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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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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505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4.04 14:51
조회
1,484
추천
28
글자
7쪽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DUMMY

제1부 2장 애별리고愛別離苦








2. 현기증





슈레디안은 자신을 서툴게 만드는 유일한 여인에게 눈길이 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평소의 그였다면 결코 돌아보지 아니하였을 신분의 여인에게, 더군다나 저를 모자란 아이 취급하듯 사사건건 가르치려 드는 상대에게 이러한 감정이라니.


기실은 그 자신도 자신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슈레디안은 난생처음으로 연모를 겪고 있었고, 그 자체만으로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갓 피어난 어린 연모의 싹을 똑바로 자각하고, 그 감정을 소중히 여기며 자신외의 존재를 스스로보다 아껴줄 수 있을 만큼 성숙한 면모를 보이기에 슈레디안은 아직 많이 어렸고 미숙했다. 그렇기에 그가 자신 안에서 폭풍우치는 감정 변화를 순순히 인정할 수 없어하는 것도 어쩌면 극히 당연했다.


아이네즈를 처음부터 남들과 다르다 구분 짓고,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기만 해도 두근거리고, 자신을 향한 그녀의 미소가 사랑스럽다 느끼며, 아이네즈에게 닿고 싶다고 여기면서도 슈레디안은 완고하게 제 안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이 연심이 아니라고 애써 부정했다.


이 궁벽한 시골에 필요 이상으로 길게 머물렀는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 앞에서 기억을 잃은 청년 슈레디안을 연기하는 동안 스스로 만들어낸 인격에 지나치게 동화되어 버린 것일 수도 있었다. 혹은 표류하면서 머리를 다친 까닭에 지금 절반쯤 미쳐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조차도 아니라 한다면, 흡사 열에 들뜬 것 같은 이 기분을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이네즈, 그러니까, 내 말은······.”


한참 후 슈레디안은 가슴 속 깊이 감추어온 치부를 실토하는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무심코 던진 눈빛 하나, 우연히 보내는 것 같은 미소 하나, 부지중에 흘렸으리라 짐작할 만한 말 한마디조차 철저하게 계산하여 움직였던 냉정하고 이성적인 아체프렌이라면 결코 하지 아니할 말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러나 그 순간 슈레디안은 도무지 이 기분을 전하지 않는다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문제라는 겁니다.”


가만히 슈레디안의 말을 듣고 있던 아이네즈는 고개를 갸웃하더니 손에 들고 있던 양파와 칼을 식탁 위에 내려놓고, 허리를 굽혀 식탁 아래로 굴러떨어진 감자를 집어 들었다.


슈레디안의 말뜻을 헤아리려는 듯 아이네즈의 눈길이 슈레디안을 향했다가 다시 식탁으로 옮겨왔다. 잠깐의 시간차를 두고 늘 그러하듯 약간 느릿하지만 차분한 울림의 목소리가 그녀의 입술 새로 흘러 나왔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난 잘 모르겠네요.”


언제나 자신보다 한 수 앞서 보고, 어른스럽게 매사를 꾸려온 아이네즈가 정녕 자신의 말뜻을 파악하지 못한 것일까. 원래 이런 식의, 감정이 얽힌 문제에는 사내보다 여인 쪽이 더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던가.


아이네즈가 다 알아듣고도 저를 놀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진정으로 자신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그는 혼란스러웠다.


슈레디안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입을 열었다. 두서없이 말을 이어가면서도 그는 이런 식으로 상대에게 휩쓸리는 것은 저답지 않은 짓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이네즈도 알다시피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예를 들어 내가 호송 중이던 죄인이라던가, 배에서 탈출한 노예일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아이네즈는 저도 모르게 표류 당시 슈레디안이 입고 있던 옷을 떠올리고 말았다. 또 존대를 사용하고 있어도 묘하게 고압적인 그의 말투와 사소하기 짝이 없는 가사조차 스스로 해본 적 없는 양 매사에 어색해하던 모습을 상기했다.


지푸라기가 묻어 약간 더러워졌으나 여전히 빛을 내는 듯한 금발과 티 없이 맑고 깨끗한 피부, 상처가 남긴 했으나 여인인 저의 손보다도 훨씬 더 곱고 우아한 손가락으로 시선을 미끄러뜨리며 약간은 한심스러운 기분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 해도 그렇지 한 번 보고 들은 것은 결코 잊는 법이 없을 만큼 영민한 슈레디안이 어떻게 저리 터무니없는 생각을 할 수 있는지 그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당신이 높은 신분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데요.”


“정말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더, 더 문제라고요!”


슈레디안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이네즈는 자리에서 거칠게 일어나며 거의 쏘아붙이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어가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말하자면 나는 남자고 당신은 여자라는 게 문제인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거의 없이 온종일 둘만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당신은 이게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건 좋지 않아요. 위험하다고요. 더구나 당신은 내가 어디서 온 놈인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인데.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기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이 상황을 끝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대단한 자만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네즈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했지만 뭔가 슈레디안의 흥분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냉랭함이 어려있었다. 슈레디안은 그 차가움에 밀려 자신도 모르게 어조를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내 말을 오해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나는 내가 잘나서 당신이 나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놓여 있는 객관적인 상황 자체가 문제라는 겁니다.”


아이네즈는 빨려 들어갈 듯 새파랗게 빛나는 슈레디안의 눈동자를 마주 보며 어쩌면 그의 걱정이 기우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나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아찔하게 밀려오는 현기증과도 같았다.


잠시 후에 이어진 그녀의 말은 기실 슈레디안을 향한 것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을 향한 자제의 목소리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당신 이야기는 우리가 일부러 피하지 않는 한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서 서로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거잖아요. 하지만 그걸 알고 있다면 그걸로 된 거 아닌가요? 그 점을 아는 슈레디안이 자기감정에 휩쓸리는 어리석은 일을 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리고 그녀는 식탁 위에 소복하게 쌓여있는 채소를 그릇에 옮겨 담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것들을 씻어올 테니까 식탁 위 좀 치워주시겠어요? 사다리 수리는 이미 끝난 듯하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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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2 따스한봄날
    작성일
    20.01.04 17:32
    No. 1

    상황 자체가 재미있습니다. 어느정도 아이네즈는 슈레디안의 신분정도를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아이네즈 가족도 어떤 말 못할 사연(신분이 평민이상?)이 있는 건지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6 창작연
    작성일
    20.01.04 18:41
    No. 2

    정말 예리하셔서 계속 뜨끔하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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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2장 전장에 핀 꽃 7화 지원군의 본진 합류(12장 인명록) 19.05.23 414 10 9쪽
74 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19.05.22 613 9 8쪽
73 12장 전장에 핀 꽃 5화 전장의 꽃 19.05.21 434 10 7쪽
72 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19.05.20 536 12 10쪽
71 12장 전장에 핀 꽃 2화 불꽃 같은 여인 19.05.19 426 8 8쪽
70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19.05.18 452 8 8쪽
69 11장 분열의 조짐 7-8화 최종단안(11장 인명록) 19.05.17 440 9 12쪽
68 11장 분열의 조짐 6화 뮤켄의 충고 19.05.16 504 8 9쪽
67 11장 분열의 조짐 5화 패퇴 19.05.15 450 10 7쪽
66 11장 분열의 조짐 3-4화 양동작전 19.05.14 428 10 10쪽
65 1부 11장 분열의 조짐 1-2화 후방기지 괴멸 소식 19.05.13 511 9 11쪽
64 10장 진흙 속의 연꽃 7화 투항 제의 (10장 인명록) 19.05.09 465 8 13쪽
63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19.05.08 518 8 7쪽
62 10장 진흙 속의 연꽃 4화 적의 공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 19.05.07 464 8 8쪽
61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19.05.07 483 7 7쪽
60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19.05.07 480 8 8쪽
59 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19.05.07 524 6 7쪽
58 9장 전설의 시작 7화 조력요청(9장 인명록) 19.05.06 523 7 12쪽
57 9장 전설의 시작 5-6화 전후처리 19.05.06 568 8 12쪽
56 9장 전설의 시작 4화 최초의 승리 19.05.06 550 7 11쪽
55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19.05.05 516 9 9쪽
54 9장 전설의 시작 2화 기습 19.05.04 504 12 9쪽
53 9장 전설의 시작 1화 위장잠입 19.05.03 496 8 10쪽
52 8장 효시 7화 작전계획(8장 인명록) 19.05.02 556 11 12쪽
51 8장 효시 6화 용기,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 19.05.02 539 8 11쪽
50 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19.05.02 486 9 9쪽
49 8장 효시 3-4화 사령관과 참모장 19.05.01 508 11 13쪽
48 8장 효시 2화 전장의 밤 19.05.01 533 10 11쪽
47 8장 효시 1화 행군시작 19.04.30 560 12 11쪽
46 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19.04.30 569 8 11쪽
45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19.04.29 538 11 8쪽
44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19.04.29 558 11 7쪽
43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19.04.28 571 10 7쪽
42 7장 전환점 3화 하크스 지원군 19.04.28 647 11 9쪽
41 7장 전환점 2화 정치적 포석 19.04.27 609 12 10쪽
40 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19.04.27 579 11 8쪽
39 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19.04.26 585 11 8쪽
38 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19.04.26 631 13 9쪽
37 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19.04.25 572 9 7쪽
36 6장 개전 5화 선제공격 19.04.25 625 10 7쪽
35 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19.04.24 638 13 7쪽
34 6장 개전 3화 어머니와 아들 下 19.04.24 572 16 11쪽
33 6장 개전 2화 어머니와 아들 上 19.04.23 597 12 7쪽
32 1부 6장 개전 1화 진상규명요구 19.04.23 631 10 11쪽
31 5장 태풍의 눈 8화 안타미젤의 결심(5장 인명록) +2 19.04.22 696 15 12쪽
30 5장 태풍의 눈 6-7화 안타미젤 왕자 19.04.22 697 10 8쪽
29 5장 태풍의 눈 5화 계륵과도 같은 패 19.04.21 633 12 9쪽
28 5장 태풍의 눈 3-4화 충성서약 19.04.21 734 11 13쪽
27 5장 태풍의 눈 2화 사직서의 파장 19.04.20 743 14 11쪽
26 1부 5장 태풍의 눈 1화 사직원 19.04.19 743 15 7쪽
25 4장 부위정경 7화 생존전략(4장 인명록) 19.04.19 752 16 16쪽
24 4장 부위정경 6화 속고 속이는 싸움 19.04.18 763 19 10쪽
23 4장 부위정경 5화 기만 19.04.18 871 14 13쪽
22 4장 부위정경 4화 공주의 부름 19.04.17 821 19 10쪽
21 4장 부위정경 3화 거리의 아이 19.04.17 852 18 10쪽
20 4장 부위정경 2화 세레즈의 물밑 접촉 19.04.16 829 20 7쪽
19 1부 4장 부위정경 1화 코네세타의 공주 19.04.15 868 19 10쪽
18 3장 폭풍전야 6화 주전론을 위한 막후교섭(3장 인물소개) 19.04.14 906 21 12쪽
17 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2 19.04.13 1,013 21 7쪽
16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2 19.04.12 1,002 23 7쪽
15 3장 폭풍전야 2화 그윈 재상 19.04.11 1,049 23 8쪽
14 1부 3장 폭풍전야 1화 태자의 실종 19.04.10 1,192 21 11쪽
13 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4 19.04.10 1,199 33 8쪽
12 2장 애별리고 6화 고작 마음 하나 +2 19.04.09 1,252 21 9쪽
11 2장 애별리고 5화 이주명령 19.04.09 1,399 26 9쪽
10 2장 애별리고 4화 떨림과 설렘 +4 19.04.07 1,392 25 7쪽
9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2 19.04.05 1,470 24 7쪽
»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2 19.04.04 1,485 28 7쪽
7 1부 2장 애별리고 1화 마음의 향방 19.04.03 1,535 26 7쪽
6 1장 표류 6화 자각 +2 19.04.03 1,647 32 7쪽
5 1장 표류 5화 바다를 닮은 여인 +6 19.04.02 2,070 33 8쪽
4 1장 표류 4화 슈레디안의 고민 19.04.01 2,285 37 8쪽
3 1장 표류 3화 3년만의 손님 19.04.01 2,634 34 7쪽
2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19.04.01 3,541 46 7쪽
1 <제1부 펜데스칼 전쟁> 제1장 표류 1화 난파당한 청년 +4 19.04.01 6,791 6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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