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독특한 침략자. (2)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Ⅱ
호텔에서 국제연합 대회의장까지 직접 걸어오는 아샤르의 여왕.
여러 상황을 생각하면 엄청난 배짱이라 할 수 있지만, 역시 이곳의 상식이 없다고도 많은 이들이 느꼈다.
그래도 겉보기로는 매우 예쁜 아가씨인 것도 덧붙여, 유키나의 예상대로 사람들의 경계를 조금이나마 푸는데 도움이 되었다.
다행히 오는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다.
“역시 구경거리군요.”
국제연합 안. 잠시 쉬게 된 VIP대기실에서 케네리스 원수가 쓴웃음을 지었다.
“전하께서도 참 엉뚱하십니다.”
여왕은 조금 묻은 바깥 먼지를 털어내며 웃었다.
“이 정도로 뭘요. 잠시 후면 전 세계에 말을 해야 할 처지입니다. 미리 얼굴 조금 팔리는 거야 문제일까요.”
“좋은 각오이십니다만, 시선들 보셨죠? 역시 우리들에 대한 호의는 거의 없군요.”
“각오해야 할 일이죠. 우리가 여기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과 큰 노력이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미리 겁을 먹어서는 곤란하죠.”
“동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도 앞으로는, 우리 군의 역할이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호오. 별 일이시네요. 순수 군인이신 각하께서?”
“저도... 아이가 있지 않습니까.”
내전 다음 해, 케네리스는 바라던 아이를 가졌다.
“제 아이가 자랐을 때, 저희처럼 호기심과 경계가 섞인 눈초리를 받는 것이 아닌, 그저 남들처럼 섞여 평화로이 지상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원수의 기대 섞인 웃음에 유키나도 미소로 답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선대와는 다른 의미로, 저는 이래저래 정치 참가를 하게 될 것 같으니까요.”
그녀는 이곳에서 간단한 연설을 한 다음, 파견된 관료들과 함께 맺어질 조약의 조율에 들어갈 것이다. 이후 황제가 최종 승인한다.
지구 측 승인을 맡은 대표는, 현 국제연합총장이자 영국 출신인 조나단 캠퍼가 할 예정이었다.
새로운 상임이사국으로 차고 들어온 아샤르. 그를 대신해 물러나는 것은 영국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잔재는 분노에 떨었지만, 이사국 중 가장 최약체인 처지라 어쩔 수 없었다. 그 출신인 캠퍼는 굴욕감을 참아야 했다.
분명 본심은 아닌, 맥 빠진 박수소리와 관심을 가장한 경계 속에 단상에 선 여왕이 말했다.
“뜨거운 환영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저희를 경계하고, 불신하며 두려워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 문명과 무력은 몹시 강대하고, 따라서 언제든지 여러분을 힘으로 짓누를 수 있으며, 또 그게 사실이니까요.”
막 전쟁을 끝낸 처지에 이 노골적인 태도는...?!
웅성거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왕이 다시 말했다.
“허나 그런 우려는, 이제부터는 아무 의미가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모인 우리는, 미지의 침략자와 미개한 종족 사이가 아닌, 승리자와 패배자가 아닌, 바로 동등한 인간 대 인간으로 서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맺어질 조약 역시 전쟁보다는 평화를, 힘보다는 대화를, 증오보다는 사랑을 바라는 대등한 지성체끼리의 교류, 그 약속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힘주어 단언했다.
“물론 피로 물든 아픈 역사를 한 번은 쌓았고, 그러니 쉬이 믿어달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신뢰란 단번에 맺는 것이 아닌 천천히 쌓아가는 것. 그러니 앞으로의 우리를 지켜봐주시길 바랍니다. 어제는 적으로 만났지만 오늘은 이웃이 되었으니, 부디 내일은 가족이자 친구가 되길 바랍니다. 이것은 아샤르의 다짐이며, 저희 황제께서 천명하신 불변의 대원칙입니다.”
그녀는 권하듯 가볍게 손바닥을 뻗었다. 아름답고 유려한 손가락이 활짝 펼쳐졌다.
“아샤르의 두 손은 여러분의 악수를 기다립니다. 두 팔은 여러분의 포옹을 기다립니다. 두 다리는... 여러분과 함께 걸어갈 길을 준비하겠습니다. ...앞으로 저희가 하는 모든 말과 행위가 바로 그 증명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가볍게 고개를 숙인 그녀는 단상을 내려왔다.
이 박수소리는 예의상 치는 것일 터. 솔직히 믿지 못하겠지.
하지만 어떠리. 이미 말했다.
앞으로 내가, 오라버니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오늘의 내 말에 대한 증명이 될 테니.
베라를 위시한 8개 도시는 지구권 궤도로 들어왔다. 하지만 본격적인 강하는 뒤로 미루어졌다. 당면한 과제를 하나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바로 북한이었다.
북한을 완전 병탄하고 본격 통치를 시작하기 전에는, 한국과 일본 등의 옛 나라는 각자의 자치에 맡긴다. 대신 그동안 물류가 막힌 탓에 피폐한 그들에게, 지구 각국에 이미 하고 있듯이 대량의 물자를 지원한다.
식량이 약 2천만 톤, 섬유와 의약품 원료가 약 1백만 톤. 여기에 각종 광물과 희토류 원소가 주된 목록이다. 1차 자원에 불과하지만 넉넉한 보탬이 될 것이다.
북한을 빨리 병탄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언제까지 배급으로 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아직 정식 통치 전이라 군이 수송을 맡고 있고 그 주체는 통합지원본부다. 전쟁 때보다 더 바빠진, 통합지원본부장 엘리후 원수가 군 회의에서 보고했다.
“신영토의 구 정부에 물자를 전달하긴 했습니다만... 뒤로 빼돌리는 양이 조금 보이고 있습니다.”
“제 버릇 누구 못주는군.”
두고 보자. 황제는 내심 혀를 차며 말했다.
“그렇다고 물자공급을 중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조금 해먹는 정도는 봐줘. 어차피 쌓아봤자, 우리 통치가 시작되면 모조리 쓰레기가 될 테니...”
“네. 그런데... 북한 병탄 건 말입니다만, 희한한 짓만 하고 있다면서요?”
거듭된 항복 요구에도 묵묵부답. 요구조건도 밝히지 않은 채 계속 장관급 회담 이상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었다.
“바보들을 상대해줄 필요가 있을까요?”
호텔에서 영상으로 출석한 유키나가 심하게 투덜댔다. 케네리스도 고갯짓으로 동조하며 말했다.
“자료로만 보아도, 그야말로 지상의 악덕을 모두 모아놓은 나라가 아닙니까. 대화상대로는 부족합니다.”
21세기 중반에 들어선 북한의 위상은 미묘했다.
핵무기 보유에 장거리 발사체 시험도 심심찮게 하고 있지만 또한 그것 뿐. 이를테면 잊을만 하면 칼을 휘두르며 고성방가를 질러 동네를 시끄럽게 하지만, 대신 대문 밖으로는 나서지 않는다. 덕분에 조용히 시킬 수도, 그렇다고 죽일 수도 없는 애매한 존재다.
남한의 처지도 미묘했다. 객관적으로 보면 분명 약한 나라가 아니었지만, 이웃들이 하나같이 엄청나서 북한만 신경 쓸 수는 없다.
서로가 단독으로는 전쟁할 수 없고, 복잡한 외교 관계가 얼키설키 엮여 있어 화약고 치고는 큰 교전은 드문 편이었다. 하지만 외계 침공은 얽힌 정세를 완벽하게 무너뜨렸다. 남한은 먹혔고 북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언제까지 말을 걸고만 있을 수도 없는 법. 그러니 아샤르는 북한 침공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양해를 국제연합과 인접국에 얻었다.
아샤르가 먹겠다면 골칫거리 둘이 하나가 되는 셈이니, 구권에서는 크게 이의를 다는 자가 없었다.
북한의 최대 우방, 그리고 보호자인 중국도 감히 이의를 달진 못했다. 사실 자기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앞으로 하필 이 외계인 깡패의 바로 옆집에서 살아야 하며, 그런데도 이사조차 갈 수 없다.
“쓸데없는 요구나 하다니, 그냥 전쟁하면 안 될까요?”
유키나의 불평은 당연했다. 협상이 진행될 경우 자신이 나가야 하며, 분명 상대의 말도 안 되는 고집과 생떼를 들으며 부글거리는 속을 달래야 할 처지였다.
“그건 좀 곤란해. 방금 전쟁을 끝낸 판에, 단 한 번의 대화 시도도 하지 않는다면 향후 통치를 폭력으로 시작하는 셈이 된다고.”
“하지만 은근히 좋아하는 나라들도 많을 거잖아요.”
“당장은 좋아해도 폭력은 폭력이다. 나중에는 우리에 대한 불안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어.”
“...하아, 결국은 제가 가게 되겠죠.”
“그거야, 신설 외무성도 아직은 미진하고... 내보낼 정도는 아니야. 그러니 수고를 좀 하도록.”
행정 자체를 로사에 크게 의존하고, 다스릴 국민조차 많지 않았던 그들의 정부는 상당히 소규모다. 때문에 행정 부서도 통합형으로 고작 12개만 존재했었는데, 이번에 외무성과 상업성이 신설되었다.
재정을 다루는 재무성은 이미 존재했지만, 국가 계획 경제였기 때문에 상업 비중은 크지 않았다. 반면 엄연히 자본주의 국가였던 한국과 일본은 달라서, 이를 조율하고 정리할 기관이 필요하고 그것이 상업성이다.
아무래도 서툰 영역이니, 이들 부서의 상서는 지구 측 인사를 등용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구 정부들의 인재 파악이 더딘 편이라, 아직은 청사진의 영역에 불과할 뿐이었다.
할 수 없이 외교 부분은 얼굴 마담으로 우현왕에, 실무는 황제와 총재 관할로 당분간 치를 전망이었다.
“귀찮아요, 참...”
그녀는 거듭 탄식했다.
“귀찮은 일은 폐하의 몫, 즐거운 일은 항상 저의 몫이어야 할 텐데.”
“북한 건이 끝나면 휴가를 주마. 뭣하면 선물도 하나 줄까? 의욕이 불끈 솟도록.”
“잘 빠진 남자 소개라면 사양입니다.”
할 농담을 미리 빼앗긴 황제는 입맛을 다셨다. 총재가 나이에 맞지 않게 쿡쿡 웃으며 말했다.
“일단은 그들이 장관급 회담을 요구해왔는데, 우리가 현왕을 내보내겠다고 하니 당황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좋아하더군요. 왕이 직접 올 정도로 자기들의 격이 올라갔다, 그리 생각하는 걸까요?”
“물론 올라가겠지. 애당초 더 떨어질 구석이 있을까.”
“그들을 꽤나 싫어하시는군요.”
“어느 시대, 어떤 나라든 체제든 그 목적은 단 하나, 소속된 인간의 행복이다. 그걸 사리사욕에나 썼던 녀석들을 좋아할 이유가 있나.”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아무튼 우현왕은 수고 좀 해라.”
“네. 그리고, 그와 관련해서 청이 하나 있습니다.”
이어진 그녀의 말에 황제는 조금 놀랐다.
“이유가 뭐냐?”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죠.”
왠지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5일 후인 10월 21일 정오.
황제 친위 준함대, 이른바 디아 아파켄의 호위를 받으며 강하한 전함 카라카스가, 퀸스 구에 위치한 존.F.케네디 국제공항 상공에 나타났다.
공항에는 지난번의 두 배를 상회하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지구 인류의 최대 관심사, 침략자의 황제를 직접 구경하기 위한 인파였다.
후에 집계된 바로는 전미 시청률만 86%를 넘은 이 행사는, 로사가 지휘하는 공중 부유형 카메라들의 화면을 각지의 방송사가 받아 전 세계로 방영되었다.
맞이하러 나온 아샤르 측 인사는, 예복 차림의 우현왕을 필두로 군령본부총장과 4함대 사령관 도트로이였다. 이 외에도, 친위 병력 22만 명 중 4만의 병력이 활주로에 나열하여, 선선하고 건조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그들의 황제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구 측 인사로는 국제연합총장인 조나단 캠퍼와 미합중국 대통령 토머스 브라이언이, 터미널 5의 귀빈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꼬리를 흔들며 맞이한다. ...꼴이 말이 아니군요.”
브라이언의 푸념에 창가에 선 캠퍼가 중얼거렸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보다도... 아샤르의 황제, 그 권력과 권위는 상당한가 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샤르 측 인사들은 30분 전부터 활주로에서 나가 부동자세로 기다리고 있다. 심지어 여왕까지도 전혀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아직 캠퍼들은 나가지 않아도 된다. 그들도 의전상 국가원수고 황제도 동격으로 대하겠다고 했다. 또한 그들은 패배한 것이 아닌, 어디까지나 정전 및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다.
하지만 무너진 자존심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누가 이기고 졌는지는 애들도 알 일이다.
“...왔나 봅니다.”
지면에 낮게 깔리듯 거대 전함이 허공에 멈추고 다리가 내려졌다. 원치 않은 손님맞이. 두 남자는 낮게 혀를 차며 일어섰다.
“황제에 대해서는 정보가 거의 없지요.”
캠퍼의 확인에 브라이언이 고개를 꼬았다.
“그렇습니다. 다만 가디언즈에서 얻은 정보로는, 저들이 인간을 초월한 신체능력이 있다는 것은 들으셨죠?”
“네...”
“황제는 그 필두에 있는 인물이라고 합니다. 과연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나이도 매우 많다고...”
“과연 사람이 그만큼 살 수 있습니까?”
“이미 외계 침공을 받은 참입니다. 이제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더 놀라고 싶지도 않군요.”
“어떤 늙은이가 나올지 기대되는군요.”
공교롭게도 고전 영화광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 그 머릿속엔 영화 속의 한 장면, 임페리얼 마치가 울리면서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늙다리 황제가 지팡이를 짚으며 걸어 나오는 장면이 동시에 스쳐지나갔다.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이들이 연상한 영화의 한 장면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6 (못 보신 분 없겠죠)
그나저나 독자가 또 줄어들고 있다... ...3부 들어 기대 좀 했는데... 뭘까요 ㅠ
그렇지만 비축분은 마구 쌓이고 있습니다. 3부 2권도 거의 다 썼네요. 당분간은 여유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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