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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연

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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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490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4.29 08:45
조회
557
추천
11
글자
7쪽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DUMMY

5. 보이지 않는 벽





“하크스 지원군 사령관이십니까?”


집무실 밖 복도에 팔짱을 낀 채 기대고 서서 대리석 바닥에 시선을 주고 있던 한 청년이, 막 문을 열고 나오는 미드프레드를 보고 한 걸음 다가서며 질문을 던졌다. 확고하고 절도 있는 어조나 흔들림 없는 태도로 미루어 보건대 상대는 이미 자신을 알고 있는 듯 했으나, 미드프레드로서는 눈 앞에 서 있는 청년에 대해 아무런 짐작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다만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여 상대의 물음에 대한 답을 대신하고는 다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그는 오른 손을 가슴께로 들어올리며 미드프레드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지원군 참모부 소속 라펠 라 케니하크입니다.”


“순서가 조금 뒤바뀌었지만 정식으로 인사하지요. 이번에 사령관직을 맡게 된 미드프레드 그론레이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


케니하크는 석고상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되쏘듯 빠르게 답했다.


“각하를 사령관실로 안내하라는 재상 각하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그리고 그는 상대의 대답 따위는 기다리지도 않고 곧장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미드프레드도 그를 따라 끝없이 이어진 복도를 따라 걸었다. 고요한 정적을 깨는 그들의 발걸음 소리만이 복도를 타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


미드프레드는 자신보다 한 뼘 정도는 더 커 보이는 청년의 뒤통수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생각에 잠겼다. 여왕이건 재상이건 간에 자신에게 일단 군대를 맡기고 난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어떤 배려도 해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미 사령관실이나 참모부까지 모두 배치되어 있는 상황에 자신에게는 이제야 언질이 내려왔다는 것이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 아닌가. 그는 이제부터 자신이 이끌어야 할 군대에 대해 아무 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하다못해 케니하크가 안내해 주지 않는 이상은 자기 집무실조차 찾아갈 수 없는 처지다. 입술 사이를 비집고 쓴웃음이 흘러 나왔다.


끝없이 이어진 복도를 걷고 있는 동안 계속해서 자신이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홀의 모퉁이에 위치한 새하얀 문 앞에서 앞서가던 청년이 멈춰섰다.


“여깁니다. ”


케니하크는 뒤따라오던 미드프레드를 돌아보며 잘라내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들어가시지요. ”


집무실 문을 열어주며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선다. 열려진 문 너머로 그리 크지 않은 방과 가구들, 책상과 책장 그리고 자그마한 탁자와 그 둘레에 놓여 있는 몇 개의 의자들이 한 눈에 들어왔다.


미드프레드는 케니하크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차피 이제는 물러설 수 없게 된 일이다.


집무실의 분위기는 처음으로 사람을 맞게 된 곳이라는 것을 표시하듯 묘하게 싸늘하고 휑뎅그렁했다. 특별히 이를 드러 낸다기보다 그저 차갑고 묵묵하게 응시하는 느낌이랄까. 그것은 아까 재상의 집무실에서 느꼈던 묘하게 내리누르는 위압감과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는 책상 쪽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저 짓눌리고 있어서 될 일이 아니다. 절망스러운 현실이라 해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어떻게든 다음 일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아랫입술을 깨문 채 재상이 건네준 하크스 지원군의 지휘 체계도와 군사 배치도를 뚫어져라 보고 있던 미드프레드의 머릿속에 문득 재상의 한 마디가 스쳐갔다. ‘자세한 이야기는 참모장에게 듣게’ 그는 고개를 들어올려 아직 자신 앞에 서있는 케니하크에게 물었다.


“서류에는 참모장이 뮤켄 장군으로 되어있는데, 그는 아직 부임하지 않았습니까? ”


예상하고 있던 질문인 듯 케니하크의 입에서는 망설이는 기색 없이 곧바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뮤켄 장군께서는 수도 방위 본부의 인수인계 건으로 부임이 조금 늦어진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


미드프레드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창가로 시선을 던졌다. 역시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시작하려고만 하면 항상 거대한 벽이 자신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듯 하다. 시종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도, 군대 지원서를 제출했을 때도, 지휘관으로 임명된 지금도 늘 그의 앞에는 벽이 서 있었고,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는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어차피 하크스 지원군은 버릴 목적으로 만들어진 군대다. 이미 결정된 버림돌 위에 보기 싫은 나까지 한꺼번에 몰아 치워버리고 싶은 거겠지. 하지만 내 밑의 군사들까지 그렇게 받아들여 줄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나 때문에, 내가 지휘관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사지로 떠밀린다고 생각하겠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이제 어찌해야 할까.’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케니하크를 바라보았다.


“병사들의 훈련 상황을 보고 싶은데, 나를 하크스 지원군의 연병장으로 안내해 줄 수 있겠습니까? ”


“그렇게 하십시오. ”


참모관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




미드프레드가 하크스 지원군의 연병장 근처에 임시 막사를 세우고 그곳에서 생활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일주일가량 지나가고 있었다. 재상에게서 출전령을 받은 직후 지원군 소속 수석 참모인 케니하크의 안내를 받아 연병장을 돌아보다가, 사령관실과 일반 사병들이 이리 떨어져 있어서야 군을 지휘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게 없다고 판단하여 그 자리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지금이라고 하여 크게 나아진 상황이라고 할 수도 없지만, 처음 미드프레드가 외성 안에 버젓이 사령관실을 두고서도 굳이 연병장에 막사를 세우는 부산을 떨어가며 집무실을 옮기기를 고집했을 때 병사들은 곱지 않은 눈길로 쳐다보았었다.


비록 입 밖에 내어 수군거리지는 않았지만 케니하크를 비롯한 참모진 역시도 그 지시에 딱히 협력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반발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미드프레드로서는 지원군 전체가 ‘먼지가 풀풀 일어나는 연병장에서 자기가 버텨봐야 얼마나 버티겠느냐’ 는 식의 삐딱한 시선으로 자신을 주시하는 듯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미드프레드는 병사들과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런 그의 한결같은 태도에 병사들도 조금은 누그러지는 듯했다. 시찰이라는 명목하에 그가 연병장을 돌아다니는 것에 노골적인 반감을 표출하곤 하던 병사들도, 이제는 그가 지나칠 때마다 경례를 붙이는 최소한의 예의는 차리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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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2장 전장에 핀 꽃 7화 지원군의 본진 합류(12장 인명록) 19.05.23 414 10 9쪽
74 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19.05.22 613 9 8쪽
73 12장 전장에 핀 꽃 5화 전장의 꽃 19.05.21 434 10 7쪽
72 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19.05.20 536 12 10쪽
71 12장 전장에 핀 꽃 2화 불꽃 같은 여인 19.05.19 425 8 8쪽
70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19.05.18 452 8 8쪽
69 11장 분열의 조짐 7-8화 최종단안(11장 인명록) 19.05.17 440 9 12쪽
68 11장 분열의 조짐 6화 뮤켄의 충고 19.05.16 503 8 9쪽
67 11장 분열의 조짐 5화 패퇴 19.05.15 450 10 7쪽
66 11장 분열의 조짐 3-4화 양동작전 19.05.14 428 10 10쪽
65 1부 11장 분열의 조짐 1-2화 후방기지 괴멸 소식 19.05.13 510 9 11쪽
64 10장 진흙 속의 연꽃 7화 투항 제의 (10장 인명록) 19.05.09 464 8 13쪽
63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19.05.08 518 8 7쪽
62 10장 진흙 속의 연꽃 4화 적의 공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 19.05.07 464 8 8쪽
61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19.05.07 482 7 7쪽
60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19.05.07 479 8 8쪽
59 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19.05.07 524 6 7쪽
58 9장 전설의 시작 7화 조력요청(9장 인명록) 19.05.06 523 7 12쪽
57 9장 전설의 시작 5-6화 전후처리 19.05.06 568 8 12쪽
56 9장 전설의 시작 4화 최초의 승리 19.05.06 550 7 11쪽
55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19.05.05 516 9 9쪽
54 9장 전설의 시작 2화 기습 19.05.04 504 12 9쪽
53 9장 전설의 시작 1화 위장잠입 19.05.03 496 8 10쪽
52 8장 효시 7화 작전계획(8장 인명록) 19.05.02 556 11 12쪽
51 8장 효시 6화 용기,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 19.05.02 539 8 11쪽
50 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19.05.02 485 9 9쪽
49 8장 효시 3-4화 사령관과 참모장 19.05.01 508 11 13쪽
48 8장 효시 2화 전장의 밤 19.05.01 533 10 11쪽
47 8장 효시 1화 행군시작 19.04.30 560 12 11쪽
46 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19.04.30 568 8 11쪽
45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19.04.29 538 11 8쪽
»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19.04.29 558 11 7쪽
43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19.04.28 571 10 7쪽
42 7장 전환점 3화 하크스 지원군 19.04.28 647 11 9쪽
41 7장 전환점 2화 정치적 포석 19.04.27 609 12 10쪽
40 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19.04.27 579 11 8쪽
39 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19.04.26 585 11 8쪽
38 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19.04.26 631 13 9쪽
37 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19.04.25 572 9 7쪽
36 6장 개전 5화 선제공격 19.04.25 625 10 7쪽
35 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19.04.24 638 13 7쪽
34 6장 개전 3화 어머니와 아들 下 19.04.24 572 16 11쪽
33 6장 개전 2화 어머니와 아들 上 19.04.23 597 12 7쪽
32 1부 6장 개전 1화 진상규명요구 19.04.23 630 10 11쪽
31 5장 태풍의 눈 8화 안타미젤의 결심(5장 인명록) +2 19.04.22 695 15 12쪽
30 5장 태풍의 눈 6-7화 안타미젤 왕자 19.04.22 697 10 8쪽
29 5장 태풍의 눈 5화 계륵과도 같은 패 19.04.21 633 12 9쪽
28 5장 태풍의 눈 3-4화 충성서약 19.04.21 734 11 13쪽
27 5장 태풍의 눈 2화 사직서의 파장 19.04.20 743 14 11쪽
26 1부 5장 태풍의 눈 1화 사직원 19.04.19 743 15 7쪽
25 4장 부위정경 7화 생존전략(4장 인명록) 19.04.19 752 16 16쪽
24 4장 부위정경 6화 속고 속이는 싸움 19.04.18 763 19 10쪽
23 4장 부위정경 5화 기만 19.04.18 871 14 13쪽
22 4장 부위정경 4화 공주의 부름 19.04.17 821 19 10쪽
21 4장 부위정경 3화 거리의 아이 19.04.17 852 18 10쪽
20 4장 부위정경 2화 세레즈의 물밑 접촉 19.04.16 829 20 7쪽
19 1부 4장 부위정경 1화 코네세타의 공주 19.04.15 868 19 10쪽
18 3장 폭풍전야 6화 주전론을 위한 막후교섭(3장 인물소개) 19.04.14 906 21 12쪽
17 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2 19.04.13 1,013 21 7쪽
16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2 19.04.12 1,002 23 7쪽
15 3장 폭풍전야 2화 그윈 재상 19.04.11 1,048 23 8쪽
14 1부 3장 폭풍전야 1화 태자의 실종 19.04.10 1,192 21 11쪽
13 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4 19.04.10 1,199 33 8쪽
12 2장 애별리고 6화 고작 마음 하나 +2 19.04.09 1,252 21 9쪽
11 2장 애별리고 5화 이주명령 19.04.09 1,399 26 9쪽
10 2장 애별리고 4화 떨림과 설렘 +4 19.04.07 1,392 25 7쪽
9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2 19.04.05 1,470 24 7쪽
8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2 19.04.04 1,484 28 7쪽
7 1부 2장 애별리고 1화 마음의 향방 19.04.03 1,534 26 7쪽
6 1장 표류 6화 자각 +2 19.04.03 1,647 32 7쪽
5 1장 표류 5화 바다를 닮은 여인 +6 19.04.02 2,069 33 8쪽
4 1장 표류 4화 슈레디안의 고민 19.04.01 2,284 37 8쪽
3 1장 표류 3화 3년만의 손님 19.04.01 2,634 34 7쪽
2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19.04.01 3,541 46 7쪽
1 <제1부 펜데스칼 전쟁> 제1장 표류 1화 난파당한 청년 +4 19.04.01 6,791 6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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