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실타래를 풀다. (2)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Ⅱ
3일이라는 시한을 두고 군은 바쁘게 움직였다.
2일째에 공략하기로 한 평양을 제외하고 원산과 함흥, 남포와 강계 등 적이 집결한 대도시에 다수의 군함들이 긴급 강하했다.
촘촘한 대공포의, 처절하지만 의미 없는 공격은 문제는 아니었다. 군복을 입은 대상은 예외 없이 공격받았고 무력화가스도 사정없이 뿌려졌다.
시간을 끌어 희생자를 늘리느니, 다소 빠른 공세를 유지하더라도 시간을 아끼는 쪽이 죽는 이는 오히려 줄어들 것이다. 포로를 표시하는 각 함대의 게이지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이렇듯 적이 집결한 곳에 강하하고, 이어 조약돌을 맞은 수면처럼 방사형으로 퍼져 위성궤도상에서 확인된 적을 다시 쳐나간다.
모처럼의 속도전에, 비록 화끈한 화력전은 아니었지만 일선의 지휘관들도 신명이 났다.
“제법 잘 싸웠다. 칭찬해주지.”
무릎 꿇려진 노장에게 우현왕이 찌푸렸다.
공세 첫날부터 황해도 방면의 북한군을 총지휘하던, 올해 68세의 2군단장 김도춘 차수를 잡은 것은 오늘의 가장 큰 성과였다. 철원 방면의 5군단장인 이청원 차수와 함께, 그는 지금 북한군 전방 지휘의 기둥이라 할 수 있다.
연륜을 반영하듯 그는 여왕 앞에 호송되어서도 별로 주눅은 들지 않았다. 하루로 잡은 지난 개성 공략. 하지만 반나절이 더 걸린 것은 그 때문이라고 보아도 무방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쓸데없는 저항의 주범이다.
“하지만 덕분에 조금 고생했다. 시간도 잡아먹었으니 묻겠다. 너희들의 수령은 지금 어디 숨어있나?”
김정은과 그 측근들이, 고지식하게 평양 주석궁에 그대로 있을 거라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김차수는 묘하게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
“...모르오. 그리고 안다고 해도 말할 것 같소?”
“...죽고 싶나?”
“...당신에 대해선 이미 들었소. ..맘대로 하시구려.”
유키나는 거듭 얼굴을 찌푸렸다. 모처럼 쌓은 악명도 도움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아니면 이 자가 특별한가.
“그 오대룡은 지금 어디서 뭘 하지?”
“그건 왜 묻소?”
“아, 잡아서 재판은 걸어야지. 지은 죄에 맞도록...”
“재판? ...그냥 죽이지 않고?”
“걱정마라. 말 그대로 지은 죄에 맞게 해 줄 테니까. 자, 슬슬 입을 열어주실까? 설마 이 지경이 되어서도 충성 운운 하는 것은 아닐 거고...”
하지만 김차수는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그를 물린 여왕이 투덜댔다.
“고집은... 그래도 충성심은 가상하다 해야겠지. 나름 잘 싸웠고... 부하는 항복시키고 자기는 자결하려 했으니 책임감도 있는 편이고.”
시립했던 이영이 갸웃거렸다.
“어찌하실 건지?”
“물론 추가 심문은 하겠지만... 지구에서는 이럴 경우 고문 같은 것을 해서 정보를 캐내곤 한다던데... ”
“...저기, 혹시나 싶어서 말씀드리지만...”
“나도 알아. 안다고.”
걱정과는 달리 그녀는 피식 웃었다.
“고문은 진실과는 상관없이, 그저 내가 듣고 싶은 정보만 얻을 수 있다, 그런 거지?”
“...그런 거죠.”
“걱정 마라. 우리도 그 무용함을 잘 알고 있다. 인권 문제도 있고... 다만 그 왕인지 뭔지는 지금 헌병대에서 심문중이다. 저 자도 그렇게 되겠지.”
헌병대에 넘겨진 왕은, 육체적 고문은 가해지지 않았지만 잠 안 재우기에 이은 자백제는 꾸준히 투여되고 있다. 물론 꽤 버티는 모양이라 소식이 없다.
왕지엔치양의 이야기가 나오자 이영은 약간은 불편함을 느꼈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현왕은 물론 황제도 양보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디언즈 문제는 앞으로 그들의 행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거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미합중국이나 중국보다도 훨씬 위협일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마도 배려겠지만 자신에게는 더 이상의 정보를 요구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그랬다면, 아직까지는 얕게나마 남은 마음의 부담은 그저 가중되었을 것이다.
여왕은 어쩐지 새침하게,
“뭐야, 아직 내가 무슨 살인마처럼 보이는 건가?”
“...아뇨. 확실히... 지금이라도 김정은을 잡을 수 있다면 전쟁은 끝나는 거고... 다만 헌병대가 과도한 심문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헌병대는 총장 관할이다. 내 입김은 전혀 없으니 안심해도 좋아. 아,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엔트로티 부함장과 그 딸이 네게 감사인사를 하겠다고 했는데... 거부했다지? 왜 그랬어?”
“딱히 감사받을 일은 아니잖아요...?”
“겸손은 좋지만 쓸데없는 채무의식을 줄 셈인가?”
“그런가요?”
“군의 일로 목숨 빚을 진 셈이니 책임자인 나는 비판을, 너는 감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딱히 여기서 할 일은 없을 텐데 가 봐. 인사 정도에 무슨...”
이영은 조금 난감했다. 애당초 자기 동료가 아니었으면 그런 일도 없었을 거다.
여왕이 채근했다.
“그럼 영원히 피할 참인가?”
“아닙니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럼 오늘 하루만...”
“그래. 잘 다녀와라.”
빠르게 흥미를 끊은 그녀는, 대신 전황도에 시선을 주며 배석한 참모장에게 물었다.
“전선 변화는?”
“모든 일정은 순조롭습니다. 정치범 수용소 해방도 착착 이루어지고 있고요.”
이렇게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동시다발적인 침공이다. 적의 수뇌가 숨어버린 이상 저항도 약하다.
지금이라도 항복권고를 하면 전쟁이 끝날 가능성은 높지만, 그랬다가는 아샤르 정부만 바보가 된다.
봐줄 생각 따윈 그녀에겐 전혀 없었다.
“좋아. 속전속결. ...그 돼지를 잡는다...!”
다음날인 17일, 대망의 평양 공격이 시작되었다.
16일의 오후 일정으로, 이영이 찾아간 곳은 아파켄의 군병원이었다.
일선에도 병원선은 있지만 엔트로티의 일이 기밀로 붙여진 터라, 엔트로티 부함장 노아르 엔트리아 중휘는 이곳에 입원해 있었다.
왕에게 거듭 짓밟혔던 그녀의 부상은 척추손상이라, 수술을 포함해 10일은 입원해야 했다.
“일어나서 감사드려야 하지만 꼴이 이래서...”
부함장의 감사에 이영도 고개를 조금 숙였다.
“별 말씀을...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 딱히 빚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잖아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마땅치 않은데... 어찌하나요.”
“괜찮습니다.”
“그럼 나중에 식사 정도는 저희가 대접하지요.”
“정말 괜찮습니다만... 그러면 장소는 과하지 않은 곳으로 해 주세요.”
너무 거부하는 것도 채무의식을 덜어주지 못한다.
딱히 언제가 될지 모르니 각오는 해야 하나.
“저도... 감사드립니다.”
딸의 감사도 있었다. 병간호를 자처한 그녀는, 부상은 전혀 없었지만 대신 심적 타격이 있을 것이다.
“별 말씀을... 그럼 빨리 쾌차하십시오.”
오래 있을 이유는 없었다. 문 밖까지 따라 나온 인사를 연달아 고개를 숙여 받아낸 그는 오늘 여기 온 진정한 목적, 아레아의 병실로 향했다.
듣자니 긴 요양의 끝물이라 슬슬 퇴원 준비는 하고 있다고 했고, 그 증거이듯이 그녀는 병상에는 없었다.
담당 론비샤에게 물어 찾아간 곳은 작은 온실이었다. 요양 환자를 위한 곳으로 정원과 직접 재배를 겸하고 있단다.
아직은 환자복이지만, 화단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무언가를 매만지는 뒤태는 당장 알아본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그는 낮은 콧노래에 잠시 멈칫했다.
조금은 나아졌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억지 흥겨움일까.
갓 수확한 무언가의 열매를 손에 쥔 그녀가 돌아서자, 애써 무표정을 준비했던 그는 막상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에...!”
옅지만 강한 놀라움에,
“안녕... 오랜만이야.”
이 정도 정도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이 바보 같다.
“어쩐 일이세요?”
“그냥... 일이 있어 온 김에. 지난번엔 그냥 그렇게 가버려서... 다시 찾아오기엔 그동안 이래저래 바빠서...”
“괜찮아요. 그리고... 다행이네요.”
뜻밖의 묘한 웃음에 이영은 반문했다.
“뭐가?”
“표정...을 보니... 마음의 짐은 조금 던 것 같아서요.”
아아, 그랬지. 그러고 보니 그녀는 그렇게 말했었다.
마음의 평화를 찾기를...
나도 노력할 테니 당신도 그러하기를...
“모처럼 찾아오셨는데 대접할 것은 없고... 드세요.”
그녀가 내민 것은 노란 색의, 사과를 닮았지만 군데군데 은빛 점이 박힌 것이다. 엉겁결에 받은 그는 그녀를 따라 한 입 베어 물었다.
산도는 낮고 당도는 높은 딸기 맛에 가깝다. 생각 이상의 맛에 한입 더 베어 물자 그녀가 자랑스레 웃었다.
“앞으로는 지구에서도 맛볼 수 있겠지요.”
“기대되네...”
“네. 그리고 일이라... 알만하네요.”
“알만하다니?”
“노아르 일가를 찾아가셨지요?”
“...어떻게 알았어?”
“어제 우연히 복도에서 친한 동기(同期)를 만나서... 깜짝 놀랐어요.”
그러고 보니 동갑에, 아레아와 같은 전시임관이니 충분히 안면이 있을 수 있다.
“전선에 있어야 할 사람이 병원에 있기에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지요. 기밀이라니 많이는 못 물었지만, 지상인 능력자라고 하기에 인상착의를 물어봤었죠.”
“...그래. 노아르 소사가 따로 뭐라고 했어?”
“목숨을 빚졌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말해줬어요. 지상인들도 좋은 사람은 좋다고. ...아시다시피 우리는 지상인에 대해 경멸과 두려움을 다 갖고 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그 극한에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고생하셨어요, 상세한 일은 모르지만... 친구를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녀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이영은 내심 탄식했다.
“그래. ...요즘은 좀 어때? 퇴원은...?”
“열흘 정도 있으면... 그 뒤로는 군 복귀는 하겠지만.”
“...견뎌...낼 수 있겠어?”
차마 묻기 힘들지만, 또한 꼭 물어야 할 질문이다.
서로의 웃음에 묘한 씁쓸함이 스쳐지나간다.
“자신은 없네요. 저는 그다지 잘난 인간은 아니니까, 그분들처럼 할 수는 없겠죠. ...정신 치료는 받지만... 그래도 아주 비관적인 것은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글쎄요... 혹시 무언가의 동정?”
“그게 아니라... 알잖아. 이대로 그냥 넘어가기에는...”
그녀의 지난 말은 어찌 보면 오늘의 토대다. 그것으로 인해, 자신은 많은 것을 생각했고 여기까지 왔으니.
“사실 오늘 내가 온 것은 말이야...”
이제는 망설일 것이 없다. 그의 무릎이 천천히 꺾이고, 지면에 닿은 순간 아레아는 눈을 크게 떴다.
“용서... 빌려고... 지난 번 일에 말이지.”
그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굳이 이 병원까지 온 것은, 주제넘게 노아르 모녀에게서 감사 인사를 받으러 온 것은 아니다.
어리석었던 자신이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가장 깊게 용서를 빌어야 할 대상은 바로 그녀였다.
“...너는 내가 한 짓이 아니라고 했지. 하지만... 할 수 있었던 일을 하지 않았던 그 죄는 내 생각보다 컸어.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내가 후회하고 네게 빌어서 한 용서와, 그냥 네가 해준 것은 차이가 있잖아. 그러니...”
“...진짜 바보네요.”
그녀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런 걸 보고 기뻐하진 않아요. ...일어나요.”
“그래도...”
“이미 말했잖아요. 그건 저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그러니...”
손이 잡혀지고 이내 끌어올려진 그는, 한 가지 말을 더 해야 하나 고민했다.
가능하면 너를... 책임져야 한다고.
하지만 그녀는 화제를 돌리려는 듯 재빨리 말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기에 노아르를...?”
이야기를 조금 들은 그녀는 몹시 놀랐다.
“하필 언니 옆에... 그 일로 뭐라고 하진 않던가요?”
“약간... 하지만 다 풀었어.”
“다행이지만... 하필 영자력 전수라... 큰일이네요.”
“뭐가? 뭐가 큰일이지?”
난 달라고 한 적 없다. 물론 그 덕에, 왕과 대등 이상으로 겨루고 살아남은 것은 사실이지만...
“의미는 이야기해주지 않던가요?”
“수명 감소?”
“아뇨... 저기... 그게...”
몹시 망설이는 품을 보아 보통의 일은 아니다.
“말해봐.”
“...제게 들었다고 하면 안 돼요.”
아무래도 불안한지 그녀는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았다.
“전에 차비마마와 관련해서 유키나 언니에게 들은 말이 있어요. 그때야 설마 본인이 그렇게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만...”
“뭔데 그렇게...?”
“영자력 전수는 수명이 깎이는 것. 곧 자기 생명을 나누는 거니까, 그 처치를 받은 사람은 노화도 없어지고 수명도 늘어나죠. 이게 무슨 뜻이겠어요?”
“...잘 모르겠어.”
“설명을 듣고 차비마마께, 그것도 정식으로 후궁책봉도 하기 전에 그런 처치를 했다는 것을 듣고 생각했죠. 아아, 그 사람은 폐하께 그렇게 의미가 있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말이죠.”
“의미?”
“네. 전수자와 피전수자는 힘만 이동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끈, 그 자체로 연결된다는 거에요. 그것은 어느 한쪽이 죽기 전까지는 끊어지지 않고, 또 그 끈이 끊어지지 않는 한 다시는 또 다른 이에게 불로의 처치는 불가능하다고 해요. 폐하 정도의 강력한 능력자라면 2명까진 가능할지 몰라도, 보통은 1인이 한계래요.”
“....잠깐만, 그럼?! 나한테 한 것 때문에...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타인에게는 불가능한 거야?”
이게 무슨 빨간 실도 아니고...
당혹한 그에게 아레아가 끄덕였다.
“맞아요. 그러니까 차비마마에게 그런 처치를 한 것은, 장구한 수명을 살아가는 자신의 일부를 같이 살아갈 사람이란 의미에요. 만약 그 사람이 죽지 않았는데 또 다른, 같이 젊음을 유지하고 살아가고픈 사람이 나타나면 막상 그 사람에는 해줄 수가 없는 처지가 되는 거죠. 당신이 죽지 않는 한 말이죠.”
이영은 몰랐지만 르아냐에서의 영자력 처치는, 수명감소뿐만 아니라 이 이유 때문에 유키나와 세리사는 몹시 불안해했었던 셈이다.
‘루이코라면 도전해볼만 하지 않나’ 라는 발언과 합치면, 나는 이 여자가 상당히 마음에 든다고 공언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영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아마 이번 사건에서 최대의 희생자는 그녀겠지. 황제야 루이코를 아껴서 그랬다지만, 그녀는 짜증만 불러일으키는 자신이 대상이다.
그런데 언젠가는 만날 수 있었을, 100년 후가 될지 모르지만 내일이 될지도 모르는, 사랑하는 이에게 해 줄 수 있었던 선물을 그냥 날려버린 셈이다.
어째서냐. 너는 수만 척의 함대를 지휘하고 수백만의 병사를 휘하에 두고 있어. 싸우게 된다면 희생은 당연하게 여겨야 하는 건데... 그런 것에 일일이 신경 쓰면 과연 정신이 온전히 남아날까?
걱정도 되지만 어이가 없었다.
...누가 누구보고 바보라는 거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에게 연달아 느꼈던 처절함에 다시 마음이 쓰라렸다.
대체 어느 정도의 각오이면 그렇게 될까?
그 각오를 만들어준, 그녀와 황제의 접점은 대체 어느 정도의 무게일까.
“저기, 그럼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러면 원래대로 돌아가겠죠?”
제길, 그러면 언젠가 그녀가 마음에 드는 이가 나타났을 때, 나는 소리 소문 없이 죽는 거 아냐.
이영은 모가지를 만지며 침을 꿀꺽 삼켰다.
아레아가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네요.”
“사실, 용서는 받았어도 조금 불안해서...”
“...용기는 있지만 아무래도 생각은 짧은 편이네요.”
아레아가 드물게 빈정거렸다.
“생각해 봐요. 몇 사람 살리자고 그만큼 희생을 한 사람이, 자기 좋으라고 함부로 남을 죽일 것 같아요?”
“아...”
“그러니 이제 밉보이지 마세요.”
그래야한다. 앞으로의 평안을 위해서라도 그녀와는 이제 접점을 만들지 말아야지.
일단 총사령부에서부터 나와야 할 터. 그녀도 이제 사람을 함부로 죽일 것 같진 않고.
그러니 내가 있을 곳은 원래의 자리다.
“...좋은 이야기 많이 들었다. 건강하고... 나중에 세상이 좀 조용해지면... 우리 집에라도 한 번 놀러와.”
“당신 집?”
“이래 뵈도 나 꽤 잘 살아. 손님 머무를 정도는 돼.”
특히 넓기만 한 정원은 정나미가 붙진 않았지만, 슬슬 가족도 한 번 찾아가야 한다. 일단 무사하기도 하고...
그의 전향 즉시, 황제는 슈고카이의 보복을 우려해 서울에 있는 집에 감시를 붙이는 치밀함을 보였다.
“알았어요. ...나중에 봐요.”
그늘이 아직 완전히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앞에서 그럴 수 없다는 듯 그녀는 열심히 웃었다.
평양 침공의 주력인 5함대 사령관 야베타 대제독 직속 준함대 1,300여척. 이에 덧붙여, 특별히 1함대에서 차출한 2개 분함대가 동원되었다.
그렇게 도합 2천에 가까운 함대가, 반경 80㎞의 구간에 촘촘히 이중 삼중으로 배치되어 급속 강하했다.
역시나 있을 대공포 사격을 막기 위해, 전함을 위주로 방어막을 공유한 중소형 함들이 한 덩어리로 움직였다. 공유함이 많을수록 기동력은 떨어지지만 우주전투가 아니니 상관없다.
하지만 일선 지휘관들은 심각한 의문에 휩싸였다. 아무리 구닥다리인 대공망이라도 나름 대비를 했는데, 아침 햇살 밝은 평양 시내는 너무 조용하다.
수상함을 느낀 일선지휘관들은 잠시 강하를 중지한 후 함대사령부에 보고했고, 이 보고를 받은 야베타 대제독은 참모장 보에른과 머리를 맞댔다.
“무언가의 함정 아닐까요? 예를 들어 핵무기를 묻어놓고 우리가 접근하면 터트린다던가...”
“평양 시내 전부를 날리겠다는 건가?”
“목숨 아까운 처지에 도시 하나 정도야... 라면요?”
“우리를 날려버린다고 해도 그 다음은?”
그들 뒤에는, 아직 주기관에 시동도 걸지 않은 2만 함정이 있다. 게다가 이 정도로 방어진형이면, 핵무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다.
“알 수가 없군. 하지만 이렇게 되면 그냥은 내려갈 수 없지. 무인함대를 선행시키세.”
결국 본격 진공은 세 시간 늦춰져, 모든 승무원이 내린 100여척이 먼저 강하했다. 하지만 여전히 반응이 없자 그들의 고민은 깊어갔다.
“설마 다 도망간 것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영파탐지기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사람의 숫자를 파악하는 데는 이만한 장비가 없다. 그리고 평양시 안에는 아직 200만 명 이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추가 진공을 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갑자기 통신사관으로부터 보고가 들어왔고, 이는 사령관과 참모장을 꽤나 경악시켰다.
무조건 항복 선언이었지만, 그것은 김정은 본인의 명의의 것이 아니라, 총정치국장 리은철과 국가안전보위부장 황용식의 것이었다.
이미 그는 사망해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몇 달을 미뤄온 아레아에 대한 그의 사죄는... 그가 껍질을 완전히 벗었다는 표시가 될 수 있을까요. 또한 자기 부하를 살리고자 유키나는 상당한 희생을 치른 셈이죠.
그리고 신나게 평양을 때리려 하는 판에 들려온 이 소식... 벙찐 독자님이 계시려나. 하지만 절단하고... 내일 뵙겠습니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