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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와 패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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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9.04.01 11:16
최근연재일 :
2020.02.09 22:13
연재수 :
271 회
조회수 :
116,492
추천수 :
2,679
글자수 :
1,047,762

작성
19.05.07 19:37
조회
482
추천
7
글자
7쪽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DUMMY

3. 후방기지 카르테섬






비가 내린다.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무심히 두들기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창틀 너머의 거센 바람 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찾아오는 폭우는 그다지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선전포고와 함께 이루어진 대규모의 원정. 그 출정군의 하나로 조국 코네세타를 떠나온 지도 어느덧 반년이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출병 이후 지금까지 흘러간 날들을 헤아려 보던 페르겐드의 입가에 문득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 전투 기회가 거의 없는 후방 원조 부대에 소속되어 있는 그로서는, 이렇듯 따로 날이 가는 것을 세어 보지 않는 한 시간이 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기 힘들었다.


엄연히 적의 영토인 이곳 카르테 섬에 도착한 이후에도 페르겐드의 일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상관을 보좌하고, 전황을 보고하고, 원조 선단의 물품을 구별하여 그 목록을 작성하고, 군수품의 보관 상태를 점검하고, 필요한 물품들을 각 부대에 적절히 배급하는 것을 검사하는 등, 그의 임무는 조국에서 하던 것과 전혀 다를 것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작업이었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일의 규모가 확대되었다는 것뿐이랄까.


페르겐드는 시선을 들어 성 너머 검푸른 바다를 쳐다보았다. 사납게 일렁이는 파도가 위태롭게 서 있는 이 성을 잡아먹을 것처럼 난폭하게 부딪혀온다.


‘바람이 너무 거센데. 보아하니 금새 그칠 비 같지도 않고. 역시 나머지 것들도 성안으로 들여놓으라고 할 걸 그랬나.’


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음, 배 안에 내버려두었던 것들 중에 습기가 차면 곤란해지는 게 뭐가 있더라···?’


"페르겐드! "


약간 고조된 듯한 상관의 목소리에 그는 흠칫하여 뒤를 돌아봤다. 이 카르테 성의 총책임자이자, 코네세타 군 후방 원조 부대 사령관인 시든 테세르 장군이 회색 콧수염을 매만지며 다소 못마땅한 눈초리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 건가? 몇 번을 불러도 모르니, 원. "


숙인 머리 너머로, 상관이 나직하게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


아무래도 대답을 잘못한 것 같다. 자신을 향한 상관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딱딱하게 굳어 있다.


테세르 장군은 시선을 잠시 돌렸다가 낮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어제 도착한 원조 선단의 물품 목록을 작성해 두라 했었지. 그것을 이리 달라고 했네."


테세르 장군의 날카로운 얼굴은 어느덧 평상시의 근엄한 표정으로 되돌아 있었다. 페르겐드는 자신이 들고 있는 서류철을 내려다보고는 민망한 기색으로 다시 고개를 떨궜다.


"예, 여기 있습니다. "


말없이 그것을 받아 들며, 테세르는 다시 한번 혀를 찼다. 눈앞에 서 있는 이 청년이 유능한 부관이라는 것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도합 30만에 이르는 대군의 보급을 총괄하는 카르테 후방기지의 업무량은 전선에 있는 행정 장교나 참모들에 업무량에 감히 비할 바가 되지 않는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틀도 못 버티고 쓰러지고 말 만큼 많은 일을 맡겨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능란하게 해치우면서도, 자신의 부관 역할까지 빈틈없이 해내는 페르겐드 아닌가. 그가 코네세타 전군을 통틀어도 열 손가락 안에 들만큼 신속하고 정확한 처리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테세르는 진작부터 알아보았고, 그 때문에 벌써 삼 년째 그를 자신의 전속 부관으로 쓰고 있었다. 하지만 매우 유감스럽게도 페르겐드는 어떻게 보아도 참모직과는 그다지 어울린다고 할 수 없을 감상적인 성격의 소유자였고, 그 점은 도리어 그의 뛰어난 능력과 대비되어 한층 더 테세르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곤 했다.


"몸이 안 좋으면 차라리 들어가 쉬게. "


지난 삼 년간 무수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칠 수 없었던 그 성격이 이제 와 잔소리 몇 마디 에 달라질 것도 아니고 하여, 테세르는 그렇게 내뱉었다. 물론 딴생각에 사로잡혀 방안을 하릴없이 서성이는 페르겐드 때문에 자신마저 주의가 산만해지는 것이 더 큰 이유였지만 말이다.


“아닙니다, 각하. 제가 잠시 다른 생각을 하여 본의 아니게 심려를 끼쳤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


"그럼 이걸 좀 정리하게. 거기 앉아서. "


부관이 서류더미를 들고 탁자에 앉는 것을 확인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는 책상 쪽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그는 장수층이 풍부하다는 코네세타에서도 굴지의 군사 행정 전담자라는 평을 받고있는 자답게, 이내 능란한 솜씨로 부관이 작성한 목록에서 각 부대에 필요한 물품과 수량을 계산해 나갔다.


이제 막 마흔이 조금 넘은 이 사내는 군수품을 관리하고, 언제 어느 부대에 무엇이 얼마만큼 필요한가를 간파하는 데 비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가하지 않고서도 상급 장수의 자리에 오른 그를 비방하는 무리도 적지 않았으나, 그들 역시 그가 없었다면 코네세타 군으로서도 보급 문제에 한층 더 골머리를 앓았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역시 그 일이 여파가 크군. "


시든 테세르 장군이 책상 위에 정리된 서류를 탁 소리 나게 던지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 바람에 종이더미 맨 위에 놓여 있던 문서 한 장이 책상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페르겐드는 얼른 일어나 바닥에 떨어진 서류를 주워 올리며 짧게 반문했다.


"무슨 일 말씀입니까? "


"아아. 첸트로빌 공략부대가 급습당한 것 말일세. "


페르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공략부대의 식량창이 초토화되지 않았나. 하지만 당시에는 딱히 그 부대에 보낼 식량이 마땅찮아서 로크라테에서 조달하게 했었지. 그게 문제가 되었나 보네. ”


테세르 장군은 펜데스칼로 이동을 끝낸 본진의 총사령관인 크리스토퍼 라콘 대장군으로부터 도착한 서한을 책상 앞으로 쭉 내밀며 말을 이었다.


"로크라테 영주가 그 일을 핑계로 더 이상 펜데스칼에 있는 아군의 본진에 군수품을 대지 못하겠다고 한 모양이야. 여기 대장군으로부터 식량 원조를 요구하는 서한이 도착했네. "


그는 부관의 시선이 대장군의 서한에 꽂히는 것을 응시하며 약간 착잡한 듯 말을 이었다.


"일단 급한 대로 본국에서 도착한 식량들을 긁어모아 급히 펜데스칼로 올려보내야겠어. 로크라테 영주를 설득하는 건 그 이후의 문제가 될 테지. 강요한다 해서 쉽사리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니까. "


테세르는 고개를 돌려 창가 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여러 가지 상념을 끊어내듯 단호한 음성으로 지시했다.


“날이 험하긴 하지만, 서둘러야겠네. 부사령관과 참모들에게 이리 오라는 전갈을 보내도록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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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12장 전장에 핀 꽃 7화 지원군의 본진 합류(12장 인명록) 19.05.23 414 10 9쪽
74 12장 전장에 핀 꽃 6화 출격요청 19.05.22 613 9 8쪽
73 12장 전장에 핀 꽃 5화 전장의 꽃 19.05.21 434 10 7쪽
72 12장 전장에 핀 꽃 3-4화 이반의 조짐 19.05.20 536 12 10쪽
71 12장 전장에 핀 꽃 2화 불꽃 같은 여인 19.05.19 425 8 8쪽
70 12장 전장에 핀 꽃 1화 굳건한 성벽 19.05.18 452 8 8쪽
69 11장 분열의 조짐 7-8화 최종단안(11장 인명록) 19.05.17 440 9 12쪽
68 11장 분열의 조짐 6화 뮤켄의 충고 19.05.16 503 8 9쪽
67 11장 분열의 조짐 5화 패퇴 19.05.15 450 10 7쪽
66 11장 분열의 조짐 3-4화 양동작전 19.05.14 428 10 10쪽
65 1부 11장 분열의 조짐 1-2화 후방기지 괴멸 소식 19.05.13 510 9 11쪽
64 10장 진흙 속의 연꽃 7화 투항 제의 (10장 인명록) 19.05.09 465 8 13쪽
63 10장 진흙 속의 연꽃 5-6화 접전 19.05.08 518 8 7쪽
62 10장 진흙 속의 연꽃 4화 적의 공격에 대처하는 각자의 자세 19.05.07 464 8 8쪽
» 10장 진흙 속의 연꽃 3화 후방기지 카르테 19.05.07 483 7 7쪽
60 10장 진흙 속의 연꽃 2화 이해 19.05.07 479 8 8쪽
59 1부 10장 진흙 속에 핀 연꽃 1화 불만 19.05.07 524 6 7쪽
58 9장 전설의 시작 7화 조력요청(9장 인명록) 19.05.06 523 7 12쪽
57 9장 전설의 시작 5-6화 전후처리 19.05.06 568 8 12쪽
56 9장 전설의 시작 4화 최초의 승리 19.05.06 550 7 11쪽
55 9장 전설의 시작 3화 교전 19.05.05 516 9 9쪽
54 9장 전설의 시작 2화 기습 19.05.04 504 12 9쪽
53 9장 전설의 시작 1화 위장잠입 19.05.03 496 8 10쪽
52 8장 효시 7화 작전계획(8장 인명록) 19.05.02 556 11 12쪽
51 8장 효시 6화 용기, 혹은 이길 수 있다는 신념 19.05.02 539 8 11쪽
50 8장 효시 5화 아나브릴 방어군에서 얻은 정보 19.05.02 485 9 9쪽
49 8장 효시 3-4화 사령관과 참모장 19.05.01 508 11 13쪽
48 8장 효시 2화 전장의 밤 19.05.01 533 10 11쪽
47 8장 효시 1화 행군시작 19.04.30 560 12 11쪽
46 7장 전환점 7화 최초의 동료(7장 인명록) 19.04.30 568 8 11쪽
45 7장 전환점 6화 입바른소리 19.04.29 538 11 8쪽
44 7장 전환점 5화 보이지 않는 벽 19.04.29 558 11 7쪽
43 7장 전환점 4화 출전령 19.04.28 571 10 7쪽
42 7장 전환점 3화 하크스 지원군 19.04.28 647 11 9쪽
41 7장 전환점 2화 정치적 포석 19.04.27 609 12 10쪽
40 1부 7장 전환점 1화 연전연패 19.04.27 579 11 8쪽
39 6장 개전 8화 승진 거절(6장 인명록) 19.04.26 585 11 8쪽
38 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19.04.26 631 13 9쪽
37 6장 개전 6화 개전 이후 19.04.25 572 9 7쪽
36 6장 개전 5화 선제공격 19.04.25 625 10 7쪽
35 6장 개전 4화 선전포고 19.04.24 638 13 7쪽
34 6장 개전 3화 어머니와 아들 下 19.04.24 572 16 11쪽
33 6장 개전 2화 어머니와 아들 上 19.04.23 597 12 7쪽
32 1부 6장 개전 1화 진상규명요구 19.04.23 630 10 11쪽
31 5장 태풍의 눈 8화 안타미젤의 결심(5장 인명록) +2 19.04.22 695 15 12쪽
30 5장 태풍의 눈 6-7화 안타미젤 왕자 19.04.22 697 10 8쪽
29 5장 태풍의 눈 5화 계륵과도 같은 패 19.04.21 633 12 9쪽
28 5장 태풍의 눈 3-4화 충성서약 19.04.21 734 11 13쪽
27 5장 태풍의 눈 2화 사직서의 파장 19.04.20 743 14 11쪽
26 1부 5장 태풍의 눈 1화 사직원 19.04.19 743 15 7쪽
25 4장 부위정경 7화 생존전략(4장 인명록) 19.04.19 752 16 16쪽
24 4장 부위정경 6화 속고 속이는 싸움 19.04.18 763 19 10쪽
23 4장 부위정경 5화 기만 19.04.18 871 14 13쪽
22 4장 부위정경 4화 공주의 부름 19.04.17 821 19 10쪽
21 4장 부위정경 3화 거리의 아이 19.04.17 852 18 10쪽
20 4장 부위정경 2화 세레즈의 물밑 접촉 19.04.16 829 20 7쪽
19 1부 4장 부위정경 1화 코네세타의 공주 19.04.15 868 19 10쪽
18 3장 폭풍전야 6화 주전론을 위한 막후교섭(3장 인물소개) 19.04.14 906 21 12쪽
17 3장 폭풍전야 4화 밀실정치 下 +2 19.04.13 1,013 21 7쪽
16 3장 폭풍전야 3화 밀실정치 上 +2 19.04.12 1,002 23 7쪽
15 3장 폭풍전야 2화 그윈 재상 19.04.11 1,048 23 8쪽
14 1부 3장 폭풍전야 1화 태자의 실종 19.04.10 1,192 21 11쪽
13 2장 애별리고 7화 이별(1-2장 인물소개) +4 19.04.10 1,199 33 8쪽
12 2장 애별리고 6화 고작 마음 하나 +2 19.04.09 1,252 21 9쪽
11 2장 애별리고 5화 이주명령 19.04.09 1,399 26 9쪽
10 2장 애별리고 4화 떨림과 설렘 +4 19.04.07 1,392 25 7쪽
9 2장 애별리고 3화 염색 +2 19.04.05 1,470 24 7쪽
8 2장 애별리고 2화 현기증 +2 19.04.04 1,484 28 7쪽
7 1부 2장 애별리고 1화 마음의 향방 19.04.03 1,534 26 7쪽
6 1장 표류 6화 자각 +2 19.04.03 1,647 32 7쪽
5 1장 표류 5화 바다를 닮은 여인 +6 19.04.02 2,069 33 8쪽
4 1장 표류 4화 슈레디안의 고민 19.04.01 2,284 37 8쪽
3 1장 표류 3화 3년만의 손님 19.04.01 2,634 34 7쪽
2 1장 표류 2화 신분 은폐 19.04.01 3,541 46 7쪽
1 <제1부 펜데스칼 전쟁> 제1장 표류 1화 난파당한 청년 +4 19.04.01 6,791 63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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