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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연

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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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667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5.28 10:00
조회
391
추천
10
글자
8쪽

13장 삼년불비우불명 5화 기습실패

DUMMY

5. 기습실패






사방이 펠트 천으로 둘러싸인 코네세타 군 총사령관의 천막 안에서, 야습을 위해 출전한 부하 장수들이 귀환하기를 기다리고 있던 전군 일번대 사령관 아르카디 제크로웰은 초조한 기색으로 입구를 쳐다보고 있던 눈길을 떼어냈다.


이상하다. 아무리 늦어져도 지금쯤이라면 이미 돌아와야 되는데. 부하들이 나간 시간을 대강 어림해보며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차피 기습이란 치고 빠지는 것, 쓸데없이 시간을 잡아끌 이유가 없는 작전이다. 왜 이리 안 오는 거지. 제크로웰의 가슴 한구석에 불길한 기운이 자리 잡아가기 시작할 무렵, 라콘 대장군의 격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다가와 꽂혔다.


"후방에서 올라오는 보고는 왜 죄다 이 모양 이 꼴이야!"


대장군은 후방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아무렇게나 내던지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탁자 위를 거세게 내리친 외숙의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보며, 제크로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탁자 주위에 어지럽게 흩어진 문서들을 주워 올리며 차분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안 좋은 보고입니까."


"아군의 보급 선단이 적의 공격을 받았다고 하는군."


대장군의 어이없는 대답에 바닥에 떨어진 서류들을 집어 올리던 제크로웰의 손길도 멈칫했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 거지? 전진 배치해 두었던 해군은 대체 어디에 정신을 팔고 있는 게야?"


라콘은 짜증스러운 듯 고개를 내저었다.


"클리어트가 하크스 따위에서 어물거리고 있으니 이런 얼토당토하지 않는 일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병사들을 이끌고 내려간 게 언젠데 그 얼간이는 아직껏 그깟 성 하나 함락 못 시킨단 말이냐. "


어지간히 화가 치밀어 오른 모양인지, 라콘은 막사 안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몇 차례 고함을 쳤다. 그런 외숙에게서 시선을 떼어내며 제크로웰은 묵묵히 주워든 문서를 정리해 탁자 한 끝에 올려 두었다.


작전 회의 때야 무슨 말을 해도 개의치 않은 라콘이지만, 지금처럼 역정을 낼 때는 대장군이 친아들보다도 더 총애한다는 제크로웰으로서도 별 도리가 없는 것이다. 그저 뒤로 물러나 총사령관의 분노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이럴 때 함부로 나대다가는 대장군 주변에 있는 무언가로 얻어맞기 십상이다. 실제로 그가 격분하고 있을 때 나서서 이런저런 변명 비슷한 것을 주워섬기다가 라콘이 집어 던진 술잔이나 잉크병 같은 것으로 맞아서 머리가 깨진 사람들도 여럿이었다.


"갈수록 가관이로군. 해안에 주류중인 해군의 머릿수가 얼만데 그 따위 세레즈 잔류병 몇 놈을 당하지 못해 고스란히 보급품을 날려버려?"


라콘은 거칠게 숨을 몰아 쉬며 상체를 등받이에 기댔다.


"각하의 말씀대로 부사령관이 하크스로 옮겨간 이후 해군의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공성 중인 클리어트 장군의 주의가 해군까지 미치길 바란 것 자체가 과한 기대였는지도 모르죠. 차라리 각하께서 해군을 본진 쪽으로 불러들이심이 어떠할까요. 그리하면 클리어트 장군도 부담이 줄어들 테고···"


제크로웰의 의견에 대해 대장군이 가타부타하기도 전에, 입구를 가로막은 펠트 천을 제치고 보초병 하나가 굳은 얼굴로 들어섰다.


"무슨 일이냐. "


그는 대장군의 격한 목소리에 움찔하는 듯 하더니,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크라이든 장군이 귀환했기에 보고 드립니다. "


깊게 잠긴 보초병의 발언에 제크로웰은 순간적으로 아연해지는 기분이었다. 크라이든 장군이 귀환했다고? 같이 야습을 감행하러 간 포테 장군은? 당연히 따라붙어야 할 이름이 생략되었다. 가슴 깊숙이 엄습해 오는 불안감에 자기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은 제크로웰의 귓가에 내던지는 듯한 대장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여라."


들어오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병사가 나간 입구를 통해 어두운 표정을 한 크라이든 장군이 곧바로 들어왔다. 여기저기 부서진 갑옷은 물론, 그의 축 늘어진 어깨만으로도 그간의 경과를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핏기란 핏기는 모조리 빠져 나간 것처럼 창백한 얼굴로 들어선 그는 변명 한 마디 없이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포테는 어디 있나. "


차가운 눈길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라콘이 무뚝뚝한 어조로 내쏘았다. 규탄 어린 대장군의 음성에 크라이든 장군의 고개가 한층 더 깊숙이 숙여진다. 바닥을 응시하고 있는 그에게서 마치 쥐어 짜내는 듯한 대답이 흘러나오던 순간, 제크로웰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전사했습니다. "


“허! 전사?! 내 평생 이런 수치는 처음이로군. ”


반문하는 그 목소리가 소름 끼치도록 차갑게 가라앉았다 느낀 것도 잠시, 무언가가 공기를 가르고 빠르게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제크로웰은 경악한 눈빛으로,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날아가 크라이든의 이마를 강타한 후 아래로 떨어지는 잉크병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기습 작전에서 지휘관이 전사하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이냐! "


크라이든은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낼 생각도 없이, 그저 고개를 한층 더 깊숙이 숙였다.


"수많은 병사들을 사지를 내몬 당장 죽어 마땅한 몸이 무슨 낯으로 변명을 아뢸 수 있겠습니까. 참형이라도 받을 각오가 되어 있으니 처벌해주십시오. "


전쟁이 끊기질 않는 상황에서야 으레 그런 법이지만, 코네세타의 대장군 크리스토퍼 라콘이 이끄는 부대의 군율 역시 엄하기로 유명했다. 병장기와 말들은 언제든 출전이 가능하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병사들과 장수들 사이의 군기도 엄정했다.


제크로웰은 불안한 눈빛으로 라콘과 크라이든을 번갈아 보았다. 일단 라콘의 입에서 판결이 떨어지면, 그 다음에는 어느 누구도 번복할 수 없다.


"패전에는 그만한 까닭이 있는 법, 당장··· "


"각하! 장군이 전장에 나와 싸우다 보면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간의 공훈을 감안하셔서라도···"


"자고로 승리에는 우연이 있다지만 패배에는 우연이 없다 했다. 군법이 엄정해야 군기가 살아나는 법. 네가 패전의 책임을 지휘관에게 묻는 군대의 불문율을 잊었더냐. "


대장군의 일갈이 막사 안에 울려 퍼진다. 대장군의 격노로부터 크라이든 장군을 보호하려는 듯, 그 앞을 가로막고 나선 제크로웰은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에게 무조건적인 관용을 베풀어 달라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코네세타 군의 일원으로서 국가에 충성하고, 실추된 명예를 스스로 회복할 수 있을 만한 기회를 내려 달라고 부탁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


완강한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는 대장군을 향해 제크로웰은 계속 호소했다.


"크라이든 장군은 제 부하이기도 합니다. 그의 잘못은 직속 상관인 제가 책임지겠으니, 부디 그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


"귀관이 책임을 지겠다? 어떤 식으로 말인가. "


반문하는 라콘의 음성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제가 그를 대신하여 세레즈 군을 밟아주고 오겠습니다. 그리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


라콘은 팔짱을 끼며, 조금 누그러진 음성으로 잡아채듯 물었다.


"아르카디 제크로웰, 그대 지금 한 말에 대해 책임을 다할 수 있다고 내게 자신하나? "


제크로웰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려 사령관의 굳은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회색 눈동자가 더할 나위 없이 냉담하게 빛나고 있다. 노여움을 억제하고 있는 눈빛, 이건 부하를 응시하는 상관의 시선이다. 제크로웰은 심호흡 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하지만 더할 수 없이 확고한 어조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각하. 지금 당장이라도 명령만 하시면, 부대를 이끌고 가서 이 설욕을 갚아주고 오겠습니다. "


"그 말은 기억해 두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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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2장 전장에 핀 꽃 7화 지원군의 본진 합류(12장 인명록) 19.05.23 415 10 9쪽
74 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19.05.22 614 9 8쪽
73 12장 전장에 핀 꽃 5화 전장의 꽃 19.05.21 435 10 7쪽
72 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19.05.20 536 12 10쪽
71 12장 전장에 핀 꽃 2화 불꽃 같은 여인 19.05.19 428 8 8쪽
70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19.05.18 454 8 8쪽
69 11장 분열의 조짐 7-8화 최종단안(11장 인명록) 19.05.17 443 9 12쪽
68 11장 분열의 조짐 6화 뮤켄의 충고 19.05.16 504 8 9쪽
67 11장 분열의 조짐 5화 패퇴 19.05.15 450 10 7쪽
66 11장 분열의 조짐 3-4화 양동작전 19.05.14 430 10 10쪽
65 1부 11장 분열의 조짐 1-2화 후방기지 괴멸 소식 19.05.13 511 9 11쪽
64 10장 진흙 속의 연꽃 7화 투항 제의 (10장 인명록) 19.05.09 465 8 13쪽
63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19.05.08 520 8 7쪽
62 10장 진흙 속의 연꽃 4화 적의 공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 19.05.07 466 8 8쪽
61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19.05.07 485 7 7쪽
60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19.05.07 480 8 8쪽
59 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19.05.07 526 6 7쪽
58 9장 전설의 시작 7화 조력요청(9장 인명록) 19.05.06 526 7 12쪽
57 9장 전설의 시작 5-6화 전후처리 19.05.06 570 8 12쪽
56 9장 전설의 시작 4화 최초의 승리 19.05.06 551 7 11쪽
55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19.05.05 518 9 9쪽
54 9장 전설의 시작 2화 기습 19.05.04 504 12 9쪽
53 9장 전설의 시작 1화 위장잠입 19.05.03 497 8 10쪽
52 8장 효시 7화 작전계획(8장 인명록) 19.05.02 558 11 12쪽
51 8장 효시 6화 용기,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 19.05.02 539 8 11쪽
50 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19.05.02 486 9 9쪽
49 8장 효시 3-4화 사령관과 참모장 19.05.01 509 11 13쪽
48 8장 효시 2화 전장의 밤 19.05.01 536 10 11쪽
47 8장 효시 1화 행군시작 19.04.30 560 12 11쪽
46 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19.04.30 569 8 11쪽
45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19.04.29 540 11 8쪽
44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19.04.29 559 11 7쪽
43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19.04.28 573 10 7쪽
42 7장 전환점 3화 하크스 지원군 19.04.28 649 11 9쪽
41 7장 전환점 2화 정치적 포석 19.04.27 609 12 10쪽
40 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19.04.27 580 11 8쪽
39 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19.04.26 587 11 8쪽
38 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19.04.26 632 13 9쪽
37 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19.04.25 574 9 7쪽
36 6장 개전 5화 선제공격 19.04.25 627 10 7쪽
35 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19.04.24 639 13 7쪽
34 6장 개전 3화 어머니와 아들 下 19.04.24 572 16 11쪽
33 6장 개전 2화 어머니와 아들 上 19.04.23 599 12 7쪽
32 1부 6장 개전 1화 진상규명요구 19.04.23 632 10 11쪽
31 5장 태풍의 눈 8화 안타미젤의 결심(5장 인명록) +2 19.04.22 698 15 12쪽
30 5장 태풍의 눈 6-7화 안타미젤 왕자 19.04.22 697 10 8쪽
29 5장 태풍의 눈 5화 계륵과도 같은 패 19.04.21 634 12 9쪽
28 5장 태풍의 눈 3-4화 충성서약 19.04.21 736 11 13쪽
27 5장 태풍의 눈 2화 사직서의 파장 19.04.20 745 14 11쪽
26 1부 5장 태풍의 눈 1화 사직원 19.04.19 745 15 7쪽
25 4장 부위정경 7화 생존전략(4장 인명록) 19.04.19 753 16 16쪽
24 4장 부위정경 6화 속고 속이는 싸움 19.04.18 765 19 10쪽
23 4장 부위정경 5화 기만 19.04.18 872 14 13쪽
22 4장 부위정경 4화 공주의 부름 19.04.17 823 19 10쪽
21 4장 부위정경 3화 거리의 아이 19.04.17 852 18 10쪽
20 4장 부위정경 2화 세레즈의 물밑 접촉 19.04.16 830 20 7쪽
19 1부 4장 부위정경 1화 코네세타의 공주 19.04.15 870 19 10쪽
18 3장 폭풍전야 6화 주전론을 위한 막후교섭(3장 인물소개) 19.04.14 909 21 12쪽
17 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2 19.04.13 1,014 21 7쪽
16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2 19.04.12 1,003 23 7쪽
15 3장 폭풍전야 2화 그윈 재상 19.04.11 1,049 23 8쪽
14 1부 3장 폭풍전야 1화 태자의 실종 19.04.10 1,194 21 11쪽
13 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4 19.04.10 1,201 33 8쪽
12 2장 애별리고 6화 고작 마음 하나 +2 19.04.09 1,254 21 9쪽
11 2장 애별리고 5화 이주명령 19.04.09 1,401 26 9쪽
10 2장 애별리고 4화 떨림과 설렘 +4 19.04.07 1,394 25 7쪽
9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2 19.04.05 1,472 24 7쪽
8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2 19.04.04 1,486 28 7쪽
7 1부 2장 애별리고 1화 마음의 향방 19.04.03 1,535 26 7쪽
6 1장 표류 6화 자각 +2 19.04.03 1,650 32 7쪽
5 1장 표류 5화 바다를 닮은 여인 +6 19.04.02 2,070 33 8쪽
4 1장 표류 4화 슈레디안의 고민 19.04.01 2,286 37 8쪽
3 1장 표류 3화 3년만의 손님 19.04.01 2,636 34 7쪽
2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19.04.01 3,542 46 7쪽
1 <제1부 펜데스칼 전쟁> 제1장 표류 1화 난파당한 청년 +4 19.04.01 6,792 6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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