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개전 7화 뮤켄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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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개전
7. 뮤켄 장군
“하크스 영지에 지원병을 파견하는 일은 말씀하신 대로만 하면 되겠습니까. ”
국무 대신이 나간 문가를 바라보고 있던 재상이 여왕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느릿한 어조로 물어왔다. 이미 결정된 사안을 다시 한 번 입에 담는 것은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한 재상 특유의 행동이다. 여왕은 그런 그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며 입을 열었다.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일단은 수도에 집결해 있는 병력 중 일만 오천 가량을 추려서 보내도록 하오. 그란델인가 하는 자에게 안내역을 맡기면 될 테니 그 외 따로 신경 쓸 문제는 없을 게요. ”
“황공하오나 원병대 사령관직에 리이프네히트 장군을 임명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 합니다만. ”
여태까지 한마디도 없이 서 있던 수도방위 사령장관 밀시언 장군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 자는 아직 젊어 실적도 경험도 부족합니다. 하크스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는 사령관 자리에 조금 더 명망있는 장수를 파견하심이 옳지 않을까 합니다만. ”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의견이었지만, 특별히 기분이 언짢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그 목소리에서 절로 느껴지는 신중함의 울림 떄문이리라. 지금 그의 태도가 지극히 밀시언 장군답다고 생각하며 세느비엔느는 희미하게 웃었다.
“물론 경의 의견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긴 하나, 어차피 원병대는 하크스 영주의 지휘 아래 들어가야 하지 않겠소? 상위 계급 장수가 내려가서야 지휘권이 분열될 가능성이 크지 않겠는가. 그러한 사태를 차단하고자 내 부러 그 자를 고른 거요. 이 문제는 이 선에서 접어두기로 하지. ”
세느비엔느는 탁자 한 끝에 접혀 있던 거대한 지도를 탁자 위에 확 펼치며 물었다.
“그래, 그대들은 적군이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 같소? ”
“···현재 상정해 볼 수 있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 서있던 재상이 메마른 음성으로 여왕의 질문에 대해 운을 떼어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경로는 하크스와 로크라테, 펜데스칼, 그레안 등의 남부의 곡창 지대를 따라 움직이며 서서히 도성으로 북상하는 것입니다. 이는 보급선의 방대한 연장이라는 그들 스스로의 난점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 그들이 현실적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경로라 할 수 있습니다. ”
그윈 재상의 손가락은 지도 위에 표시되어 있는 남부 영지들을 따라 손가락을 가로로 길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나 코네세타 군이 우리 예상대로 움직여 주리라고 단언할 수도 없고, 적의 병력수나 최고 지휘부 등에 대해서도 아직 정보가 입수되지 않은 시점이니 만큼, 폐하께서는 가능한 모든 변수를 고려하셔야 할 것입니다. 하오니 적군이 아나브릴과 롤리암을 거쳐 도성으로 곧장 진격해 올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만은 없지요. ”
재상의 손가락이 남부 영지의 동쪽 끝에 있는 하크스 영지에서 중부 서쪽 끝에 위치한 도성 다이레비드까지 대각선으로 쭉 따라올라가는 것을 응시하며 여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건 아닐 거요. ”
애초부터 공격의 목표가 도성이었다면 그들은 애써 하크스로 진입해 올 필요도 없었다. 에베리나 해를 우회해 오면 바다와 접한 성채 도시 다이레비드를 곧장 공격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강성한 해군으로 유명한 코네세타가 그 점을 무시하고 하크스 영지 앞 연근해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이는 그들이 왕실의 항복에 앞서 남부 영지의 정복으로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혜택을 바라고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이미 하크스 영지로 진입하기로 결정한 마당에 이제 와서 군수물자의 조달이 용이한 평야 지대를 버리고 산지가 밀집되어 있는 아나브릴을 통과하는 저돌적인 방법을 선택하리라 생각하기는 어려우나, 일단 재상의 의견대로 그들이 쓸데 없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아 둘 필요는 있을 듯 하군. ”
그녀는 밀시언 장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밀시언 장군.”
“예, 폐하.”
“우리가 경황없이 적을 맞아 그 대처가 조금 늦어진 감은 없지 않으나 짐은 아군의 저력을 믿고 있소. 코네세타의 오합지졸들이야 짐의 원조 병력과 남부 영지에 미리 파견해 두었던 제 1진 만으로도 막아낼 수 있겠으나, 재상의 말처럼 조심해 두어 나쁠 것은 없지 않겠소? 그러니 장군은 수도 방위 병력 2만과 이틀 내로 당도할 중북부 지원군 3만을 더하여 제 2진을 맡도록 하시오. ”
“하크스와 아나브릴 영지 사이의 경계를 방비하라는 말씀이십니까. ”
“그렇지. 행여 코네세타 군이 하크스 영지를 통과한다 하여도 도성인 다이레비드만큼은 안전하게 지켜져야 하지 않겠소? 장군이 아나브릴 영지에서 적군의 북진 가능성을 철저히 봉쇄해 준다면, 그들은 하크스 안에 갇히게 될 것이오. 지금 짐이 그대에게 맡기는 일은 광의의 수도 방위라는 것을 명심토록 하시오."
“소관 비록 미력하오나 최선을 다해 폐하의 분부를 받잡을 것입니다. ”
밀시언 장군은 절도 있게 답하고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 외 달리 하교하실 일은 없사옵니까. ”
“장군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되어 내 경에게 조언을 하나 요청하려 하오. ”
“말씀하시옵소서. ”
“그대가 아나브릴 영지로 내려가면 수도 방위를 맡고 있는 장군의 위치가 공석이 될 것이오. 물론 부사령관에게 일시적으로 그 업무를 대리하여 처리하게 하는 방편도 있겠으나, 이처럼 상황이 안 좋은 터에 한 나라의 수도 방위 사령관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대한 인사를 일시방편으로 처리하기는 꺼려지는구려. 후임으로 적절한 인물이 없겠는가. ”
“···신의 소견으로는 뮤켄 장군이 어떨까 하옵니다만. ”
“뮤켄?”
당연히 현재 수도 방위부 부사령관이나 참모장을 추천하리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되묻는 그녀의 음성에는 의아함을 넘어선 약간의 당혹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를 향한 밀시언 장군의 어조는 여전히 신중하면서도 확고했다.
“예, 수도 방위군 참모부 서열 3위의 장군입니다. 아직 나이는 젊으나 병사들 사이에서 인망도 높고 전공 또한 상당합니다. 책임감 역시 대단히 강한 장군이므로 최선을 다해 폐하의 명을 받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사옵니다. ”
“흐음, 뮤켄이라···.”
“혹 장군이 말하는 그 뮤켄이라는 자가 콜드베폰 영주의 차남이 맞는가? ”
재상의 질문에 밀시언 장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무관이 되기 위해 콜드베폰이라는 성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
“폐하, 그 장군의 이야기라면 신 역시 들은 바 있습니다. 성실하고 치밀한 성격에 전략에 있어 특히 뛰어난 장군이라 합니다. 이 기회에 적당한 직책을 내려두시면 훗날을 위해서라도 크게 보탬이 되리라 믿습니다. ”
엄연히 부사령관이나 참모장이 존재하는 터에 그 아래 서열에 있던 뮤켄을 사령관으로 승차시키는 것이 약간은 망설여졌지만 여왕은 재상의 한 마디에 결국 마음을 굳혔다.
“재상까지 그리 추천한다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겠지. ”
콜드베폰 영주 라그스트 대공의 직계라면 세레즈 내에서도 손꼽히는 명문의 자제 아닌가. 전임 사령관의 추천도 있었고, 좀처럼 누군가를 칭찬하는 일이 없는 재상까지도 이리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을 보면, 그를 승차시킨다 하여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을 듯 보였다. 더구나 전시 아닌가. 전시에 계급이 뒤바뀌는 것은 흔한 일이니 만큼 그 임명을 두고 일시적인 마찰이 생기더라도 얼마든지 무마시킬 수 있다.
“좋소. 그럼 재상은 그를 불러 수도 방위의 임무를 맡기도록 하시오. ”
“예, 폐하. ”
“밀시언 장군. 내 나흘 후에 공식으로 출전령을 내릴 터이니 그대는 즉시 움직일 수 있도록 인수인계 및 병사 파악과 휘하 장군 선발 등 만반의 준비를 끝내 놓으시오. ”
“예, 폐하. 신 목숨을 바쳐 폐하의 성은에 답하겠나이다. ”
여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에게 물러갈 것을 명했다. 방을 나서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미처 준비할 새 없이 선전포고와 맞물려 선제 공격이 이루어졌고, 그 수가 예상외로 대 병력이라 조금 당황한 것은 사실이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는 모두 예상 안에 들어 있는 상황인 것이다. 그들은 먼저 선전포고를 하여 내 제의에 수락의 의사를 표하였고, 약속대로 군대를 파병한 것뿐이야. 이미 승패가 약속되어 있는 마당에 진행이 조금 빠르다 하여 달라질 것은 없지. 조급히 굴어서는 안 된다. 사태가 어떻게 바뀌건 안타미젤에게 가장 큰 공이 돌아가도록 상황을 적절히 이용해야 함이야. 암, 애써 마련해 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이럴 때일수록 여유를 갖고 차분히 생각해야 하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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