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장. 장막 속에서. (3)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Ⅲ
조의 수도 한단의 밤은 깊었고 성문은 엄중히 닫혔다. 저자에 바글거리던 사람들도 이미 집으로 들어갔고 순라를 도는 병졸들이 횃불을 켤 것이다. 하지만 그 조용한 거리를 한 대의 수레가 달리고 있었다.
수레에 탄 사람은 아직 젊다. 나이는 40이 되지 않았을 그는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마부를 재촉했다.
도착한 곳은 한 대부(大夫)의 집이었다. 그러나 대부의 집으로 보기에는 조금은 지나치게 크다. 이런 경우는 두 가지. 원래 물려받은 재산이 많았거나, 아니면 받은 돈이 많았거나다.
문지기의 안내를 받아 대청에 들어선 그는 길게 읍을 했다. 맞이하러 나온 왜소한 남자는, 깡마르고 턱이 뾰족하며 나이는 역시 40세 정도다.
“어서 오게.”
“곽(郭)대부를 뵙습니다.”
긴 인사를 나누지 않겠다는 듯 주인은 안을 손짓했다.
찾아온 객의 손에는 보자기로 싼 네모난 것이 있다. 내용물은 짐작이 가지만 주인은 짐짓 모른 체 하고 있었다. 비어있는 의자에 일부러 잘 보이도록 보자기를 놓은 객에게, 살짝 흡족한 미소의 대부가 물었다.
“요즘 어찌 지내나? 조(趙)군위?”
“그럭저럭 지내지요.”
그는 군위(軍尉)였다. 군의 대오 정비와 훈련을 담당하고 군법과 군기를 감독하는 지위이다. 나이에 비해 높은 지위인 이유는, 지금은 죽고 없는 그의 아버지가 고위의 장군이었기 때문이다.
마복군(馬服君) 조사(趙奢). 이 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명장으로, 그 이름과 공적은 매우 크다. 하지만 그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평가는 조금 달랐다.
약관의 나이였던 자신이었지만, 병법토론은 그 대단한 아버지도 이기지 못했다. 군대의 배치, 숙영 방법, 세작을 적절하게 푸는 법은 물론, 어디를 어떻게 노리고 쳐야 하는지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뭐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가끔씩 혀를 차곤 했다. 밤늦게 병서를 읽고 있던 아들을 찾아와 충고한 적도 있었다.
“전쟁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이니, 너무 가벼이 여기지는 말거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독서하는 아들을 격려하지는 못할망정...?
그는 내심 못마땅했지만 수긍했다. 아니, 수긍하는 척 했다. 그리고 이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를 본받을 것을 권하고 질책했다.
뭐가 불만이실까. 이 나라에, 아니 천하를 통틀어 자신보다 병법에 밝은 사람은 없다. 손자와 오자는 물론이요, 시중에 나도는 이름 없는 잡서까지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이제 그의 학식은 나이 지긋한 노장들도 따라오지 못하는 바이다.
“지금 장평에서 대치고 있는 아군을, 대부께선 어떻게 보십니까? 이대로 두실 겁니까?”
객의 질문에 주인은 많지 않은 수염을 꼬았다.
“그렇지 않아도 주상(主上)도 심기가 불편하시네.”
염파가 누구인가. 엄연히 적을 치라고 보낸 대장인데, 속 시원하게 적을 몰아내기는커녕 군을 틀어쥐고 죽치고 앉아 군량만 축내고 있다.
징집한 이상 군량은 조정에서 내어준다. 병사 하나당 한 달에 2두(斗) 가까이는 족히 먹으니, 두 달 동안 먹은 군량은 이래저래 10만 석(石)에 육박한다.
하지만 4월의 춘궁기에 간신히 모아들인 군량이다. 때문에 굶어죽는 사람도 제법 생겼다. 운송도 큰 문제로, 나라 안의 수레를 크게 동원했지만 수급은 쉽지 않다.
하지만 거듭된 왕의 불편한 소리에도 대장 염파는 꿈쩍하지 않는다.
“혹시 대장을 교체하신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까?”
군위는 조회(朝會)에 참석할 권리가 없다. 눈앞의 곽대부는 말석이긴 하지만 그 대신 왕의 근신(近臣)이다.
“그게 말일세, 반반일세.”
“반반이요? 어째섭니까.”
“그게... 염파는 지난 세월 나라를 위해 봉사했고 진 적이 거의 없지. 이번에도 믿고 맡기자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이제 염파의 나이 고희(古稀)에 이르지 않았나. 불안한 목소리도 많고...”
“뭐, 아직 정정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세월에 이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상장군이 뭘 믿고 그리 버티는지...”
“얼마 전 염파가 상소를 올려 말하길, 적은 먼 길을 달려와 피곤하고 굶주렸지만, 아직 그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고 하네. 그러니, 두 달에서 석 달만 더 버텨 그 기세를 꺾고 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하였네.”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익히 알려진 학식을 동원했다.
“손자(孫子) 모공(謀攻)편에서 이르기를, 적의 열 배가 되면 포위하는 것이 유리하고(十則圍之), 다섯 배가 되면 공격하며(五則攻之), 두 배가 되면 적을 분산시키는 것(倍則分之)이 유리하다고 하였습니다. 비슷하면 기꺼이 싸울 수 있고(敵則能戰之), 군사 수가 적으면 달아나야 하며(少則能逃之), 그렇지 않으면 피해야 한다(不若則能避之) 라고 하였고요.”
“그래서?”
“적군은 이 금기를 어기고 있습니다. 멀리서 왔고, 공격하는 쪽이며 숫자도 비슷합니다. 싸우거나 아니면 달아나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았지요. 그리고 지쳐 있습니다. 이렇듯 승기는 모조리 우리에게 있는데, 대체 상장군은 무엇을 망설인다는 겁니까.”
객은 소리 나게 탁자를 탕 쳤다.
“삼군을 이끈 장수가 패하면, 그 일족을 친다는 것은 고래(古來)로부터의 법입니다. 그렇다면 혹여 실수하여 일족이 다칠까봐, 상장군은 계속 몸을 사리는 것이 아닙니까? 귀여운 손자들이 혹여 말려들어 죽을까봐?”
“말이 심하이.”
대부는 주의를 주었다.
“그러는 자네도 노모(老母)가 있잖은가?”
“가족을 돌보느라 국가의 대사를 잊는다면, 그것은 장수된 바가 아니지요.”
객은 가슴을 폈다.
“제가 나아간다면 한 번 싸움으로 적장의 목을 베고, 저 진나라 도적놈들의 목을 취하고 그 피로 냇물을 만들어 방패를 띄울 것입니다.”
“왕흘이 그렇게 만만한 장수이던가?”
“조금 싸움이나 할 줄 아는 필부일 뿐입니다. 진나라에서 무서운 것은 백기(白起) 정도일 뿐이지요.”
이 시대 최고의 장수라 해도 부족하지 않을, 이 이름에는 대부조차도 조금 몸을 떨었다.
염파 정도가 그나마 팽팽히 맞선, 열국의 공포 그 자체인 이름이 바로 백기다. 그 실력도 실력이지만, 적에 대해서도 전혀 용서가 없었음이 그 이유다.
과거 한나라와 위나라의 연합군을 상대해 이길 때, 무려 20만이 넘는 적을 참살하고 대장인 공손하를 갈기갈기 찢어서 죽였는가 하면, 초나라 침공 시에는 30만 명이 넘는 이가 그의 손에 죽었다. 이 공적으로 그는 무안군(武安君)에 봉해졌다.
그 뿐인가. 불과 4년 전. 한나라를 침공한 그는 사로잡은 5만 명을 모조리 참수했고, 야왕을 점령하여 한나라를 두 토막 낸 장본인이다.
이 시대 최고의 맹장이자 학살자라 할 만 했다.
객이 초조하게 말했다.
“이리 시간을 끌다가 백기가 나오기라도 하면, 그 때는 훨씬 어려운 싸움이 될 겁니다. 그러니 더는 좌시할 수 없어, 이 밤에 굳이 무례를 무릅쓰게 되었습니다.”
“흠흠... 그런데, 그것과 내 집을 찾아온 것이 무슨 관계가 있나?”
서로가 의미를 모를 리는 없다. 상자가 그것을 증명하니까. 객이 읍하며 말했다.
“우국(憂國)으로 잠을 못 이루실 대부께서 힘을 좀 쓰신다면, 저 나약한 염파를 몰아내고 저를 대장으로 삼아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이미 지난번에 부탁을 드렸습니다만 답이 없으시기에...”
너무 노골적이군. 대부는 내심 그 성급함에 제동을 가하고 싶었지만, 저 상자의 내용물은 상당할 것이다. 괜히 먼저 선수를 칠 이유는 없겠지.
“자네가... 할 수 있단 말이지...?”
“저는 병법에 있어서 이미 천하제일을 자부하고 있습니다. 부친의 모든 것을 잇고 있고요.”
“하지만, ...아직 자네는 전쟁을 치른 적이 없잖나.”
“누구는 뱃속에서부터 군을 지휘했답니까?”
그는 호언장담했다.
“우리 조나라는 저 진나라 개들에게 수없이 당했습니다. 이 원한을 갚지 않고서야, 어찌 우리 조나라가 열국(列國)에 고개를 들 수 있겠습니까?”
“...흠.”
“물론 지난번에는 경황이 없어 그냥 지나쳤지만...”
그는 보자기에 다시 눈길을 주었다.
“나라를 위한 일에 써 주십시오. 대부께서는 받으실만한 자격이 있으시니까요.”
직접 주는 것은 예절이 아니다. 눈짓으로 상자를 슬쩍 가리킨 그는 고개를 숙여 읍을 했다.
“그래... 어디 한 번 주상께 잘 이야기는 해 보겠네.”
대부는 조금 웃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나라를 위함이네. 자네가 이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좋겠구만.”
“탁월하신 충정이십니다.”
사내는 일어섰고 주인은 굳이 배웅하지는 않는다. 이윽고 대문 소리에 이어 수레가 구르는 소리와 말의 울음도 울린다.
한숨을 가볍게 쉰 주인은 이어 다른 방을 가린 장막을 제쳤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예를 올리자 주인이 갸웃했다.
“...말한 대로 저 자로 할까 하는데...”
“좋지요.”
검은 옷의 사내가 빙긋 웃었다.
“말씀드린 대로, 저희 진나라도 슬슬 물러나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염파 늙은이를 상대로 그냥 물러난다면, 왕흘 장군은 물론이려니와 저희 왕께서도 체면이 말이 아니지요.”
“...그렇겠지.”
“그러나 천하제일병법이라 일컬어진 저 자라면, 슬슬 물러날 명분은 됩니다. 그런 자로 대장이 바뀌니, 지친 아군에 원기 왕성한 적군이 곧 짓쳐올 것이다. 그리 되면 불리하니 미리 물러난다..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게, 진왕도 무리한 전쟁을 했구만...”
“싸움이 이렇게 길어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무튼 이번 건은 잘 부탁드립니다. 염파를 밀어내고, 부디 새로운 대장으로 저 자를 앉히시기를...”
사내는 자신의 옆, 검은 보자기에 눈길을 주었다.
“섭섭하진 않으실 겁니다.”
사내가 떠난 후, 대부는 양쪽에서 받은 상자를 탁자에 올렸다. 워낙 무거워 교대로 들어 올려야 했다.
내용물인 금은과 포전 꾸러미를 확인한 대부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입가에 지었다. 무려 천금(千金)이다.
객이 가져온 것도 그 절반에 가깝다. 이 맛에 관리를 하는 것이지.
“...조금 더 쓸 것이지.”·
그래도 입은 다시 투덜거렸다.
다음날 아침의 조례는 시끄러웠다. 난감한 표정으로 옥좌에 앉은 조왕의 옆에는 상소 꾸러미가 쌓여있다.
죽간으로 만들어진 상소는 둘. 하나는 염파에게서 올라온 것이고 하나는 군위에게서 올라온 것이다.
염파의 상소는 지난번 왕의 질책에 대한 답변이다. 아직은 적의 기세가 왕성한 점을 들어 공격을 유보한다는, 결국은 같은 이야기다.
반면 군위의 상소는 염파를 규탄하는 것이다. 이기라고 내보낸 대장이 덧없이 군량을 축내며, 무엇보다 왕과 조정의 체면을 깎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어느 쪽도 일리는 있다. 결단을 내리지 못한 왕은 말석에 있는 대부를 지목하여 물었다.
“곽대부는 어찌 생각하는가?”
그의 말은 매우 달콤하고, 왕이 듣기에도 항상 이치가 맞았다. 때문에 근신으로 두는 것이다.
“소신, 상대부(上大夫) 곽개(郭開) 아뢰옵니다.”
종종걸음으로 나온 대부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두 상소 모두 일리가 있사옵니다.”
“그것뿐인가?”
“아닙니다. 모두 일리가 있다면 일의 경중을 따져야 합니다. 상장군의 말로도 적을 물리칠 수 있으며, 군위의 말로도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끝을 따져야겠지요.”
“끝이라?”
“예. 지금 진나라 놈들은 천하에 그 악명이 드높고, 그 이름을 듣는 자 중에 치를 떨지 않는 자가 없어, 그 증오는 산을 덮고 원한은 바다로 흘러내릴 지경입니다. 지금 저들이 20만이나 되는 군사로 아국을 침범했지만, 다행히 성상(聖上)의 군세 앞에 막혀 차마 더 이상은 진군하지 못하는 바입니다.”
그의 말은 청산유수와 같아 한 번의 막힘도 없다.
“하지만 이미 저들은 상당을 접수했고, 이는 이미 상당 태수 풍정이 우리에게 바친 바입니다. 적에게 고통 받는 만백성을 생각하시어 전쟁을 감수하고 그들을 받아들이신 성상의 자애와, 아직 적의 치하에 있는 백성들의 고통에 잠 못 이루실 성상을 생각하오면, 하루라도 빨리 상당을 적에게서 해방시켜야 합니다.”
“고의 마음이 그러하다.”
“또한 적을 그냥 물리치는 것이 아니라, 저들의 포악한 행위도 함께 징벌하여야 합니다. 적은 지쳐 있으니, 이때야말로 주상의 위세를 천하에 떨칠 기회가 아닙니까? 하지만 상장군은 그저 적을 곱게 돌려보내고자 하니, 이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군위를 대장으로 명하여 내보낸다고 해도... 과연 괜찮겠는가?”
“군위는 명장으로 이름 높으신 마복군의 아들이며, 병법에 있어서는 노장들도 크게 감탄하는 바이옵니다. 소신의 짧은 생각이지만, 어차피 적을 물리치는 결과가 같다면 이 기회에 대장을 교체하고 군을 증원하여, 적을 아예 섬멸하는 것이 어떠하오신지...”
왕은 배석한 평원군과 평양군을 바라보았다.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묻기는 두 사람에게 물었지만 사실 평원군 혼자에게 물은 것이다. 평양군은 이 전쟁을 반대했었다.
“신이 보기에도 대부의 견해는 합당하옵니다.”
평원군은 조사를 잘 알고 있었다. 그 아들이라면 믿어도 되겠지. 게다가 아무래도 염파는 늙었다.
예전의 그는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빼앗았다. 그래서 내보냈건만... 이대로는 이 전쟁을 지지한 자기 처지도 곤란해진다.
게다가 진나라 놈들을 그냥 돌려보낸다? 책임론을 반대 정파에게 공격받을 것이다.
왕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염파에게 한 번 더 독촉하고,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대장의 교체를 생각하겠노라.”
왕의 의향은 결국 존중되지 않았다. 염파는 다시 거부했고 이에 왕은 교체를 결정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안 재상 인상여(蔺相如)가 아픈 몸을 이끌고 찾아왔다.
‘실전 경험이 없어 안 된다’ 라며 잔기침을 하며 노재상은 찬 바닥에 엎드렸지만, 그와 염파가 호형호제를 하는 사이라는 것을 왕은 잘 안다. 결국 친우의 자리를 위함인가. 재상도 늙었다 싶은 왕은 정중히 거부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발생했다. 조사의 아들을 대장에 봉한 바로 그 다음날, 왕을 만나고자 청했던 여인이 있었던 것이다.
죽은 조사의 아내이자 군위의 어머니인 그녀는, 자기 아들이 대장에 오르는 것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아들이 출세하는데 아니 대체 왜? 이 의문은 왕으로 하여금 아녀자인 그녀를 궁중까지 불러들이게 했다.
그 의문은 곧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장군의 처였으며 집안에 재물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그녀가 입은 것은 비단옷이 아닌 저자의 아낙이 입는 삼베옷에 불과했다. 또한 기름져야 할 얼굴은 그저 수수했다.
부복한 부인에게 왕은 기다리지 않고 물었다.
“아니, 왜 그대의 아들을 대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이오?”
“아비에 훨씬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이마가 더욱 좁혀져 제법 깊은 주름을 더했다. 왕이 헛웃음으로 물었다.
“그대의 아들은 천하제일병법가가 아닌가? 그 재능과 학식은 뭇 노장들도 매우 감탄하는 사실이고...”
“분명 아들의 학식은 깊습니다. 돌아가신 부군도 훨씬 못 미칠 정도였지요. 때문에, 처음에는 저도 뭇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뿌듯해 했나이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가?”
“그런 저를 탓하며 부군이 말씀하신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릇 전쟁이란 목숨을 거는 것인데, 집의 더벅머리 아이는 목숨을 가볍게 여기며 입만 살았을 뿐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하니, 후일 장군이 된다면 필시 군대를 파멸시킬 것이다...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소?”
“또한...”
직접 낳은 자식의 욕임에도 그녀는 거칠 것이 없었다.
“부군께서는 거느리는 식객이 수십이요, 나라 안팎에 수백의 벗을 두었을 만큼 인망이 두터웠지요. 하지만 아이는 그만한 인망이 없습니다. 또한, 주상과 종실에서 내리신 하사품을 부군은 부하들에게 베풀었으나 아이는 독점하고 있습니다. 또, 출정 명령이 떨어지면 부군은, 집안일에 일체 신경을 쓰지 않고 군무에 몰두한 반면, 아이는 재산 불리기에 몰두하고 있지요.”
“꼭 대장으로 삼아야 한다면 어찌하겠소?”
“섬돌에 머리를 박고 죽겠나이다.”
자식은 부모가 가장 잘 안다. 혹시 자신이 모르는 무엇이 있지 않을까. 왕은 심하게 망설였다.
“무엄한지고...”
배석한 곽대부가 책망했다.
“대부인(大婦人)은 감히 어전에서 죽고 사는 문제를 논하시는가? 또한 어찌 아녀자의 몸으로 군의 일을 함부로 논하시는가?”
찜찜한 기분을 거두지 못한 왕이 다시 물었다.
“만약 그래도 내보낸다면...?”
“정녕 그리하신다면 약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약조? 무슨 약조인가?”
“만약 아이가 패하여 삼군(三軍)을 멸케 한다 해도, 저희 조씨 가문에는 그 책임을 묻지 않으신다는...”
그제야 왕은 조금 웃고 말았다.
대장이 패하면 가문을 멸함이 법이다. 그녀는 만약의 일이 두려워 자식의 출세를 반대하는 것인가.
“그대가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고는 나라의 일을 먼저 걱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 적은 문 앞에 와 있고, 대장은 나이 들어 두려움만 갖고 있다. 이에 고는 그대의 자제를 대장으로 세워 적을 격파하고자 한다. ...약조를 할 터이니 그대는 너무 심려치 말라.”
“...분명히 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왕의 결정은 절대적이다. 이미 마음을 굳힌 것을 안 조부인은 감히 토를 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았다. 왕이 한 번 크게 웃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가 증인일세.”
왕이 결심을 한 것은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저자에 돌고 있다는 소문을, 곽대부가 아침 등청에 들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소문의 내용인즉 ‘염파가 진을 공격하지 않는 것은 뒤에서 진과 내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것도 있고, ‘진이 두려워하는 것은 조사의 아들이 장군이 되는 것이다.’ 라는 것도 있다.
염파가 적과 내통하고 있다는 것은 언뜻 믿기 어려웠으나, 그가 상장군이긴 하나 제대로 된 땅을 봉하거나 군(君)의 작위를 내린 적은 없다.
조사조차도 마복군으로 봉했으며, 망명 왔던 악의도 연(燕)에서 받은 창국군(昌國君)과 조에서 받은 망제군(望諸君)의 군호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염파는 그렇지 않아서, 내통의 대가로 이번에 땅과 군호를 받기로 했다는 소문이다.
때는 난세다. 태어난 나라를 버리고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은 흔한 일이다. 게다가 상대는 조사의 아들을 높이 평가한다. 이는 스스로가 공언하고 적이 인정한 꼴이니, 뭇 사람의 반대는 오히려 믿음을 낳게 했다.
“결정은 번복하지 않는다. 또한 새로운 대장에게 격려의 뜻으로 금과 재물을 하사하노라!”
한편, 자신의 어머니가 반대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된 군위, 아니 이제 조의 상장군이 된 그는 벌레 씹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는 항상 자신을 무시했고 어머니도 더불어 그리했다. 출세한 자식이 호강을 시켜 드린다는데 대체 뭐가 불만일까.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겠습니다. 지금 받은 이상으로 땅과 봉록을 넉넉히 받아 편히 모시겠습니다.”
어머니는 못마땅한 얼굴로 잠시 바라보더니 문을 닫고 들어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꽁하시기는. 하지만 개선하는 자신에게는 얼굴을 좀 펴실까.
그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자식이 아비를 넘어서면 좀 솔직하게 기뻐하실 일이지, 뭐가 그리 불만이셔서 그러셨을까.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도 인정하지 않으셨지.
하지만 이제는 다르리라. 경험 운운하며 반대했던 이들도, 그저 필부의 용맹만 뽐낼 줄 아는 이들도 이 한 번의 싸움으로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또한 이제부터 세상은 아버지인 조사를 조금은 다르게 기억하게 될 것이다. 바로 나, 조괄(趙括)을 아들로 둔 아버지로 말이다.
기원전 260년 7월 중순.
새롭게 대장으로 임명된 조괄은 대장 교체를 명하는 왕의 친서와 함께, 조나라 전역에서 닥닥 긁어모은 20만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장평으로 향했다.
승리와 패배의 기록만이 아닌, 가장 잔혹한 전쟁의 하나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될 장평대전(長平大戰)이 이제 시작되려고 하고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전장의 장막에서는 술을 나누고, 수도의 장막에서는 돈을 나누고...
뭔가 삽질의 스멜이 풍깁니까...?
Commen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