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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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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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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518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5.05 08:00
조회
516
추천
9
글자
9쪽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DUMMY

3. 교전




"보병대 방진! "


보병 대장들은 아군의 궁수대의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거침없이 전진해와 이미 전진 배치해 둔 아군의 보병대와 교전 중인 적의 보병대를 보며 목이 터질 정도로 고함치고 있었다.


"적의 돌파를 막아라!"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이미 죽고 죽이는 전장의 소음에 묻혀 버리고 있었다. 적인지 아군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버린 가운데, 날카로운 쇠가 맞부딪치는 거슬리는 마찰음과 함께 병사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전속력으로 돌격해 들어온 적의 보병대는 그 기세를 몰아 보통 창의 두 배는 될 법한 장창을 휘둘러 눈앞에 있는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쓰러뜨려 갔다. 마치 피에 굶주려 있었던 듯 전혀 지치는 기색 없이 움직이는 세레즈 군이 전진하는 길을 따라, 그들이 무자비하게 휘두른 창에 절단된 아군의 손가락과 팔 등이 이리저리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대열을 사수하라!"


"적에게 진영을 내어줄 셈이냐!"


들리건 안 들리건 상관없이 조금이라도 병사들을 독려하고자 외쳐대는 분단장들의 피 마르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코네세타 군의 선진 대열은 교전을 시작한 지 몇 분도 안 되어 허무하게 붕괴되고 있었다.



***



말고삐를 잡은 손바닥에 땀이 스민다. 부사령관 듀론은 미끌대는 손으로 한층 더 고삐를 꽉 말아 쥐며 이를 악물고 전방을 바라보았다.


적의 기세에 밀려 아군의 대열이 흐트러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길이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언제까지 두 손 놓고 아군이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하지? 보병대의 방어선이 무너지면 아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질 텐데.’


그는 다소 불안한 시선으로 사령관을 힐끗 바라보았다. 보병대의 전면 붕괴가 눈앞에 닥쳐왔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만큼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사령관의 옆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굳게 다물려 있던 그의 입술이 마침내 떨어지고 그 사이로 늘 그러하듯 침착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기병대는 준비됐나?"


고개도 돌리지 않고 전방을 향해 고정되어 있는 상관을 망연히 바라보던 듀론의 얼굴에 순간 희색이 도는 듯했다.


"예! 지금 투입하시겠습니까?"


쉐트인은 차가운 눈길로 앞을 쏘아보며 짧게 고개를 내저었다.


"···적이 십 오보가량 앞으로 전진하면 그때 투입하게. "


"알겠습니다! "


듀론은 기병대장들에게 사령관의 지시를 손수 전하기 위해 말머리를 후방으로 돌렸다.



***



첸트로빌 공략부대 총사령관 쉐트인 장군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져 있었다.


적의 보병대를, 그리고 그들이 들고 있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긴 장창을 너무 얕봤다. 그들의 장창이 말 위에 올라탄 아군 병사에게 대항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길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병을 투입한 것은, 적군이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하기 전에 밟아버리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광경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어버린 것이었다.


선봉을 기점으로 송곳처럼 뾰족한 대형을 이루고 돌파를 시도하던 적의 보병대는, 후방에 배치된 기병을 투입하기 위해 아군의 보병대가 길을 여는 그 짧은 순간, 물 흐르듯이 흩어지더니 그야말로 순식간에 종횡 모두 16열의 완벽한 밀집 대형을 구축했다. 그 후 전면에 위치한 몇 열의 병사들은 장창을 정면을 향해 눕혔고, 대열의 뒤로 갈수록 창을 위로 향하게 세워, 세레즈 보병군단은 흡사 한 마리의 거대한 고슴도치처럼 변해 버렸다.


말을 몰아 다가서는 아군의 기병의 첫 번째 열이 쓰러지자 후방에 있던 적의 창날이 다시 정면을 향해 뉘여 진다. 세레즈 군이 공격을 가하고 물러나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 아군은 공격다운 공격은커녕, 마땅한 수세도 갖추지 못하고 맥없이 쓰러져 갔다.


어쩐지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공격 시 적의 군단이 방패 같은 것은 전혀 들지 않고, 갑옷도 그야말로 최소한의 방어를 위한 보호대 수준에 불과하여 이상하게 생각했더니만, 그건 보통 창의 두 배가 넘는 장창을 쥐고도 움직임을 둔하게 하지 않기 위함이었던 모양이다.


섬 국가였던 탓에 지상전에 익숙하지 못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공격술은 들어본 적도 없다. 전형적인 방어진형으로 알려져있는 정방형의 보병 부대로 기병대를 향해 공격을 구사하다니 이는 어지간한 담력과 모험심 없이는 상상조차 불가능한 일이었다.


주변에 있던 부대 사령관들도 나직한 신음성을 터트렸다. 이런 식이라면 기병대는 문자 그대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기병대에 기댄 것 자체가 실수였다. 쉐트인은 자신의 오판을 뼈저리게 후회하며 아랫입술을 피가 나도록 꽉 깨물었다.


"기병대 후퇴! 중보병으로 대치시키도록."



***



"각하!"


전장의 소음을 뚫고 누군가의 다급한 음성이 듀론의 귓가에 다가와 꽂혔다. 그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재빨리 몸을 돌렸다. 멀리서 힐끗 보기에도 창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장교 하나가 급하게 말을 몰아온다.


그는 거의 전속력으로 달려온 말을 멈추기 위해 거세게 고삐를 쥐었다. 그 반동에 말이 앞다리를 들어 올리며 일어섰다. 가까이서 보니 그는 자신이 사령관의 명령을 받아 후방의 보급창을 엄호하라고 보낸 우익의 기병 대장 중 하나다.


"무슨 일이냐?"


아직껏 거세게 숨을 몰아쉬는 말 위에서 그가 예의 굳어진 표정으로 빠르게 답했다.


"식량이 적에게 공격당해 완전히 타버렸습니다. 저희가 도착했을 무렵에는 이미 창고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적군들은 사라진 이후였습니다."


듀론의 표정이 심상찮게 일그러졌다. 보통의 경우 불이 났다면 연기로 알 수 있었을 텐데. 새벽부터 깔려있던 두꺼운 안개 때문인지, 부대 곳곳에 번진 불길 때문인지 후방의 보급창에서 피어올랐을 것이 분명한 연기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그놈들을 한 명도 잡지 못하다니.


"무기창은?"


"다행히 그들은 무기창은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가 이를 갈며 지시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소수 기병을 제외한 분단 전원에게 반전하여 이곳으로 복귀하라 전하라! "



***



"후미에 적의 기병대가 나타났습니다!"


혹시나 하여 적에게 후위 부대가 있을까 하여 전장 너머로 내보냈던 아군의 척후가 완전히 사색으로 변해 달려온다. 내려간 지 채 몇 분도 되지 않아 척후가 돌아온 것으로 미루어 적은 아군의 보병대가 적군을 맞이하여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느라 정신없는 틈을 타 진영 가까이 이동한 모양이었다.


듀론은 그 병사가 가리키는 대로 고개를 들어 전장 너머에 시선을 주었다. 역시 보병대만으로 공격을 그칠 리 없다는 자신의 예상이 여지없이 적중했다.


저 멀리 언덕 위에 세레즈 기마대의 수많은 대열이 코네세타 군을 바라보고 있었다. 움직일 기미 없이 그저 정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도리어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들의 빛나는 투구와 금속 갑옷 보호대, 그리고 막 떠오른 아침 해에 반사되어 빛을 내는 듯한 칼날과 금방이라도 하늘을 찌를 법한 날카로운 창끝이 또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겹겹이 늘어선 세레즈 군의 대열이 언뜻 언덕을 가로질러 끝없이 펼쳐져 있는 듯했다. 그 수가 대체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 순간이었다. 대열의 선두에 서 있던 커다란 검은색 말이 다리를 들어 올리며 벌떡 일어섰다. 멀리 떨어져 있어 들릴 리가 없건만, 그 순간 듀론은 그 거대한 말이 토해내는 거친 울음을 들은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위에 올라타고 있던 이가 검을 힘껏 치켜든 채 먼저 언덕을 미끄러지듯 내닫자, 그 뒤에 늘어서 있던 기병들이 일제히 그를 따라 파도처럼 쏟아져 내렸다. 마치 우레와도 같은 함성을 지르며, 그들은 앞에 거칠 것 없다는 듯 빠른 속도로 질주해오기 시작했다.


후방의 보급창도 전멸했고, 적의 무차별적인 투석과 화공에 아군의 진영도 절반 이상 초토화되었다. 이제 망설일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는 미친 듯 달려오는 적군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악다문 입술 사이로 새벽부터 시작된 공격으로 전부대 안에 진동하는 역한 피비린내가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듀론은 병영에서 총동원한 경기병들에게로 천천히 말머리를 돌렸다.


"죽을 각오로 진지를 사수하고 부대를 엄호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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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2장 전장에 핀 꽃 7화 지원군의 본진 합류(12장 인명록) 19.05.23 414 10 9쪽
74 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19.05.22 613 9 8쪽
73 12장 전장에 핀 꽃 5화 전장의 꽃 19.05.21 434 10 7쪽
72 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19.05.20 536 12 10쪽
71 12장 전장에 핀 꽃 2화 불꽃 같은 여인 19.05.19 426 8 8쪽
70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19.05.18 452 8 8쪽
69 11장 분열의 조짐 7-8화 최종단안(11장 인명록) 19.05.17 440 9 12쪽
68 11장 분열의 조짐 6화 뮤켄의 충고 19.05.16 504 8 9쪽
67 11장 분열의 조짐 5화 패퇴 19.05.15 450 10 7쪽
66 11장 분열의 조짐 3-4화 양동작전 19.05.14 429 10 10쪽
65 1부 11장 분열의 조짐 1-2화 후방기지 괴멸 소식 19.05.13 511 9 11쪽
64 10장 진흙 속의 연꽃 7화 투항 제의 (10장 인명록) 19.05.09 465 8 13쪽
63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19.05.08 519 8 7쪽
62 10장 진흙 속의 연꽃 4화 적의 공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 19.05.07 464 8 8쪽
61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19.05.07 483 7 7쪽
60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19.05.07 480 8 8쪽
59 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19.05.07 525 6 7쪽
58 9장 전설의 시작 7화 조력요청(9장 인명록) 19.05.06 524 7 12쪽
57 9장 전설의 시작 5-6화 전후처리 19.05.06 568 8 12쪽
56 9장 전설의 시작 4화 최초의 승리 19.05.06 551 7 11쪽
»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19.05.05 517 9 9쪽
54 9장 전설의 시작 2화 기습 19.05.04 504 12 9쪽
53 9장 전설의 시작 1화 위장잠입 19.05.03 496 8 10쪽
52 8장 효시 7화 작전계획(8장 인명록) 19.05.02 557 11 12쪽
51 8장 효시 6화 용기,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 19.05.02 539 8 11쪽
50 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19.05.02 486 9 9쪽
49 8장 효시 3-4화 사령관과 참모장 19.05.01 508 11 13쪽
48 8장 효시 2화 전장의 밤 19.05.01 533 10 11쪽
47 8장 효시 1화 행군시작 19.04.30 560 12 11쪽
46 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19.04.30 569 8 11쪽
45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19.04.29 539 11 8쪽
44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19.04.29 558 11 7쪽
43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19.04.28 572 10 7쪽
42 7장 전환점 3화 하크스 지원군 19.04.28 647 11 9쪽
41 7장 전환점 2화 정치적 포석 19.04.27 609 12 10쪽
40 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19.04.27 579 11 8쪽
39 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19.04.26 586 11 8쪽
38 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19.04.26 631 13 9쪽
37 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19.04.25 572 9 7쪽
36 6장 개전 5화 선제공격 19.04.25 625 10 7쪽
35 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19.04.24 638 13 7쪽
34 6장 개전 3화 어머니와 아들 下 19.04.24 572 16 11쪽
33 6장 개전 2화 어머니와 아들 上 19.04.23 597 12 7쪽
32 1부 6장 개전 1화 진상규명요구 19.04.23 631 10 11쪽
31 5장 태풍의 눈 8화 안타미젤의 결심(5장 인명록) +2 19.04.22 696 15 12쪽
30 5장 태풍의 눈 6-7화 안타미젤 왕자 19.04.22 697 10 8쪽
29 5장 태풍의 눈 5화 계륵과도 같은 패 19.04.21 633 12 9쪽
28 5장 태풍의 눈 3-4화 충성서약 19.04.21 734 11 13쪽
27 5장 태풍의 눈 2화 사직서의 파장 19.04.20 743 14 11쪽
26 1부 5장 태풍의 눈 1화 사직원 19.04.19 743 15 7쪽
25 4장 부위정경 7화 생존전략(4장 인명록) 19.04.19 752 16 16쪽
24 4장 부위정경 6화 속고 속이는 싸움 19.04.18 764 19 10쪽
23 4장 부위정경 5화 기만 19.04.18 871 14 13쪽
22 4장 부위정경 4화 공주의 부름 19.04.17 822 19 10쪽
21 4장 부위정경 3화 거리의 아이 19.04.17 852 18 10쪽
20 4장 부위정경 2화 세레즈의 물밑 접촉 19.04.16 829 20 7쪽
19 1부 4장 부위정경 1화 코네세타의 공주 19.04.15 868 19 10쪽
18 3장 폭풍전야 6화 주전론을 위한 막후교섭(3장 인물소개) 19.04.14 906 21 12쪽
17 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2 19.04.13 1,013 21 7쪽
16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2 19.04.12 1,002 23 7쪽
15 3장 폭풍전야 2화 그윈 재상 19.04.11 1,049 23 8쪽
14 1부 3장 폭풍전야 1화 태자의 실종 19.04.10 1,192 21 11쪽
13 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4 19.04.10 1,199 33 8쪽
12 2장 애별리고 6화 고작 마음 하나 +2 19.04.09 1,253 21 9쪽
11 2장 애별리고 5화 이주명령 19.04.09 1,399 26 9쪽
10 2장 애별리고 4화 떨림과 설렘 +4 19.04.07 1,392 25 7쪽
9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2 19.04.05 1,470 24 7쪽
8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2 19.04.04 1,485 28 7쪽
7 1부 2장 애별리고 1화 마음의 향방 19.04.03 1,535 26 7쪽
6 1장 표류 6화 자각 +2 19.04.03 1,647 32 7쪽
5 1장 표류 5화 바다를 닮은 여인 +6 19.04.02 2,070 33 8쪽
4 1장 표류 4화 슈레디안의 고민 19.04.01 2,285 37 8쪽
3 1장 표류 3화 3년만의 손님 19.04.01 2,634 34 7쪽
2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19.04.01 3,541 46 7쪽
1 <제1부 펜데스칼 전쟁> 제1장 표류 1화 난파당한 청년 +4 19.04.01 6,791 6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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