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독특한 침략자. (1)
한 권이 끝날 때, 가슴에 남는 글이 되길 바랍니다.
Ⅰ
신(臣), 아샤르 총재 가이츠 토도르가 아샤르 황제 세라비 칼스 카이 폐하께 아룁니다.
제국력 29기 3754년 케이브 월(月) 12일에 내리신 칙명을 받들어 지난 3개월간 로사와 연계, 자료를 분석하여 앞으로 아샤르의 지상 영토가 될 지역의, 전반적인 실태에 대한 기초 조사를 마쳤습니다.
이에 보고 드리오며, 우선 신영토의 대략적인 개요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영토의 영역은 약 328만 제곱테라프. 구 일본열도와 한반도 전역, 중국 동북 3성과 부랴트, 자바이칼스키 등 구 러시아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구는 일본열도 1억 3천만, 한반도 7천만 명으로 총 2억 인구. 그 이북으로 남은 인구는 1천만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는 중국 및 러시아 정부의 적극적인 사전 이주에 따른 것으로, 부랴트와 자바이칼스키는 원래 인구가 적습니다.
인종별로는 각 지역의 구분이 뚜렷한 편입니다. 대부분의 인종이 자신의 나라에 소속되어 살고 있으며, 좁은 지역임에도 언어 및 문화 편차는 큰 편입니다.
지금부터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의 5개 항목에서, 로사의 견해를 참조하여 파악한 각국의 현실과 우선 개선점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본열도의 인구는 현재 신영토 중 최대로, 비교적 단일 민족으로 이루어져있으며 민족적 동질감도 짙은 편입니다. 정치체제는 입헌군주국으로, 군주인 덴노는 정치 실권은 없지만 대단한 존중을 받고 있습니다. 다만 과거의 뚜렷한 선정이나 그저 혈통만이 아닌, 구심점으로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느낌을 진하게 줍니다.
정치 형식으로는 내각책임제로, 국민에 의해 뽑힌 지도자가 덴노를 대신해 국가를 통치한다는 형식입니다만, 오랫동안 일당독재에 가까운 체제가 유지되었습니다. 때문에 정경유착이나 보이지 않는 비리가 상당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이는 일본국민의 정치적 무관심에 일조하며, 또한 상당한 우민화 정책에 치중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후에 언급할 한국 정치와도 닮은꼴로, 따라서 굳어버린 관료제의 타파를 우선시해야 할 것입니다.
경제 부분에서는 신영토 중 최대 경제력으로, 비록 하향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건재한 편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정경유착과 자국 우월주의로 범세계 기준에서는 뒤쳐진 면도 많습니다. 자본주의가 가장 성행했던 지역인 만큼, 향후 아샤르 경제체제로 편입하기 가장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에 따른 처치는 정치적 처리와 궤를 같이 해야 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침략전쟁 및 이후의 대처 문제로, 주변국과의 알력이 상당합니다. 특히 한국은 식민지, 중국은 본격 침공이라는 역사적 문제가 걸려 있어, 장차 통합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주 뚜렷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사회적으로는 비교적 안정된 사회. 하지만 비주류에 대한 차별, 외국인에 대한 선별된 차별이 있습니다. 열강 반열에 한 번 들었고 경제적으로도 강국인 만큼, 이 우월감은 주변국과의 마찰과 더불어 향후 통합에 지대한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과거 사례, 즉 지난 세기 대전의 패전 이후 미합중국의 통치를 일시 받은 선례를 보았을 때, 덴노 문제를 해결할 경우 향후 지배에 보탬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한국의 정치 체제는 직선제로, 정쟁과 정경유착 및 파벌싸움 역시 일본에 버금가게 극심한 편입니다. 덴노에 해당하는 심리적 구심점은 없으나, 오랫동안 무능했던 정치에 대한 불신과 경멸이 뿌리 깊어 향후 순종성에서는 가장 떨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제 규모는 일본에 버금가게 크나, 빈부격차가 심하며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도 극히 부족한 편입니다. 대외의존도가 상당히 높으며 자급할 수 있는 자원도 많지 않습니다.
국민 7할이 비교적 빈곤층에 해당하며, 부의 독점에 대한 사회 불만이 상당하나 개선은 요원한 편입니다. 타인의 부에 대한 동경과 증오가 공존하고 있는 것도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크게 벌어진 빈부격차와, 경제적 계급화의 해소가 중요 과제로 떠오를 전망입니다. 일본과 더불어, 경직되고 타성적인 관료제 및 재벌 해체 역시 필수적일 것으로 파악됩니다.
역사적으로는 비교적 약소민족이지만,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그만큼 부지런하고 매우 열성적인 민족인 만큼, 잘 포섭했을 경우 신영토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임은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사회적으로는 계층 간의 갈등이 상당한 수준으로, 상위 계급에 편입되기 위한 경쟁이 두드러집니다. 과다 경쟁으로 인재의 힘을 미리 다 빼어, 막상 중요한 곳에서는 잘 쓰지 못하는 비효율적 체제입니다. 교육 역시 개인의 영달수단으로만 다루는 경향이 강합니다.
문화적인 면에서는, 자국 문화에 대해 강한 자긍심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표출하지는 않습니다. 간단한 예시로, 그들은 전통 복식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일상복으로 입는 경우가 드물며, 자국의 언어와 문자에 자긍심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중요하게 교육하지 않습니다.
부가적으로 종교적인 부분은 특기할 만한 한데, 정치 전반에 연관되어 있고 상당히 근본주의적이며 배타성도 강합니다. 지난 세월 축적한 부와 세력이 큰 탓에, 종교가 없는 저희 아샤르의 체제와는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향후 정치색을 띄게 될 경우를 대비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향후 한국은 황제 직할령으로, 그 모든 통치가 타 도시 및 각 왕국의 선례가 됩니다. 이 점을 유의하여 빠른 개혁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북한, 즉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일당 독재, 그를 넘어서는 김씨 일가 독재의 지극히 폐쇄적인 체제입니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나 말 그대로 형식이며, 감시와 공포와 억압을 통한 강권정치가 뚜렷한 특색입니다. 표면적인 정치 지지도는 무척 높으나 허상일 뿐이며, 일부 특권층을 제외한 국민 충성도는 바닥입니다만 이를 뒤집을 힘은 북한 민중에게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난 세월 굶주린 대부분의 민중과, 그들에게 공포정치를 행해온 일부 계층에 대한 증오에 대해, 전후 아샤르에서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쉽지 않을 과제가 될 전망입니다.
경제적으로는 극악으로, 가벼운 흉년에도 아사자가 다량 발생하는 허약한 체제입니다. 반면, 이 정도로 빈약하면, 오히려 경제적 지원과 삶의 질 향상만으로도 높은 충성도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역사를 한국과 공유하나, 근 100년간 사실상 타국이었던 탓에 동질감은 극히 떨어져 있습니다. 문화적으로도 폐쇄적이라, 향후 문화적 충격을 얼마만큼 완화시키느냐는 중요한 과제가 될 전망입니다.
부랴트 공화국은 구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나라이며 면적은 넓으나 인구는 극히 적어 현재 100만에 불과합니다. 역사적으로는 러시아에 의한 개척, 인구도 러시아인이 7할을 넘습니다. 다만 몽골 계열 인구도 2할이 넘어 동서양의 문화가 비교적 혼재되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두드러지는 강점이 없는 만큼 두드러지는 약점은 없습니다. 후에 언급할 자바이칼스키와 더불어 독자 문화를 존중하고 경제 성장을 이루어준다면 인구비례로 보아 큰 반발 없는 통치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국의 동북 3성에 해당하는 지역은, 현재 대부분의 인구가 중국 본토로 이주했습니다. 2억에 가까운 자국민을 넘겨주기 싫다는 이유지만, 이들이 사실상 난민이 된 탓에 중국 정부도 애를 먹고 있습니다. 주변국의 안정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지원을 가정한 타협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중국 역시 지난 100년간 공산주의 일당체제였던 탓에 사람들은 위로부터의 통치에 익숙한 편입니다. 남은 인구는 300만 이하이며 대부분이 중국 정부의 권유와 강압에도 이주하지 않은, 이른바 사회 불안 계층으로 통치 전반에 대한 어려움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구공백으로 빈 땅이 많으므로 향후 발전 여력이 큰 지역으로 평가됩니다.
사회적인 면에서는 부의 편중이 일부 관찰되나, 향후 아샤르 경제체제로 편입하면 해결 자체는 용이할 것으로 생각되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지역인 만큼 문화적인 존중은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자바이칼스키는 이번에 부랴트와 합병되어 공중도시 스로르가 강하합니다. 국토와 인구, 구성면에서 부랴트와 유사성이 짙으며 같은 조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다만 구 러시아 속령이었던 만큼 국경 분쟁의 여지는 항상 존재하며, 위치상 러시아와 중국을 모두 지상군으로 견제할 수 있는 위치인고로 군사 시설의 확충은 시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간단한 총강을 이것으로 종료하며, 상세 강령과 대응책은 다시 정리해 올릴 것이옵니다. 다만 저희 신료 일동과 로사가 한 뜻으로 우려하는 바는, 이 통치가 우리 에게도 적지 않은 시련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역사도 인종도 문화도 서로 다릅니다. 그런 이들을 하나로 묶는 데는 장구한 세월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이 일이 성공한다고는 그 누구도 자신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를 수행하는 것은 장차, 우리 아샤르가 인류 세계에 제대로 안착할 수 있는가와 직결됩니다. 신영토의 통치에 세계의 눈이 쏠려 있습니다. 황상의 너른 관심과 명찰(明察)을 앙망하옵니다.
아직은 전쟁 도중이었던 9월 7일에 받아든, 이후 완성되어 가이츠 기초보고서라 일컬어지는 그 일부 내용을 놓고, 어전에 모인 사람들은 기가 질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복잡하네요.”
사회 체제를 극도로 단순화시키는데 주력한 그들이었다. 그런데 고작 반경 1천 테라프의 지역에, 이러한 다양성이 뒤섞여있음은 경악할 만한 일이었다.
“쉬운 통치가 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합니다.”
보고서를 올린 가이츠 총재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동안 수고했고... 짐이 그동안 지상에서 살면서 느낀 바와 그리 다르진 않다.”
근 150년, 황제는 러시아와 중국, 한국과 일본에 걸쳐 살았었다. 남의 인생이지만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이 적지 않다.
“우선 우리 체제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겠지.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은?”
“영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치 체제는 당연히 양보할 수 없고 경제체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아 있는 인구 대부분이 시장경제 체제, 자본주의 경험자입니다. 거부감을 가지는 이는 많을 겁니다.”
이념 논쟁이 갈무리되면서 공산주의는 처절하게 패배했다. 아샤르 역사를 보자면, 자신들의 모성에서도 비슷한 갈등은 존재했고 결과도 같았다.
하지만 충분한 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자원 수급이 용이하게 되면 오히려 축적된 자본력과 인간의 노동력이 급속히 의미를 상실해간다.
아샤르 체제를 보자면, 정치적으로는 황제로 대표되는 인간의 포괄적인 결정권과 로사로 대표되는 인공지능의 세부적인 행정의 융합. 경제적으로는 신분과 경제계급으로 통괄되는 평준화된 고급 공산주의에 가깝다.
“물론 정치 수준이 괜찮았다면 자본주의도 나름 좋은 체제였겠지만, 그렇지 못하니 실제로는 빈부격차와 자본의 세력화, 그리고 생산과 소비만을 위한 자원낭비가 심각한 수준이죠. 그러니 정치와 경제 체제는 반발을 각오하고서라도 우리의 것을 밀어붙여야 합니다.”
산적한 일거리에도 총재는 열의에 차 있었다.
“아샤르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장차 생산과 소비는 대폭 확대될 겁니다. 하지만 경제 체제를 손보지 않고서는 균등한 분배는 이루어질 수 없고, 이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동의한다.”
“정치적으로는 의회 및 행정부에 신영토 주민 등용과 황제자문위원회의 설립, 그리고 지나치게 비대화된 정치 및 관료 영역을 축소시키고 로사에게 위임하는 방향이 잡혀 있고, 경제적으로는 화폐개혁과 모든 부동산의 국유화, 전 국민의 새로운 경제계급 부여 및 자본재벌의 해제가 당면과제일 겁니다.”
“더불어...”
내무상서 온케르가 덧붙였다.
“이 모든 것은 빠르게 시행하는 편이 좋습니다. 시간을 끌면 혼란만 덧붙여지겠죠. 설득을 통한 명분 쌓기는 필수이겠습니다만...”
“그건 좀 입이 아프겠군. 하지만 짐에게 맡기도록.”
“...즐거워 보이십니다...?”
내무상서의 의아한 시선은 당연하다.
원래 그들에게는 또 다른 방법이 있었다.
지구 전체를 완전히 정복하여 체제 하에 밀어 넣는 방법. 그리고, 우월한 경제력과 기술력 및 군사력을 행사해, 지난 세월 로마제국과 대영제국과 미합중국이 그랬듯 패권국으로 군림하는 방법이다.
전자는 억압과 강압의 통치가 되겠지만 고작 수백 년, 짧으면 백년 안에 전 세계를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며, 후자의 경우에는 통치의 번거로움은 극도로 줄어든다.
그럼에도 황제는 어느 것도 택하지 않았다. 그저 지상의 일부만을 원했고, 대등한 지위의 상대를 여럿 남겨두었다. 수많은 쟁투가 있을, 어려운 길을 골랐다.
“짐에게는 꿈이 있다네. 그래서 즐거워.”
어린 날의 친구의 바램, 돌아가신 선황의 바램,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세월동안 쌓은 꿈은 그렇게 다르지 않겠지.
우리는 지난 세월동안 그저 안주했다. 그리고 작은 변화만으로 동족을 죽이고 아이를 해치는 비극을 맞았다.
그 아픔이 아직 진하게 남아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도 다시금 변화를 줄 적기이다.
지구 전체를 지배한다면 잔혹한 지배자로 우리 종족을 더욱 타락시킬 것이며, 북극의 독자 문명으로 세계의 패권을 노린다면 결국 오만함밖에 키우지 않겠지.
그러니 섞이는 것이다. 하나씩, 하나씩 과정을 밟는다. 더는 피를 흘리지 않는 대신, 그저 서로의 정의와 사상을 겨룬다.
힘든 과정이겠지. 그러나 나는 오래 산다. 또한...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주는 한 여자는 동등한 수명으로 오래도록 옆에 있을 거고, 아직은 수줍지만 강인한 정신을 가진 또 한 여자는, 비록 훨씬 일찍 죽겠지만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내 의지를 다잡아주겠지.
...힘든 길을 갈 준비는 충분히 한 셈이야.
지구인들아. 그대들에게 나는 무도한 침략자이겠지만, 오히려 그대들이 낳고 올린 그 어떤 이보다도 그대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그대들은 그리 행복하지 못한 세상에 태어났었지만,
...그대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그 어떤 지구인보다도, 나는 믿고 있다.
수고하셨어요.
- 작가의말
외계 종족의 눈으로 본... 한중일 삼국의 2050년의 상황과 지나온 역사 사회 문화적 평가입니다. 가상이기 때문에... 아마 읽으시는 독자분들의 마음에 드는 내용도, 아닌 내용도 있을 겁니다. 아무튼 본격 통치는 이를 바탕으로 다음 권에서 조금...
작중에서 등장하는 정치사상, 그리고 방식은 가상의 것입니다. 얼마전 한담에서 작중에서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는 것에 대한 부작용에 대해 본 바가 있습니다만 과연 어떨지... 뭐, 아무튼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진행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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