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삼년불비우불명 4화 패전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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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패전의 책임
안타미젤은 앉은 자세 그대로 굳어버린 것처럼 자신 앞에 어깨를 늘어뜨리고 있는 카리에른을 내려다보았다. 오만하게 비칠 정도로 기세등등하던 출격 직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안타미젤은 어쩐지 가슴이 답답하여 숨이 안 쉬어지는 것 같은 기분에 목을 감싼 옷깃을 손으로 잡아당기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그 상태에서 마치 폭풍과도 같이 지나가 버린 몇 시간을 떠올렸다.
코네세타 군에게 밀리는 아군을 보다 못한 그가 후퇴 명령을 내린 것은 겨우 네 시간 전의 일이었다. 그때까지 그의 곁에서 말 한마디 없이 양군의 전투를 지켜보던 미드프레드와 뮤켄은 그 지시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본진의 지휘를 담당하고 있는 프델로드 장군과의 연계 아래 퇴각하는 아군의 후미를 보호할 엄호 부대를 조직했고, 이내 그 부대를 이끌고 전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채 두 시간도 안 되어 큰 피해 없이 살아남은 병사들을 병영 안으로 후퇴시켰다. 출전군을 지휘하던 카리에른 장군이 안타미젤의 막사로 찾아와 대죄한 것은 퇴각이 완료된 이후의 일이었다.
"그만 일어서세요. "
근 십여 분의 침묵을 깨고 안타미젤이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입을 열었다. 그 스스로 생각해도 지나칠 만큼 굳은 목소리였다. 그는 생기 없는 눈동자로 카리에른의 이마에서 볼까지 길게 늘어 붙은 피딱지를 가만히 응시했다.
"장군의 잘못이 아닙니다. "
문책해서는 안 된다. 이번 일은 카리에른 한 명이 뒤집어쓸 잘못도 아니고, 무엇보다 본인에게는 그를 처벌할 권리도 없었다. 총사령관이라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저는 아군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것도 안 한 채 구경만 한 자신 아니던가. 심지어, 전투를 관전한 것조차 처음이었다. 아군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싸우다 죽어가는지 알지도,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토록 무책임한 자신이 대체 무슨 명목으로 카리에른을 벌할 것인가.
"뮤켄 장군의 권고로 양군의 전투를 쭉 지켜보았습니다. "
카리에른이 지겠다 한 책임이, 전장에서 죽어버린 병사들에 대한 의무감을 의미한다면, 그건 다시 말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다. 안타미젤은 가슴 한구석이 씁쓸해지는 것을 느끼며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장군은 물론 휘하 병사들도 잘 싸워주었어요. 부득불 패퇴했지만, 그에 대해 새삼 잘못을 물을 생각은 없습니다. "
"하오나 전하, 소관은 여왕 폐하의 병사들을 무익하게 희생시킨 죄인이온데···. "
안타미젤은 고개를 내저으며 상대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니오.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가장 통감해야 할 사람은 납니다. 출격을 끝까지 막지 않은 내 잘못이 가장 커요. "
떨구고 있던 장군의 고개가 한층 더 아래로 숙여진다. 부상을 입은 어깨의 상처에서부터 붉은 피가 다시 스며 나온다. 안타미젤은 바닥에 굴러 떨어진 선명한 핏방울에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부드럽게 가라앉힌 목소리로 덧붙였다.
"돌아가서 부상을 살피도록 하세요. 이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장군의 몸은 우리 세레즈의 것입니다. "
그 때 막사 안으로 병사 하나가 들어와 고개를 숙이며 용건을 전했다.
"전하, 밖에 그론레이 장군이 와있습니다만. "
"안으로 들이세요. "
안타미젤은 짧게 군례를 취하고 곧바로 물러나는 병사에게서 눈길을 떼어내고 카리에른 쪽을 보았다. 스치듯 던진 시선 안에 카리에른이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고스란히 들어온다. 그는 저절로 솟아오르는 한숨을 가만히 내리누르며, 건조한 음성으로 빠르게 덧붙였다.
"나는 따로 보고 받아야 할 일이 있으니, 장군은 이만 물러가세요."
묵묵히 머리를 숙여 보이는 카리에른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주며, 안타미젤은 몸을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기댔다. 거친 걸음걸이로 막 들어서는 미드프레드를 지나쳐 가는 카리에른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어내며, 안타미젤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매번 저렇듯 불편한 관계임을 드러내서야 보고 있는 쪽이 더 괴로웠다.
"어서 와요. "
미드프레드는 정면을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여 예의를 갖춘 후, 억양이 없는 평소의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번 전투의 사후 처리에 대한 중간보고를 드리고자 들었습니다. "
그는 손짓으로 다가와 앉으라는 표시를 하고는 새삼스레 시선을 들어 미드프레드를 쳐다보았다. 지치지도 않는 걸까. 두어 시간에 불과했다고는 하나 엄호 부대를 이끌고 아군의 후미를 지키기 위해 적군과 간단한 전투를 치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피곤한 내색 하나 없이 병사들을 인계받아 사후 처리에 몰두했다.
"이번 전투에서의 전사자는 삼천 칠백 명가량 됩니다만, 군의관이 턱없이 부족하여 병력 피해가 현재의 삼 할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부상병들은 경상자까지 포함하면 전사자의 네 배 가량 되며··· "
들고 온 서류 몇 개를 나열해 가며 간단하게 상황 정리를 덧붙이는 미드프레드의 얼굴에서도 피로한 기색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침착하고 어른스러운 평상시의 표정 그대로였다.
안타미젤은 불현듯 미드프레드와 저와 나이 차가 불과 네 살밖에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앞으로 사 년 뒤, 자신은 미드프레드만큼 침착하고 담대해질 수 있을 것인가. 그 또한 저처럼 궐 안에서 성장하였고, 전쟁은 처음인데 그와 저는 전혀 달랐다. 마치, 어른과 어린애의 차이처럼 그 대조는 선명했다.
"아직 구체적인 명단 파악은 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참모진 전원이 사후 처리에 투입되고 있는 만큼 늦어도 내일 오후까지는 좀 더 정확한 보고를 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전부터 느끼고는 있었지만, 오늘 일로 안타미젤은 다시금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줄 수 있었다. 자신의 능력으로 총사령관의 업무를 다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 확실히 알았다. 어중간한 반성 따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부지중에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노력한다 해서 달라지지도 않아. 출군한 병사들을 위해서, 더 나아가 세레즈를 위해서 어떻게 해서든 뭔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으면··· .’
그런 안타미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미드프레드의 차분한 목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적의 동태가 심상치 않아서 잠찰을 몇 풀어놓았습니다. 그들이 돌아온 이후에 정확한 보고를 다시 드리겠지만,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전 부대에 경계령을 내려두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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