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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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최초의 동료
“출전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 피치 못하게 자리를 비움으로써 군기를 엄정히 해야 할 참모장의 소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사령관 각하께 충심으로 사죄 말씀 올립니다. ”
의례적으로 늘어놓는 사과이기도 했지만 뮤켄은 사실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었다. 수도 방위부의 인수인계 건을 휘하 참모진에게 일임해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이곳으로의 부임을 먼저 서둘렀어야 했다.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사령관의 핏기 없는 얼굴은 마치 가면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실전 경험은 처음인데, 출전하기 불과 보름 전에 한 부대의 지휘를 명령받았다. 게다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병력을 이끌고 불가능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부대를 구성하고 있는 대다수의 군사들은 제대로 된 훈련을 거친 정규 부대가 아닌 용병들 아니면 초병들이고, 신뢰할 수 있는 부하는 전혀 없다. 그런 와중에 사령관을 맞아 일의 전후 상황을 설명해주어야 할 참모장마저 자리를 비웠던 것이다.
미드프레드가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열아홉 살의 청년이라는 사실은 차라리 제쳐둔다 해도, 당연히 초조해질 법한 상황인 것이다. 뮤켄으로서는 그가 아직 이나마 최소한의 냉정이라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고맙기만 할 따름이었다.
“참모장님께서 수도 방위부의 인수인계 건으로 부임이 늦어진다는 보고는 미리 받았습니다. 앉으시지요. ”
감정이 잘 읽히지 않는 건조한 목소리로 자리를 권하며 사령관은 책상에서 일어나 뮤켄의 맞은편으로 다가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체프렌 왕자의 측근으로 워낙 오래 전부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지라 그리 어린 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가깝게 마주 대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아무래도 아직 앳된 느낌이 묻어난다. 그러나 이내 뒤를 이어 흘러나온 싸늘한 음성은 뮤켄이 그에 대해 일말의 연민을 가질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한낱 평민에 불과한 제게 이처럼 태자 전하의 복수전을 위한 군대를 내려주신 여왕폐하의 성은에 뭐라 감사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재상 각하께서는 황공하옵게도 제 미숙함을 감안하사 훌륭하신 참모장까지 몸소 선임해 주셨더군요. ”
뮤켄은 탁자 위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한숨을 가만히 내려 눌렀다. 조금 전의 무감각한 어조와는 달리 지금 미드프레드의 말투에는 날카로운 빈정거림이 뚜렷이 배어있다. 겉으로야 여왕과 재상에 대한 형식적인 감사 인사처럼 보이지만, 이 부대의 사정을 알고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그것이 그들에 대한 일종의 비난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뮤켄까지 겨냥한 조소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청해서 여기로 배치되기까지의 고생을 생각해 볼 때, 뮤켄으로서는 자신을 여왕과 재상의 꼭두각시로 취급하는 미드프레드의 태도가 일견 그럴 법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했다.
편한 자리일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나쁜 상황이로군. 무엇보다 처음부터 이렇게 적대적인 태도를 뚜렷하게 드러낸다면, 이후 병사들을 이끌어 가는데 있어 서로간에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을 것이 자명하다. 뮤켄은 가슴 한 구석에서 퍼져 나가는 불길한 전조에 보일 듯 말 듯 미간을 좁혔다.
“저는 보통의 경우 부대 지휘관과 참모장이 첫 대면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잘 모릅니다. ”
미드프레드는 잠시 말을 끊더니 약간 망설이듯 뒤를 이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많은 부대를 이끌게 되었다는 것과 우리에게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매우 특수한 경우라는 것을 전제하고, 우리 부대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참모장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만. ”
뮤켄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향해 고정된 이 어린 사령관의 황옥빛 눈동자는 상처 입은 짐승처럼 어딘지 지치고 겁먹은 듯 하면서도 동시에 묘하게 영악하고 대담한 빛을 띠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닐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그가 처한 처지는 실제로 궁지에 몰린 야수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으니까.
“참모장의 의견을 고견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
뮤켄은 고개를 드는 속도만큼이나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소속 부대의 승리를 위해 작전 계획을 세우는 것은 참모진으로서의 당연한 의무니까요.”
미드프레드는 허공에 시선을 던진 채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부대의 최종적인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사령관 각하이고, 그것은 군부대의 지휘를 일임 받은 사령관에게만 귀속되는 권리인 것입니다. 저희 참모진은 각하의 판단과 지시에 따라 세부적인 내용을 준비하고 보충하여 보다 성공적인 작전 수행을 돕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러니 소관의 의견을 묻기에 앞서 전체적인 작전에 대한 사령관 각하의 계획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 정도 아니겠습니까? ”
허공을 향해 있던 미드프레드의 시선이 서서히 내려와 자신을 직시하고 있는 뮤켄의 얼굴에서 멈췄다. 아무 말 없이 그저 조용히 뮤켄을 바라보던 미드프레드의 입가에 일순 비틀린 듯한 고소가 스쳐갔다.
“글쎄요. ”
그는 다시 시선을 떨어뜨렸다가 고개를 들며 마치 되쏘듯 말했다. 마치 그를 이런 상황으로 몰아버린 것이 뮤켄인 듯 도전적인 어조다.
“군대를 내려주신 폐하께서 원하시는 것이 승리인지 패배인지부터 알아야 그에 맞는 구체적인 작전을 입안할 것 아니겠습니까? ”
속마음이야 어떻든 겉으로는 평정을 유지하고 있던 뮤켄의 얼굴이 표나게 굳어졌다.
“각하께서는 작전의 수립만으로 승리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이어서 흘러나온 음성은 매우 낮았지만, 미드프레드를 향한 그의 눈빛은 좀전과 비교도 할 수 없으리만큼 엄격한 빛을 띠고 있었다.
“아주 작은 일에서도 전쟁의 승패가 좌우되는 법이거늘, 하물며 부대를 지휘하는 사령관의 경우야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
시선을 약간 아래로 떨군 채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미드프레드를 쳐다보며, 뮤켄이 조금은 격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승리에 대한 의욕 없이 전쟁에 임한 사령관을 휘하 장병들이 어찌 믿고 따르겠으며, 병사들이 지휘관에 복종하지 않는데 어찌 작전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승리에 대한 확신 없이 시작된 전쟁은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한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
"...싶습니다. "
한참만에 메마른 그의 입술이 작게 달싹거리는 듯 했다. 그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과도 같은 목소리가 다시 한 번 힘겹게 흘러나왔다.
“이기고 싶습니다. ”
두 눈을 살짝 감았다 뜨며, 미드프레드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똑바로 뮤켄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저 이기고 싶다는 정도로는 안 되겠지요. 꼭 이겨야만 합니다. 비단 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단 한 번의 승패에 부대를 이루고 있는 삼천 병사들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
아까의 차가움이 믿기지 않을 만큼, 간절한 울림이 깃든 음성이었다. 뮤켄을 향한 그의 눈동자에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떤 절박한 감정이 비치고 있었다.
“···제가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시겠습니까?”
굳어있던 뮤켄의 입매가 약간 풀어졌다. 이 젊은이를 따르는 것은 생각했던 것만큼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할 때 먼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행동은 언뜻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뮤켄이 보아왔던 수많은 장군들이 오랜 경험에도 불구하고 갖추지 못하는 미덕을 이 어린 사령관은 처음부터 지니고 있었다.
뮤켄은 신중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참모장은 사령관의 승리를 돕기 위하여 존재하는 직책입니다.”
그의 대답에 고개 숙여 감사의 뜻을 표한 뒤, 미드프레드는 조금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했다.
“참모장께서 도착하시기 전까지, 저 나름대로 참모장님에 대해 여러 경로로 알아봤습니다. 어찌 보아도 이곳이 장군께서 계실만한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 초면부터 무례를 범했던 것 같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아닙니다. 소관 역시 각하께서 의아해 하신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뮤켄은 가볍게 고개를 저어 그의 사과를 만류했다.
“지원군으로의 부임은 전적으로 소관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입니다. 다른 이가 들으면 한낱 젊은 날의 치기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제 소견으로 이곳은 현재의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장소를 위해 준비된 군대 같았습니다. 비록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다른 의도가 개입되었다고 할지언정, 결론적으로 이곳은 가장 힘겹게 싸우고 있는 세레즈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가장 올바른 목적을 가진 부대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그 점에 대해 충분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만만치 않은 기백이 담겨 있었다. 눈을 내리깔고 있는 미드프레드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비쳤다.
“참모장께서 바라시는 바가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장군께서 참모장으로서 그런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다면, 나는 사령관으로서 그 자부심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
뮤켄 역시 미드프레드를 마주보며 얼굴에 웃음을 떠올렸다.
“지원군을 선택한 것이 옳은 결정이라고는 생각했지만, 현명한 결정인가에 대해서는 솔직히 확신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사령관 각하를 뵈니 적어도 후회할 만한 선택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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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전환점 인명록
*미드프레드 그론레이*
여왕의 계략 아래 버림돌로 조직된 하크스 지원군의 사령관으로 임명된다. 병사들과 가까워지고 노력하던 와중에 부임해온 참모장 뮤켄의 도움으로 무사히 수하들을 장악하게 된다.
*마세르 라 뮤켄*
재상과의 줄다리기 끝에 최종적으로 본인의 바람대로 하크스 지원군 사령부의 참모장으로 임명된다. 특유의 인품과 꼼꼼한 성정으로 수하들을 장악해 나감으로써 사령관 미드프레드에게 큰 의지가 된다.
*라펠 라 케니하크*
하크스 지원군 참모부의 수석참모, 갓 부임한 미드프레드를 군부대로 안내한다.
*크로젤 라 메이샤드 *
하크스 지원군 소속 사병, 전장 경험이 없는 미드프레드가 지휘관으로 부임한 것에 노골적으로 반감을 표하나, 뮤켄의 인도로 차츰 부대에 마음을 붙이게 된다.
- 작가의말
7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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