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배덕(背德)의 창공 後> 에필로그 : 너를 위한 기다림 (2부 完)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아아, 이렇게 다시 올 줄이야...”
푸르른 들판을 밟은 유키나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언젠가 같이 오자고 했지만, 다시 즐겁게 모이길 기대했지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다.
세리사도 감회에 젖은 듯 주변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들이 헤어질 곳은 그녀가 골랐다.
“하필이면 여기야...”
유일하게 칼스가 투덜거리자 세리사는 쓰게 웃었다.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되었지. 그래서... 골랐어.”
첸레이 호수. 한 때 그들이 웃고 즐기며 놀았던 곳.
다시 찾은 그들은 조금 더 나이를 먹었고 서로의 관계도 달라졌다.
다시 올 수 있다면 그 때는 또 어떠할까?
“자, 그럼... 난 가겠어. 다들 알아서 잘 지내라.”
칼스가 손을 털고 기지개를 켰다.
이제부터 그는 타인의 인생을 거듭 살게 된다. 긴장과 시련의 나날이 될 테지만 또한 흥분감도 들었다.
세리사에게는, 그녀가 살았던 동궁의 정침을 그대로 복제한 인공행성이 주어졌다. 르아냐, 천년의 정원이라 이름 붙여진 이곳에서 기약 없는 나날을 보내야 할 것이다.
유키나는 칼스의 지구인 육체를 손보고 바로 달로 돌아가 동면에 들 것이다. 그녀는 어깨 너머로 걸쳐진 머리카락을 꼬았다.
“다음에 볼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부디 건강하세요. ...오라버니도 같이 올 테니까...”
“그래...”
세리사의 대답에 칼스는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음? 밥은 먹여준다는 건가. 이거 참, 황송해서...”
마지막까지 미운 짓만 골라하는 셈이지만...
세리사... 너는 내가 왜 환생자를 골랐는지 모르겠지.
이것은 내게 꼭 필요한 기회다.
열세 살의 나는 내 친구를 죽게 만들었고, 열다섯 살의 나는 너를 상처 입혔으며, 스무 살의 나는 지켜야 할 가족과 사랑하던 여자를 지키지 못했고, 오늘의 나는 끝내 네 마음을 돌리지 못했어.
...나는 지금도 미숙하다.
하지만 나는 달라질 거다. 수없이 많은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희로애락을 맛보고 수많은 것을 보고 들을 거야.
다시 만난 나는 지금보다 더욱 강해진다.
그러니 언젠가, 반드시 네가 네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할 때, 그 뒤에 서 있을 나는 더 이상 모자란 이가 아닐 수 있도록...
나는 앞으로도 너를 위해 살아갈 거다.
나는 네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빼앗았어. 신중하지 못한 탓에 지켜야 할 몸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었고, 몇 번이고 울렸으며 오해로 버리기까지 했어.
너를 울리고 얻은 그녀도 지키지 못한 나는, 그런 주제에 감히 네 몸에 함부로 손대고 가지려고까지 했어.
죽은 아미에 때문만이 아니라도, 내가 깨닫지 못한, 너무 늦게 깨달은 이 마음.
그러니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차마, 절대로, 영원히 할 수가 없어.
이해하라고도 용서하라고도 할 수 없지만, ...이제 나는 네 무엇도 빼앗지 못해.
그러니... 외로움은 부디 조금만 겪기를...
꼭 다시 일어서기를... 난 기다려 볼 거야.
세리사는 태연한 척 가슴을 조였다.
내가 그렇게 당신을 괴롭히지 않았으면, 당신은 아무 부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여자와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거야.
내가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으면, 당신의 그녀와 가족도 헛되이 죽지 않았을 거야.
그러니, 아직도 당신에게 마음이 있다는 그런 말을, 이제는 감히 할 수가 없잖아.
사랑하는 사람. 인생의 고통을 몇 번이고 겪을 사람.
그렇게 기꺼이 자신을 던져가는 그는 어떻게 바뀌어나갈까. ...바뀌지 않을까?
나를 용서할까, 아니면 영원히 미워해버릴까...?
그래도 어쩌면, 어쩌면 언젠가 이 마음을 알아줄지도 몰라.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보면 돌아봐줄 날이 있을지도 몰라.
너무나 허약한 접점이지만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
그 대신, 살아가는 동안 내 표정을 가다듬지 않으면...
너무 기뻐하면 그는 매몰차게 나를 밀어낼 거고 너무 미워하면 그는 오래 머무르지 않겠지.
그러니 당신이 보기에는 담담하게, 되도록 조용하게... 당신이 원하는 대로 가끔씩 조금은 미워하면서, 아니 그런 척 하면서 살 거야.
이것은 내가 당신에게 진 빚을 갚는... 그런 유일한 길이 될 거야.
지금 내게 가장 두려운 것은 기약 없는 이 기다림이 아니라, 세월이 지나면 혹여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옅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야.
절대 그렇게 되지 않도록, 이 고독을 양식 삼아 꿋꿋이 살아야지.
이거 알아...? 이 기다림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또한 당신을 위한 기다림이야.
당신은 더 행복할 자격이 있고, 그 행복은 다른 이가 아닌 꼭 내가 주고 싶으니까...
그러니 언젠가 당신의 미움이 사그라질 날, 내가 다시금 이 마음을 부딪칠 그 날. 부디 깨달아줘.
...말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알아줘...
각자의 상념을 품은 채로 시선을 돌린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유키나는 쓰게 웃었다.
이 바보들은 아마 오래 싸우겠지. 서로가 철저히 거짓을 말하면서, 또한 간절히 진실을 바라겠지.
이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두려운 두 사람은, 마지막 계단만은 절대로 먼저 밟으려 하지 않겠지.
눈물과 실소 없이 보기 힘들 최강바보결정전을 관전하게 되었지만, 그들을 탓할 마음은 어쩐지 들지 않는다. 스스로의 운명 역시 이들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니 언젠가는 이 오해와 어색함은 희석되고, 또한 서로에 대한 진심을 그들 스스로 깨닫게 되기를.
...눈짓과 약간의 고갯짓으로 천만마디 말보다 더한 마음을 나누고, 처음으로 즐겁게 모였던 그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헤어진 그들은 역사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서로를 위한 싸움과 서로를 위한 고통과,
서로를 위한 기다림의 길로.
그들은 차분히 걸어갔다.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그리고 2,300년간의 애증이 뒤섞인 바보배틀이 시작되었습니다. 끗!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2부를 읽어보시고 1부 2권 구궁의 황녀편을 읽어보시면... 이들이 대충 그동안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살고 어떻게 헤어졌는지 모양이 조금 나오실 거에요. 사실 2부의 스포는 구궁의 황녀편에 대부분 들어 있습니다. 찾아보심도 괜찮을 거에요.
후기 나갑니다. 제목변경에 관한 설문도 있으니 잘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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