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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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진흙 속의 연꽃
세레즈력 387년 2월,
미드프레드 그론레이와 하크스 지원군
카르테 섬 공략에 연이어 성공하여
코네세타의 보급 루트를 끊고
패색이 짙었던 전쟁에 활로를 열어 주다
- 제국력 연대기 섭정공 세느비엔느 열전 발췌
1. 불만
첸트로빌 성의 수비대장인 레젤니크 라 슈발츠의 얼굴은 여느 때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가 못마땅한 기색으로 지키고 서서 출항 준비에 여념이 없는 부하들을 노려보기 시작한 지도 벌써 서너 시간은 족히 넘은 듯했다.
처음에는 인상을 있는 대로 쓰고 있는 사령관의 험악한 기세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불편한 표정으로 주춤거리던 병사들도 이제는 그러한 그의 존재에 익숙해진 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정박된 십여 척의 배에 여러 가지 물품들을 부지런히 실어 나르고 있었다.
"저어, 장군님···. "
평상시 같지 않은 표정의 사령관의 얼굴을 보고 다가온 분대장 하나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슈발츠는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을 거칠게 풀어 내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노려본다고 생각했나 보다. 눈이 마주치기가 무섭게 시선을 피하는 부하를 보며 그는 다시금 격하게 치솟는 불길을 애써 다독였다.
'이래선 안 된다. 화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성의 사령관으로서의 임무마저 도외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
슈발츠는 두 손을 으스러져 움켜쥐었다. 그리고 최대한 감정을 죽인 채 질문했다.
“···화약은 다 실었는가?”
으르렁대는 듯한 목소리였지만, 그래도 사령관다운 반응에 분대장은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답했다.
"지금 마지막 상자를 옮기고 있는 중입니다. "
슈발츠의 미간이 한층 더 찌푸려졌다.
"습기가 안 차도록 단단히 밀봉했겠지? "
차라리 큰 소리로 호통치는 편이 낫겠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나지막하게 이어지는 슈발츠의 음성은 듣는 사람을 안절부절못하게 하는 무언가를 자아내고 있었다.
"예. 여러 번 확인했습니다만, 승선해서 직접 검시하시겠습니까? "
"됐다. "
상대방의 조심스러운 제안을 일고의 여지도 없이 잘라버린 슈발츠는 다시금 날카로운 눈빛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내주는 것도 못마땅한 터에 그렇게까지 오지랖을 발휘할 마음은 없었다.
"도화선은? "
"이미 챙겨 넣었습니다. "
"그 외 다른 사항도 이상 없겠지? "
슈발츠는 상대가 하릴없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는 것을 보며 낮게 혀를 찼다.
"당장 승선해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
"알았다. "
내뱉듯 한 마디 던진 후, 슈발츠는 다시금 험상궂게 인상을 쓰면서 휙 돌아섰다.
'어쨌든 준비가 끝났다 하니 상황 보고를 해야겠지. ;
그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영주의 집무실 쪽으로 떼어놓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연신 혀를 찼다.
‘정말로 이렇게, 다 주어 보내도 되는 것인가.’
이름뿐인 하급 귀족가에서 태어나 군대에 들어온 지도 벌써 11년이 지났다. 어려서부터 발육이 좋은 신체조건과 뛰어난 무술 솜씨 덕에 그는 어렵지 않게 그는 첸트로빌 성의 근위대에 입대할 수 있었고, 근위대의 일원으로서 영주인 로엘 공을 모시기 시작한 지도 어느덧 8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동안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빠른 승진을 거듭해 겨우 이십대 중반의 나이로 이 거성의 수비 대장이 되었다.
하지만 영주를 주공으로 받들기 시작한 이후 그의 행동에 이렇듯 화가 치미는 것은 처음이었다. 자신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존경하는 주공의 뜻이거니, 하고 받아들이려고 했지만, 그조차도 쉽지 않았다.
슈발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며칠 전 미드프레드가 영주를 찾아와 하크스를 떠나려 하니 허락해 달라고 했을 때도 지금처럼 아연한 기분이었다.
‘지원군 사령관이 지원해야 할 영지를 떠나겠다고?’
하다못해 이후의 행로에 대해서도 밝히지 않은 채로 말이다. 기가 막히는 발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로엘 공은 잠시 그를 쳐다보았을 뿐, 한 마디도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 날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이후 터져 나온 미드프레드의 발언은 슈발츠를 경악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배를 빌려달라, 가능하면 화약도 같이. 그는 마치 맡겨두었던 자기 물건을 되찾아 가는 사람처럼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태연히 그런 소리를 입에 담았었다.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
슈발츠는 울컥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나직하게 욕설을 되씹었다. 겨우 삼천이라는 병력을 이끌고 온 주제에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그따위 망발을 늘어놓는단 말인가.
미드프레드는, 그리고 그의 군대는 겨우 보름 전 입성 때 단 한 번 코네세타 군과 싸웠을 뿐, 그 이후에는 함께 농성한다는 개념조차 서 있지 않은 듯 도와줄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전투 이후 성안에 들어온 지원군 소속 부상병들을 그 군의 참모장에게서 인계받아 수습한 것도 자신을 비롯한 첸트로빌의 군사들이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손님처럼 쉬던 그가 이제와서 이만 떠날 테니 배와 화약을 내어 달라 하니 슈발츠로서는 노여울 만도 했다.
부족한 병력으로 농성을 하는 처지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항구와 배들을 지켜왔던 것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런 놈에게 고스란히 건네주기 위함이 아니었다.
화약도 마찬가지다. 기술 원조에 배타적인 커런스와 사사건건 적대적으로 나오는 코네세타에서 화약 제조 기술을 들여오는데 얼마나 고생했던가. 내줄 수 없다. 아니 내줘서는 안 된다. 그 검은 가루를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그는 세차게 머리를 내저었다. 사실 그 무엇보다도 그를 불쾌하게 만드는 것은, 미드프레드의 건방진 요구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것을 선선히 받아들인 영주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다.
'도대체 왜···?'
어느덧 영주의 집무실 앞에 멈춰선 슈발츠는 그 문을 올려다보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몇 번을 생각해도 모르겠다. 설령 노여움을 사게 되는 일이 있더라도 이번에야말로 납득할 수 있을 만한 대답을 듣겠다고 다짐하며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문을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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