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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연

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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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512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5.08 12:56
조회
518
추천
8
글자
7쪽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DUMMY

5. 접전





미친 듯 휘두르는 검날을 따라 선명한 피보라가 일어나며 시야를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들인다. 비릿한 피 냄새가 온 몸에 확 끼치며 후각을 마비시킨다. 칼자루를 그러쥔 손아귀가 불에 덴 것처럼 달아오른다. 거친 호흡이 끊어질 듯 말 듯 위태롭게 이어진다. 자신의 뜨거운 숨결에 투구 안에 가려진 귀가 먹먹해져 옴을 느끼며 미드프레드는 앞으로 걸어나갔다.


쓰러진 적병 뒤에서 굳어버린 것처럼 서 있던 코네세타 군 병사 하나가 뒷걸음친다. 그는 느릿한 동작으로 주춤하는 상대를 향해 일 미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장검을 들어올렸다. 그 병사가 나직한 신음을 터트리며 뒤로 자빠진다. 투구 사이로 드러난 상대의 눈동자와 시선이 부딪힌다. 확장된 동공에 뚜렷한 공포가 떠오른다. 가슴 한쪽이 따끔하게 울려온다.


다음 순간 그는 섬광과도 같은 몸짓으로 상대의 겁먹은 눈동자에 칼날을 찔러 넣었다. 뼈와 살을 끊어내는 묵직한 느낌이 피부에 새겨지듯 손가락 사이로 전해진다. 강렬하게 고동치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다.


피에 젖은 검날이 상대의 눈구멍을 관통하여 투구 너머로 거대한 몸체를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움켜잡기라도 하려는 듯 그 병사의 팔다리가 허우적거린다. 충혈된 눈가가 뜨거워진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미드프레드는 짧은 기합과 함께 상대의 머리에 박힌 검을 뽑아 들었다. 그 반동을 따라 그 병사의 몸이 앞으로 숙여진다. 쓰러진 몸체가 자신을 찾아오는 죽음에게 마지막 저항을 하듯 부르르 떨린다. 차갑게 식어 가는 그 병사의 시신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검붉은 핏물이 갈라진 지면 사이로 스며든다. 미드프레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이제 정리가 된 것인가. '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부하들뿐이다. 끈질기게 저항하던 코네세타 군은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다. 순간 경직되어 있던 어깨에서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검을 들고 있던 팔이 무거워지며 후들거린다. 귀가 먹먹하다. 미드프레드는 손아귀에 힘을 주어 검날을 땅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무거운 손을 투구 쪽으로 가져갔다. 들어올려진 투구 사이로 드러난 얼굴에 시원한 바람이 부딪혀 온다. 맺혀 있던 땀방울들이 벌려진 입술 사이로 흘러 들어오며 짭짜름한 맛이 느껴진다.


여기저기 고인 피 웅덩이 속에 몸의 일부분을 처박고 쓰러진 적병들을 무감각하게 응시하던 미드프레드의 입가에 문득 씁쓸한 웃음이 비쳤다. 끈적거리는 핏덩이가 묻어 있는 검신의 푸른빛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다. 그는 한 손으로 칼자루를 움켜쥐며 아군 병사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어 우렁찬 음성으로 지시했다.


"전군, 성으로 이동! 지금 곧 공성 중의 아군과 합류하라! "







6. 미드프레드의 결심




케니하크는 잠시 입을 다문 채, 팔짱을 낀 채 정면을 직시하고 있는 사령관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입고 있는 갑옷 여기저기 끔찍하게 말라붙기 시작한 검붉은 핏덩이와는 대조적으로 투구를 벗은 사령관의 흰 얼굴은 안쓰러울 정도로 앳되어 보인다.


항구에서의 소규모 접전을 끝낸 이 어린 사령관이 말머리를 돌려 공성 중의 아군과 합류한 것은 반 시각 전의 일이었다. 정석대로라면 참모장 뮤켄이 그를 맞아 전황보고를 했을 터지만, 뮤켄은 사령관을 대리하여 아군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사령관을 맞는 일은 참모부 서열 2위의 케니하크에게로 넘겨진 것이다. 케니하크는 시선을 들어 전방에 위치한 아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성에 임박했을 무렵 몇몇 무리가 성을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추격하였으나, 그 중 몇 명은 결국 놓쳐 버렸습니다. ”


사령관은 아무 말 없이 미간을 굳힌 채 문득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의 시선을 따라 케니하크의 시선도 옮겨간다. 잔뜩 찌푸린 하늘이 케니하크의 시야를 가득 메워온다. 순간 볼에 서늘한 빗방울이 닿는다. 단정하게 뻗은 케니하크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진다. 또 한바탕 비가 내리칠 모양이다. 심상치 않게 몰려온 검은 구름 떼가 초조해진 그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피부에 와 닿는 빗방울 수가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었다.


케니하크는 볼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을 손등으로 털어 내며 상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지그시 입술을 깨문 채 카르테 성을, 아니 좀더 분명하게 말하자면 성 한가운데 높이 솟은 첨탑을 노려보고 있었다. 점차 굵어지는 빗방울에도 아랑곳없이 꼿꼿하게 서 있는 그 모습을 보니, 어쩐지 숨이 막혀오는 기분이 들었다.


"아시지요.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비록 적장은 죽었지만, 그들은 다시 돌아올 겁니다."


팽팽하게 긴장된 공기 사이로 차갑게 가라앉은 케니하크의 목소리가 흩어진다. 그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미드프레드는 첨탑 위에 있는 코네세타 군을 뚫어질 듯이 응시했다. 그 위에 올라서 있는 적군은 기껏해야 스무 명가량,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군사를 상대로 벌써 몇 시간째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해상에서 카르테에 주둔하고 있는 병력 중 상당수가 수송선과 함께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급습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의 저항은 놀랍도록 끈질겼다. 위태롭게 서 있는 첨탑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적군의 모습은 마치 독기를 품은 맹수와도 같다.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


적의 일부가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간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끄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별 소득 없는 전투에 매달리다가, 혹여 적이 지원병을 이끌고 되돌아온다면 이제껏 아군이 흘린 피는 무용지물로 돌아가게 된다. 뿐만아니라 지금의 상황이 반전되어 이번엔 아군이 손 쓸 새도 없이 몰살당할 가능성도 농후했다.


이 카르테의 입구인 이세론 항구도 초토화시켰고, 빠른 공격 덕분에 성안에 있는 적의 무기고도 손해 없이 접수했다. 카르테 성안의 건물 중, 적의 수중에 있는 것은 저 첨탑뿐이다. 굳이 저 지휘관을 사로잡아야 할 필요성이 뭐가 있단 말인가. 케니하크는 이 어린 사령관의 망설임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면 포기해야 할 부분도 있는 것 아닌가.


"사령관 각하! "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목소리 끝에 신경질적인 날이 선 듯한 느낌이다. 굳어진 듯 정면을 응시하던 상관의 눈길이 자신에게로 옮겨왔다. 다시 한번 재촉하려던 찰나, 미드프레드의 입술이 떨어지고 바라던 지시가 내려졌다.


"···궁수대 공격 준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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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2장 전장에 핀 꽃 7화 지원군의 본진 합류(12장 인명록) 19.05.23 414 10 9쪽
74 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19.05.22 613 9 8쪽
73 12장 전장에 핀 꽃 5화 전장의 꽃 19.05.21 434 10 7쪽
72 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19.05.20 536 12 10쪽
71 12장 전장에 핀 꽃 2화 불꽃 같은 여인 19.05.19 426 8 8쪽
70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19.05.18 452 8 8쪽
69 11장 분열의 조짐 7-8화 최종단안(11장 인명록) 19.05.17 440 9 12쪽
68 11장 분열의 조짐 6화 뮤켄의 충고 19.05.16 504 8 9쪽
67 11장 분열의 조짐 5화 패퇴 19.05.15 450 10 7쪽
66 11장 분열의 조짐 3-4화 양동작전 19.05.14 429 10 10쪽
65 1부 11장 분열의 조짐 1-2화 후방기지 괴멸 소식 19.05.13 511 9 11쪽
64 10장 진흙 속의 연꽃 7화 투항 제의 (10장 인명록) 19.05.09 465 8 13쪽
»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19.05.08 519 8 7쪽
62 10장 진흙 속의 연꽃 4화 적의 공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 19.05.07 464 8 8쪽
61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19.05.07 483 7 7쪽
60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19.05.07 480 8 8쪽
59 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19.05.07 525 6 7쪽
58 9장 전설의 시작 7화 조력요청(9장 인명록) 19.05.06 523 7 12쪽
57 9장 전설의 시작 5-6화 전후처리 19.05.06 568 8 12쪽
56 9장 전설의 시작 4화 최초의 승리 19.05.06 551 7 11쪽
55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19.05.05 516 9 9쪽
54 9장 전설의 시작 2화 기습 19.05.04 504 12 9쪽
53 9장 전설의 시작 1화 위장잠입 19.05.03 496 8 10쪽
52 8장 효시 7화 작전계획(8장 인명록) 19.05.02 556 11 12쪽
51 8장 효시 6화 용기,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 19.05.02 539 8 11쪽
50 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19.05.02 486 9 9쪽
49 8장 효시 3-4화 사령관과 참모장 19.05.01 508 11 13쪽
48 8장 효시 2화 전장의 밤 19.05.01 533 10 11쪽
47 8장 효시 1화 행군시작 19.04.30 560 12 11쪽
46 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19.04.30 569 8 11쪽
45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19.04.29 538 11 8쪽
44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19.04.29 558 11 7쪽
43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19.04.28 572 10 7쪽
42 7장 전환점 3화 하크스 지원군 19.04.28 647 11 9쪽
41 7장 전환점 2화 정치적 포석 19.04.27 609 12 10쪽
40 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19.04.27 579 11 8쪽
39 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19.04.26 585 11 8쪽
38 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19.04.26 631 13 9쪽
37 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19.04.25 572 9 7쪽
36 6장 개전 5화 선제공격 19.04.25 625 10 7쪽
35 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19.04.24 638 13 7쪽
34 6장 개전 3화 어머니와 아들 下 19.04.24 572 16 11쪽
33 6장 개전 2화 어머니와 아들 上 19.04.23 597 12 7쪽
32 1부 6장 개전 1화 진상규명요구 19.04.23 631 10 11쪽
31 5장 태풍의 눈 8화 안타미젤의 결심(5장 인명록) +2 19.04.22 696 15 12쪽
30 5장 태풍의 눈 6-7화 안타미젤 왕자 19.04.22 697 10 8쪽
29 5장 태풍의 눈 5화 계륵과도 같은 패 19.04.21 633 12 9쪽
28 5장 태풍의 눈 3-4화 충성서약 19.04.21 734 11 13쪽
27 5장 태풍의 눈 2화 사직서의 파장 19.04.20 743 14 11쪽
26 1부 5장 태풍의 눈 1화 사직원 19.04.19 743 15 7쪽
25 4장 부위정경 7화 생존전략(4장 인명록) 19.04.19 752 16 16쪽
24 4장 부위정경 6화 속고 속이는 싸움 19.04.18 764 19 10쪽
23 4장 부위정경 5화 기만 19.04.18 871 14 13쪽
22 4장 부위정경 4화 공주의 부름 19.04.17 821 19 10쪽
21 4장 부위정경 3화 거리의 아이 19.04.17 852 18 10쪽
20 4장 부위정경 2화 세레즈의 물밑 접촉 19.04.16 829 20 7쪽
19 1부 4장 부위정경 1화 코네세타의 공주 19.04.15 868 19 10쪽
18 3장 폭풍전야 6화 주전론을 위한 막후교섭(3장 인물소개) 19.04.14 906 21 12쪽
17 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2 19.04.13 1,013 21 7쪽
16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2 19.04.12 1,002 23 7쪽
15 3장 폭풍전야 2화 그윈 재상 19.04.11 1,049 23 8쪽
14 1부 3장 폭풍전야 1화 태자의 실종 19.04.10 1,192 21 11쪽
13 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4 19.04.10 1,199 33 8쪽
12 2장 애별리고 6화 고작 마음 하나 +2 19.04.09 1,253 21 9쪽
11 2장 애별리고 5화 이주명령 19.04.09 1,399 26 9쪽
10 2장 애별리고 4화 떨림과 설렘 +4 19.04.07 1,392 25 7쪽
9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2 19.04.05 1,470 24 7쪽
8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2 19.04.04 1,485 28 7쪽
7 1부 2장 애별리고 1화 마음의 향방 19.04.03 1,535 26 7쪽
6 1장 표류 6화 자각 +2 19.04.03 1,647 32 7쪽
5 1장 표류 5화 바다를 닮은 여인 +6 19.04.02 2,070 33 8쪽
4 1장 표류 4화 슈레디안의 고민 19.04.01 2,285 37 8쪽
3 1장 표류 3화 3년만의 손님 19.04.01 2,634 34 7쪽
2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19.04.01 3,541 46 7쪽
1 <제1부 펜데스칼 전쟁> 제1장 표류 1화 난파당한 청년 +4 19.04.01 6,791 6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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