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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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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510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4.28 14:22
조회
571
추천
10
글자
7쪽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DUMMY

4. 출전령





재상 관저에서 왔다고 하는 하인의 뒤를 따라서 태자궁이 있는 본성을 나와 외성으로 통하는 오솔길을 걷고 있는 미드프레드의 걸음걸이는 평소와는 달리 다소 흐트러져 있었다.


그를 안내해 가던 하인은 이 어린 녀석이 긴장을 해도 단단히 했구나 하고 내심 코웃음을 쳤으나, 사실 그로서는 긴장할 여유 같은 것도 없었다. 단지 재상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대한 의문만이 줄곧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을 뿐이었다.


그 역시 여왕을 위시한 아체프렌의 적대 세력이 언제까지고 자신을 궁 안에 내버려 두리라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태자의 죽음이 기정사실화되어버린 작금 껄끄러운 상대임이 틀림없는 자기를 계속해서 궁에 두고 볼 여왕도 아니었고, 미드프레드 역시 답답한 마음에 차라리 아무런 언질이 없을 때 궁내부를 나가려 했던 것이다.


물론 태자궁에서 군대로 거취를 옮기는 일조차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몇 달 전에 시종장에게 제출한 사직원은 아직까지도 수리되지 않았고, 당연한 일이지만 사직원이 처리되지 않은 이상 입대 지원서가 받아들여질 리도 만무했다. 그렇듯 미드프레드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방안에 틀어박혀 지낸 지도 벌써 석 달이 족히 넘어서고 있었다.


‘이해할 수가 없다. 이제 와서 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재상이 그를 갑작스럽게 관저로 불러들일 이유 따위는 없어 보였다. 게다가 어떤 면으로 보아도 그 짐작할 수 없는 이유가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조금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겠지. ’


미드프레드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 덕에 그는 어느 정도 평정을 되찾은 상태로 재상의 집무실 앞에 설 수 있었다.


“나으리, 미드프레드 그론레이를 불러왔습니다.”


잠시 후 문 너머 안쪽으로부터 미드프레드의 기억에도 남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여보내거라. ”


“예. ”



하인은 익숙한 손길로 조용히 문을 열고 미드프레드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미드프레드는 침착한 태도로 한 걸음 안으로 들어서서 재상을 향해 깊이 허리를 굽혀 일단 예의를 갖추었다.


“저를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책상에 앉아 손에 든 문건을 살펴보고 있던 노재상이 고개를 들어 그를 힐끗 보았다.


“자네 입대 지원서를 제출했더군. 내 오늘 자네를 이리 부른 것은 그에 대해 전해줄 말이 있기 때문이네.”


그윈 재상은 미드프레드의 인사를 받아주려는 기색조차 없이 책상 한편에 쌓여있는 서류를 뒤적여 몇 개를 골라내며 곧장 용건을 꺼냈다.


“들리는 소리가 있었을 테니 간단히 말하지. 현재 우리 세레즈는 코네세타의 갑작스러운 침공으로 인해 수난을 겪고 있네. 이미 하크스 영지의 상당 부분이 적의 수중에 떨어졌고, 이어 로크라테 영지마저 적에게 항복함으로써 상황은 보다 급박해 졌다고 할 수 있지.”


특별히 내던지는 듯한 말투는 아니었지만 무심하게 이어지는 재상의 목소리는 묘하게도 자신을 내리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던져 주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도 하크스 영지의 본성인 첸트로빌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어. 그곳은 이미 적의 수중에 떨어진 남부 영토 중에서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거점이라 할 수 있을 테지. 폐하께서는 어려운 상황 아래서도 저항을 그치지 않는 하크스 백성들의 의기를 북돋워 주시기 위해 첸트로빌에 농성 지원군을 파병하시기로 결정하셨네.”


미드프레드는 미간을 좁힌 채 재상이 일부러 자신을 불러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까닭에 대한 의문만을 곱씹었다. 하크스의 지원군 파병과 자신의 입대와 관련성이 있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뿐이다. 하지만 자기가 지원군에 소속되었다 해도 일국의 재상인 그윈이 일개 평민에 불과한 자신을 따로 집무실로 불러들여 전해줄 필요성 따위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 정도 일이라면 군부대 배치 명령서를 하달하는 것이면 충분할 터인데.


그러나 미드프레드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재상이 딱딱하리 만큼 명확한 목소리로 여왕의 명령을 전했다.


“그대는 예를 갖춰 폐하의 명을 받들라. 세레즈의 국왕 세느비엔느 1세의 이름으로 미드프레드 그론레이를 하크스 지원군 사령관으로 임명한다. 병력 삼천을 내릴 터이니 출전령을 받는 즉시 하크스로 내려가 영주 로엘 공과 더불어 영지의 수복을 달성하라. ”


왕명을 받기 위해 부복해 있던 미드프레드는 한순간 본인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자신은 그토록 원하던 출전령을, 그것도 한 부대를 지휘하는 사령관의 직책을 받았다. 가장 확실하게 죽어줄 수 있도록.


병력 3천으로 하크스 영지를 탈환하라는 왕명의 뜻은 명료했다. 명령을 내린 여왕은 물론, 이 자리에서 고압적인 자세로 그 말을 전하고 있는 재상 역시 하크스의 수복 따위는 애초부터 기대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하크스 지원군은 그야말로 정치적인 명분을 달성하기 위해 조직된 완벽한 희생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미천한 평민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폐하께서 자네에게 이러한 기회를 내리는 것은 태자 전하에 대한 자네의 충성심을 가상히 여기시기 때문이네. 그러니 목숨을 다하여 폐하의 성총에 보답해야 할 것이야.”


‘병력 3천으로 말입니까.’


이렇게 되묻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억누른 채 미드프레드는 고개를 숙였다. 움켜쥔 손바닥에 손톱이 아프게 파고들었다. 미드프레드는 어떻게든 버티라 하였던 아체프렌의 말을 떠올렸다.


“섬기던 주인을 따라 죽지도 못한 불충한 몸입니다. 그런 제게 이리 크신 광영을 내려 주시니 폐하의 은덕에 차마 고개를 들 낯조차 없습니다.”


냉정을 유지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목소리 끝이 미세하게 갈라져 나오는 것만은 미드프레드 역시도 어쩔 수 없었다.


“암, 생전에 자네를 총애하신 태자 전하를 생각해서라도 그분께 누가 되어선 안 될 게야.”


심술 궂게 느껴질 만큼 느릿한 어조로 재상은 그의 말을 받았다. 미드프레드는 숙인 고개 위로 재상의 조소 어린 눈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 어차피 더이상 나빠질 것도 없는 상황이었지 않은가. 이것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단 하나의 기회인지도 모른다. 피할 수 없다면, 꼭 해야만 한다면, 당당히 맞서리라.


“하크스 지원부대의 군사 배치와 참모진 명단이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참모장에게 듣게나.”


재상은 책상에서 꺼내온 몇 가지 서류를 그 앞으로 내밀었다.


“출정 전에 폐하께서 친히 불러 격려해 주실 터이니 분발하도록. ”


“예. ”


“선전을 기대하겠네. ”


‘입에 발린 소리! ’


미드프레드는 치밀어 오르는 반감을 가리기 위해 깊숙하게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한 마디 한 마디 토해내는 기분으로 대답했다.


“미천한 목숨이나마 아낌없이 바쳐 국은에 보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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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2장 전장에 핀 꽃 7화 지원군의 본진 합류(12장 인명록) 19.05.23 414 10 9쪽
74 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19.05.22 613 9 8쪽
73 12장 전장에 핀 꽃 5화 전장의 꽃 19.05.21 434 10 7쪽
72 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19.05.20 536 12 10쪽
71 12장 전장에 핀 꽃 2화 불꽃 같은 여인 19.05.19 426 8 8쪽
70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19.05.18 452 8 8쪽
69 11장 분열의 조짐 7-8화 최종단안(11장 인명록) 19.05.17 440 9 12쪽
68 11장 분열의 조짐 6화 뮤켄의 충고 19.05.16 504 8 9쪽
67 11장 분열의 조짐 5화 패퇴 19.05.15 450 10 7쪽
66 11장 분열의 조짐 3-4화 양동작전 19.05.14 429 10 10쪽
65 1부 11장 분열의 조짐 1-2화 후방기지 괴멸 소식 19.05.13 511 9 11쪽
64 10장 진흙 속의 연꽃 7화 투항 제의 (10장 인명록) 19.05.09 465 8 13쪽
63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19.05.08 518 8 7쪽
62 10장 진흙 속의 연꽃 4화 적의 공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 19.05.07 464 8 8쪽
61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19.05.07 483 7 7쪽
60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19.05.07 480 8 8쪽
59 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19.05.07 525 6 7쪽
58 9장 전설의 시작 7화 조력요청(9장 인명록) 19.05.06 523 7 12쪽
57 9장 전설의 시작 5-6화 전후처리 19.05.06 568 8 12쪽
56 9장 전설의 시작 4화 최초의 승리 19.05.06 550 7 11쪽
55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19.05.05 516 9 9쪽
54 9장 전설의 시작 2화 기습 19.05.04 504 12 9쪽
53 9장 전설의 시작 1화 위장잠입 19.05.03 496 8 10쪽
52 8장 효시 7화 작전계획(8장 인명록) 19.05.02 556 11 12쪽
51 8장 효시 6화 용기,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 19.05.02 539 8 11쪽
50 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19.05.02 486 9 9쪽
49 8장 효시 3-4화 사령관과 참모장 19.05.01 508 11 13쪽
48 8장 효시 2화 전장의 밤 19.05.01 533 10 11쪽
47 8장 효시 1화 행군시작 19.04.30 560 12 11쪽
46 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19.04.30 569 8 11쪽
45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19.04.29 538 11 8쪽
44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19.04.29 558 11 7쪽
»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19.04.28 572 10 7쪽
42 7장 전환점 3화 하크스 지원군 19.04.28 647 11 9쪽
41 7장 전환점 2화 정치적 포석 19.04.27 609 12 10쪽
40 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19.04.27 579 11 8쪽
39 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19.04.26 585 11 8쪽
38 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19.04.26 631 13 9쪽
37 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19.04.25 572 9 7쪽
36 6장 개전 5화 선제공격 19.04.25 625 10 7쪽
35 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19.04.24 638 13 7쪽
34 6장 개전 3화 어머니와 아들 下 19.04.24 572 16 11쪽
33 6장 개전 2화 어머니와 아들 上 19.04.23 597 12 7쪽
32 1부 6장 개전 1화 진상규명요구 19.04.23 631 10 11쪽
31 5장 태풍의 눈 8화 안타미젤의 결심(5장 인명록) +2 19.04.22 696 15 12쪽
30 5장 태풍의 눈 6-7화 안타미젤 왕자 19.04.22 697 10 8쪽
29 5장 태풍의 눈 5화 계륵과도 같은 패 19.04.21 633 12 9쪽
28 5장 태풍의 눈 3-4화 충성서약 19.04.21 734 11 13쪽
27 5장 태풍의 눈 2화 사직서의 파장 19.04.20 743 14 11쪽
26 1부 5장 태풍의 눈 1화 사직원 19.04.19 743 15 7쪽
25 4장 부위정경 7화 생존전략(4장 인명록) 19.04.19 752 16 16쪽
24 4장 부위정경 6화 속고 속이는 싸움 19.04.18 764 19 10쪽
23 4장 부위정경 5화 기만 19.04.18 871 14 13쪽
22 4장 부위정경 4화 공주의 부름 19.04.17 821 19 10쪽
21 4장 부위정경 3화 거리의 아이 19.04.17 852 18 10쪽
20 4장 부위정경 2화 세레즈의 물밑 접촉 19.04.16 829 20 7쪽
19 1부 4장 부위정경 1화 코네세타의 공주 19.04.15 868 19 10쪽
18 3장 폭풍전야 6화 주전론을 위한 막후교섭(3장 인물소개) 19.04.14 906 21 12쪽
17 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2 19.04.13 1,013 21 7쪽
16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2 19.04.12 1,002 23 7쪽
15 3장 폭풍전야 2화 그윈 재상 19.04.11 1,049 23 8쪽
14 1부 3장 폭풍전야 1화 태자의 실종 19.04.10 1,192 21 11쪽
13 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4 19.04.10 1,199 33 8쪽
12 2장 애별리고 6화 고작 마음 하나 +2 19.04.09 1,253 21 9쪽
11 2장 애별리고 5화 이주명령 19.04.09 1,399 26 9쪽
10 2장 애별리고 4화 떨림과 설렘 +4 19.04.07 1,392 25 7쪽
9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2 19.04.05 1,470 24 7쪽
8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2 19.04.04 1,485 28 7쪽
7 1부 2장 애별리고 1화 마음의 향방 19.04.03 1,535 26 7쪽
6 1장 표류 6화 자각 +2 19.04.03 1,647 32 7쪽
5 1장 표류 5화 바다를 닮은 여인 +6 19.04.02 2,070 33 8쪽
4 1장 표류 4화 슈레디안의 고민 19.04.01 2,285 37 8쪽
3 1장 표류 3화 3년만의 손님 19.04.01 2,634 34 7쪽
2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19.04.01 3,541 46 7쪽
1 <제1부 펜데스칼 전쟁> 제1장 표류 1화 난파당한 청년 +4 19.04.01 6,791 6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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