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6. 입바른 소리
이리로 집무실을 옮긴 후 늘 그래왔듯이 미드프레드는 그 날도 부대 안의 병사들을 몇 명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부임하지 않은 참모장 뮤켄에 대해 정보를 얻을 겸, 부대 안의 분위기도 파악할 겸해서 말이다. 물론 참모장에 대해서라면 그 휘하의 참모들을 불러서라도 들을 수 있겠지만, 직속 부하들의 입에서 나올만한 소리야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쯤은 군 경험이 없는 미드프레드로서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왕 들을 바에야 참모들 보다 일반 사병들 쪽이 훨씬 폭 넓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더러, 희생양으로 조직된 부대라는 소문에 의기소침해져 있는 그들을 달래는 이중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여 미드프레드는 병사들과의 만남을 지속하고 있었다.
“부대 안에 그리 좋지 않은 소리들이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일단 지원군에 소속된 이상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우리는 동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나는 내 동료들이 쓸데없는 소리로 싸우기도 전에 부대 안의 사기를 떨어뜨릴 만큼 생각 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
“···이해가 안 되네요. ”
형식적으로나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표하는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줄곧 삐딱한 자세로 서있던 호리호리한 체구의 병사 하나가 툭 내던지듯 대꾸했다. 언뜻 알아듣지 못한 미드프레드가 빤히 쳐다보자 그 병사가 약간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리며 빠르게 내쏘았다.
“이렇게 줄줄이 세워두고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
얼마 전에 막 열아홉 살이 된 자기보다도 어려 보이는 얼굴. 아무리 많이 쳐줘도 열 대여섯을 넘지 않은 듯 보이는 동안이 자신을 똑바로 쳐다 보고 있었다. 여린 생김새와는 대조적으로 야생 살쾡이를 연상케 하는 그의 연녹빛 눈동자만은 쏘는 듯 날카로웠다.
“설마 당신, 우리가 지금 여기서 대답한 것이 진심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아니면 당신 말에 끈 떨어진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여 주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겁니까. 우습지도 않군요. 이런 식의 장난은. 맞장구쳐주기도 질렸어요. ”
사령관이라는 말조차 생략해버린 그의 대꾸에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도리어 당황한 기색이었다.
“야, 왜 이래···”
바로 옆에 서 있던 병사 하나가 그의 소매를 붙잡으며 낮게 말했지만, 그는 입을 다물 기색 없이 곧은 시선으로 미드프레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든지 말해 드리죠. 어차피 당신은,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던 거 아닙니까. ”
질릴 만큼 직선적인 어투로 주저 없이 쏘아대는 동료와 그런 그를 한 마디도 없이 응시하고 있는 사령관을 번갈아 쳐다보며 안절부절못하던 병사들 중 하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사령관님, 지금···.”
미드프레드는 오른 손을 들어올려 병사의 말을 제지한 뒤 메이샤드를 쳐다보며 감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숨이 막혀 올 만큼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틀리지 않은 소리야. 나 역시 그걸 듣고 싶었으니 기탄없이 말해주면 좋겠군. ”
그를 향한 미드프레드의 무표정한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이미 막사 안의 분위기는 전쟁의 그것이라고 해도 될 만큼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있는 병사들을 향해 미드프레드가 낮게 말했다.
“먼저 나가주겠습니까?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군요. ”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 하나 둘 자리를 빠져나가는 병사들을 뒤로 한 채 미드프레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귀관의 이름은? ”
“크로젤 라 메이샤드. ”
예상했던 대로 무뚝뚝하게 이름만을 내쏘는 그를 보며 미드프레드는 살짝 웃었다.
“그래, 메이샤드. 그대가 하려던 이야기가 부대 안에 떠도는 내 소문과 관련된 것인가? ”
자신의 출신과 지원군을 지휘하게 된 내력을 두고 부대 안에 여러 가지 악의에 찬 비난이 떠돌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바 아니었고, 또 그것이 이 부대가 사지로 내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군대라는 유언비어가 형성되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미드프레드는 일단 그렇게 운을 떼어냈다.
“나는 당신의 출신 같은 거 관심 없습니다. 뭐 귀족 출신이라 해서 더 나은 것도 아니니까. 그딴 거 흥미도 없고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아요. ”
하지만 망설임 없이 튀어나온 메이샤드의 대답에서 미드프레드는 자신의 생각이 기우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메이샤드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한심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당신, 사람 죽여 본 적 없지요? 갑옷 너머 상대의 심장에 칼을 꽂는 기분이 어떤지, 상대의 피를 뒤집어쓰는 게 얼마나 엿 같은지 모르죠? 직접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전쟁이란 것에 대해. 내가 화가 나는 건 그런 겁니다. 이거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전투 경험조차 없는 어린애를 상관이랍시고 모시고 싸울 생각하면 벌써부터 암담해져요. ”
상관인 자신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발언이었지만 묘하게도 불쾌한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이 소년의 목소리에 섞인 감정이 짜증이나 분노보다는 푸념에 가까운 감정이기 때문일까.
“나는 물론 그런 경험은 없어.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애써 부인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할 몫까지 남에게 떠넘길 생각 또한 전혀 없어. 그것만은 알아주면 고맙겠군. ”
“그거 참 훌륭한 각오군요. 부디 당신이 본인의 말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되길 바랍니다. 지금의 상황으론 이 부대의 어느 누구도 당신을 위해 대신 죽으려 하진 않을 테니까. ”
조용한 막사 안에 비아냥거리는 듯한 메이샤드의 목소리만이 날카로운 울림을 가지고 메아리치고 있었다.
“경애하는 사령관 각하, 잘 들어 두세요. 나는, 그리고 우리는, 지켜드려야 할 상관 따위는 원치 않습니다. 내 목숨 건사하기도 급급한 전장에서 그런 건 방해물에 지나지 않으니까. 나는 아직 어리고 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상관 잘못 만나 이름도 없이 개죽음하고 싶진 않아요. ”
“장렬한 전사 따위에는 나 역시 흥미도 관심도 없으니, 그점에 한해서는 안심하도록. 비록 상황은 좋지 않지만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유감스럽지만 지금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건 그뿐이야. ”
조금은 굳은 얼굴로 미드프레드가 대답했다.
“좋아요. 하지만 우리의 신뢰를 얻고 싶다면 증명을 해야만 할 겁니다. 시덥잖은 말만이 아니라 실적으로요. 납득할 만큼이 되면 진심으로 복종하죠. ”
“친절한 충고 고맙군. 유념해 두지. ”
아무 말 없이 백안시당하는 것보다야 차라리 면전에서 쓴소리를 듣는 편이 속 시원하다고 생각하며 미드프레드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는 건 내가 당신을 인정한 다음으로 미뤄두죠. ”
고집스럽게 악수를 거부한 메이샤드는 자세를 단정히 하고는 사령관을 향해 깍듯이 예를 표했다.
“실례 많았습니다, 사령관 각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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