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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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접전
미친 듯 휘두르는 검날을 따라 선명한 피보라가 일어나며 시야를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인다. 비릿한 피 냄새가 온 몸에 확 끼치며 후각을 마비시킨다. 칼자루를 그러쥔 손아귀가 불에 덴 것처럼 달아오른다. 거친 호흡이 끊어질 듯 말 듯 위태롭게 이어진다. 자신의 뜨거운 숨결에 투구 안에 가려진 귀가 먹먹해져 옴을 느끼며 미드프레드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쓰러진 적병 뒤에서 굳어버린 것처럼 서 있던 코네세타 군 병사 하나가 뒷걸음친다. 그는 느릿한 동작으로 주춤하는 상대를 향해 일 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장검을 들어올렸다. 그 병사가 나직한 신음을 터트리며 뒤로 자빠진다. 투구 사이로 드러난 상대의 눈동자와 시선이 부딪힌다. 확장된 동공에 뚜렷한 공포가 떠오른다. 가슴 한쪽이 따끔하게 울려온다.
다음 순간 그는 섬광과도 같은 몸짓으로 상대의 겁먹은 눈동자에 칼날을 찔러 넣었다. 뼈와 살을 끊어내는 묵직한 느낌이 피부에 새겨지듯 손가락 사이로 전해진다. 강렬하게 고동치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다.
피에 젖은 검날이 상대의 눈구멍을 관통하여 투구 너머로 거대한 몸체를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움켜잡기라도 하려는 듯 그 병사의 팔다리가 허우적거린다. 충혈된 눈가가 뜨거워진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미드프레드는 짧은 기합과 함께 상대의 머리에 박힌 검을 뽑아 들었다. 그 반동을 따라 그 병사의 몸이 앞으로 숙여진다. 쓰러진 몸체가 자신을 찾아오는 죽음에게 마지막 저항을 하듯 부르르 떨린다. 차갑게 식어 가는 그 병사의 시신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검붉은 핏물이 갈라진 지면 사이로 스며든다. 미드프레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제 정리가 된 것인가. '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부하들뿐이다. 끈질기게 저항하던 코네세타 군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다. 순간 경직되어 있던 어깨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검을 들고 있던 팔이 무거워지며 후들거린다. 귀가 먹먹하다. 미드프레드는 손아귀에 힘을 주어 검날을 땅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무거운 손을 투구 쪽으로 가져갔다. 들어올려진 투구 사이로 드러난 얼굴에 시원한 바람이 부딪혀 온다. 맺혀 있던 땀방울들이 벌려진 입술 사이로 흘러 들어오며 짭짜름한 맛이 느껴진다.
여기저기 고인 피 웅덩이 속에 몸의 일부분을 처박고 쓰러진 적병들을 무감각하게 응시하던 미드프레드의 입가에 문득 씁쓸한 웃음이 비쳤다. 끈적거리는 핏덩이가 묻어 있는 검신의 푸른빛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는 한 손으로 칼자루를 움켜쥐며 아군 병사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우렁찬 음성으로 지시했다.
"전군, 성으로 이동! 지금 곧 공성 중의 아군과 합류하라! "
6. 미드프레드의 결심
케니하크는 잠시 입을 다문 채, 팔짱을 낀 채 정면을 직시하고 있는 사령관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입고 있는 갑옷 여기저기 끔찍하게 말라붙기 시작한 검붉은 핏덩이와는 대조적으로 투구를 벗은 사령관의 흰 얼굴은 안쓰러울 정도로 앳되어 보인다.
항구에서의 소규모 접전을 끝낸 이 어린 사령관이 말머리를 돌려 공성 중의 아군과 합류한 것은 반 시각 전의 일이었다. 정석대로라면 참모장 뮤켄이 그를 맞아 전황보고를 했을 터지만, 뮤켄은 사령관을 대리하여 아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사령관을 맞는 일은 참모부 서열 2위의 케니하크에게로 넘겨진 것이다. 케니하크는 시선을 들어 전방에 위치한 아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성에 임박했을 무렵 몇몇 무리가 성을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추격하였으나, 그 중 몇 명은 결국 놓쳐 버렸습니다. ”
사령관은 아무 말 없이 미간을 굳힌 채 문득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 케니하크의 시선도 옮겨간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케니하크의 시야를 가득 메워온다. 순간 볼에 서늘한 빗방울이 닿는다. 단정하게 뻗은 케니하크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진다. 또 한바탕 비가 내리칠 모양이다. 심상치 않게 몰려온 검은 구름 떼가 초조해진 그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피부에 와 닿는 빗방울 수가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었다.
케니하크는 볼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을 손등으로 털어 내며 상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지그시 입술을 깨문 채 카르테 성을, 아니 좀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성 한가운데 높이 솟은 첨탑을 노려보고 있었다. 점차 굵어지는 빗방울에도 아랑곳없이 꼿꼿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시지요.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비록 적장은 죽었지만, 그들은 다시 돌아올 겁니다."
팽팽하게 긴장된 공기 사이로 차갑게 가라앉은 케니하크의 목소리가 흩어진다. 그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미드프레드는 첨탑 위에 있는 코네세타 군을 뚫어질 듯이 응시했다. 그 위에 올라서 있는 적군은 기껏해야 스무 명가량,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군사를 상대로 벌써 몇 시간째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해상에서 카르테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 중 상당수가 수송선과 함께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급습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의 저항은 놀랍도록 끈질겼다. 위태롭게 서 있는 첨탑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적군의 모습은 마치 독기를 품은 맹수와도 같다.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
적의 일부가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간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끄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별 소득 없는 전투에 매달리다가, 혹여 적이 지원병을 이끌고 되돌아온다면 이제껏 아군이 흘린 피는 무용지물로 돌아가게 된다. 뿐만아니라 지금의 상황이 반전되어 이번엔 아군이 손 쓸 새도 없이 몰살당할 가능성도 농후했다.
이 카르테의 입구인 이세론 항구도 초토화시켰고, 빠른 공격 덕분에 성안에 있는 적의 무기고도 손해 없이 접수했다. 카르테 성안의 건물 중, 적의 수중에 있는 것은 저 첨탑뿐이다. 굳이 저 지휘관을 사로잡아야 할 필요성이 뭐가 있단 말인가. 케니하크는 이 어린 사령관의 망설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면 포기해야 할 부분도 있는 것 아닌가.
"사령관 각하! "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목소리 끝에 신경질적인 날이 선 듯한 느낌이다. 굳어진 듯 정면을 응시하던 상관의 눈길이 자신에게로 옮겨왔다. 다시 한번 재촉하려던 찰나, 미드프레드의 입술이 떨어지고 바라던 지시가 내려졌다.
"···궁수대 공격 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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