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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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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515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4.29 14:32
조회
538
추천
11
글자
8쪽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DUMMY

6. 입바른 소리






이리로 집무실을 옮긴 후 늘 그래왔듯이 미드프레드는 그 날도 부대 안의 병사들을 몇 명 불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직 부임하지 않은 참모장 뮤켄에 대해 정보를 얻을 겸, 부대 안의 분위기도 파악할 겸해서 말이다. 물론 참모장에 대해서라면 그 휘하의 참모들을 불러서라도 들을 수 있겠지만, 직속 부하들의 입에서 나올만한 소리야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쯤은 군 경험이 없는 미드프레드로서도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왕 들을 바에야 참모들 보다 일반 사병들 쪽이 훨씬 폭 넓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더러, 희생양으로 조직된 부대라는 소문에 의기소침해져 있는 그들을 달래는 이중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여 미드프레드는 병사들과의 만남을 지속하고 있었다.


“부대 안에 그리 좋지 않은 소리들이 오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일단 지원군에 소속된 이상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우리는 동료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나는 내 동료들이 쓸데없는 소리로 싸우기도 전에 부대 안의 사기를 떨어뜨릴 만큼 생각 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


“···이해가 안 되네요. ”


형식적으로나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표하는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줄곧 삐딱한 자세로 서있던 호리호리한 체구의 병사 하나가 툭 내던지듯 대꾸했다. 언뜻 알아듣지 못한 미드프레드가 빤히 쳐다보자 그 병사가 약간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리며 빠르게 내쏘았다.


“이렇게 줄줄이 세워두고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


얼마 전에 막 열아홉 살이 된 자기보다도 어려 보이는 얼굴. 아무리 많이 쳐줘도 열 대여섯을 넘지 않은 듯 보이는 동안이 자신을 똑바로 쳐다 보고 있었다. 여린 생김새와는 대조적으로 야생 살쾡이를 연상케 하는 그의 연녹빛 눈동자만은 쏘는 듯 날카로웠다.


“설마 당신, 우리가 지금 여기서 대답한 것이 진심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아니면 당신 말에 끈 떨어진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여 주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 겁니까. 우습지도 않군요. 이런 식의 장난은. 맞장구쳐주기도 질렸어요. ”


사령관이라는 말조차 생략해버린 그의 대꾸에 주위에 있던 동료들이 도리어 당황한 기색이었다.


“야, 왜 이래···”


바로 옆에 서 있던 병사 하나가 그의 소매를 붙잡으며 낮게 말했지만, 그는 입을 다물 기색 없이 곧은 시선으로 미드프레드를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든지 말해 드리죠. 어차피 당신은,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던 거 아닙니까. ”


질릴 만큼 직선적인 어투로 주저 없이 쏘아대는 동료와 그런 그를 한 마디도 없이 응시하고 있는 사령관을 번갈아 쳐다보며 안절부절못하던 병사들 중 하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조심스러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사령관님, 지금···.”


미드프레드는 오른 손을 들어올려 병사의 말을 제지한 뒤 메이샤드를 쳐다보며 감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숨이 막혀 올 만큼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틀리지 않은 소리야. 나 역시 그걸 듣고 싶었으니 기탄없이 말해주면 좋겠군. ”


그를 향한 미드프레드의 무표정한 얼굴은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이미 막사 안의 분위기는 전쟁의 그것이라고 해도 될 만큼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그 와중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있는 병사들을 향해 미드프레드가 낮게 말했다.


“먼저 나가주겠습니까?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군요. ”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 하나 둘 자리를 빠져나가는 병사들을 뒤로 한 채 미드프레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귀관의 이름은? ”


“크로젤 라 메이샤드. ”


예상했던 대로 무뚝뚝하게 이름만을 내쏘는 그를 보며 미드프레드는 살짝 웃었다.


“그래, 메이샤드. 그대가 하려던 이야기가 부대 안에 떠도는 내 소문과 관련된 것인가? ”


자신의 출신과 지원군을 지휘하게 된 내력을 두고 부대 안에 여러 가지 악의에 찬 비난이 떠돌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바 아니었고, 또 그것이 이 부대가 사지로 내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군대라는 유언비어가 형성되는데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미드프레드는 일단 그렇게 운을 떼어냈다.


“나는 당신의 출신 같은 거 관심 없습니다. 뭐 귀족 출신이라 해서 더 나은 것도 아니니까. 그딴 거 흥미도 없고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아요. ”


하지만 망설임 없이 튀어나온 메이샤드의 대답에서 미드프레드는 자신의 생각이 기우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메이샤드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짧게 한숨을 내쉬며 한심스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당신, 사람 죽여 본 적 없지요? 갑옷 너머 상대의 심장에 칼을 꽂는 기분이 어떤지, 상대의 피를 뒤집어쓰는 게 얼마나 엿 같은지 모르죠? 직접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전쟁이란 것에 대해. 내가 화가 나는 건 그런 겁니다. 이거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전투 경험조차 없는 어린애를 상관이랍시고 모시고 싸울 생각하면 벌써부터 암담해져요. ”


상관인 자신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발언이었지만 묘하게도 불쾌한 기분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이 소년의 목소리에 섞인 감정이 짜증이나 분노보다는 푸념에 가까운 감정이기 때문일까.


“나는 물론 그런 경험은 없어.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고 애써 부인할 생각도 없다. 그러나 내가 해야 할 몫까지 남에게 떠넘길 생각 또한 전혀 없어. 그것만은 알아주면 고맙겠군. ”


“그거 참 훌륭한 각오군요. 부디 당신이 본인의 말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되길 바랍니다. 지금의 상황으론 이 부대의 어느 누구도 당신을 위해 대신 죽으려 하진 않을 테니까. ”


조용한 막사 안에 비아냥거리는 듯한 메이샤드의 목소리만이 날카로운 울림을 가지고 메아리치고 있었다.


“경애하는 사령관 각하, 잘 들어 두세요. 나는, 그리고 우리는, 지켜드려야 할 상관 따위는 원치 않습니다. 내 목숨 건사하기도 급급한 전장에서 그런 건 방해물에 지나지 않으니까. 나는 아직 어리고 하고 싶은 것도 많습니다. 상관 잘못 만나 이름도 없이 개죽음하고 싶진 않아요. ”


“장렬한 전사 따위에는 나 역시 흥미도 관심도 없으니, 그점에 한해서는 안심하도록. 비록 상황은 좋지 않지만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유감스럽지만 지금 내가 약속할 수 있는 건 그뿐이야. ”


조금은 굳은 얼굴로 미드프레드가 대답했다.


“좋아요. 하지만 우리의 신뢰를 얻고 싶다면 증명을 해야만 할 겁니다. 시덥잖은 말만이 아니라 실적으로요. 납득할 만큼이 되면 진심으로 복종하죠. ”


“친절한 충고 고맙군. 유념해 두지. ”


아무 말 없이 백안시당하는 것보다야 차라리 면전에서 쓴소리를 듣는 편이 속 시원하다고 생각하며 미드프레드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손을 잡는 건 내가 당신을 인정한 다음으로 미뤄두죠. ”


고집스럽게 악수를 거부한 메이샤드는 자세를 단정히 하고는 사령관을 향해 깍듯이 예를 표했다.


“실례 많았습니다, 사령관 각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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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2장 전장에 핀 꽃 7화 지원군의 본진 합류(12장 인명록) 19.05.23 414 10 9쪽
74 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19.05.22 613 9 8쪽
73 12장 전장에 핀 꽃 5화 전장의 꽃 19.05.21 434 10 7쪽
72 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19.05.20 536 12 10쪽
71 12장 전장에 핀 꽃 2화 불꽃 같은 여인 19.05.19 426 8 8쪽
70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19.05.18 452 8 8쪽
69 11장 분열의 조짐 7-8화 최종단안(11장 인명록) 19.05.17 440 9 12쪽
68 11장 분열의 조짐 6화 뮤켄의 충고 19.05.16 504 8 9쪽
67 11장 분열의 조짐 5화 패퇴 19.05.15 450 10 7쪽
66 11장 분열의 조짐 3-4화 양동작전 19.05.14 429 10 10쪽
65 1부 11장 분열의 조짐 1-2화 후방기지 괴멸 소식 19.05.13 511 9 11쪽
64 10장 진흙 속의 연꽃 7화 투항 제의 (10장 인명록) 19.05.09 465 8 13쪽
63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19.05.08 519 8 7쪽
62 10장 진흙 속의 연꽃 4화 적의 공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 19.05.07 464 8 8쪽
61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19.05.07 483 7 7쪽
60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19.05.07 480 8 8쪽
59 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19.05.07 525 6 7쪽
58 9장 전설의 시작 7화 조력요청(9장 인명록) 19.05.06 523 7 12쪽
57 9장 전설의 시작 5-6화 전후처리 19.05.06 568 8 12쪽
56 9장 전설의 시작 4화 최초의 승리 19.05.06 551 7 11쪽
55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19.05.05 516 9 9쪽
54 9장 전설의 시작 2화 기습 19.05.04 504 12 9쪽
53 9장 전설의 시작 1화 위장잠입 19.05.03 496 8 10쪽
52 8장 효시 7화 작전계획(8장 인명록) 19.05.02 557 11 12쪽
51 8장 효시 6화 용기,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 19.05.02 539 8 11쪽
50 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19.05.02 486 9 9쪽
49 8장 효시 3-4화 사령관과 참모장 19.05.01 508 11 13쪽
48 8장 효시 2화 전장의 밤 19.05.01 533 10 11쪽
47 8장 효시 1화 행군시작 19.04.30 560 12 11쪽
46 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19.04.30 569 8 11쪽
»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19.04.29 539 11 8쪽
44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19.04.29 558 11 7쪽
43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19.04.28 572 10 7쪽
42 7장 전환점 3화 하크스 지원군 19.04.28 647 11 9쪽
41 7장 전환점 2화 정치적 포석 19.04.27 609 12 10쪽
40 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19.04.27 579 11 8쪽
39 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19.04.26 586 11 8쪽
38 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19.04.26 631 13 9쪽
37 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19.04.25 572 9 7쪽
36 6장 개전 5화 선제공격 19.04.25 625 10 7쪽
35 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19.04.24 638 13 7쪽
34 6장 개전 3화 어머니와 아들 下 19.04.24 572 16 11쪽
33 6장 개전 2화 어머니와 아들 上 19.04.23 597 12 7쪽
32 1부 6장 개전 1화 진상규명요구 19.04.23 631 10 11쪽
31 5장 태풍의 눈 8화 안타미젤의 결심(5장 인명록) +2 19.04.22 696 15 12쪽
30 5장 태풍의 눈 6-7화 안타미젤 왕자 19.04.22 697 10 8쪽
29 5장 태풍의 눈 5화 계륵과도 같은 패 19.04.21 633 12 9쪽
28 5장 태풍의 눈 3-4화 충성서약 19.04.21 734 11 13쪽
27 5장 태풍의 눈 2화 사직서의 파장 19.04.20 743 14 11쪽
26 1부 5장 태풍의 눈 1화 사직원 19.04.19 743 15 7쪽
25 4장 부위정경 7화 생존전략(4장 인명록) 19.04.19 752 16 16쪽
24 4장 부위정경 6화 속고 속이는 싸움 19.04.18 764 19 10쪽
23 4장 부위정경 5화 기만 19.04.18 871 14 13쪽
22 4장 부위정경 4화 공주의 부름 19.04.17 821 19 10쪽
21 4장 부위정경 3화 거리의 아이 19.04.17 852 18 10쪽
20 4장 부위정경 2화 세레즈의 물밑 접촉 19.04.16 829 20 7쪽
19 1부 4장 부위정경 1화 코네세타의 공주 19.04.15 868 19 10쪽
18 3장 폭풍전야 6화 주전론을 위한 막후교섭(3장 인물소개) 19.04.14 906 21 12쪽
17 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2 19.04.13 1,013 21 7쪽
16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2 19.04.12 1,002 23 7쪽
15 3장 폭풍전야 2화 그윈 재상 19.04.11 1,049 23 8쪽
14 1부 3장 폭풍전야 1화 태자의 실종 19.04.10 1,192 21 11쪽
13 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4 19.04.10 1,199 33 8쪽
12 2장 애별리고 6화 고작 마음 하나 +2 19.04.09 1,253 21 9쪽
11 2장 애별리고 5화 이주명령 19.04.09 1,399 26 9쪽
10 2장 애별리고 4화 떨림과 설렘 +4 19.04.07 1,392 25 7쪽
9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2 19.04.05 1,470 24 7쪽
8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2 19.04.04 1,485 28 7쪽
7 1부 2장 애별리고 1화 마음의 향방 19.04.03 1,535 26 7쪽
6 1장 표류 6화 자각 +2 19.04.03 1,647 32 7쪽
5 1장 표류 5화 바다를 닮은 여인 +6 19.04.02 2,070 33 8쪽
4 1장 표류 4화 슈레디안의 고민 19.04.01 2,285 37 8쪽
3 1장 표류 3화 3년만의 손님 19.04.01 2,634 34 7쪽
2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19.04.01 3,541 46 7쪽
1 <제1부 펜데스칼 전쟁> 제1장 표류 1화 난파당한 청년 +4 19.04.01 6,791 6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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