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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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출격요청
"대체 언제까지 적군의 무도한 도발을 참고 있으라는 것입니까? "
침묵을 깨고 네슬러 장군이 딱딱하게 굳은 음성으로 말을 꺼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내리누르고 있는 듯, 그의 말끝이 미세하게 떨려 나온다.
"코네세타 군이 사정거리를 아슬아슬하게 빗겨 난 부근에 도열해 있는 것이 무얼 의미한다고 보십니까? 그들은 지금 아군을 우롱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당장 출격하여 밟아버리지 않으면 그들의 오만이 어디까지 치솟을지 모릅니다! "
맞은 편에 있던 카리에른 장군이 탁자를 거세게 내리치며 격한 어조로 소리쳤다. 막사 안에 모여 앉은 장군들 중 두엇이 고개를 끄덕여 카리에른 장군의 의견에 동조를 표했다.
"어찌하실 겁니까? "
중앙군을 맡고 있는 프델로드 장군의 목소리가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 사이로 울려 퍼진다.
"이번에도 적을 그냥 돌려보내실 심산이십니까? "
부대 사령관들의 시선이 근 한 시간째 말 한 마디 없이 탁자 모서리에 눈길을 고정시키고 있는 안타미젤에게로 향한다. 맞잡은 손가락을 까닥이고 있던 안타미젤의 고개가 느릿하게 들어 올려지고 우울한 빛을 띠고 있는 그의 짙푸른 눈동자가 가만히 프델로드 장군의 굳은 얼굴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가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의 강경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무슨 말인가? 버젓이 아군의 영역을 침입해 들어온 적군을 살려 보내다니, 내 그런 소리는 들어본 적도 없소. "
"전하! 출격을 허가해주십시오. 제가 선봉으로 나서서 적을 격퇴하고 오겠습니다. "
안타미젤은 조용히 고개를 내저으며, 그 눈빛만큼이나 깊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분명, 장군들께 무분별한 출격은 금지하겠다고 했습니다. "
"어찌 이것을 무분별한 출격이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적의 도발이 이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마냥 구경만 하고 있으라니···!"
앉아 있던 장군들 중 하나가 불만스러운 듯 고개를 치켜들며 거의 쏘아붙이듯 항변했다. 중앙부대의 지휘와 더불어 안타미젤의 보좌 책임도 함께 맡고 있는 프델로드 장군이 책망 섞인 눈길을 보냈지만, 그는 주저하는 기색 없이 말을 이어갔다.
"교전 없이 대치 상태가 길어지면 군의 사기가 저하된다는 것을 모르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아도 아군의 본진이 그레안으로 후퇴하면서 장병들의 전의는 참담하게 떨어졌습니다. 무기력한 대치 상태로는 더 이상 나아질 게 없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그것을 왜 모르십니까?"
안타미젤은 막사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려대는 고함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이곳에 모여있는 장수들은 수비 위주의 대처 방식이 못마땅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늘 이런 식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게끔 분위기를 격하게 몰아갔고, 결국 출격 허락을 받아내야만 직성이 풀리곤 했다.
"진지를 새로 구축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병영 안은 어수선하고, 그 점은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병사들을 데리고, 한창 승세를 타고 기세 등등해져 있는 적군을 상대로 무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
어느 쪽이 옳은지는 잘 모른다. 자신이 지극히 회의적으로 사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뮤켄의 진언을 받아들여 장군들을 설득하고 진형을 새로 세우기 시작한 지 겨우 일주일이 지났다. 병사들 수가 많아 움직임이 둔하기도 했지만, 애초에 진지가 워낙 길게 늘어서 있어서 아직껏 진형 일부는 완성도 되지 않은 실정이다. 병사들은 그간의 패배와 연이은 후퇴로 정신적으로는 위축되어 있고, 진지 구축으로 인해 육체적으로도 지쳐 있다. 그런 만큼 지금 출전하게 되면 부대 사령관들의 장담대로 적을 격퇴할 수 있게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노려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
"전하께서도 지적하셨듯이 진형을 새로 바꾸느라고 아직까지 아군 병사들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습니다. 최근 적의 도발이 증가한 것은 적도 그런 우리의 내부 사정을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알면서 적에게 넘어가 줄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전하의 말씀대로 조금 여유를 두고 기다려 보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만. "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우린 지금 도성에서 탁상공론을 하고 있는 게 아니오. 여긴 전장이고, 전투는 현실이오. "
"아군의 정찰 보고에 의하면, 하크스와 로크라테에 있는 적의 후방 부대가 속속들이 펜데스칼의 적의 본진으로 몰려들고 있다 합니다. 그들이 도착하여 병력 차가 증대되면 지금과 같은 대치 상황을 유지해 나가는 것도 불가능해집니다. 그때 가서는 이미 늦어요.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가는 그레안은 물론, 도성까지 적의 손에 내어주게 될지 모릅니다. "
"동감입니다. 이쯤에서 적의 예기를 꺾어 놓아야 그 다음 일이 수월해집니다. 지금과 같아서야 아군의 병력 증강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전력이 나아진다고 할 수 없을 겁니다. "
"하지만···"
망설이는 기색으로 입을 여는 안타미젤을 똑바로 직시하며 프델로드 장군이 딱 부러지는 어조로 말했다.
"장군들의 중론은 출격 쪽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전하의 의사 표명뿐입니다."
"세레즈군의 총사령관으로서 합당한 결정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지도자가 흔들리면 모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합니다. 어서 결단을. "
결단이라고 하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뿐이다. 늘 그래왔듯이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의사와 반한 결정 따위는 애초부터 이들의 염두에도 없다.
안타미젤은 저절로 주먹이 쥐어지는 것을 느끼며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장군들의 뜻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
순간 막사 입구를 가려놓은 천이 펄럭이고, 보초병 하나가 걸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
입구 가까이 있던 카리에른 장군이 고개를 돌리며 내던지는 투로 물었다. 보초병은 카리에른의 성난 눈빛에 얼굴을 굳히더니, 황급히 고개를 숙여 보이며 빠르게 용건을 전했다.
"밖에 하크스 지원군 사령관이 와 있습니다. "
순간이지만 그 말을 전해들은 카리에른의 미간에 힘줄이 돋아나는 듯했다.
"뭐라? "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 무슨 말 같잖은 소리냐!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그 따위 용건으로 장군들의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가? 썩 물러가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전해······"
"아닙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
조용한 안타미젤의 말에는 카리에른 장군의 분노에 된서리를 끼얹을 만큼의 냉랭함이 어려있었다. 그는 허리를 곧추세우며 일순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상대를 또렷하게 쳐다보았다. 더이상은 못 참겠다. 전술 면에서야 그들이 가르치려고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총사령관인 자기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나서서 매사를 결정하려고 하는 것은, 그들이 자신을 사령관으로서 예우하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었다.
안타미젤은 자신을 향해 고정된 열 한 명의 장군들의 얼굴에 한결같이 드리워져 있는 불만 섞인 표정을 스치듯 바라보고는 보초병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부대 사령관들이 지원군의 본진 편입을 탐탁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쯤은 안다. 미드프레드의 출신 성분 때문에 더 불쾌하게 생각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단지 기분 문제로 본진의 전력 증대에 반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번 일만은 제멋대로 굴게 내버려 두지 않을 테다. 어차피 한 번은 부딪쳐 해결해야 할 일, 안타미젤은 심호흡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말을 꺼냈다.
"지금 만나겠습니다. 들어오라고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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