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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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항구 재건
"서둘러라! "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던 분대장 중 하나가 소리를 지른다. 그들의 손짓과 외침에 따라 병사들이 자재들을 짊어지고 이리저리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세레즈 군의 공격으로 불타버린 항구의 재건을 위해 상당수의 병력이 투입되어, 이곳 라셀 항의 공사장은 꽤나 부산스럽다. 많은 병사들이 건너편 숲에서 베어온 나무를 수레로 실어 나르고 있다. 번잡스러운 공사판 한끝에는 선착장을 이루는 임시 다리를 놓는 데 쓰일 널판을 만드는 이들과 다리와 다리 사이로 밧줄 등을 옮길 소형 배를 만드는 이들이 마구 뒤섞여 있다. 하지만 외관상의 번잡함과는 달리 이곳의 작업 속도는 놀라울 만큼이나 빠르게 진척되고 있었다. 첸트로빌 성을 제외한 하크스 곳곳에 퍼져 있는 코네세타 군 전부가 항구의 재건을 위해 끌어 내려졌고, 공략 부대의 병사들 중 일부도 이곳의 인부로 돌려진 것을 감안한다면 작업이 눈에 띄게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무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빨리빨리 움직여! 해가 지기 전에 마쳐야 한다."
분대장들이 다그침이 끊기질 않는다. 며칠 전부터 이곳의 작업 진행 상황을 꼼꼼히 살피고 있는 듀론의 시선 끝에 수레를 이끌고있는 병사들의 모습이 닿는다.
"조심하라고 했잖나! 이런 머저리 같은 놈들!"
항구 한 끝에 잔뜩 쌓아 올려두었던 부교 상판들이 와르르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허겁지겁 그것들을 주워 올리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분대장들의 신경질적인 질타가 떨어진다. 듀론은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며칠 새 새로 세워진 임시 부교 쪽으로 걸음을 옮겨놓았다.
"이대로는 좀 위태롭지 않겠나. "
듀론은 서둘러 세운 작은 다리의 초입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말을 꺼냈다. 바닷물이 부교를 지지하고 있는 들보를 흔들어대고 있다. 상판을 이루고 있는 나무들은 겨우 두 겹에 불과할 뿐이고, 물결에 부딪히는 버팀목은 다른 방비 없이 그저 굵은 밧줄로만 연결되어 있어, 한 눈에도 위태롭기 그지없어 보인다. 단시간 내에 세운 탓도 있겠지만, 임시 변통해 놓은 구석이 눈에 띄게 많아 듀론은 심기가 편치 않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선착장이, 배가 들어왔을 때 지탱할 수나 있을까.
"시간을 허비할 수가 없어 서두르다 보니 좀 허술해 보이는 구석이 있으나... 그래도 보기보다는 튼튼합니다. "
두어 발자국 정도 그 뒤에 서 있던, 이곳의 재건 공사를 감독하고 있는 중급 지휘관 중 하나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런가. "
듀론은 아래를 살펴보느라고 수그리고 있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짤막하게 답했다.
"그건 그렇고 부교 상판을 만들 판자가 부족해 보이던데. "
"예, 상판을 만들기 위한 나무들은 가까운 숲에서 충당하고 있습니다만. 자재를 옮길 부선도 만들어야 하고 버팀목 역할을 할 들보들도 필요한 만큼 앞으로는 좀··· "
"작업이 일시 지연되더라도 인력의 일부를 영지 안쪽으로 돌리도록 하게. 자재가 있어야 앞으로의 일을 진행시켜 갈 것 아닌가. 내 오늘 공략 부대로 돌아가면 클리어트 장군께 말씀드려 인원 보강을 청해보지. 그 외 달리 필요한 게 있던가? "
"튼튼한 동아줄이 모자랍니다. 앞으로 다리를 몇 개 더 세우려면 몇천 미터는 필요할 터인데. "
"그렇겠지. 그러고 보니 닻도 필요하겠군. "
듀론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놓았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걸어가던 그가 문득 시선을 돌려 이곳의 책임자를 바라보며 한 마디 더 늘어놓았다.
"그리고 며칠 새에 병사들이 너무 많이 지친 것 같더군. 무리하게 몰아치지는 말게나. 지친 몸으로 움직여 봤자 능률이 안 오르니까. 알겠나. "
"예, 그리 조처하겠습니다. "
듀론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상대의 대답을 흘려 듣고는 눈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붉게 노을진 하늘이 차츰 어두워지며 저녁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4. 이반의 조짐을 보이는 코네세타 후방
"그게 무슨 병신 같은 소리야! "
라콘 사령관은 탁자 위를 소매로 거칠게 쓸어버리곤 벌떡 일어섰다. 그 서슬에 밀려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잉크와 펜, 그리고 각종 서류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전령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미처 대꾸할 생각도 못한 채, 바닥에 어지럽게 흩어진 서류들을 망연히 쳐다보고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봐라. "
대장군 라콘 바로 옆에 서 있던 젊은 장수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 차분한 목소리에 용기를 얻어 겨우 고개를 들어올린 전령은 침을 삼키며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전 자세한 상황은 잘 모릅니다. 화약이 워낙 여기저기 산발적으로 터지고 있어 그 위치 파악이 어렵고, 또 막상 해군들을 이끌고 그 부근에 가 보면 부서진 선체 조각 외에 별다른 게 없어 난감하기 그지 없다고, 총사령관 각하께 그리 전해 올리라는 블라이드 장군의 지시를 받았을 뿐입니다. "
"지금 그걸 보고라고 하는 건가! "
전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콘이 벽력같이 소리를 내질렀다. 전령은 대장군의 험악한 기세에 움찔하며 한층 더 자라목이 되어 고개를 떨굴 뿐이다.
"해군 사령관장은 뭘 하고 있는 겐가! 대체, 아군이 장악하고 있는 해상에서, 적이 갖고 있을 리가 없는 화약이 줄줄이 폭발하고 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상황이란 것인가. "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고개를 수그리고 있는 여러 장군을 노려보며, 라콘이 소리를 질러댔다.
"클리어트 장군이라면, 지금 하크스에서 공성군을 지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
무겁게 가라앉은 침묵 사이로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흩어졌다. 어이없는 대답에 잠시 멍해져 있던 대장군이 다시 한번 벌컥 화를 냈다.
"뭣이! 이 시기에 하크스 따위에 가 있다고? 부사령관쯤 되는 자가 그리 앞뒤도 못 가린단 말이냐. 당장 전령을 보내 그 얼간이를 소환해라! "
격분한 총사령관의 고함이 막사 안을 뒤집어 버릴 듯 쩌렁쩌렁하게 울려댄다.
"진정하십시오. 지금 부사령관에게 소환 명령을 내리는 것에 무리가 있다는 것은 각하께서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
늘어서 있던 장군들 중 하나가 앞으로 걸어 나오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크라테에서 하크스까지 이르는 후방 부대를 총괄하는 클리어트를 대신하여, 소강상태에 빠진 몇몇 전선의 부대를 수습해서 본진으로 이동해 온 아르닐 장군이다. 막사 안에 있는 여러 장군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린다. 아르닐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대장군의 지시에 이의를 단 것에 대한 사죄를 표하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부사령관이 첸트로빌 성의 공략에 몰두하고 있는 것은 크게 나무라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카르테와 라셀 항이 적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미루어 알 수 있듯, 현재 후방에서는 끈질기게 버티고 있는 첸트로빌 농성군의 존재에 힘입어 산발적인 저항이 끊기지 않고 있습니다. 부사령관이 그곳의 지휘관인 듀론 장군의 병력 증강 요청을 수락하여 병사들을 이끌고 몸소 그리로 내려간 것은, 첸트로빌의 거취에 따라 후방의 상황이 유동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
그는 험악하게 자신을 노려보는 대장군의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착하기 그지없는 태도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미 보고를 받아 아시겠지만, 테세르 장군 휘하의 원조 부대가 적의 급습으로 붕괴된 이후 그에 대한 총괄책임까지 클리어트 장군이 전부 떠맡고 있었습니다. 카르테의 부대가 전멸하다시피 한 이후 지금까지 하크스에서 펜데스칼에 이르는 삼십 만 대군이 보급 문제에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적과 대치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부사령관의 신속한 업무 처리 능력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얼어붙은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말을 멈춘 아르닐은 잠시 숨을 골랐다가, 나직한 목소리로 정리하듯 덧붙였다.
"현재 클리어트 장군이 해군 통솔에 일시적인 미비점을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에게 주어진 업무량이 지나치게 많아서이지, 무능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총사령관께서 부사령관에게 얹힌 과중한 부담을 줄여주시면, 자연히 클리어트 장군의 주의와 관심이 해군까지 미칠 것입니다. 하오니 이번 일만은 관대히 살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호통이나 고함 없이 불편한 침묵만 지키고 있던 라콘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무뚝뚝하게 내쏘았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눈에 띄게 가라앉아 있었다.
"할 수 있는 일만 해서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나?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전쟁이다. "
대장군의 나직한 일갈에 아르닐이 시선을 떨어뜨리자, 막사 안에는 다시 숨막힐 것 같은
고요함이 밀려왔다. 불안스럽게 흐르는 공기 사이로 제크로웰의 차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각하, 소관의 생각으로도 부사령관에게 주어진 책임이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아르닐 장군의 의견대로 인원 보강을 해주어 과한 부담에서 해방시켜 줄 수 있다면 그 이상의 방법이 없겠으나 현 상황으로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니 후방에 있는 아군의 사기를 감안해서라도, 이번 일로 부사령관을 엄중히 문책하시는 것만은 자제하시는 편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
대장군은 못마땅한 기색으로 코네세타 군 본진 전군(前軍) 1번대의 사령관이자 자신의 외조카이기도 한 제크로웰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나 라콘은 그에 대해 뭐라고 나무라지 않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채 양미간을 찌푸리며 뭔가 생각에 잠겼다. 그는 짧은 한숨을 내뱉은 뒤 스스로의 생각을 잘라내듯 말했다.
"하지만 후방의 정리가 시급한 것만은 사실이다. 문책까지는 아니더라도, 재촉 서한 정도는 보내 주의를 환기시켜 주어야겠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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