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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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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537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4.05 14:14
조회
1,470
추천
24
글자
7쪽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DUMMY

2장 애별리고





3. 염색





“아이네즈, 이거요.”


성에서 모집한다는 경비병 시험 일정도 알아볼 겸 나갔다 오겠다고 아침 일찍 나선 슈레디안은 돌아오자마자 제법 두둑한 꾸러미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나물을 다듬느라 더러워진 바닥을 치우고 있던 아이네즈는 이제 오냐며 고개를 들다가 목덜미 아래로 확연히 짧아진 슈레디안의 머리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슈레디안, 머리가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아이네즈의 놀란 표정을 보고서도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길고 걸리적거려서 나간 김에 잘랐어요. 안 그래도 매일 빗질하는 것도 귀찮고 거추장스럽던 참이었는데, 머리칼을 팔면 돈을 주겠다고 하잖아요.”


아이네즈는 할 말을 잃었다. 외모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무심한 태도를 보니 그도 사내는 사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라도 살까 싶었는데, 아이네즈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르겠고, 집에 필요한 게 뭔지도 몰라서 그냥 돈으로 가져왔어요. 얼마 안 되지만.”


정체 모를 꾸러미는 머리카락을 판 돈인 모양이었다. 아이네즈는 이럴 때 대체 무어라 말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잠깐의 주저 끝에 그녀는 한숨 같은 어조로 말했다.


“마음은 고맙지만 나한테 주기보다는 슈레디안에게 필요한 것을 사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옷이라든지······. 생각해보면 필요한 게 많을 텐데.”


“나는 이거면 됐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슈레디안은 품 안에서 주먹 크기의 작은 주머니를 꺼냈다.


“그게 뭐예요?”


“황이랑 구운 납 가루랑 생석회 조금이에요.”


대체 무슨 용도로 저런 것을 가져왔나 싶어 아이네즈는 의아한 눈빛으로 슈레디안을 쳐다보았다. 주머니의 매듭을 풀면서 그가 자분자분 말을 이었다.


“장터에 가니 다들 금발을 엄청나게 좋아하더라고요. 장사치들이 머리카락을 팔아볼 생각 없느냐고 계속 붙들고, 어린애들이 자꾸 쫓아다니면서 만지려고 해서 아주 귀찮았어요. 이 동네는 밝은색 머리가 흔치 않나 봐요. 아아네즈, 이 나무그릇 요리에 안 쓰는 거죠?”


“네.”


아이네즈 본인은 물론이거니와 그녀 주위의 대다수가 머리 색이 짙은 건 사실이지만, 성안에 가면 머리 색이 밝은 이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문제는 밝은색이라 하여 다 같은 게 아니란 점이었다. 아이네즈도 슈레디안을 만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문자 그대로 한 올 한 올 금실로 만들어진 것처럼 화사한 금발을 본 적 없었다. 그녀도 볼 때마다 신기하게 여겼으니 사람들의 유별난 반응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럼 나 좀 빌릴게요.”


“그러세요. 근데 어디다 쓰려고요?”


“염색하려고요.”


“뭐를, 설마 머리를요?”


물에 가루를 개는 슈레디안을 보고 아이네즈는 만류할까도 싶었으나 본인이 귀찮아서 그런다는데 어쩌겠는가 싶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네.”


옷감을 염색하는 건 심심찮게 봤지만, 머리를 염색한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실과 비슷한 느낌이라면 색이 입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네즈는 몸을 일으켰다.


“염료가 눈에 들어가면 안 되니까 도와줄게요. 물에 갠 가루를 머리에 바르면 되나요?”


“아, 고마워요. 그리고 눈썹에도요.”


“음, 어차피 그거 나중에 물로 씻어내야 하죠? 그럼 차라리 우물가에서 하는 건 어때요? 그러는 편이 슈레디안도 움직이기 편할 거 같은데.”


“좋은 생각이네요. 내가 의자를 옮길게요. 아이네즈가 그릇을 옮겨줄래요?”


“네. 제가 솔이랑 목에 두를 수건도 챙겨갈게요. 약이 아래로 흐를 수도 있고, 머리칼 전체에 꼼꼼하게 바르려면 손으로 하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거 같아요.”


그들은 염색에 필요한 도구를 다 챙겨서 우물가에 자리 잡았다.


“거기 우물 옆에 의자 놓고 앉아볼래요?”


우물가 근처의 넓은 돌 위에 걸터앉아 들고 온 수건을 길게 꼬면서 아이네즈가 말했다.


“이쯤이면 좋을까요?”


“네, 딱 좋을 것 같네요. 염색약을 바르면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 같으니까.”


수건을 들고 일어난 아이네즈는 의자에 앉은 슈레디안에게 다가섰다. 가까이 다가오자 꽃향기 비슷한 아이네즈의 체취가 은은한 미풍에 실려 코끝을 간질였다. 좋은 향이었다.


아이네즈의 손이 어깨를 지나 목덜미를 스친 순간 슈레디안은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그저 수건을 얼굴 위로 둘러주기 위함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데도 그녀의 손길이 닿은 살갗이 순식간에 열기를 품었다.


아이네즈가 한 걸음 물러나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들여다보았다.


“혹시 어디 아픈 거예요? 얼굴이 좀 붉어진 거 같은데.”


세레즈의 태자로 나고 자라 남들의 시중을 받는 건 일상이었다. 왕성에서 일하는 시녀들 중에는 귀족 출신도 많았고, 개중에는 눈에 띄게 아름다운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에게 시중을 받아도 지금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은 없었다. 화려한 미인들로 가득 찬 사교계에는 아이네즈보다 뛰어난 외모를 지닌 자도 부지기수였다. 그들 가운데는 그의 관심을 갈구하며 접근해오는 이들도 상당했으나 여태까지 그는 그 누구에게도 흔들린 바 없었다. 오로지 아이네즈 뿐이었다, 그에게 떨림과 설렘을 안겨주는 것은.


“아···. 아뇨. 좀, 더운 것 같아서.”


슈레디안은 저의 목소리가 칼칼하게 잠기는 것을 느꼈다.


“그래요?”


이상하다면 이상하게 여길 수 있는 반응이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 아이네즈는 고개를 끄덕인 뒤에 슈레디안이 옷을 더럽히지 않도록 목덜미에 수건을 묶어주었다. 그 후 곧바로 솔에 염색약을 묻혀 머리에 바르기 시작했다.


“어떻게 머리를 염색할 생각을 했어요? 머리 염료도 팔아요? 나는 장터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가루는 대장간과 약재상에 들러 조금씩 샀어요. 납은 녹이 슬면 색이 어두워지니까 염색이 될 거 같았고요. 진짜로 될지 어떨지, 된다면 무슨 색이 나올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한 번 의식하자 계속 그녀의 손길에 민감해졌지만, 슈레디안은 필사적으로 평정을 가장했다.


“가만 보면 참 엉뚱해요, 슈레디안은. ······어때요? 염료를 발라보니.”


“기분이 좀 이상하긴 하네요. 차갑고 흐물거리고 괴상한 냄새도 나고.”


“움직이면 더 흐를 거예요.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닐 것 같지만 좀 참아봐요. 머리는 거의 다 끝났어요. 이제 곧 눈썹을 할 건데, 눈 뜨면 안 되는 거 알죠?”


“네.”


작가의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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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99 연두초록
    작성일
    19.08.23 16:44
    No. 1

    근데 이방인이 작은 읍내시장에 나타나도 괜찮나요?
    잘생긴 금발 청년 소문이 삽시간에 퍼질 것 같은데....
    염색이 뒤 늦은게 아닐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36 창작연
    작성일
    19.08.25 16:20
    No. 2

    예리한 지적 감사합니다. 근데 슈레디안(아체프렌)의 흔적을 남겨둬야 나중에 또다른 주인공이 슈레디안을 찾을 수 있어서 시장에 잘생긴 이방인이 출몰하는 무리수를 두게 되었어요.ㅠㅠ 세심하게 읽어주셔서 감동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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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2장 전장에 핀 꽃 7화 지원군의 본진 합류(12장 인명록) 19.05.23 414 10 9쪽
74 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19.05.22 613 9 8쪽
73 12장 전장에 핀 꽃 5화 전장의 꽃 19.05.21 434 10 7쪽
72 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19.05.20 536 12 10쪽
71 12장 전장에 핀 꽃 2화 불꽃 같은 여인 19.05.19 426 8 8쪽
70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19.05.18 453 8 8쪽
69 11장 분열의 조짐 7-8화 최종단안(11장 인명록) 19.05.17 441 9 12쪽
68 11장 분열의 조짐 6화 뮤켄의 충고 19.05.16 504 8 9쪽
67 11장 분열의 조짐 5화 패퇴 19.05.15 450 10 7쪽
66 11장 분열의 조짐 3-4화 양동작전 19.05.14 429 10 10쪽
65 1부 11장 분열의 조짐 1-2화 후방기지 괴멸 소식 19.05.13 511 9 11쪽
64 10장 진흙 속의 연꽃 7화 투항 제의 (10장 인명록) 19.05.09 465 8 13쪽
63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19.05.08 519 8 7쪽
62 10장 진흙 속의 연꽃 4화 적의 공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 19.05.07 464 8 8쪽
61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19.05.07 483 7 7쪽
60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19.05.07 480 8 8쪽
59 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19.05.07 525 6 7쪽
58 9장 전설의 시작 7화 조력요청(9장 인명록) 19.05.06 524 7 12쪽
57 9장 전설의 시작 5-6화 전후처리 19.05.06 569 8 12쪽
56 9장 전설의 시작 4화 최초의 승리 19.05.06 551 7 11쪽
55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19.05.05 517 9 9쪽
54 9장 전설의 시작 2화 기습 19.05.04 504 12 9쪽
53 9장 전설의 시작 1화 위장잠입 19.05.03 496 8 10쪽
52 8장 효시 7화 작전계획(8장 인명록) 19.05.02 557 11 12쪽
51 8장 효시 6화 용기,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 19.05.02 539 8 11쪽
50 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19.05.02 486 9 9쪽
49 8장 효시 3-4화 사령관과 참모장 19.05.01 508 11 13쪽
48 8장 효시 2화 전장의 밤 19.05.01 534 10 11쪽
47 8장 효시 1화 행군시작 19.04.30 560 12 11쪽
46 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19.04.30 569 8 11쪽
45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19.04.29 539 11 8쪽
44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19.04.29 558 11 7쪽
43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19.04.28 572 10 7쪽
42 7장 전환점 3화 하크스 지원군 19.04.28 648 11 9쪽
41 7장 전환점 2화 정치적 포석 19.04.27 609 12 10쪽
40 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19.04.27 579 11 8쪽
39 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19.04.26 586 11 8쪽
38 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19.04.26 631 13 9쪽
37 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19.04.25 572 9 7쪽
36 6장 개전 5화 선제공격 19.04.25 625 10 7쪽
35 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19.04.24 639 13 7쪽
34 6장 개전 3화 어머니와 아들 下 19.04.24 572 16 11쪽
33 6장 개전 2화 어머니와 아들 上 19.04.23 598 12 7쪽
32 1부 6장 개전 1화 진상규명요구 19.04.23 631 10 11쪽
31 5장 태풍의 눈 8화 안타미젤의 결심(5장 인명록) +2 19.04.22 696 15 12쪽
30 5장 태풍의 눈 6-7화 안타미젤 왕자 19.04.22 697 10 8쪽
29 5장 태풍의 눈 5화 계륵과도 같은 패 19.04.21 633 12 9쪽
28 5장 태풍의 눈 3-4화 충성서약 19.04.21 735 11 13쪽
27 5장 태풍의 눈 2화 사직서의 파장 19.04.20 744 14 11쪽
26 1부 5장 태풍의 눈 1화 사직원 19.04.19 743 15 7쪽
25 4장 부위정경 7화 생존전략(4장 인명록) 19.04.19 752 16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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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4장 부위정경 3화 거리의 아이 19.04.17 852 18 10쪽
20 4장 부위정경 2화 세레즈의 물밑 접촉 19.04.16 829 2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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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3장 폭풍전야 6화 주전론을 위한 막후교섭(3장 인물소개) 19.04.14 907 2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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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2 19.04.12 1,002 23 7쪽
15 3장 폭풍전야 2화 그윈 재상 19.04.11 1,049 23 8쪽
14 1부 3장 폭풍전야 1화 태자의 실종 19.04.10 1,193 21 11쪽
13 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4 19.04.10 1,200 33 8쪽
12 2장 애별리고 6화 고작 마음 하나 +2 19.04.09 1,253 21 9쪽
11 2장 애별리고 5화 이주명령 19.04.09 1,400 26 9쪽
10 2장 애별리고 4화 떨림과 설렘 +4 19.04.07 1,393 25 7쪽
»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2 19.04.05 1,471 24 7쪽
8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2 19.04.04 1,485 28 7쪽
7 1부 2장 애별리고 1화 마음의 향방 19.04.03 1,535 26 7쪽
6 1장 표류 6화 자각 +2 19.04.03 1,647 32 7쪽
5 1장 표류 5화 바다를 닮은 여인 +6 19.04.02 2,070 33 8쪽
4 1장 표류 4화 슈레디안의 고민 19.04.01 2,285 37 8쪽
3 1장 표류 3화 3년만의 손님 19.04.01 2,635 34 7쪽
2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19.04.01 3,542 46 7쪽
1 <제1부 펜데스칼 전쟁> 제1장 표류 1화 난파당한 청년 +4 19.04.01 6,792 6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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