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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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개전
8. 수도방위사령관의 보직과 승진 거절
여왕 앞에서 물러 나온 밀시언 장군은 복도 끝에서 그윈 재상과 헤어진 뒤 외성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여느 때처럼 방위 사령부로 가기 위해 구름 다리 가까이 다다른 그는 문득 쓴웃음을 지으며 걸음을 멈췄다. 사령관직을 인수인계하는 와중에 필요한 서류들이 자신의 집무실 책장에 꽂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길고 긴 복도를 되짚어와 조정 신료들의 개인 집무실이 밀집되어 있는 관저에 들어섰다.
지난 4년간 매일 드나들며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집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기능적으로 조직된 내부가 시야에 가지런히 들어왔다. 밀시언은 마치 처음 들어온 사람마냥 찬찬히 방 안을 둘러보았다. 동선의 낭비 없이 짜임새 있게 배치된 가구들은 쾌적한 느낌을 주었지만, 대국 세레즈의 수도인 다이레비드의 치안과 안보를 전담하는 신료의 공적 공간이라 보기엔 분명 수수한 구석이 없지 않았다.
‘오랜만에 전선으로 나가려니 그러나. 쓸데없이 감상에 사로잡혀 있었군. ’
밀시언은 실소를 머금은 채 느릿하게 책장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필요한 것들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들어가도 좋습니까? ”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집무실 너머 복도로부터 들려왔다. 맑고 깨끗한 느낌의 울림, 수도 방위부 참모진 서열 3위 마세르 라 뮤켄의 음성이다.
“아, 들어오게. ”
밀시언은 서류들을 정리하다 말고, 안으로 들어서는 단정한 용모의 청년에게 시선을 던졌다.
“무슨 일인가? ”
“예. 소관, 사령관 각하께 청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
“그런가. 마침 잘 되었군. 나 역시 귀관에게 용건이 있던 참이었거든. 일단 앉게. ”
그는 방 가운데 위치한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자네 용건부터 듣기로 하지. 말해 보시게. ”
“제가 오늘 각하를 찾아뵌 것은 이직 신청에 대한 인가를 받기 위함입니다. ”
뮤켄이 내민 서류를 받아들기 위해 손을 뻗었던 밀시언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이직 신청이라니. ”
“소관, 오늘 오전에 에드윈 그란델이라는 자를 만나보았습니다. ”
밀시언은 눈살을 찌푸리며 짧게 되물었다.
“혹시 자네, 남부 파견군으로 내려가겠다는 것인가. ”
“그 자로부터 하크스 영지의 상황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의 청이 수용되어 남부 영지에 지원군을 파병하기로 결정되었다 알고 있습니다. 소관 미력한 힘이나마 남부 전선에 보태고 싶으니, 이직을 승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밀시언 장군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네. 그러나 이번 일만큼은 귀관의 뜻을 받아줄 수가 없을 것 같군. ”
“세레즈 전역의 병력이 도성으로 모여들고 있어 사령부의 업무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압니다. 하오나 행정 업무라면 비단 소관이 아니더라도, ”
“그게 아니야. 오해하지 말게.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자네를 말릴 이유도 없지. 최전방에 지원하는 것은 군으로서도 장려해야 마땅한 일이니 말일세. ”
밀시언 장군은 잠시 입을 다물고는 맞은 편에 앉아 있는 청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귀관의 보직은 이미 정해져 있네. ”
잠깐의 시간 차를 두고 한층 더 깊이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무슨 뜻입니까? ”
“내 오늘 폐하로부터 남부 파견군 2진의 선두 지휘를 명 받았네. 공석이 될 수도 있는 방위부 사령관직에 내 자네를 추천했지. ”
“하지만 방위 사령부에는 저보다 서열이 높은 부사령관 한스덴 장군님과 체르크 참모장님이 계십니다. ”
조금의 주저도 없이 예상했던 대답이 곧장 튕겨져 나오는 것을 보고 밀시언은 나직하게 웃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러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반응이었다.
“내 어찌 그것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전시이고 군대는 그 어디보다 실력이 우선시되는 곳이네. 내 자넬 추천한 것은 그 자리에 그대가 적임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야. 부사령관과 참모장은 내 판단을 믿고 따라줄 사람들이니 염려 말게. ”
“아직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저를 높이 평가해 주신 점은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
약간 주저하는 기색으로 앉아 있던 뮤켄이 드디어 뭔가 결심했다는 듯 단호한 어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설령 부사령관님과 참모장님이 제가 사령관 직위에 오르는 것을 용인하신다 해도, 그 아래 부하들과 사병들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 일은 군의 기강과 연관된 문제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전군이 한 마음으로 결집되어야 할 비상시국에 제 일이 원인이 되어 단결이 깨지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각하의 말씀을 따를 수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제 출신 성분 때문입니다. ”
“뮤켄! ”
그는 엄한 표정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밀시언을 향해 약간 고개를 숙여보였다.
“물론 사령관 각하께서 출신 때문에 저를 선택하셨다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말씀이 부담스러운 것 이상으로 자랑스러운 것이겠지요. 하지만 제가 그 자리를 수락하게 되면 그것은 출신으로 인한 승진이라는 오해를 사기 쉽습니다. 저는 아직 부사령관님과 참모장님을 뛰어넘어 곧바로 사령관직을 맡을 정도로 뚜렷한 전공을 세운 바가 없으니까요. 일반 사병들이 제 지휘권을 달가워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이상 두 가지 경우로 미루어보건대 제가 그 자리에 앉는 것은 이득보다는 해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 곧 재상 각하를 통해 폐하의 명이 전해질 것이고 귀관은 얼마 안 있어 폐하로부터 공식 임명을 받게 될 게야. ”
“군에 몸을 담고 있는 한 상명하복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하께서 제 의사를 한 번만 더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
조각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뮤켄을 보며 밀시언은 그가 마음을 굳혀도 아주 단단히 굳혔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흩뿌리며 무거운 분위기를 쇄신시키듯 깊게 숨을 들이켰다.
“자네의 뜻이 정 그리 단호하다면 먼저 재상 각하를 찾아뵙는 것이 수순일 듯 싶군. 그분께 자네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도움을 청해보도록 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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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개전>의 주요인물
*마세르 라 뮤켄*
콜드베폰 대공의 차남으로 무관이 되기 위하여 성을 버리고 군에 자원하여 현재 수도방위사령부 참모부 서열 3위의 수석참모의 자리까지 올랐다. 겸허하고 유능하여 위아래로 신망이 높다. 남부파견대로 지원하였으나 공석이 된 수도방위사령부의 총관으로 물망에 오르는 바람에 희망이 좌절된다.
*레니크 라 밀시언*
수도방위 사령관, 여왕의 명으로 남부 파견대 1진의 지휘를 맡게 되면서 후임으로 뮤켄을 추천하였다.
*에드윈 그란델*
에드윈 그란델, 하크스 영주의 가신. 코네세타의 선제공격으로 위기에 처한 영지의 구원을 여왕에게 청하였다.
- 작가의말
6장 개전 끝
추천과 선작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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