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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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개전
4. 선전포고
“······코네세타는 독립 왕조이지 귀국의 속국이 아닐진대, 친선의 뜻으로 교환하는 공물의 소홀을 운운하여 국가 간의 우의와 신뢰를 파한 귀국이 근자에 사절까지 파견하여 귀국 태자의 실종이라는 유감스러운 사태를 아국의 일방적인 실책이라 주장하는 것은, 엄연히 아국의 정치적 주권과 영토적 존엄성에 대한 명백하고 충분한 위협이라고 간주하지 않을 수 없는바, 코네세타 국왕 로그스트 Ⅵ세는 금후 세레즈를 코네세타의 국적이라 규정하고, 아국의 명예를 회복하는 그 날까지 국가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전쟁을 수행할 것임을 귀국 왕실의 섭정 세느비엔느 공에게 단호히 선포하는 바이다.”
코네세타 국왕 국왕 로그스트 Ⅵ세가 세레즈 왕실 앞으로 보낸 선전포고문의 낭독을 끝낸 그윈 재상은 고개를 들어 옥좌에 앉아 있는 세느비엔느 여왕을 바라보았다.
“이상이옵니다, 폐하.”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도열해 있는 다른 신료들과는 달리 그윈 재상은 여왕의 무표정한 얼굴 가운데 흐르고 있는 묘한 여유를 감지해 낼 수 있었다.
“수고 많았소, 재상.”
세느비엔느와 의미 있는 시선을 교환한 그윈 재상은 천연덕스럽게 허리를 굽혀 예를 표한 뒤 몇 걸음 물러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짐이 코네세타 관할의 해역에서 행방이 묘연해진 태자의 안위를 조사하고자 코네세타에 에르네스 경을 사절로 파견한 일이 있었음을 여기 있는 대신들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오.”
다이레비드 왕성의 옥좌가 놓여 있는 거대한 홀에서 세느비엔느 여왕은 여러 문무 대신들을 굽어보며 무게 있는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짐은 태자의 실종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을 평화롭게 타개해 나가고자, 그들에게 사절을 보내어 태자를 찾기 위한 조사에 협력해 줄 것을 정중하게 요청하였소. 삼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고자 하였던 짐의 노력에 대한 그들의 답변이 바로 이 선전포고문이오.”
재상은 극히 자연스럽게 홀 안의 분위기를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끌어가고 있는 여왕을 감탄 어린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코네세타의 선전포고라는 대대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침착한 표정으로 서 있을 수 있도록 사전에 모든 준비를 끝내놓은 스스로에 대한 만족이기도 했다.
“이는 우리의 염려가 현실로 드러난 결과일 뿐이오. 저들은 평화를 지키고자 한 짐의 성의를 무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레즈 왕위 계승 절차에 따라 정식으로 보위에 오른 짐의 왕권을 모독하였고, 심지어 본국을 국적이라 규정하고 전면 공격을 선포하기까지 하였소. 이로써 우리는 태자 아체프렌의 실종을 코네세타의 의도적 적대 행위에 의한 것이라 단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소.”
“그렇사옵니다, 폐하. 이러한 사태가 있을 것을 예견하고 미리 준비해 둔 것이 아닌 이상 저들이 어찌 이토록 빠르게 대응해 올 수 있었겠습니까?”
“옳은 지적이오. 더이상 그들의 패악무도한 행위를 묵과할 수 없는 순간이 도래한 것 같소.”
여왕의 단호한 발언에 홀 안이 가볍게 술렁거렸다. 그윈 재상이 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참으로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폐하. 대 세레즈의 왕위 계승자가 적국이나 다름없는 곳에서 행방불명되었습니다. 이 자체만으로도 세레즈에 더할 나위 없는 모욕일진대, 조정에서 이에 대해 합당한 대책을 취하지 아니하고 침묵만을 지키고 있으니, 코네세타가 스스로의 죄를 잊고 도리어 본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는 것이옵니다.”
그의 주름진 얼굴에는 여간 자세히 주시하지 않고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옅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폐하, 이 사건은 코네세타의 오만이 어디까지 다다랐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이옵니다. 이 기회에 세레즈의 확실한 우위를 보여주지 않는다면 코네세타는 물론 우리 세레즈의 백성들까지도 왕실의 권위를 무시하게 될 것이옵니다.”
세느비엔느 여왕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가 덧붙일 필요도 없으리만큼 재상의 이 발언은 홀 안을 폭풍 전야의 침묵 속으로 가라앉게 했다.
“그렇소. 그간 국제 평화에 이바지하여야 할 상국의 도의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다 보니, 정작 단호하게 대처했어야 할 코네세타에게 지나칠 만큼 온유한 태도를 보였던 것 같소. 그러나 사태가 이리 확대된 이상 짐은 이제 코네세타의 행동을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이오.”
여왕은 장중한 음성으로 지시했다.
“재상, 그대는 회의가 파하는 대로 태자의 사망과 코네세타와의 대전을 알리는 공문을 작성하여 제국 내의 모든 영지에 내려보내도록 하시오.”
“신, 부르노 레 그윈, 폐하의 명을 충심으로 받들겠나이다.”
세느비엔느는 고개를 끄덕이고 조정 대신들을 쭉 훑어보았다.
“군부대신, 공은 도성에 집결해 있는 총 병력을 동원하여······.”
묵직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홀의 문이 활짝 열린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정면에 앉아 있던 여왕은 물론 좌우에 늘어서 있던 문무 대신들의 시선이 일제히 홀의 입구 쪽으로 집중되었다. 건장한 체격의 중년 장수 한 명이 당혹감과 불쾌함이 뒤섞인 수십 개의 시선 속에서 당당히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
여왕은 침입자 곁에 송구스러운 듯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근위병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들은 그녀의 경직된 음성에 한층 더 깊이 머리를 숙여 보였다.
“황송하옵니다, 폐하.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오나 이 자가 워낙 강경하게······.”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들여보냈단 말인가!”
“소신들은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였으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입 다물라! 소임을 다하지 못한 자가 무슨 면목으로 변발을 일삼는가! 내 홀 앞에 배치해 둔 근위의 수가 대체 몇인데, 그저 한 명을 막지 못하여 국가 중대사를 논하고 있는 어전 회의에 난입하도록 한다는 말이냐?”
잡아채는 듯한 그녀의 힐책에 근위병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이번 일은 근위대의 과실이 아니라 신이 단독으로 행한 죄이오니, 문책하시려거든 신의 불충만을 물어주시길 간곡히 청하옵니다.”
세느비엔느의 시선이 다시 그 장수에게로 돌아왔다.
“참으로 불경하구나.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들어오며, 또 어전에서 내 그대의 발언을 아직 허락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 함부로 친국 도중에 끼어드는 것인가? 그것이 정녕 참형을 면치 못할 죄라는 것을 모르느냐? 내 그대가 누구인지 모르겠으나 이 무례는 반드시 묻고 넘어갈 것이니라.”
그러나 장수는 여왕의 강경한 발언에도 주춤거리는 기색 없이 의연한 태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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