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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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애별리고
7. 이별
아이네즈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안이 아직도 어둑어둑한 것으로 보아 이른 새벽인 듯하였다. 눈을 감고 누워있어도 도저히 이대로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아이네즈는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사위는 어둠에 휘감겨 있었다. 그녀는 주위가 눈에 익기를 기다렸다가 부엌으로 가서 초를 켠 다음 선반 아래서 밀가루를 꺼냈다. 반죽 그릇으로 옮긴 가루의 양은 평소보다 많았다. 가루를 물에 개어 치대던 아이네즈는 문득 손을 멈추었다. 잠결에 언뜻 들었던 슈레디안의 음성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떠나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후로 그녀는 제대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이네즈는 바로 귓가에 대고 속삭여 준 것처럼 쟁쟁한 그의 목소리를 몰아내고자 하려는 듯 고개를 가로젓고는 다시 반죽을 시작했다.
슈레디안은 어차피 떠날 사람이었다. 아직 기억은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그에게는 돌아가야 할 집이 있었고, 그를 기다리는 가족도 있었다. 언제까지나 이곳에 머무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실제로 슈레디안도 그간 그녀에게 끊임없이 떠날 것을 암시하지 않았던가. 굳이 지금이 아니라 할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벌어질 일이었다. 상황이 바뀌어 예정되어 있던 일이 조금 앞당겨졌을 따름이다. 그러니 전혀 예기치 못했다고 할 수도 없었다.
자신이 슈레디안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슈레디안의 감정도 자신의 마음과 엇비슷한 색이라는 것을 깨우쳤지만, 그래서 아이네즈는 차마 슈레디안을 붙들 수가 없었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을, 그것도 이곳에 남아있으면 위험해질 것을 뻔히 알면서 제 욕심대로 부여잡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곁에 있어 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한 채 그녀는 어제 그 앞에서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너울이 치는 마음을 다스리듯이 아이네즈는 끊임없이 당면한 이별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자신에게 되뇌었다.
다친 슈레디안을 데려왔을 때 그러하였듯 그가 떠날 때도 아무것도 바라지 말자고 아이네즈는 마음을 다스렸다. 세상에 존재하는 하고많은 인연 가운데 자신으로부터 뻗어 나간 단 한 가닥의 실이 적절한 시기에 그에 닿아 생명이 위태로웠던 슈레디안을 구할 수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아이네즈는 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하기로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먼 길을 떠날 사람인데 아침밥까지 굶겨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아이네즈의 능력으로 해결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네즈는 부지런히 움직여 그에게 싸줄 빵을 준비하는 한편으로 야채를 다듬어 수프를 끓였다. 소소한 몇 가지 음식이 완성되고 빵도 딱 먹음직스럽게 부풀었을 때였다. 플로베르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일찍 일어나셨네요, 아버지.”
아이네즈는 평소와 하등 다르지 않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부친이 바닥에 가만히 내려놓은 크지 않은 자루를 본 아이네즈는 대수롭지 않은 태도로 운을 떼었다.
“오늘 어디 가세요?”
“나루터에 들렀다가 장에 들러 이사에 필요한 물건을 몇 가지 사서 오려 한다.”
“나루터라면, 아, 슈레디안을 배웅해 주시려고요?”
아이네즈는 아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차분하고 꼼꼼한 손길로 식탁을 닦았다. 딸의 심사를 헤아린 플로베르는 긍정도 부정도 하기 어려워 그저 신음 같은 소리를 흘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락으로 통하는 계단 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슈레디안도 내려왔다. 평소보다 이른 시각이었는데도 자그마한 행장까지 손에 든 깔끔한 차림새였다. 아이네즈는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그를 맞이하였다.
“슈레디안, 얼른 씻고 이리 와요. 식사 준비가 다 끝나서 마침 깨우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잘 되었네요.”
“아······.”
아이네즈와 부딪치지 않고 떠날 심사였던 모양인지 슈레디안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가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것도 모두 자신을 배려한 까닭이라는 점을 잘 아는 아이네즈는 슈레디안이 인사도 없이 떠나려 했어도 서운해하지 않았다.
“얼른요. 먼 길을 가려면 배가 든든해야죠.”
재촉하는 아이네즈의 서슬에 슈레디안은 행장을 뺏긴 채 엉거주춤 우물가로 내몰렸다.
본래 인연은 처음보다 끝이 더 중요한 법이었다. 씻고 와서도 슈레디안은 식탁 앞에 굳은 듯 앉아 있기만 했다. 아이네즈는 정성껏 차린 식사를 앞에서 멀뚱히 있는 두 남자를 차례로 돌아봤다.
“어서 드세요, 아버지. 그리고 슈레디안도요.”
마지못해 수저를 든 플로베르가 흠흠 헛기침을 하고 수프를 떴다. 어색한 분위기였지만 억지로 밝은 척을 하는 것도 여의치 않아서 아이네즈는 조용히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아직 훈기를 품은 빵을 깨끗한 종이로 감싸고 보로 다시 싸서 행장을 챙기는 슈레디안에게 내밀었다.
“가다가 출출해지면 드세요. 먼 길을 가다 보면 딱히 요기하기가 마땅치 않을 수도 있으리란 생각에 아침에 여분으로 더 만들었어요.”
“어떻게 이런 것까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이런 것들뿐이지만, 슈레디안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슈레디안의 눈길이 아래를 향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 아니에요. 그동안 여러모로 정말 고마웠습니다.”
무어라 더 말을 하려 하다가, 그는 생각을 바꾼 듯 얼굴을 들고 아이네즈를 보며 미소지었다. 슈레디안은 이제 더는 저에게 연락하지 않을 터였다. 그의 표정에서 그것을 예감한 아이네즈는 입술을 끌어올려 슈레디안을 보고 마주 웃었다. 이것이 마지막이라면 더더욱 웃는 낯으로 보내주고 싶었다.
“어디서고 건강하고요.”
“아이네즈도요. 건강하게 잘 지내요.”
아이네즈는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슈레디안과 눈을 마주한 채 말로는 다하지 못한 인사를 건넨 그녀는 부친에게 돌아섰다.
“그럼 잘 다녀오세요, 아버지.”
“그래, 다녀오마.”
슈레디안과 부친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문가에 서 있던 아이네즈는 한참 후에야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섰다. 모두가 떠나고 난 집에는 무거운 정적만이 감돌았다. 긴장이 풀린 탓에 다리를 휘청하며 문가에 등을 기대고 선 아이네즈는 눈을 감았다.
“안녕, 슈레디안. 안녕······.”
얼굴을 마주한 채로는 차마 할 수 없었던 작별 인사를 건넨 그녀는 그 자리에 스르륵 주저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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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표류 및 2장 애별리고>의 인물
*아체프렌 듀피겔드 벤 세레스티아 (슈레디안)*
16세 /세레즈의 왕위계승자로 적대국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기억상실을 연기하고 있다. 적국에서는 아이네즈가 붙여준 이름인 슈레디안 크론케이터로 살고 있다. 외교 사절의 임무를 다하고 귀환 중 난파되어 적대국 코네세타의 남부영지 케타로스에 표류,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돌보아준 아이네즈에게 연심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아이네즈 티아르*
코네세타 남부 케타로스 산하 뮤즈 마을에 사는 어부의 딸. 18세
모친은 밀로타의 전 영주의 딸이며 부친은 한때 밀로타의 근위대 장교였다.
사고로 다쳐서 표류한 슈레디안을 헌신적으로 돌보다가 마음을 준 상태이다.
*플로베르 티아르*
전 밀로타 영지의 근위대 장교였으나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신변의 위협을 받게 된 영주의 딸 엘리자베스 공녀를 데리고 도망쳐 나와 신분을 감추고 결혼, 케타로스에 정착하여 어부가 되었다. 우연한 기회에 난파된 아체프렌을 구하였다.
*다나*
아이네즈와 친한 이웃 마을 아주머니
- 작가의말
1부 2장 끝
조회수가 조금씩이지만 꾸준히 올라가고 있어서 힘이 납니다. 선호 눌러주신 분들, 꾸준히 봐주시는 분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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