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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연

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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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498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5.07 12:59
조회
479
추천
8
글자
8쪽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DUMMY

2. 이해




로엘은 자신의 시야 가운데 문자 그대로 단정히 서서 보고를 마친 젊은 장수에게서 시선을 떼어내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준비가 무사히 끝났다니 다행이로군. "


대수롭지 않은 투로 나직하게 중얼거리던 그는 조금 더 목소리를 높여 밖에 있던 하인 하나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이내 문이 열리고 하인이 들어서서 차분한 태도로 고개를 숙이는 것을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며 그는 짧게 지시했다.


"자네는 가서 지원군 사령관을 모셔오도록. "


"예, 영주님. "


꾸벅 인사하고 물러가는 하인의 모습을 지켜보던 슈발츠의 미간에 잔주름이 하나 더 잡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게. "


짧은 침묵 끝에 로엘 공 쪽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발언이었기 때문일까. 영주를 향한 슈발츠의 얼굴에서는 당황한 기색이 뚜렷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영주님. "


망설이는 어조로 자신을 부른 뒤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슈발츠의 심정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던 듯, 노영주가 차분한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곧 지원군 사령관이 이리 올 걸세. 그러니 내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지금 하라는 게야. 자네 말을 듣는 거야 그리 어렵지 않겠지만, 아무래도 지원군이 영지를 떠나기 전에는 이보다 좋은 기회가 없을 듯하니. "


노영주를 향해 고정되어 있던 슈발츠의 푸른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는 듯했다. 자신의 불만을 다 알면서도 병사들 사이에 갈등이 일어날 것을 감안하여 일부러 모르는 척 덮어두려 하나 했더니, 끝까지 모르는 체를 할 생각은 아니었나 보다.


"주공께서 이미 결정하신 일에 대해 제가 새삼 나서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 생각하여 참아 왔습니다만. "


계속 주저하며 꺼내지 못한 말을 영주 쪽에서 먼저 거론한 이상, 이제 슈발츠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할 이유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하며 그는 말아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을 주었다.


"기회를 주신다 하니, 무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그는 약간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솔직히 소관, 영주님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회색빛이 도는 그의 푸른 눈동자가 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하크스를 지원하러 온 병사들입니다. 그런 그들이 영지를 벗어나는 것 자체가 전장 이탈에 해당하는 월권행위인데, 어찌 그리 쉽게 떠날 수 있도록 허락을 하시고, 배와 화약까지 딸려 주시는 겁니까? "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일세. "


"필요한 조치라니요? "


되묻는 슈발츠의 음성이 조금 더 올라갔다.


"자네는 하크스 지원군이 무얼 의미한다고 생각하나? "


잠시 멈칫하는 슈발츠를 약간은 착잡한 시선으로 응시하다가, 영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일단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 첸트로빌 성의 농성을 지원하기 위한 군대와 하크스 영지의 수복을 원조하기 위한 군대, 이렇게 말일세. 내 하나 더 묻지. 그럼 그들이 해야 할 일은 무얼까. "


평상시와 전혀 다를 것 없이 고요한 그 음성에서는 묘한 엄숙함 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그들이 농성 지원군이라 한다면, 그들은 아군 즉 첸트로빌 성의 농성을 돕기 위한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게야. 그게 그들의 임무인 셈이니까. 돕는다는 의미를 굳이 성안에서의 방어로만 좁게 해석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그리고 그들이 영지 수복을 목적으로 한 군대라 해도 그 점은 마찬가지네. 예로부터 전장에서 야전 사령관의 결정 사항에 대해서는 국왕 폐하조차도 간섭하지 않는 것이 법도였어. 그러니 이 일은 월권 행사라 할 수 없는 성질의 일인 게지. "


"말씀하시는 뜻은 잘 알고 있습니다. "


순순한 대답과는 달리, 이 젊은 장군의 굳은 얼굴에 드리워진 불만의 그늘은 전혀 옅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로엘 공은 한눈에 간파해 낼 수 있었다. 그래, 자네의 올곧은 성정으로는 내 행동이 납득하기 어려울 게야. 영주는 내심 씁쓸한 웃음을 삼켰다.


"현재 그 군사는 우리에게 그다지 절실하지 않아. "


"예? "


"성안에 있는 아군의 기존병력은 사천 가량이지. 새로 들어온 지원군은 삼천 정도 되고. 자네가 그들을 지켜봐 왔으니 묻는 말이지만, 양쪽의 병사들이 언제까지 조용하게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


병사들을 효과적으로 지휘하기 위해서는 첸트로빌의 군사들과 지원군 양자 중 어느 한 쪽이 우위를 잡고 지휘권을 이양받아 최종적인 통솔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머릿수나 입성 시의 상황으로 미루어보건대 미드프레드의 지원군이 가지런히 로엘 공에게 포섭되기에는 무리가 많았다. 그 점을 지적하는 로엘 공의 질문에 슈발츠는 대답을 못 하고 결국 시선을 떨어뜨렸다.


"지금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마찰이 없는 게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린 서로 힘들어질 게야. 어차피 수비 위주의 농성 전략을 채택한 이상, 병사들의 머릿수가 많아진다 해서 객관적인 전력이 나아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네. "


종전과 별다를 바 없는 영주의 나지막한 음성은 어쩐지 손에 잡히지 않는 한숨 같은 인상을 주었다.


"어쩌면 무모한 시도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안 한 채 주저앉아 있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시도해 보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


"제가 감히 어찌 영주님의 뜻에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만 저희들이 애써 지켜온 배와 화약이 그 목적을 다하지 못할까 하여···."


로엘 공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염려를 내 어찌 모르겠는가. 아군이, 우리 병사들이 배와 항구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내 모르리라 생각하는가? 그래, 우리가 목숨 걸고 지켜온 것을 서슴없이 내어주는 내 결정이 자네들로서는 못마땅하기도 할게야. 당연한 일이지. "


그는 가만히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듯한 음성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한 번 생각해 보게나. 그 배가 우리 수중에 있으면, 그건 그저 항구에 가만히 매어있는 배일뿐이지. 그러다가 혹여 전세가 기울어 항구를 빼앗기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더더욱 최악의 용도로 쓰일 테고. 누가 타든 배는 타라고 만들어진 거고, 이왕이면 우리 영지를 돕기 위해 파견된 아군이 이용하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적어도 항구에 방치해두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옳은 용도로 배를 사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데. "


슈발츠는 입술을 깨물었다.


"너 나 구분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다 세레즈 인인 게야. 비록 내가 직접 쓸 수 없다 하더라도, 이곳에 그저 쌓아두는 것 이상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면 난 배가 아니라 그 무엇이라도 기꺼이 내줄 생각이네. "


아직껏 시선을 떨구고 있는 젊은 장수를 부드럽게 응시하며 영주가 온화한 음성으로 말했다.


"슈발츠. 자네의 그 고지식한 성품도, 영내 병사들과 백성들을 끔찍하게 생각하는 그 마음도, 내 잘 알지. 이 늙은이의 아둔한 생각이, 때때로 자네 보기엔 답답하고 고루하게 느껴질 지도 몰라. ”


슈발츠를 향한 로엘 공의 주름진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지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나는 자네가 우리 하크스 이외에 더 큰 것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네. 무릇 그릇이 큰 장수는 시야가 넓은 법이거든. 내 말뜻 이해하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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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2장 전장에 핀 꽃 7화 지원군의 본진 합류(12장 인명록) 19.05.23 414 10 9쪽
74 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19.05.22 613 9 8쪽
73 12장 전장에 핀 꽃 5화 전장의 꽃 19.05.21 434 10 7쪽
72 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19.05.20 536 12 10쪽
71 12장 전장에 핀 꽃 2화 불꽃 같은 여인 19.05.19 425 8 8쪽
70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19.05.18 452 8 8쪽
69 11장 분열의 조짐 7-8화 최종단안(11장 인명록) 19.05.17 440 9 12쪽
68 11장 분열의 조짐 6화 뮤켄의 충고 19.05.16 504 8 9쪽
67 11장 분열의 조짐 5화 패퇴 19.05.15 450 10 7쪽
66 11장 분열의 조짐 3-4화 양동작전 19.05.14 428 10 10쪽
65 1부 11장 분열의 조짐 1-2화 후방기지 괴멸 소식 19.05.13 511 9 11쪽
64 10장 진흙 속의 연꽃 7화 투항 제의 (10장 인명록) 19.05.09 465 8 13쪽
63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19.05.08 518 8 7쪽
62 10장 진흙 속의 연꽃 4화 적의 공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 19.05.07 464 8 8쪽
61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19.05.07 483 7 7쪽
»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19.05.07 480 8 8쪽
59 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19.05.07 524 6 7쪽
58 9장 전설의 시작 7화 조력요청(9장 인명록) 19.05.06 523 7 12쪽
57 9장 전설의 시작 5-6화 전후처리 19.05.06 568 8 12쪽
56 9장 전설의 시작 4화 최초의 승리 19.05.06 550 7 11쪽
55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19.05.05 516 9 9쪽
54 9장 전설의 시작 2화 기습 19.05.04 504 12 9쪽
53 9장 전설의 시작 1화 위장잠입 19.05.03 496 8 10쪽
52 8장 효시 7화 작전계획(8장 인명록) 19.05.02 556 11 12쪽
51 8장 효시 6화 용기,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 19.05.02 539 8 11쪽
50 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19.05.02 486 9 9쪽
49 8장 효시 3-4화 사령관과 참모장 19.05.01 508 11 13쪽
48 8장 효시 2화 전장의 밤 19.05.01 533 10 11쪽
47 8장 효시 1화 행군시작 19.04.30 560 12 11쪽
46 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19.04.30 568 8 11쪽
45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19.04.29 538 11 8쪽
44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19.04.29 558 11 7쪽
43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19.04.28 571 10 7쪽
42 7장 전환점 3화 하크스 지원군 19.04.28 647 11 9쪽
41 7장 전환점 2화 정치적 포석 19.04.27 609 12 10쪽
40 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19.04.27 579 11 8쪽
39 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19.04.26 585 11 8쪽
38 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19.04.26 631 13 9쪽
37 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19.04.25 572 9 7쪽
36 6장 개전 5화 선제공격 19.04.25 625 10 7쪽
35 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19.04.24 638 13 7쪽
34 6장 개전 3화 어머니와 아들 下 19.04.24 572 16 11쪽
33 6장 개전 2화 어머니와 아들 上 19.04.23 597 12 7쪽
32 1부 6장 개전 1화 진상규명요구 19.04.23 630 10 11쪽
31 5장 태풍의 눈 8화 안타미젤의 결심(5장 인명록) +2 19.04.22 696 15 12쪽
30 5장 태풍의 눈 6-7화 안타미젤 왕자 19.04.22 697 10 8쪽
29 5장 태풍의 눈 5화 계륵과도 같은 패 19.04.21 633 12 9쪽
28 5장 태풍의 눈 3-4화 충성서약 19.04.21 734 11 13쪽
27 5장 태풍의 눈 2화 사직서의 파장 19.04.20 743 14 11쪽
26 1부 5장 태풍의 눈 1화 사직원 19.04.19 743 15 7쪽
25 4장 부위정경 7화 생존전략(4장 인명록) 19.04.19 752 16 16쪽
24 4장 부위정경 6화 속고 속이는 싸움 19.04.18 763 19 10쪽
23 4장 부위정경 5화 기만 19.04.18 871 14 13쪽
22 4장 부위정경 4화 공주의 부름 19.04.17 821 19 10쪽
21 4장 부위정경 3화 거리의 아이 19.04.17 852 18 10쪽
20 4장 부위정경 2화 세레즈의 물밑 접촉 19.04.16 829 20 7쪽
19 1부 4장 부위정경 1화 코네세타의 공주 19.04.15 868 19 10쪽
18 3장 폭풍전야 6화 주전론을 위한 막후교섭(3장 인물소개) 19.04.14 906 21 12쪽
17 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2 19.04.13 1,013 21 7쪽
16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2 19.04.12 1,002 23 7쪽
15 3장 폭풍전야 2화 그윈 재상 19.04.11 1,048 23 8쪽
14 1부 3장 폭풍전야 1화 태자의 실종 19.04.10 1,192 21 11쪽
13 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4 19.04.10 1,199 33 8쪽
12 2장 애별리고 6화 고작 마음 하나 +2 19.04.09 1,252 21 9쪽
11 2장 애별리고 5화 이주명령 19.04.09 1,399 26 9쪽
10 2장 애별리고 4화 떨림과 설렘 +4 19.04.07 1,392 25 7쪽
9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2 19.04.05 1,470 24 7쪽
8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2 19.04.04 1,484 28 7쪽
7 1부 2장 애별리고 1화 마음의 향방 19.04.03 1,534 26 7쪽
6 1장 표류 6화 자각 +2 19.04.03 1,647 32 7쪽
5 1장 표류 5화 바다를 닮은 여인 +6 19.04.02 2,070 33 8쪽
4 1장 표류 4화 슈레디안의 고민 19.04.01 2,284 37 8쪽
3 1장 표류 3화 3년만의 손님 19.04.01 2,634 34 7쪽
2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19.04.01 3,541 46 7쪽
1 <제1부 펜데스칼 전쟁> 제1장 표류 1화 난파당한 청년 +4 19.04.01 6,791 6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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