떨어진 기분을 달래려는 듯 세리사는 말없이 거친 밀빵을 연달아 뜯었다.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먹어서 화풀이하면 살쪄요.
공지 설정란이 추가되었습니다. 지난번에는 너무 딱딱하게 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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