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6장 개전
7. 개전 이후의 정황
세느비엔느 여왕은 국무 대신 에드 라 유크로젤이 건넨 출전군 지휘관들의 명단과 커런스로부터의 무기 수입에 대한 현황 보고서의 제목만을 간단히 훑어본 후 고개를 들어 올렸다.
“수고 많았소, 국무 대신. 이것들은 내 따로 살펴본 후 인가하여 국무부로 내려보내겠소. 그보다 공에게 확인해 두고자 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
국무대신 유크로젤은 조금 굳어진 얼굴로 문서를 탁자 한편에 밀어두는 여왕의 손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짐이 일전에 명해 두었던 일은 어찌 진행되고 있소? ”
“명하신 일이라 하옵시면···? ”
긴장한 목소리로 반문하는 그의 얼굴에서 세느비엔느는 상대가 자신의 질문의 요지를 미처 다 파악하지 못했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여왕은 자칫 예민해지려 하는 심사를 가볍게 숨을 들이키는 것으로 대신하고는 말문을 열었다.
“내 군대 차출 건으로 따로 지시해 둔 일이 있지 않았소? 그래, 북부 영주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는 방도는 모색해 봤소? ”
대답을 주저하며 서 있는 상대의 얼굴에서 대강의 사태에 대해 이미 짐작했지만, 그녀는 일부러 아무 것도 보지 못한 척 한 글자 한 글자를 또박또박 끊어서 다시 한번 물었다.
“짐은 지금 그대에게 그 일에 대해 어떠한 방식으로든 조정 대신들 간에 논의가 있었는지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이오. ”
“폐하의 분부를 받들어 온 조정의 대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심사숙고하였으나······.”
답답해진 여왕이 다시 한번 신경질적인 재촉을 하려던 찰나, 국무대신이 어렵사리 뒷말을 이었다. 전쟁을 준비하면서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아군의 전력 상황에 대한 보고가 연이어지면서 최근 부쩍 역정이 늘어난 그녀였다.
“황망스럽게도 아직 마땅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사옵니다. ”
“허! 지금 해결책이 없다고 말씀하셨소? ”
호통 없이 한동안 불편한 침묵만을 지키고 있던 세느비엔느가 관자놀이를 짚으며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찼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쩔 요량이오? 이대로 적군이 도성까지 밀고 들어오기를 기다릴 작정인 것인가? ”
그녀의 입가에 서린 냉기 서린 조소에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는 유크로젤 공을 대신하여 그 자리에 있던 재상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폐하, 부디 노여움을 가라앉히시옵소서. 이 일은 국무대신만의 잘못이 아니지 않사옵니까.”
“지금 과인에게 진정하라 하시었소? ”
날이 선 그녀의 목소리가 무거운 공기를 가르고 좌중에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한층 더 깊이 고개를 수그린 유크로젤 공과는 달리, 재상은 꼿꼿이 허리를 편 채 그녀의 격한 눈빛을 그대로 받아내고 있었다.
“어리석은 신의 소견으로도 북부 영주들이 군대 차출 명령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
재상은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그녀의 험악한 기세에도 아랑곳 없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느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국무부와 군부를 통해 진정서가 날아들 만큼 현재 북부 여섯 영지의 치안 상태는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카이드라 평원 북서부에서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가이샤드 족이라는 유목민들 때문이온데, 이들과의 영토 분쟁에서 밀린 갈 족의 유민 중 상당수가 세레즈 북부 영내로 흘러 들어 영지의 안전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세느비엔느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조용조용히 이어지는 재상의 말을 듣고 있었다.
“물론 소신이 지나친 노파심으로 상주 드리지 아니하여도 폐하께서 깊이 살펴 헤아리시리라 믿사옵니다만, 이 시점에 무리하게 북부의 병사들을 도성으로 불러들이시면 북부 영지 백성들의 안위가 위태로워 질 것입니다. ”
재상의 발언에 힘입어 국무 대신 유크로젤 공도 신중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비단 치안 문제의 심각성 뿐만 아니오라 갈 족의 거주지나 생계 문제 또한 북부 영주들에게 만만치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사오니, 영주들이 대책을 강구할 때까지 조금 더 여유를 두시는 편이 현명한 결단이 되지 않을까 하옵니다. ”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여왕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의자에서 거칠게 일어섰다.
“참으로 답답하군. 어찌 공들은 북부 영지의 안정만 고려하고 적국에 의해 핍박받는 남부 백성들의 안위는 생각 못 하시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내저었다.
“물론 재상의 말대로 가이샤드 족의 성장과 갈 족의 유입으로 북부의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될 또 하나의 사실은 우리에게 더 이상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점이오. ”
그녀는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느라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우리는 북부의 일시적인 피해를 감내하고서라도 총력을 다하여 왕위 계승자인 태자를 시해함으로써 우리의 국가적 정당성을 모독하고 선전 포고와 선제 공격으로 나라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있는 코네세타에 맞서 싸워야 하오. 이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최우선의 과제요. 짐의 뜻을 이해하시겠소? ”
세느비엔느는 고개를 숙여 대답을 대신하는 그들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갈 족의 유입이 북부 영주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하니 좋소. 본디 싸움이 본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거친 족속들이니, 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당장 수도로 내려 보내라 하시오. 그리하면 그들의 생계나 거주지 문제도 일시에 해결될 것 아니오? 그럼 북부 영주들로서도 불만이 없을 테지. ”
세느비엔느는 국무 대신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조금 더 가라앉은 음성으로 지시했다.
“국무 대신, 공은 지금 당장 북부 여섯 영지에 짐의 이름으로 공문을 내려보내도록 하시오. 세레즈 정규 부대를 보내든 용병을 보내든 개의치 않을 터이니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취해서라도 짐이 정해준 만큼의 병력을 이 달 안으로 다이레비드로 내려보내라고 말이오. ”
“예, 폐하. ”
“기한 내에 할당량을 맞추지 못하는 영주는 내 사태가 수습되는 대로 경질시켜 그 죄를 엄중히 문책할 것이라는 점도 단단히 주지시켜야 할 것이오. ”
그녀는 깊이 고개 숙여 예를 갖추는 유크로젤 공에게 시선을 거두어들이며 차갑게 덧붙였다.
“내 여기 있는 재상과 의논하던 바가 있으니 그대는 이만 물러가도록 하시오. ”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