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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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전환점
세레즈력 386년 11월,
세레즈, 하크스 영지 구원군을 조직하여 전쟁의 전환점을 마련하다.
제국력 연대기 섭정공 세느비엔느 열전 발췌
1. 연전연패
그윈 재상은 군부대 사령관 명단과 그 배치표, 병사들의 편성도를 여왕이 알아보기 쉽도록 기다란 탁자 위에 차례로 늘어놓으며 간략한 설명을 덧붙였다.
“폐하의 분부대로 남부 영지 최종 파견대의 병력 편성은 총사령관인 안타미젤 전하를 중심으로 예하 부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데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부사령관 없이 서열이 동등한 부대 사령관들을 열 한 명 두어······.”
세느비엔느는 재상의 설명을 흘려들으며 자신 앞에 놓인 지휘 체계 구성안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과연 재상이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을 정도로, 전쟁의 모든 공이 안타미젤에게 집중되게 하라는 자신의 요구가 더할 나위 없이 충실히 반영된 구성안이다.
“부사령관과 참모장의 부재로 인하여 작전 수행의 어려움은 없겠소? 총사령관으로 내정된 폰다 대공이 현재로서는 유일무이한 왕위 계승자라고는 하지만, 아직 유소한 데다가 전쟁 경험이 없어 그 보좌역이 한층 더 중요할 터인데. ”
재상은 치미는 웃음을 헛기침으로 누르고는 이러한 질문에 대비하여 미리 마련해 두었던 답변을 하기 위해 주름진 입을 움직였다.
“참으로 지당하신 지적이라 사료되옵니다, 폐하. 하오나 그에 대비하여 참모진의 구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으니 과히 심려치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또한 전하께서 계실 중앙군의 사령관으로 하여금 군사적인 면에 있어 전하의 조언자 역할을 하도록 할 생각이옵니다. 그리하면 대외적으로는 권력이 분리되지 아니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참모장과 부사령관의 책무를 대리할 인물이 생겨나는 것이지요. ”
“그렇다면 그만큼 중앙군 사령관의 인선에 주의를 더 기울여야 하겠군. 책임이 막중한 자리이니 말이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지휘 체계도에 시선을 주었다.
“음······. 프델로드 장군이 중앙군 사령관으로 내정되어 있군. ”
“예, 폐하. 그 인물됨이나 전적과 명망으로 미루어, 출전군 장수들 가운데 프델로드 장군이 가장 적임자인 듯하여 소신이 그리 이름을 올렸사옵니다만, 혹 폐하께서 따로 염두에 두신 자라도 있는 것이옵니까?”
그녀는 혹시나 하여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사를 타진해 보는 재상에게 스치듯 시선을 주며 희미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아니오. 짐 역시 프델로드 장군이 매사에 신중하며 공평무사한 인물이라 들어왔으니 이대로 시행토록 하오.”
“예. 그리하겠사옵니다. ”
가볍게 허리를 굽혀 예를 차린 후, 재상은 차분한 음성으로 여왕을 다시 한번 불렀다.
“황공하오나 소신이 폐하께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사옵니다. ”
여왕은 떨어뜨렸던 시선을 들어 재상을 바라보았다. 말해 보라는 허락을 얻은 그는 망설임 없이 용건을 꺼냈다.
“하크스 문제는 어찌 해결하실 계획이십니까?”
세느비엔느의 얼굴이 일시 일그러졌다가 곧 제자리를 찾았다.
“하크스라니? 그것은 내 로엘 공의 진언을 받아들여 일찍이 원군을 파병했으니 이미 끝난 문제 아니오.”
세느비엔느 여왕이 하크스 영주의 가신인 에드윈 그란델의 보고를 듣고 리이프네히트 장군 휘하에 군사 일만 오천여 명을 하크스로 내려보낸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
겨우 그 정도 병력으로 해상 전투에서 승리하여 거칠 것 없이 몰려드는 적의 대군을 막아내기에는 중과부적이었고, 결국 지원병 부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패퇴하고 말았다. 그 이후 적군은 남부에 있는 상비병들 및 제1진과의 접전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두며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서 펜데스칼 영지까지 진입해 있었다. 파죽지세로 몰고 들어오는 그들을 저지하고자, 여왕은 결국 수도에 집결해 있는 병력을 거의 총동원하다시피 하여 남부 영지 최종 파견대라는 이름으로 근 이십 여만의 대군을 조직하기에 이른 것이다.
“물론 하크스 영지 상당 부분과 로크라테 전부가 적의 점령하에 들어간 실정을 고려해볼 때 하크스에 지원군을 증강하여 보내는 것은 상황적으로 늦은 감이 없진 않습니다만, 영주인 로엘 공이 아직 적에게 저항하고 있다는 것은 폐하께서 간과하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옵니다.”
일만 오천 명의 병력으로도 영지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현 상황에서 농성을 하고있는 하크스 영민을 돕는다는 명분 아래 또다시 원군을 파병하는 것이 탐탁하지 않아 애써 외면하려 했던 화두가 다시 한번 불거져 나왔다. 세느비엔느는 불편한 심기를 대변하듯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아시다시피 로크라테 영주인 콜틴 경이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항복을 선언함으로써······.”
“그만하시오. 내 그 정도면 충분히 이해했으니.”
여왕은 신경질적인 얼굴로 재상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버리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하오나 폐하,”
다시 한번 이어지는 그의 발언에 그녀는 결국 탁자를 거세게 내리치며 호통을 치고 말았다.
“내 재상에게 그만두라 이르지 않았소! 짐은 로크라테에 대해서는 그 어느 것도 듣고 싶지 않소. ”
과할 정도로 예민한 대응이었으나, 재상은 그런 그녀의 반응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사실 그녀가 아니라 그 누구라 해도, 콜틴처럼 자신의 충실한 신하이자 대변자이기를 자처했던 인물이 적군이 영내로 들어온 지 나흘도 못 되어 적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접한다면 역정이 날 수밖에 없었다.
밀려드는 적군을 환영하듯 성안 가득 백기를 꽂는 것으로 모자라 그가 아무 조건 없이 완전한 항복을 선언하기까지 나흘 동안 코네세타와 소규모의 접전조차 시도해본 적 없다는 후문까지 나돌면서 여왕은 한층 더 큰 충격과 배신감에 몸서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분하고 화가 나서 잠 못 드는 밤이면 사태가 진정되는 대로 콜틴을 경질하고 말리라고 그녀는 수차례 다짐하곤 하였다.
“어쨌든 현재 하크스 영주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함 없이 다수의 코네세타 군을 상대로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폐하께서 하크스에 지원군을 파견하는 것은 백성들을 위로하고 병사들을 격려하는 의미임과 동시에 핍박받는 남부 영지에 폐하의 성총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세느비엔느는 가만히 탁자 모서리를 탁탁 두드리다가 못마땅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재상은 이 일이 실제적으로 하크스 영지 수복에 얼마나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오?”
여왕답지 않은 질문이었다. 어차피 여왕에게 있어서 이 전쟁은 안타미젤 왕자를 태자 자리에 안착시키기 위한 요란한 정치적 선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던가. 재상은 입을 다문 채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하크스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면 몇만 명을 가지고도 모자라오. 하지만 현시점에 그곳에 많은 병력을 투입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가 아니겠소? 어차피 도움이 못 될 거라면 쓸데없는 병력 낭비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영민하옵신 폐하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굳이 손실이라고만 생각하시는 것이옵니까? 넓게 보시옵소서. 현재의 자그마한 손해는 훗날 남부의 민심 회복과 백성들의 단결이라는 막대한 이득으로 변하여 폐하께 되돌아올 것입니다.”
세느비엔느는 낮게 침음했다. 재상의 발언이 일리가 있다는 것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겨우 그런 이유로 전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귀중한 병력의 일부를 사지로 들여보내야 하는가. 어쩔 수 없이 밀려드는 회의에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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