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장. 비상식 VS 몰상식 (2)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Ⅱ
“뭘 그리 움츠리고 있어?”
여왕의 지적에, 마주앉은 이영이 입맛을 다셨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뭐, 전하께서는 어딜 가도 괜찮으시겠지만... 저는 아니지요.”
“내게 감히 덤벼들던 배짱은 어디로 가고?”
“평생분의 용기를 거기서 다 썼나보죠.”
“그럼 지금이라도 내리려나?”
“저기... 여기는 하늘입니다만... 혹시 저를 밖으로 내던져버리실 요량이라면 낙하산은 주세요.”
잠시 쏘아보던 여왕이 좌석의 팔걸이를 연방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그나저나 뭐가 이렇게 느려...? 그냥 날아가는 게 훨씬 빠르겠어.”
“...이해합니다.”
성간을 넘나드는 자들의 후손이며, 더불어 강력한 능력자다. 마하 수십을 우습게 내는 자들인 만큼 이런 고물딱지 비행기는 답답하기도 하겠지.
하지만 그 답답함은 느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기 싫은 이를 억지로 만나야 하기 때문이리라.
11월 2일. 우현왕 세라비 유키나 세이야와 3명의 친위기사, 그리고 종사관의 신분으로 따라간 이영까지 5인이 북한에서 보내준 비행기에 탔다. 호위로는 북한 공군의 미그기 4대가 따라붙어 있었다.
“그나저나... 그들이 그렇게 몰상식한가?”
“몰상식이라기보다는, 입담이라든가 배짱이 보통이 넘죠. 아무리 전하라도 애를 먹을 겁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해주면 더 좋지. 애당초 미사여구만 지루하게 늘어놓을 생각은 없어. 그래도... 우리는 국제 사회 관례를 잘 모르지만, 사전 협의 같은 것은 하는 게 상식 아냐? 그런데 그렇게 하질 않네.”
“저도 외교관은 아니라 잘 모르지만, 그렇겠지요.”
“...너희들도 쟤들 상대하느라 참 피곤했겠다...”
동정일까, 아니면 자조일까. 여왕은 낮게 혀를 찼다.
“그냥 저놈들이 미친 척 이걸 쏴주면 딱 좋을 텐데... 전쟁 명분이 바로 서잖아.”
“...저기,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제가 죽습니다만...”
굳이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래도 좋다는 것일까. 아무래도 가시밭길 정도로는 그치지 않을 모양이다.
...내 팔자여.
“어서 오시라우요.”
가슴에 매단 훈장만으로도 방탄복이 될 만큼 주렁주렁 달고 나온 초로의 남자, 인민무력부장(人民武力部長) 오대룡(吳大龍).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자 차수 계급인 그가 스스로를 소개하며 웃었다.
“반갑습니다.”
유카나도 일단 미소는 완벽했다.
목적지는 금수산태양궁전이다. 원래 이름은 금수산기념궁전이었고 주석 집무실로도 쓰였지만, 감히 선대의 공간을 차지할 수 없다는 이유로 지금은 순수하게 참배의 공간이다.
유키나의 외교적 지위는 국가원수다. 조약에 따라, 황제와 그녀 둘 중 하나가 외국에 갈 때에는 이 대우를 받도록 되어 있다.
북한도 이에 대해 이의를 달지 않았지만, 대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바람에 아샤르 정부가 뒤집어졌었다. 바로 태양궁전에 보관되어 있는 두 구의 시신에 참배를 요구한 것이다.
“무슨 짓거리야...”
황제는 혀를 찼다.
누구나 숭배하는 초대 황제 아파켄도, 그 시신은 보석 한 알로 다른 황제들과 같이 보관되어 있을 뿐이다.
여왕도 투덜댔다.
“설마, 받아들여야 합니까?”
“네가 누군데 함부로, 그것도 죽은 이에게 고개를 숙인단 말이냐. 어림도 없다.”
결국 아샤르 정부에서는, 말투는 정중하지만 내용은 웃기지 마라는 답신을 보내버렸다. 이를 빌미로 입국 거부라도 하면 바로 협상 결렬로 보고 침공이다. 저들도 떠보기 정도에 불과했는지 재차 요구하지는 않았다.
현재 북한 3대인 국방위원회 제 1위원장 김정은은 66세다. 다만 건강 문제를 드는 바람에, 최종 협상은 인민무력부장과 하도록 합의가 되었다.
“자, 그럼... 그동안 입을 다무셨던, 귀국의 요구조건을 들어볼까요?”
어지간한 침대 시트 두 배 면적에 해당하는 큰 대리석 테이블이 놓여있는, 이 방의 화려함 만이라면 아파켄 황궁 구역을 넘는다.
이 가난한 놈들이 이 정도를 꾸미려면 과연 얼마나 희생을 필요로 했을까. 유키나는 몹시 기분이 나빠졌다.
이영이 정중히 내민 제안서. 하지만 정말 대충 살펴본 오대룡이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 이 조건만으로 끝내실 생각이시오?”
“여러분들에게는 최상의 조건 아닙니까?”
“보호받는 대상이 너무 적습네다.”
아샤르에서 사면(?) 대상자로 지정한 사람은 60명 정도였다. 그것도 대부분 왕족, 김씨 일가다.
“문제가 있나요? 항복 이후에는 국민 기본권에 따라, 전 북한 주민은 그 권리를 보장합니다. 생명권도 당연히 들어있는 만큼, 여러분을 사적으로 해치거나 죽이는 자가 있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을 겁니다.”
유키나는 웃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신랄했다.
“아니면 혹시, 이 정도로도 불안할 만큼 평소에 원한을 많이 사신 건가요?”
노골적인 질문에 오대룡은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말씀이 과하십네다.”
“죄송합니다. ...아무튼 저는 입씨름이나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조건이나 제시하시죠.”
“그럼... 저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귀국에 소속될 의향은 있습네다. 다만... 저희 공화국을 특별 자치령으로 인정해주실 것을 요청합네다.”
“...특별... 자치령?”
“살펴보자니 귀국은 황제에 이은 왕이 있지요? 저희 위원장 동지를 그것에 임명해주시고...”
“향후 자치와 세습도 인정해 달라?”
“...어찌 아셨습네까?”
아무리 우리가 외교 경험이 없어도 그 정도는 예상 가능하단다.
그 말을 꿀꺽 삼킨 유키나는, 어쩐지 바보 취급을 당한 것 같아 더욱 심기가 불편해졌다.
북한이 요구하는 것은, 말만 항복이지 사실상 독립을 인정해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상한 바이긴 하지만 진짜로 들고 나오다니, 정녕 바보 취급인가 싶다.
“솔직히 저희는, 당신들이 우리 법과 체제를 잘 지키리라고는 전혀 믿을 수 없지요.”
유키나는 팔찌의 화면을 송출했다.
“어디보자... 도끼질도 있었고 타국에서 폭탄을 터트린 적도 있고, 인명은 물론 비행기와 선박 납치에 폭파... ...대체 뭘 믿으라는 겁니까?”
“그건 과거의 일일 뿐입네다.”
“묻겠는데,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찌 하실 겁니까? 지구 전체를 상대로 해서도 압도적인 승부를 낸 우리입니다.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명백한 협박이지만 오대룡은 기죽지 않았다.
“지난 전쟁은 우리도 지켜 보았습네다. ...참 전쟁을 곱게 하셨더군요...”
“그래서요?”
“귀국의 황제 폐하는 분명 사람이 좋으신 분일 겁네다. 우리도 그냥 침공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몇 번이고 이렇게 대화를 요청해 오시니 말이죠...”
“분명 그러하신 분이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죠?”
“그러니 우리 목숨도 좀 아껴주실 거라고 생각합네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측도 귀국을 상대로 써먹을 수 있는 수는 있지 않겠습네까?”
유키나는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인간 방패... 그런 짓이나 하려는 것은 아니겠죠?”
“쓸 수도 있는 것이지요. 우리 측은 말입네다, 우리 최고 존엄과 주체의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전 인민이 옥쇄할 각오를...”
“그만...!”
대리석 테이블이 탕 내리쳐졌다.
“사람 목숨을 어찌 보고...! 게다가 제가 여러분들 실상을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억지로 끌고 앞장세우는 경우라고 생각하는데요?”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희생은 당연합네다.”
“당신들 알량한 권력과 호의호식을 위해서? 아니면 뭐가 겁나는지, 이 자리에 보이지도 않는 그 지도자인지 뭔지를 위해서?”
“최고 존엄이시오. ...과하십네다.”
이러다가 전쟁이 벌어지기도 전에 큰 싸움이 나겠다. 이영은 몸을 움츠렸다.
그나저나, 역시 몰상식 이전에 이 배짱은...
오대룡도 그냥 뽑혀 나온 것은 아니란 말이지.
“...뭐, 일단...”
화를 먼저 가라앉힌 것은 유키나였다.
“조건은 그것으로 끝인가요?”
“하나 더, 지위 보장 대상의 대폭적인 확대입니다.”
“...확대? 어느 정도로요?”
“최소한 평양 시민 전부.”
“...300만 가까운 인구 전부를 말인가요?”
“...애당초 잘 살고 있는 우리들을 침략한 것은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그 잘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지만, 당신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국민이 굶주리고... 일부의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생지옥에서 뒹굴고 있는데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겁니까?”
“만약 전쟁을 하게 된다면...”
오대룡은 빙긋 웃었다.
“우리가 보유한 핵탄두 40여발을 쓸 생각입네다.”
유키나가 코웃음을 쳤다.
“그 삼지창 작전도 우습게 상대해낸... 우리들을 상대로 말입니까?”
“아닙네다. 지금 군사분계선부터 포함해서, 개성과 원산, 흥남 등의 각 주요 지역에 터트릴 겁네다. 오염된 땅을 한 번 가져 보시라요.”
“이런 미친...!”
유키나는 벌떡 일어나며 격노했다.
“이건 자국 국민들을 방패로 쓰는 것도 넘어서는...!”
“다시 말하자면 우리는, 최고 존엄과 우리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 어떤 위험도, 위협도 불사할 생각입네다. 지금 귀국의 사정도 아마도 그리 좋진 않지요. 남조선과 일본을 손에 넣었으니 행정 업무도 복잡할 것이고, 무엇보다 정전 조약을 전후로 또 전쟁을 일으키기는 쉽지 않을 겁네다. 어차피 귀국은 2억 넘는 인구를 손에 넣습네다. 일부 정도는 우리에게 맡겨 주시라요.”
“...하...!”
“말씀대로 우리는 도끼질도 했고 폭파도 했으니, 가릴 것 없는 처지란 건 더 잘 아실 겝네다. ...당신이 전권 대사인 것은 압네다만, 본국의 그 황제에게 물어보시라요. 쓸데없는 전쟁을 일으키느니... 그냥 이렇게 하는 게 맞을 거라고 생각합네다.”
배짱은 우리를 이길 자가 없다. 그렇게 말하는 듯 오대룡은 계속 웃었다.
절로 주먹을 움켜쥔 여왕이 이영을 돌아보았다.
마치 책임을 묻는 듯 차가운 시선에, 자신의 죄도 아닌데 이영은 움찔했다.
일박 예정은 아니었지만 점심식사는 예정되어 있었다.
오찬은 거부해버렸지만 굳이 들이 밀어주는 것을 거부할 수는 없다. 휴식실에는 이런 저런 요리가 차려졌다.
황제와의 통화를 마친 유키나는 이미 벌레 씹은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네 조상 중에 오씨라는 성은 없느냐?”
“모르지요. 그런데 왜 물으십니까?”
“저 늙다리가, 뻔뻔하기로는 너 이상이라서 말이야. 혹시 같은 조상을 가진 것 아닌가 싶어서.”
“...없을 겁니다, ...황제께서는 답변을 주셨습니까?”
“절대 거부. 고로 이 협상은 결렬이겠지.”
“그럼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건 조정과 군령본부에서 생각할 내용이야. 하지만 이런 뻔뻔함은 로사라도 예견했을지 의문이고... 나는 지상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려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너도 그렇고 저들도 그렇고...”
“말씀드리지만 그게 바로 편견입니다. 어딜 가나 좋은 이는 좋고 아닌 이는 아닌 거죠. 당신들도 내전까지 치러본 사람들 아닙니까.”
신랄한 지적에 여왕이 입을 다물었다.
조금 승리감을 맛본 이영이 방점을 찍었다.
“더불어 당신들만 잘난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전하께 전함 열 세척을 드리겠습니다. 이걸로 분함대, 300척과 싸우실 수 있겠습니까? 이길 수 있습니까?”
그녀는 어이없이 웃었다.
“그걸 어떻게 이겨? 당연히 도망가야지.”
“도망갈 수 없다면요?”
“...그런 상황을 안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억지로 하는 건 역시 마음에 안 드는데...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이긴 사람인가?”
“네. 참고로... 서른 척 이상 격침시키면서도 막상 본인은 단 한 척도 잃지 않고 분함대를 쫒아냈습니다.”
“...대단한 인물인가 보구나. 함대를 지휘하는 입장에서 꼭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그가 누구냐?”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전하께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을 해내신 분입니다. 더불어 방금, 전하께서 궁금해 하셨던 제 조상님입니다.”
이영은 덕수 이씨 충무공파다.
“...어딜 가나 좋은 사람은 좋고 아닌 사람은 아니고, 무능자와 유능자가 섞여 있습니다. 아닙니까?”
“...알았다.”
반론하지 않겠다는 듯 유키나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이어 원형 식탁, 자신의 오른쪽 옆 자리를 눈짓했다.
“앉아라.”
“제가 말입니까?”
“굶을 생각이야? 네 뱃속 소음은 듣고 싶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기분이 나쁜데...”
...거부할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같은 식탁을 쓰는 셈이라 어쩐지 거리껴진다.
요리는 양파를 채로 썰어 얹은 스테이크가 주 메뉴다. 스스로도 매우 잘 살았던 편이라 질리도록 먹어본 것이지만, 적어도 자기 주제에 국빈을 상대로 내놓은 요리를 먹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저기, 친위대들은 안 먹습니까?”
부대장인 시에나를 비롯한 세 명의 친위기사. 한 명은 입구를 지키고 한 명은 창가에 대기하며 오직 시에나만이 이영과 더불어 그녀 뒤에 시립했었다.
그들 몫도 있어 모두 5인분이었지만...
“임무 중엔 어떤 것도 먹지 않아. 물도 안 마셔.”
그건 괴롭겠다고 동정하면서 이영이 나이프를 들려는 찰나, 빠르게도 잘라낸 고기조각이 여왕의 포크에 찍혀 그의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뭡니까?”
“한 번 먹어봐. 지구 음식은 거의 맛본 적이 없거든.”
무슨 속셈이지? 하지만 재촉이 들어왔다.
“뭐야, 왕이 하사하는 것을 설마 거부한다는 건가?”
“아뇨, 아닙니다.”
유키나가 내미는 고기조각은 무척 맛있어 보였지만... 권력 앞에 굉장히 비굴해지는 자신에 약간 혐오감을 느꼈지만, 그는 입을 벌려 냉큼 받아먹었다.
입안에 퍼지는 소스와 고기의 절묘한 향연을 만끽할 여지도 없이, 그는 전력을 다해 씹고 삼키는데 바빴다.
하지만 또한 빤하게 쳐다보는 그녀에게 눈길이 간다. 황후보다는 좀 쳐져도 굉장한 미녀다. 무엇보다, 이 정도로 가까이 있으니 좋은 냄새가 풍긴다.
그나저나... 이런 행동의 의미는 알고 있는 건가. 아니면 역시 지구와는 문화가 다른 건가.
...생각해보면, 비록 홧김에 들이밀긴 했어도 그 입술은 굉장히 부드러웠지.
경계심 속에서도 조금은 달콤한 회상을 박살낸 것은 그녀의 시큰둥한 말투였다.
“흠... 멀쩡한 것을 보니 나도 먹어도 되겠네.”
“네? 그게 무슨...?”
드디어 입에 넣은 고기 조각을 우물거리며 유키나가 말했다.
“너도 말했지 않아? 이 자들이 상식이 통하지 않는 녀석들이라며. 또 실제로 이렇게 체감했으니... 여기다 독이나 즉효성 설사약이라도 탔을지 누가 아느냐.”
...이 여자, 지금 누구 멋대로 나를 모르모트로 써먹는 건가 싶었지만...
음? 아니, 그게 아니지.
“저기, 애당초 전하는 독에 당할... 그런 사람이 아니잖습니까.”
그녀도 강력한 능력자다. 설령 독이 몸에 침투했더라도 약간의 수고만으로도 몰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굳이 저한테 먹이지 않으셔도...”
“독이 있다면 두 가지 효과가 있지. 눈꼴사나운 너를 내 손을 쓰지 않고 죽일 수 있고, 나는 감히 왕을 독살하려 했다는 전쟁 명분을 쉽게 얻을 수 있으니.”
...쌍년...! 목구멍까지 욕이 튀어나오지만...
“음? 뭔가 욕을 한 건가. 입술이 움찔거려.”
“...아닙니다.”
아무래도 묵은 앙금을 해소하기 위해 끌고 온 건가. 아니면 솟구친 성질을 즉석에서 받아줄 대상으로 고른 것은 아닌가.
돌아가서 믿을 종교를 신중하게 고르면서 이영은 하늘을 원망했다.
정확히는 하늘 너머에 있는 황제를.
오후 들어 회담이 재개되나 여왕이 선언했다.
“저희 입장은... 절대 거부입니다.”
오대룡의 입가가 말렸다.
급격하게 공기가 얼어붙었다.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티격태격... 애들 싸움...이지만 그것만은 아니지요. (이유는 나중에.)
일단 그는 충무공 후손입니다. 한국 족보는 다 믿을 수는 없지만요... 쇼크십니까? 아마 이 작품에서 가장 미움받는 캐릭터 주제에 충무공 후손? <- 이런 반응이 아닐까 합니다만... 그를 위한 변을 조금... 작가 입장에서 해보려고 합니다.
최근 홍염의 연회편을 읽어주신 독자분의 댓글에 답을 달면서... 또한 1부 전반을 다시 읽어보면 아무래도 작품에서 실패한 부분이 눈에 띄긴 합니다. 바로 캐릭터성입니다.
이 작품의 메인 주인공은 칼스, 세리사, 루이코라 할 수 있습니다. 서브 주인공에 해당되는 유키나와 이영은 그에 준하는 캐릭터죠. 각자의 캐릭터성을 가진 채, 이 중에서 아마 가장 논란이 될 캐릭터는 누구일까요? 네. 이영입니다.
1부 3권에서 그의 행보는 대체적으로 욕을 먹을 만한 행동입니다. 욕을 먹는 게 당연한 것이니 먹어야 하는 캐릭터지만, 캐릭터 하나하나에 실험을 부여해보는 작가의 의도를 가장 강력하게 반영한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실패한 감이 없잖아 있군요.
칼스와 세리사는 1부에서 이미 완성된 캐릭터입니다. 특히 칼스는 메인 남주로써 완전체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며 이는 3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는 인간미가 심하게 떨어진다 판단하여, 2부에서 인간적인 모습, 실수도 하고 오판도 하며 갈등도 하는...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드렸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칼스 개객기 설... 은 지지를 받고...
세리사의 경우에도 혼자의 집착에 한 남자의 평온한 일생을 비틀어버린, 나쁜 마음이었다면 악녀의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캐릭터였습니다만, 1부 2권에서 보인 행동으로 인해 그런 인식은 거의 없더군요. 그렇듯 이 둘은 이미 1부에서 완성형 주인공으로 등장했기에, 이후 그들이 하는 대부분의 행동은 작가 입장에서 이유만 적절하게 달아주면 밉게는 보이지 않을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점수를 이미 듬뿍 따놓은 인물이죠.
반면 이영은 불완전 캐릭터입니다. 1권 초기에 한번 등장하고 2권을 뛰어넘어 3권에 이르러서야 재등장하는 만큼, 초반에 작가가 이 인물에게 부여한 캐릭터성이 뚜렷하지 않습니다. 이미 점수를 한 번 잃고 시작한 캐릭터이기에, 3부에서의 그의 행보는 아마 지지가 뚜렷하지 않을 확률이 높습니다. 걱정이 앞서는 부분입니다.
초반 언급으로 바이크부에서의 그는, 한국인임에도 일본인인 루이코와 아키라에게 평균 이상의 점수를 얻은 인물입니다. 아마도 평소의 그는 주변의 친구도 많고 나름 인망도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는... 왜 이성인과의 전쟁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였을까요? 그건 증오와 복수심이 눈에 덧씌워진 인물이라서 그렇습니다. 이 작품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환생 후 복수물이었다면 그는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인공에 이입해서 보지 않는다면, 메인 주인공이 아닌 3자의 눈으로 보면... 그는 그 정당성을 떠나서 주인공에 대한 증오에 불타는 어긋난 이일 뿐이죠. 어찌 보면 그는 복수물의 안티테제입니다.
그러나 3부 1권과 2권에서, 이영은 중요한 테마를 담당합니다. 캐릭터의 변화폭이 가장 큰 인물이 되겠죠. 예를 들자면, 루이코를 일본인으로 설정한 이유는... 앞으로 진행될 3부 1권 막바지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그 장면 하나를 위해서 설정했다 보셔도 무방합니다. 그런 식으로... 이영은 황제의 치세를 겪으면서 변화하는 이들을 대변하는 인물로써 설정했습니다. 증오와 복수심을 씻고 원래의 본성을 찾아가는 그런 인물로...
하지만 아무래도 초반에 그에게 에피소드를 하나 주는 한이 있더라도 캐릭터성을 확고히 하지 못한 점은... 모자란 필력 탓이므로 후회가 진하게 남습니다. 3부 2권 마무리에 들어간 지금... 원하던 결과를 얻고도 씁쓸한 것은 그 때문이겠죠.
지난 생에서 아기일 때 우주로 내던져져 죽고, 지금 생에서는 부유함과 안락함을 던져버리고 복수의 길로 들어섰던 그가, 나중에 행복해질 자격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에 대해서만은 어느 정도 해피엔딩으로 그리고 싶군요. 다소 지나치게 완벽한 감이 있는 두 메인 주인공들보다... 흔들리고 갈등하고 마음의 고통을 견뎌내는... 작가에게는 정이 가는 보통 사람이니까요. ....결론은... 너무 미워하지 말자구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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