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5.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미드프레드는, 밀시언 장군 휘하의 아나브릴 방어군 진영 후방에 위치해 있는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를 맞이하기 위해 일부러 나와 있는 듯 보이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참모로 보이는 세 명의 사내와 대강 열 서넛의 병사로 이루어진 그들은 그때까지 하크스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주저하는 기색 없이, 병영 안으로 들어서는 미드프레드에게 다가왔다.
"하크스 지원군 사령관이시지요. 소관은 아나브릴 방어군 참모부 소속 엘 라 마르셀이라고 합니다. "
그들 중 가장 서열이 높아 보이는 청년이 말에서 뛰어내리다시피 내려온 미드프레드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짧게 목례했다.
"사령관 각하께서 기다리시니, 저를 따라오십시오. ”
상대방으로부터 용건을 전해 들은 미드프레드가 약간 주저하는 눈빛으로 힐끗 참모장을 바라보았다.
"병사들은 제가 책임지고 수습할 테니 각하께서는 밀시언 장군님께 다녀오시지요. "
뮤켄도 미드프레드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대답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어린 사령관을 재촉하듯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각하께서는 뮤켄 장군도 함께 모시라 하셨습니다. "
미드프레드가 무어라 답하기도 전에 마르셀이 약간은 빠른 어조로 밀시언 장군의 지시를 전했다. 그는 뮤켄이 살짝 미간을 좁히는 것을 응시하며 안심하라는 듯 덧붙였다.
"지금 사령관 각하의 지시로 병영 안의 인원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병사들의 숙소는 급한 대로 비워진 막사를 쓰시지요. 모자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저쪽에 임시 막사를 세우고 있으니 그 점은 염려 놓으셔도 될 겁니다. 여기 있는 랑크 군과 에릭슨 군이 병사들을 안내할 겁니다. "
뮤켄은 간단한 인사로 고마움을 대신하고 뒤에 서 있는 선임 참모 케니하크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나직한 음성으로 그에게 몇 마디 지시를 내린 뒤, 미드프레드 쪽으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 그럼 안내 바랍니다. "
마르셀은 사양을 표하듯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먼저 몸을 돌렸다. 대여섯 개의 막사를 지나쳐 그는 붉은 깃발이 휘날리고 있는 커다란 군막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미드프레드와 뮤켄이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서자, 책상 너머에 앉아있던 중년의 장군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책상을 돌아 탁자 쪽으로 다가오는 그는 무관치고는 그다지 큰 키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다부진 체격을 하고 있어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장군다운 위용이 절로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어서 오시오. 본관이 레니크 라 밀시언이오. "
밀시언 장군은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과 마찬가지로 특별히 호의를 표시하거나 하지는 않았으나, 미드프레드는 자신을 지그시 응시하는 그의 눈빛에서 상대가 자신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뵙습니다. 소관은 하크스 지원군 사령관으로 임명 받은 미드프레드 그론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아시다시피 참모장인 뮤켄 장군입니다. "
뮤켄은 아무 말 없이 밀시언 장군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저 짤막한 인사 하나에서도 사령관인 미드프레드의 위치를 감안해서 가급적이면 자신이 나서는 것을 자제하려는 그의 배려심이 절로 느껴졌다. 역시 자신이 불러들이지 않았다면, 이렇게나마 만나기 어려웠을 테지. 밀시언은, 수도 방위부에 있었을 때와 거의 달라지지 않은 뮤켄을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우선 앉으시오. "
그는 가벼운 미소를 떠올린 채 옛 부하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후, 자리를 권했다.
"남부 영지의 상황과 적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소? "
“소관이 비록 폐하께 출전 명령을 받고 한 부대의 지휘를 담당하는 위치에 올랐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하크스의 상황은 물론 남부 영지의 적군 분포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사항조차 알지 못합니다. ”
놀라울 만큼 솔직한 답변이었다. 굳어 있던 밀시언 장군의 입매가 아주 짧은 순간이나마 풀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좌중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확인할 새도 없이 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책상 쪽으로 가서 뭔가를 집어 든 그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묵묵히 그것을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 남부 영지의 지도와, 그보다 더 세부적인 기록이 되어 있는 하크스 영지의 지도가 미드프레드와 뮤켄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코네세타 군에 대해 어느 정도의 사전 지식이 있는지 잘 모르나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소. 현재 적군은 펜데스칼 영지로 진군 중이고, 그 경로는 이렇소. 하크스, 로크라테, 그리고 펜데스칼 영지의 일부가 적군의 관할 하에 떨어진 상태이고, 적군의 보급기지는 카르테 섬에 있소. 그리고 그들은 공해부터 세레즈 남부 해안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해권을 장악하고 있소. ”
그는 남부 영지의 지도의 여러 지점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 정도야 알겠지만, 적군의 적의 이동 경로 중에서 그들의 수중에 들어가지 않은 지점은 하크스 영지의 본성 첸트로빌 성뿐이오. 본관이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현재 하크스 영내에 있는 적군은 그들의 총 병력의 1할에 해당하는 대군이고, 그 중에서도 근 ⅔에 해당하는 병력이 연안 항구 수호와 첸트로빌 공성전에 투입되고 있다고 하오. 즉 최하 2만 가량의 병력이 성을 둘러싸고 있다는 소리인 거지. "
무거운 침묵이 그들 사이에 가라앉았다.
"지원군 사령관이 무슨 작전을 염두에 두고 있는지는 모르나, 적군의 전선을 돌파하여 첸트로빌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오. "
이어지는 밀시언의 음성은 한편으로는 뭔가에 지치고,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에 쫓기고 있는 듯했다. 그가 말하는 바가 그저 산술적인 병력 차 이상의 뭔가를 내포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 미드프레드가 미간을 조금 굳혔다.
"병력 차 이외에도 어려움이 있을 거라는 말씀이십니까? "
밀시언이 굳게 입을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몸을 의자 깊숙이 기대앉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 마디로 설명하기 좀 힘든 상황이오. 솔직히 나 역시도 보지 못했으니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도 어려우나··· "
뮤켄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한 밀시언 장군의 얼굴을 자못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뮤켄은 수도 방위부에 있던 지난 삼 년 동안 밀시언 장군이 이런 식으로 동요를 보이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가 이토록이나 망설이는 것일까.
“코네세타 군은 여지까지 그 어느 전투에도 사용된 바 없는 신종 무기를 갖고 있소. ”
밀시언 장군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것을 화약이라고 부르는 모양인데, 그 파괴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고 하오. 그것에 불이 붙으면 땅과 하늘이 울리는 듯한 광음이 울리고, 그 주변에 있는 병사들은 형체조차 알아 볼 수 없으리만큼 처참하게 짓뭉개진다고 하더군. "
종전의 단호하고 명확한 어조와는 달리, 지금 그의 발언은 마치 한숨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코네세타 군 역시 그 무기를 충분히 보유하고 있지는 못하는 것 같소. 아직 정확한 정보가 입수되지 않은 만큼 이는 전적으로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어찌 되었건 간에 그들이 그러한 무기를 갖고 있는 이상, 충분치 못한 병력으로 하크스에 입성하겠다고 하는 것은 자살 행위요. "
밀시언은 단정짓듯 짧게 말했다.
"각하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만. "
그동안 한 마디도 없이 줄곧 듣고만 있던 뮤켄이 약간 떨어뜨리고 있던 시선을 들어올리며 차분한 음성으로 물었다.
"아까 산 위에서 언뜻 보았지만, 이 부대의 병력 수가 오만을 넘는 것 같습니다만. 게다가 오는 길에, 부상병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더군요. 제가 알고 있는 바로는 2진은 아직 적군과 교전을 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말씀하신 것이 이런 것들과 관계가 있는 겁니까. ”
날카롭게 빛나는 뮤켄의 코발트빛 눈동자를 마주 보고 있던 밀시언 장군이 문득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좋은 질문이군. 그 의문에 대해 답해 줄 자를 소개해주고자 그대들을 이 자리에 부른 것이오. 아마 그는 내가 귀관들에게 주었던 정보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해줄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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